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꾼 일상 ‘천태만상’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냄비 근성. 우리 국민들의 국민성을 표현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는 냄비의 특성처럼 이슈에 따라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외면해버린다는 뜻으로, 보통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지난 10월29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지난 3일 6차에 이른 촛불은 ‘냄비 근성’을 비웃듯 더욱 크게 타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촛불집회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주 역사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이 바꾼 일상, 대한민국을 들여다봤다.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촛불집회에 전국 232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는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고, 헌정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다.

가족 연인 학생↑
연말모임 광장서

매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토요일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 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정치 상황, 날씨 등을 고려해 ‘전주보다 감소’ ‘유지’ ‘증가’ 등 의견이 나온다. 언론 역시 촛불집회 참여 예상 인원에 따라 정치권에 가해질 압박, 사회 변화 등을 언급한다.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 광장의 전경이 월요일 조간신문 1면을 채운 지도 한 달이 넘었다. 100만명이 광장으로 뛰쳐나온 3차 집회 후 한풀 꺾일 것이라고 진단했던 몇몇 정치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촛불에 주눅이 든 상태다. 과거 광장에서만 울리던 외침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촛불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동창회를 광화문서 하기로 했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fe***씨는 지난 2일 한 커뮤니티에 ‘저희 동창회 연말모임 광화문입니다. 25명 참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친구들과 광화문서 모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30대 직장인 한모씨는 “친구들과 금요일에 송년모임을 하고 토요일에 함께 집회에 가기로 했다”며 “광화문이 2차 송년회 장소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20대 대학생 장씨는 매주 토요일 광화문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

장씨는 “처음 집회에 가자고 했을 땐 싫어했지만 지금은 데이트 코스로 굳어졌다”며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놀랐다. 지난달 12일, 3차 촛불집회 당시 사회를 맡았던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서 “밑바닥 민심 보셨잖아요. 동창회, 동호회를 광화문서 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가운데 집회나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를 보고 ‘빨갱이들’ ‘데모하는 놈들’ 등의 말이 여과 없이 언론 인터뷰로 나올 정도였다. 1∼6차 촛불 집회는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 시민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전문가들은 촛불집회가 6차에 이르는 동안 광장은 ‘만남의 장’ ‘자기치유의 장’ ‘축제의 장’ 등으로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는 <광주일보>에 기고한 칼럼서 “이번 촛불집회는 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양극화되고 불안하고 외로운 한국사회서 경험한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국민 치유의 장”이라고 분석했다.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자녀 등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집회를 구성하는 인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크게 호응해주는 광경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노동조합위원장, 시민단체 회원, 대학교 학생회장, 정치인 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광장의 발언대도 중·고등학생,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각계각층의 구성원에게 개방되고 있다.

일상으로 파고든 집회
회차 거듭될수록 진화
송년 모임도 거리에서

지난달 5일, 1차 대구 시국대회 무대에 오른 송현여고 조모 학생은 “평소라면 자습실 책상에 앉아 역사책을 읽으며 11월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허나 저는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에 오늘 살아있는 역사책의 현장에 나오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학생은 “56년 전, 1960년 2월28일 대구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을 규탄해 민주주의를 지켰듯 우리 대구 시민들이 정의의 기적을 일궈야 할 때”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민주주의여 만세!”로 발언을 마쳤다. 대구 시민은 학생의 당찬 발언에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다.

촛불집회 구성원이 다양화된 데에는 비폭력·평화 시위 기조가 크게 작용했다. 6차 촛불 집회에 전국서 232만명의 시민이 대통령 퇴진을 외쳤지만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0명이었고 충돌도 없었다. 6차 집회 때는 법원이 청와대 경계 100m 지점인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청와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집회 행렬이 청와대 100m 앞까지 간 것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법원으로서 이례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촛불 행렬은 청와대서 1.3㎞ 떨어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멈췄다. 이후 900m(3차), 500m(4차), 200m(5차)로 집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청와대와 가까워졌다. 매주 조금씩 북상한 민심이 청와대 코앞까지 온 것이다.
 

촛불집회에 모인 민심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다.

현재까지 집회에 네 번 참여했다는 40대 강모씨는 “우리가 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준 건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는 뜻이었지, 일반인과 나눠가지라는 게 아니었다”면서 “너무 화가 나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막 수능을 끝낸 고3 학생 이모양은 “수능을 보기까지 정말 엉덩이가 아프도록 공부했다”면서 “그 사이 누군가는 잘못된 방법으로 명문대에 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각에선 시민들의 분노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말도 있다. 6차 집회서 그간 등장하지 않았던 횃불이 나왔고, 대통령에 대한 구호도 하야, 퇴진, 탄핵, 체포, 구속 등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평화 시위 방식을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충돌을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하는 것은 물론 경찰을 보듬어 안아주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은 고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 살수했다. 백씨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후 깨어나지 못한 채 지난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백씨의 사망으로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촛불 집회 1차 참가자 수가 2만명서 1주일 만에 20만명으로 폭발했을 때 시민들은 공권력의 탄압이 자행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 2차 집회까지만 해도 살수차 등장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공권력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던 때였다.

평화·비폭력
의경 안아주기도

지난달 7일, 2차 집회 직후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서 “경찰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3만명에 불과한데 10만∼20만명이 모이고 시위가 격화될 경우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며 “최후방에서 불가피하게 살수차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현재 이 청장의 우려는 기우가 됐다. 오히려 이 청장은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서 19일 4차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꽃 스티커를 떼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경찰 버스에 붙인 꽃 스티커는 평화 집회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5차 집회 때 서울 종로구 통인동 사거리서 선두에 서있던 집회 참가자 20여명은 두 팔을 벌려 대치 중이던 의경들을 끌어안았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경찰이 무슨 죄냐. 다 같은 국민이다”며 시민들의 말에 의경들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촛불집회 사진을 보면 의경이 시민들의 집회 인증샷을 찍어주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의경과 팔씨름을 하는 집회 참가자의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주말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종의 대형 공공축제 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한국 국민이 평화롭고 축제 형태로 집회의 새 장을 열었다”고 강조하는 등 외신도 평화적인 집회 분위기에 찬사를 보냈다.

봉사 나눔 배려
스마트 집회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김 의원의 말에 스마트폰과 LED 촛불을 들어 보이며 눈·비가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실제 지난달 26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서 190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순순촛불’ 등 각종 촛불 앱으로 주변을 환히 밝혔다.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민들이 증명했다.

스마트폰, SNS의 발달은 집회도 ‘스마트’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박항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은 ‘카이스트 대오 위치 보기’ 앱을 만들었다. 광장에 나부끼는 수많은 깃발로는 대오를 찾기 어려운 학생들의 불편함을 보고 고안했다.

박씨가 만든 앱은 대오 인솔자의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지도에 표시해 주는 방식이다. ‘집회출석’ 앱도 있다. 집회 당일 광화문 반경 2km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출석체크가 된다.

이외에도 공권력감시대응팀과 진보네트워크센터서 만들어 배포한 집회 시위 매뉴얼에는 처음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물, 법률 등이 담겨있다. 화장실, 응급시설, 촛불, 피켓 배포 장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편의시설 안내 앱도 등장했다.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한 앱도 있다. ‘오천만 촛불’은 개인사정이나 근무, 육아 등으로 집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촛불 사진을 SNS에 공유하면 참석 인원으로 체크해 해당 지역별로 분류했다. 그렇게 몰린 인원이 37만명에 달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각종 인터넷 생중계 채널에도 시민들이 몰렸다. 이들은 현장 참가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뜨겁게 호응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
의원에 카톡 제보도

외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도 온라인 촛불을 켜는 등 국내서 일어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LA에 거주 중인 문모씨는 “매주 한국서 열리는 집회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참여할 수 없어 안타깝다”며 “일단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를 촛불로 해놓고 교민들끼리 진행하는 촛불집회에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나눔과 봉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새마을금고 광화문 본점 근처에선 한 상인이 추운 날씨에 집회에 참가한 시민을 위해 따뜻한 물을 제공했다.

지난 3일,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춘천에선 무료 ‘하야 커피’를 주는 푸드트럭이 등장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핫팩, 방석, 촛불, 종이컵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의 손길이 집회가 거듭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쓰레기봉투를 여러 장 사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사람을 봤다며 글을 올렸다.

그 학생은 33만2000원을 들여 쓰레기봉투 100L 100장, 50L 100장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집회 때마다 광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줍는 등 주변을 청소하는 시민들 덕분에 광화문 광장은 집회 이후에도 이전과 다름없는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 퍼포먼스나 피켓 문구 등도 집회의 또 다른 볼거리로 떠올랐다. 3차 집회 때 100만명의 촛불 파도타기는 장관을 이루며 외신에 보도됐고, 5∼6차 집회 때 이뤄진 1분 소등행사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문구를 실현했다.

촛불집회는 10대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촉매제로도 작용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 8일 라디오 프로그램 <KBS 공감토론>에 출연, “저는 촛불민심의 국면에 대해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주권재민의 실체하는 힘을 느끼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 역사의 순간을 보고 있다는 것에 정말로 가슴 떨리는 외경심이나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은 최순실 게이트가 열린 이후 중요한 국면마다 정치권을 압박했다. 촛불을 통해 전달된 시민들의 요구에 놀란 정치권은 화답했다. 의회는 시민의 대리인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현실화된 것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회의원의 휴대폰 번호가 무더기로 뿌려졌다. 시민들은 의원들에게 탄핵 관련 입장을 밝히라며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의원들은 시민 개개인의 요구에 답변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동안 민심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의회는 시민의 목소리를 촛불이나 문자, 카카오톡을 통해 직접 듣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공개된 전화번호는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 7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 카카오톡 캡처 게시글이 올라왔다. 주갤러가 올린 캡처에는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청문회 영상과 관련 사안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에게 제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촛불 이후…
직접민주주의

제보를 받은 박 의원은 이를 영상 자료와 시각 자료로 만들어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에 참여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은 그 때까지 최순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가 증거가 나오자 “기억을 잘 못했다. 내가 최순실을 모른다고 한 것은 전화를 하거나 만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등으로 해명하며 진술을 번복했다.

박 의원은 질의가 끝난 이후 “네티즌 수사대와 함께한 일”이라며 SNS를 통해 감사를 표했다. 누리꾼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쾌거” “온오프 합작 성공”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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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