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연임 노리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

조용한 카리스마 '공룡' 길들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철강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성과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그의 연임 가능성도 높다. 그의 발자취를 정리했다.

권오준 회장은 지난 달 9일, 서울 포스코센터서 오후 3시30분께 시작된 정기이사회에 참석, 사외이사들에게 연임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 회장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권 회장은 이날 “지난 3년간 회사 경쟁력 강화와 경영 실적 개선에 매진한 나머지 후계자 양성에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사를 이끌어 나갈 리더 육성을 위해 올해 도입한 톱 탤런츠 육성프로그램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CEO 심사 돌입
경쟁자가 없다

그는 “3년간 추진해왔던 정책들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고 남은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직 연임 의사를 표명드리며, 회사 정관과 이사회 규정에 따른 향후 절차를 충실히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최근 3년간 포스코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권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13년 말 포스코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정준양 전 회장의 체제서 내홍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의 과도한 기업인수합병(M&A)으로 체질이 부실해졌다.


결국 정 전 회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3년 11월 물러났다. 이목은 신임 회장 인선에 집중됐다. 당시 포스코 회장 선임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서 권 회장이 8번째 수장으로 포스코를 이끌게 됐다.

신임회장으로 권 회장이 낙점되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경영인 출신이 아닌 연구원 출신이 포스코를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윈저대학교 금속공학 석사, 피츠버그 대학교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86년부터 포스코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기술연구소 부소장, 기술연구소장, 유럽사무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 등을 거쳤다.

취임식서 권 회장은 비장했다. 당시 포스코의 상황은 주변 상황을 신경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 권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포스코는 지금 큰 어려움의 한가운데 있다. 신용등급은 떨어지고, 주가는 바닥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이 아니라 생존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2008년 연결기준 매출 41조7000억원에 영업이익 7조1700억원, 영업이익률 18%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이래 5년 새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2013년 연결기준 매출액이 61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2008년 대비 50% 늘어난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2조9000억원, 영업이익률은 5% 이하로 떨어졌다.

“아직 할 일 남았다” 연임 가시화
압도적인 성과…지속적 실천의지

업계에선 당시를 ‘잃어버린 5년’으로 부르기도 했다. 부진 원인으로는 무리한 M&A가 거론된다. 정 전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외형을 키우기 위해 2010년 대우인터내셔날 인수를 시작으로 M&A에만 5조원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2008년 말 58.9%였던 포스코의 부채비율은 2013년 84.3%까지 치솟을 만큼 재무 건전성은 악화됐다.


매출액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줄었고, 부채비율이 치솟으면서 포스코에 대한 외부 평가도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서 Baa2로 강등시켰다. S&P와 피치 등 다른 신용기관들 역시 최근 2~3년 사이에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권 회장은 타개책으로 ‘혁신 포스코 1.0’을 내세우며 임직원들에게 포스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권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일류는 자만과 허울을 벗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면서 “위대한 포스코를 재창조하자”고 말했다.

권 회장은 적극적인 경영으로 부실해졌던 체질을 개선했다. 철강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경영인이 밀어붙이는 뚝심에 눈길이 쏠렸다. 당시 포스코는 위기라는 말이 어울리던 시기였다. 2008년 7조20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3년 2조9000억원까지 축소됐다.
 

권 회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군을 정리했다. 2014년 3월 취임 후 그해 7월 포스코-우루과이, 포스화인 등의 지분 매각을 시작으로 포스코 리빌딩이 시작됐다. 포스코는 총 149건의 구조조정 목표 가운데 현재까지 총 98건(65.8%)을 달성했다. 포스코는 올해 나머지 51건의 구조조정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성과 창출 위해
시간이 더 필요”

권 회장은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 시장서 고가의 철강재로 인식되는 포스코의 제품을 고객에 니즈에 맞게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권 회장은 “철강사업본부 내에 제품솔루션센터를 창설해 고객의 잠재적인 니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고부가가치강인 월드프리미엄(WP) 제품에 집중하면서 중국발 저가 철강 제품과 차별화를 두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세웠다. WP제품은 세계에서 포스코만 단독으로 생산하는 월드퍼스트(WF), 기술력과 경제성을 갖춘 월드베스트(WB), 고객선호도와 영업이익률이 높은 월드모스트(WM) 제품을 의미한다. 이 같은 구상은 권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전부터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장 면접 당시 “기술로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에 맞는 정확한 기술을 개발하겠다. 이를 위해 시장의 동향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것을 토대로 기술 개발에 전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회장 취임 전부터 계획했던 내용을 그대로 경영에 녹이고 있는 셈이다.

그가 밝힌 솔루션 마케팅은 바로 고객사가 가장 쓰기 좋은 형태, 원하는 형태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가장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를 재가공하기 용이한 기술도 같이 제공해 고객사의 만족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의 경영전략은 시장서 통했다. 포스코의 WP 판매량은 작년 3분기 기준 403만8000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철강재 판매량의 절반 수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13년 1분기 판매 점유율 38%(313만2000톤) 대비 10%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WP제품 판매 비중은 48.1%를 늘었다. WP제품은 15%에 달하는 영업이익률를 보이며 높은 마진율을 자랑하기 때문에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서 수익률을 지켜주는 효자 상품 노릇을 했다.

2015년 철강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14∼2105년 동안 세계철강수요는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이 철강 물량을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하자 싼 가격으로 수출로 물량을 밀어낸 것이 주된 요인이다.


중국과 더불어 국내 철강재의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중국과 더불어 한국의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율을 적용했다. 당시 포스코는 반덤핑 3.89%, 상계관세 57.04% 등이 부과돼 관세율이 총 60.93%에 달했다.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서도 포스코는 선전했다. 가장 최근 실적인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343억원을 기록, 4년 만에 1조원을 돌파했다. 매출은 12조7476억원, 순이익은 4755억원 수준이다.

이는 포스코의 3분기 영업이익이 9000억원 규모일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상을 깬 깜짝 실적이다. 또 우려가 제기되던 해외법인이 사업도 호조로 돌아서며 그의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해외 철강 법인의 합산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1148% 늘어난 1323억원을 기록한 것.

불확실한 업황…선명한 비전 제시
외형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 중점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인 PT.크라카타우 포스코가 38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멕시코 자동차 강판 생산법인인 포스코 멕시코와 베트남 냉연 생산법인인 포스코 베트남, 인도 냉연 생산법인인 포스코 마하라슈트라 등도 호실적을 거뒀다.

실적을 분석하면 그동안 권 회장의 포스코 재건 작업이 착실히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2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그룹 구조조정에 따른 법인 수 감소로 0.9% 줄었지만, 철강 부문 실적이 대폭 개선되고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 실적이 개선되면서 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2.4%와 115.6%가 증가했다.


전년동기 대비로도 실적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8.9% 줄고 영업이익은 58.7% 늘었다.
 

영업이익률이 개선된 점 역시 권 회장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실제 영업이익률은 WP 제품과 솔루션 마케팅 판매량 확대, 철강 가격 상승, 원가절감 등에 힘입어 전분기보다 2.1%포인트 오른 14.0%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3분기 이래 최고 수준이다.

업계는 몸살
실적은 긍정적

재무건전성도 역시 개선됐다. 연결 부채비율은 전분기보다 5.5%포인트 낮아진 70.4%로 연결 회계 기준을 도입한 이래 최저치였고, 별도 부채비율은 2.3%포인트 내린 16.9%를 기록해 창사 이래 가장 낮았다.

연결기준 차입금은 전분기 대비 2조2643억원 줄었고, 별도 기준으로는 외부 차입금보다 자체 보유 현금이 많아지면서 순 차입규모가 마이너스(-8295억원)로 전환됐다. 권 회장의 3년간 리빌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이는 권 회장 연임으로 가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권 회장이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돼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포스코에 대한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속속히 발표되면서 권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검찰은 최순실 관련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대기업에 자금 출연 등 압력을 행사했다”며 “포스코를 포함한 대부분 기업들은 피해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검찰 발표서 포스코 경영진이 포레카 매각 관련 초기 작업부터 최씨 측과 공모했다는 의혹 역시 언급되지 않았다. 2014년 권 회장 선임 당시 최씨 측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발표문서 제외됐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포스코 관련자들은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서 증인채택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포스코는 CEO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단일후보로 권 회장의 연임을 놓고 검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청와대의 선임 개입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주주총회가 내년 3월 열리고 이 자리서 차기 회장 선임 안건을 의결해야하는 만큼 권 회장의 연임 검증작업은 늦어도 내년 1월 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CEO후보추천위원회가 권 회장의 연임이 적격하다고 판단하면 이후 주주총회와 이사회 승인을 거쳐 권 회장의 연임이 최종 결정된다.

이명우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 의장(동원산업 사장)은 4일 “권오준 회장 연임 여부는 무엇이 포스코의 장기적인 이익이 될 것인지를 고려해 25일 이사회 전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포스코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 회장에 대한 자격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명우 의장, 신재철 전 LG CNS 대표이사 사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일섭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김주현 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선우영 법무법인 세아 대표 등 6명이 CEO 후보추천위를 구성하고 있다.

단일후보…
이달 말 결정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앞으로 2∼3주 동안 검증작업을 벌여 권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한 뒤 오는 25일 열리는 이사회서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은 “위원회에 속한 사외이사들만의 시선으로 후보를 보는 것은 옳지 않으니 다양한 그룹으로부터의 의견을 청취·수렴 중”이라며 “근로자 대표, 전임 회장단, OB 모임, 포스코 투자자 등 포스코 내외부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권오준 회장) 후보에 대한 생각, 평가, 기대를 골고루 듣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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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