<이슈&인물> ‘북한이 노리는’ 김정은의 데스노트

다음은 누구? 암살 타깃 리스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몰래 사람을 죽임’ 암살의 사전적 의미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서 여성 2명에게 독극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아 사망한 김정남을 보면 암살의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대담한 범행이었다. 사건 내용이 조금씩 구체화되면서 ‘북한 배후설’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다음 타깃은 누가 될 것인지를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방이 뻥 뚫린 공항서 여성 2명이 스쳐갔을 뿐이다. 그 한 번의 스침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쓰러졌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한국시각 오전 10시)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독극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고 실신,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오전 11시께 사망했다.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용의자와 그 배후를 둘러싸고 수많은 억측이 쏟아졌다.

김정남 피살
북 배후 확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 15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도안 티흐엉,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 등 여성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범행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여성 용의자들에게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용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지난 17일 북한 국적의 리정철을 체포했고, 19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리정철 등 신원이 확인된 북한 국적의 남성 용의자 5명 중 4명은 모두 사건 직후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17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북한이 배후가 아니다”(20일)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22일 경찰청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이 김정남 피살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공개했다. 또 앞서 지목한 5명의 남성 용의자 중 4명은 이미 북한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또 나머지 한 명은 아직 말레이시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서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용의자, 북한 국적자들의 행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배후는 북한인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통일부는 강철 북한대사가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한국”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21일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억지 주장이자 궤변”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주요 탈북인사들의 안전 문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서 열린 김정남 피살 사건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국내에도 북한서 보낸 암살자가 잠입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현재 국내서 활동 중인 암살자는 남성 2명으로 국적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내놨다. 또 지난해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를 두고 “워낙 고위급 인사였고 최근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암살) 타깃 1순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눈엣가시’ 꼽히는 탈북인사 초긴장
이미 암살자 잡입? 경찰 경계 강화

‘암살 타깃 1순위’로 지목된 태 전 공사는 지난해 8월17일, 영국 주재 공사로 지내던 중 일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공사는 대사 다음 서열로, 태 전 공사는 탈북 외교관 중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주 이집트 대사 다음으로 최고위직이다. 그는 10년 이상 덴마크와 영국 등 서방 세계서 북한 체제 선전 등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태 전 공사는 서유럽 사정에 정통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평가받았다.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학창시절 중국 유학을 통해 중국어를 익힌 태 전 공사는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 굵직한 직무를 맡았던 태 전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서 현학봉 대사에 이어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 그에 대한 북한의 신임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탈북은 북한 당국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북한 대남 매체들은 그를 가리켜 ‘특급 범죄자’라고 맹비난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MBC와 인터뷰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정은 체제에는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김정은은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처럼 행동하고 있다”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을 이유로 탈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 전 공사는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 정권의 사악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 사건”이라며 “체제 붕괴에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은 이 세상에 태어난 첫날부터 오늘까지 테러를 생존 수준으로 간주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태 전 공사에 대한 경호 수위는 김정남 피살 사건 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태 전 공사 측은 암살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외부활동을 잠정 중단키로 했지만 태 전 공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공개활동을 계속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태 전 공사는 “어떤 위협이 조성된다 해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한 순간도 중지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한 방송과 인터뷰서 진행자가 “(김정은이) 당신을 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느냐”고 묻자 “물론이다. 나도 암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해 암살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고백했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역시 표적 1순위로 거론된다. 하 의원은 지난 16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사실 후지산 혈통”이라며 “(김정남 피살 사건은) 백두혈통에 대한 김정은의 열등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두혈통은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이 백두산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신격화한 내용으로 일종의 권력 정통성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김정남은 백두혈통의 장자이자 그의 아들인 김한솔도 백두혈통이다.

하 의원의 말대로 김정은이 권력 정통성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했다면 김한솔은 ‘또 다른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태영호 1순위
“그래도 활동”

현재 김한솔의 행방은 묘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이 비밀리에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변장한 채 영안실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돌았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정보는 없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이 입국하면 신변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한솔은 김정남이 1995년 동거녀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2011년부터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이후 프랑스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9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은 대학원 등록 전 중국 정부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진학을 포기했다고 알려졌다. 영국서 생활할 경우 북한의 암살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정남을 따라 외국서 자란 김한솔은 10대 때부터 머리를 염색하는 등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때 자신의 SNS에 “나는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이후 미국 공영방송과 인터뷰에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2012년에는 김정은에 대해 독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대사관이 피살된 남자가 김정남이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는 것을 두고 시신의 신원 확인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김한솔을 찾아 DNA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것.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을 비롯한 김정남의 가족들이 사건 이후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면서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현지 정부의 엄밀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 중이다.

김정은의 숙부 김평일 주 체코 북한대사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콩 인터넷매체 <홍콩01>은 김평일과 김정남은 유사한 점이 많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이 매체는 세계탈북자대회서 김평일을 망명정부 지도자로 추대했다는 설이 그에게 치명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국제탈북민연대 김주일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서 “지난해 10월 체코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통해 현지서 열린 외교행사에 참석한 김평일 대사에게 ‘국제탈북민연대가 망명정부 수립을 위해 당신과 접촉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구두로 전했다”고 밝혔다. 김평일은 당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두혈통 김한솔
행방 묘연한 상황

홍콩의 시사평론가는 김평일이 공개적으로 탈북 의사를 밝힌 적도 없고, 행동을 조심하고 있지만 김정은정권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가 다음 암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체코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체코 당국은 김평일이 외부 약속 등으로 외출할 때마다 동향을 점검하는 등 관련 정보를 수집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국내 주요 탈북 인사들에 대한 북한의 테러 경계령을 최고 수위로 올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서 “대테러센터 등 관계기관은 테러 대응 태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탈북 인사의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북한이 노리는 국내 주요 탈북인사는 1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년 전 독살 위기를 넘겼고, 지금도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검찰은 2011년 독침으로 박 대표를 암살하려 한 혐의로 탈북자 출신 공작원 안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안씨는 독총과 독침을 가지고 있었다.

침에는 10㎎만 인체에 들어가도 즉사할 수 있는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독약 성분이 묻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법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박 대표 독살 위협 사건은 김정남 피살 사건서 독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대담한 범행 방식은 20여년 전 자신의 집 앞에서 피살된 이한영 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이한영은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과는 이종사촌 간이다.

1978년 모스크바 외국어대 어문학부를 전공한 엘리트 출신 이한영은 1982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KBS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로 근무했던 이한영은 1996년 김정일의 사생활을 담은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출간해 관심을 끌었다.

거슬렸다간 소리소문 없이…
친인척도 가차 없이 제거

그로부터 1년 뒤인 1997년 2월15일 이한영은 망명 15년 만에 경기도 자택서 피살당했다. 현장서 북한제 권총에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됐고 이한영이 의식을 잃기 전 ‘간첩’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다.

이한영은 ‘한국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의미로 이름까지 개명한 상황이었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더욱 컸다. 이후 2003년 2월 이한영의 아내 김모씨는 국가를 상대로 약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김씨는 “남편은 국가가 철저히 신분을 보호해야 하는 요시찰 보호 대상이었지만 북한 암살단이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남편의 신상정보를 빼내 그를 살해할 때까지 이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는 남편이 사망한 후 추가 테러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가족의 활동을 제한해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힌 바 있다.

2008년 대법원은 “국가는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만류를 무시하고 언론 인터뷰와 TV 출연 등을 통해 자신을 노출한 이씨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국가 책임을 60%로 제한, 유족에게 9699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10년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97년 망명한 이래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황장엽은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권력층 중 최고위직으로 꼽힌다. 망명 당시 직책은 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였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에 ‘주체사상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황장엽은 망명 이후 북한 체제 비판과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던 황장엽은 북한으로선 꼭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제 2010년 국내에 탈북자로 위장한 ‘황장엽 암살 2인조’가 침투했다가 사정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공작원으로, 황씨를 살해하라는 북한 고위직의 지시를 받고 중국과 태국을 거쳐 입국했다가 잡혔다.

북한은 지난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고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한 북한 배후설은 ‘음모책동’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김정남 사망 이후 열흘 만에 나온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이다. 북한 측은 담화에서 김정남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로 지칭했다.

북한은 담화문서 사망한 공화국 공민은 심장 쇼크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부검을 할 필요가 없고, 말레이시아 당국의 시신 부검은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자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이한영 피살과
대담수법 닮아

또 북한 배후설과 관련해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고 그 대본까지 미리 짜놓고 있었다”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박근혜 역도의 숨통을 열어주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려보려는 시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반응에 통일부 관계자는 “억지주장이자 궤변”이라며 “(북한 반응은) 예상해왔던 것이고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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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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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