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첫 당권' 박지원 국민의당 신임 당대표

‘킹메이커’ 세 번째 대통령 만드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변은 없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침내 당권을 거머쥐었다. 박지원 신임 당 대표는 ‘정치9단’ ‘책사’ ‘킹메이커’ 등의 별명처럼 정치권서 손꼽히는 정치력을 가졌지만 유독 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국민의당을 접수하면서 19대 대선의 키맨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겨둔 탄핵정국서 조기 대선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 박 신임대표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예상된 결과였다. 지난 15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서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61.6%(1인 2표)를 얻어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함께 출마한 문병호 전 의원(50.9%), 김영환 전 의원(39.4%), 황주홍 의원(26.9%), 손금주 의원(21.1%)은 최고위원으로 자동 선출됐다.

박 신임대표는 마지막까지 다른 후보들의 견제를 받을 정도로 유력주자였다. 레이스 내내 제기됐던 ‘박지원 대세론’이 현실화된 셈이다. 원내대표이자 비대위원장으로 홀로 당을 이끈 이력이 당 대표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변 없는 승리
4수 만에 당대표

박 신임대표는 전당대회 승리로 4수 만에 정규직 당대표 자리를 꿰찼다. 박 신임대표는 2010년 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 지난해 국민의당 등 원내대표만 3번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한 번도 정규직 당대표를 맡은 적이 없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에선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에 밀려 4위에 그쳤다. 19대 총선 이후에도 당권에 도전했지만 당내 상황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서 문재인 전 대표를 바짝 추격하면서 당권을 손에 쥐는 듯 했지만 3.5%포인트라는 근소한 차로 패했다. 박 신임대표에게 이번 전당대회가 간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한 박 신임대표는 지난 20대 총선서 38석을 얻어 캐스팅보트로 급부상한 국민의당을 잘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4월, 만장일치 합의추대 방식으로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이후 4·13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으로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동반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을 겸하게 됐다. 박 신임대표는 총선서 과반의석을 얻지 못한 거대 양당의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왔다. 의석은 38석에 불과했지만 국민의당이 양당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박 신임대표 덕분이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특히 존재감을 과시했던 건 지난달,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때였다. 박 신임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2일로 예정돼있던 탄핵 표결 처리를 같은 달 9일로 미루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당시 박 신임대표는 “새누리당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들이 탄핵소추안에 찬성할 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며 9일까지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가 절정에 이르렀고, 그 속에서 대통령 탄핵 요구가 빗발치던 상황이었다. 탄핵안 표결이 미뤄지면서 국민의당은 지지기반인 호남서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가 같은 달 9일, 본회의 표결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234명 찬성)하면서 박 신임대표의 행동은 면죄부를 받았다.

영원한 DJ 비서실장 “일냈다”
조기대선 정국서 정치권 흔들 듯


일각에선 ‘2일에 표결을 진행했으면 통과가 안됐을 수도 있다. 9일로 미룬 게 신의 한 수’라는 등 그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탄핵 표결 공방은 160일간 이어진 ‘박지원 비대위 체제’에 내상을 입혔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제3당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등 성공적이었다는 말이 대세였다.

박 신임대표는 이번에 당 대표 자리에 오르면서 킹메이커이자 키맨으로 20대 대선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조기 대선은 이미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후보들이 넘쳐나는 야권에선 벌써부터 경선룰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등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박 신임대표는 당 대표선거 출마 선언 당시 국민의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선 기자회견서 그는 “당은 키우고 당원은 섬기고 우리 후보는 반드시 대통령 만들고, 박지원 ‘3GO프로젝트’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안철수·천정배를 대선후보로 우뚝 세우고 손학규·정운찬 등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분들을 모셔 대선 드림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 9일 페이스북에는 “나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당선시켜봤다”며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썼다. 이어 자신을 고구마에 비유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고구마는 부패하지만 생수는 깨끗하다”며 “생수와 같은 안철수는 싸우지 못하니 내가 대신 싸워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인정하면 당에 들어와 강한 경선을 할 수 있다”며 유력 대선후보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대북송금·저축은행
대법원서 전부 승리

박 신임대표는 대통령을 두 번 만들었다는 본인의 말처럼 킹메이커로서 남다른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처음 국민의당 원내대표로 거론될 때 연임 의지를 드러내던 주승용 의원(현 국민의당 원내대표)이 “정치력이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라며 도전을 포기했다는 일화가 이를 방증한다. 그의 정치력은 남다른 이력과 핵심 요직들을 두루 거치면서 쌓였다.

1942년 전남 진도 출생인 박 신임대표는 목포 문태고와 단국대 상학과를 나왔다. 30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가발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인생은 1983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받았다가 무기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된 후 1982년 12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해 미국으로 사실상 망명을 떠난 상황이었다. 이 기간 동안 박 신임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생활비를 댔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 출국 당시 전두환정부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의사를 밝혔다. 박 신임대표는 1987년 김 전 대통령이 귀국하자 미 영주권을 포기하고 함께 한국에 들어오면서 정치에 첫발을 들였다.

1992년 14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그는 4년간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서 대변인으로 활약하며 ‘명대변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SNS,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피력하는 그의 스타일은 과거 대변인 시절 내공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박 신임대표의 말 한 마디가 정치권에 후폭풍을 불러오는 일도 많아 “언론을 상대하고 이슈를 선점하는 면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1996년 15대 총선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당시 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7년 대선서 김 전 대통령의 당선에 공을 세운 박 신임대표는 국민의정부 출범 후 청와대 대변인, 공보수석, 정책특보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국민의정부 2인자’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99년 문화관광부장관에 임명되면서 잠시 청와대를 떠났지만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다시 입성해 임기 말까지 김 전 대통령을 보필했다. 박 신임대표를 거론할 때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DJ의 마지막 비서실장’ 등의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이뤄질 당시에는 막후에서 남북의 의견을 조율해 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박 신임대표가 현재 사용 중인 국회 의원회관 615호는 6·15공동선언을 상징한다.

두 지도자의 만남은 남북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했고, 그 과정서 박 신임대표는 대북교섭력을 인정받았지만 이로 인해 정치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다.


조기 대선 역할론
킹메이커 급부상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들어 진행된 대북송금 특검이 그 발단이었다. 2000년 현대그룹서 대북 7대 사업권 확보 및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북한에 비밀자금을 송금했다는 의혹에 대한 특검이었다. 당시 특검은 북한 측에 5억달러의 돈이 흘러간 사실을 밝혀냈고,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박 신임대표가 구속 기소됐다.

그는 1심과 2심서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건네받고 남북정상회담 대북송금 과정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 등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반전은 대법원서 나왔다. 2004년 대법원은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박 신임대표의 비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금품 전달자 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 박 신임대표는 2006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른 박 신임대표는 2007년 2월 노무현정부 말기에 특별사면됐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었고 특검수사는 조작이었다. 저는 지난 시간동안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싸웠고 마침내 이겨냈다”며 소회를 밝혔다.

특별사면 이후 정계에 복귀했지만 통합민주당의 호남지역 공천 개혁으로 2008년 18대 총선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는 전남 목포에 무소속 출마를 감행, 결국 당선됐다. 14대 총선 이후 12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한 박 신임대표는 그해 8월 복당했고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등을 지내며 기반을 다졌다.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법사위원 자격으로 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인 의혹들을 폭로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는 청문회서 천 후보자의 위장전입, 천 후보자의 부인이 해외여행 때마다 고급 명품을 사들이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고 폭로했고, 결국 천 후보자는 사퇴했다.

재미사업가서 정치인으로
검찰 악연…끝내 살아남아

이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를 진두지휘하면서 이명박정부에 치명타를 안겼다. 특히 정 감사원장 후보자와 관련해 “사퇴하지 않으면 매일 한 건씩 폭로하겠다”고 압박해 청문회 시작 전에 사퇴를 이끌어냈던 사건(?)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대북송금 사건서 기사회생한 후 정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그에게 다시 한 번 위기가 닥쳤다.
 

2012년 9월 검찰은 박 신임대표가 2008년 3월, 임석 전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에게서 선거자금 명목으로 2000만원, 2010년 6월 오문철 당시 보해저축은행 대표에게서 수사 관련 청탁과 함께 3000만원, 2011년 3월 임건우 전 보해양조 회장에게서 금융위원장 청탁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신임대표에게 징역 2년과 벌금 500만원, 추징금 8000만원을 구형했지만 2013년 12월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여자들의 진술의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로 ‘증거 부족’을 들었다.

2015년 7월 열린 항소심서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받으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박 신임대표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판결은 대법원서 다시 뒤집혔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은 오 전 대표의 진술을 두고 “원심이 무죄로 인정한 또 다른 금품 제공 사실에 관한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이유로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같은해 6월 열린 파기환송심서 재판부는 대법원의 취지대로 박 신임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검찰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박 신임대표는 무죄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서 무리하게 조작해 정치인의 생명을 끊어버리려 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며 “검찰과 길고 긴, 끈질긴 악연도 이제 끝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저축은행 비리사건서 검찰에 승리한 박 신임대표는 당 대표로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선거 유세 내내 안 전 대표의 자강론에 힘을 보태고 호남과 충청의 정치적 연합인 뉴DJP(김대중·김종필)연합 등 불거진 연대론과 선을 긋는 데 공을 들였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박 신임대표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 충청권과의 뉴DJP연합에 관심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더민주 최인호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서 “국민의당은 정권교체보다 패권주의 청산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이어 반기문 전 총장을 포함한 뉴DJP연합에 관심 있다고 말했다”며 “사실상 정권교체 부정 발언으로 너무 충격적”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DJ는 역사적 정권교체를 위해 연대했지만 반기문과의 연대는 박근혜정권의 연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신임대표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2년 반쯤 전, 반 전 총장 측이 뉴DJP연합을 먼저 제안했다. 그 이후로 반 총장 측과 접촉한 적이 없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최근 박연차 23만달러 수수 의혹, 동생 및 조카의 미국에서 뇌물 혐의 기소 등 문제에 대해 “혹독한 검증을 거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이냐 반이냐
그의 선택은?

박 신임대표는 현재 모든 관심을 정권교체에 쏟고 있다. 지난 3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방명록에 “국민의당 후보로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룩하겠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지난 11일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을 받았던 소속 박선숙, 김수민 의원이 1심서 무죄를 선고받자 “사필귀정이며 정권교체가 필요한 이유”라고 자신의 SNS에 남기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박 신임대표가 당대표로서 전면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야권 대선후보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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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