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재평가 받는 사람들

그땐 몰랐던 그들의 외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던 말이나 행동이 시간이 흐르면 다시없을 진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진실처럼 믿었던 사실이 허무한 거짓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사안이든 시대 보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 같은 재평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신문, 방송할 것 없이 온 언론이 매달려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수없는 의혹이 쏟아져 전 국민이 경악했다. 현실이 팍팍하면 과거를 되돌아보는 법,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일가와 연관됐던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립다’
책·영화 인기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그를 다룬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8년간 일한 강원국씨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인터넷서점 ‘예스24’서 베스트셀러 6위, ‘교보문고’서 7위에 올랐다. 상위 작품들이 전부 올해 발간된 것을 감안하면 2014년 2월에 나온 책이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강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3년, 노 전 대통령과 5년간 일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빨간펜’ 첨삭을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글쓰기는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연설문을 쓸 때마다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에게 관심이 쏠렸다.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 사랑은 지독한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강 전 비서관은 언론과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같이 앉아서 고치고 토론했다”며 “말을 하셔야 말이 생각나고 말이 발전한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다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대통령에게 연설문은 전부였다”고 했다. 국정 방향, 국내외 정책, 대통령의 의지 등 국민을 상대로 드러내는 국가 수장의 생각 자체인 연설문이 농락당한 현실이 노 전 대통령을 다시금 2016년으로 불러들였다.

최순실 게이트서 ‘재평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재판정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일갈했다는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로, 10·26사태의 장본인이다.
 

당시 김 전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부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노무현, 김재규, 이기붕, 이정희
사건과 연관 인물들 재조명 화제

강 변호사는 주간지 <시사인>과 인터뷰서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수차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이를 묵살하자 거사를 결심하게 됐다는 김 전 부장의 증언을 전했다.

강 변호사는 “김 전 부장이 사형당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28일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얘기를 처음 꺼냈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전했다.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부장은 최후변론서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러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돼왔다”며 “그럼에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최태민씨가 총재,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고 있던 단체였다.

최근 시국을 덮친 사태에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 최순득씨 등 최씨 일가가 얽혀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당시 김 전 부장의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역적, 대통령 살해범 등으로 불렸던 김 전 부장은 젊은 층에서 구국의 영웅, 의사, 열사 등의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민주화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함세웅 신부는 <채널예스>와 인터뷰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제거한 바로 그날 김재규 부장이 유신의 핵을 제거했다. 김재규가 재평가되는 그날,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최순실의 관계서 이승만-이기붕의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10월19일 “최순실 모녀 사태를 보면 옛 이승만정권 때 권부 핵심 실세로 정권의 부패와 몰락을 자초했던 이기붕 일가가 떠오른다. 이기붕 일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와 이기붕 전 부통령은 대통령을 움직여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전 부통령은 노쇠한 이승만 전 대통령 뒤에서 국정 전반을 주물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는 바로 이 전 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후보로 내세웠다.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이 후보로 나섰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그 직을 승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자유당은 정당한 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대리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가공할 만한 부정을 저질렀다.

국민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4월11일 마산 앞바다서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얼굴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 전 부통령은 자신이 이 전 대통령에게 양자로 바쳤던 아들 이강석의 총에 죽었다.

이승만·박근혜
둘은 닮은 꼴?

이미 오래 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제기해 옥살이를 한 사람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당시 목사였던 김해호씨는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경선 과정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2007년 6월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며 “자신이 가진 재단조차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라고 했다.


김씨의 폭로에 사람들은 그를 ‘이명박의 개’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상대였던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서 일하고 있었다.

김씨는 “최 목사(최태민)와 그의 딸(최순실)이 육영재단에 개입한 1986년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이 세 번 바뀌었고 직원 140명이 최 목사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며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 목사의 딸은 서울 강남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졌는데 이 돈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재산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증위원회가 밝혀달라”고 주장했다.

무시당한 폭로
이제야 사실로

김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했던 내용은 지금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김씨의 폭로가 9년이 지나서 일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당시 법원은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허위사실로 치부했다. 김씨는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의 실형을, 항소심에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검찰과 피고인 측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은 그대로 확정됐고, 김씨는 6개월가량 옥살이를 겪었다.

김씨는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책특보였던 임현규씨와 함께 재심을 청구한 상황이다. 임씨는 김씨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작성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입장자료를 통해 “당시 제기한 의혹 상당수가 현재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당초 재심청구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다시는 이 같은 국정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자칭 목사’ 조웅씨는 2013년에 등장했다. 조씨는 201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조씨는 “박 대통령(당시 당선인 신분)이 평양에 방문할 때 정부에 허가받지 않은 500억원을 들고 갔고, 김일성 동상에 참배했다”고 했다.

그는 최태민씨와 관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 배후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은 언론 인터뷰 도중 조씨를 긴급 체포했고,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1심과 2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대법원은 원심 확정판결을 내렸다.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박 전 행정관은 지난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폭로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박 대통령의 오래된 측근인 ‘문고리 3인방(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의 동향을 다룬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작성했다. 박 전 행정관은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 과정서 박 전 행정관은 담당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와 대부분의 언론은 박 전 행정관의 발언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팍팍한 현실에 과거 회상

그의 발언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재조명받고 있다. 박 전 행정관의 발언은 최순실씨의 운전기사로 17년간 그녀를 비롯해 최씨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모씨의 인터뷰서도 확인됐다.

김씨는 “박 의원님(박 대통령) 위에 정 실장(정윤회)이고, 그 위에 순실이(최순실)야”라고 말했다. 기자가 박 전 행정관의 발언과 같다고 말하자 “맞지. 순실이가 대장, 그 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이라고 설명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잊혔던 정치인도 다시 상기시켰다. 지난달 30일, 박 대통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가운데 박영수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를 선택했다. 특검은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가능성이 있어 누가 선정될지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다.

그 가운데 등장했던 이름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2014년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이후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 전 대표는 특검 후보로 거론되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전 대표는 18대 대선 TV토론 때 박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에) 나왔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이다. 한국이름 박정희” “뿌리는 숨길 수 없다. 대대로 나라 주권 팔아먹는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를 자격이 없다” 등 날선 발언으로 박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사이다’라고 환호했지만 한편에선 동정론을 일으켜 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출판한 <i 전여옥>이라는 책에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담은 바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등의 어록들을 쏟아냈다.

전 전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전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언급했다. 전 전 의원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격을 스스로 무너뜨리신 게 아닌가 하는 매우 유감스런 담화였다. 지도자라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판단하고 명확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했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는 최순실 게이트로 이미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직전인 9월 초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의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자격 정지, 메달 박탈 등의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피부 치료 때문에 찾은 병원서 의사가 부작용과 주의사항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네비도’ 주사제를 놨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박태환의 수영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막혀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다. 박태환은 법정 다툼 끝에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여론은 여전히 약물 의혹서 자유롭지 못한 박태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반전이 일어난 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박태환을 상대로 올림픽 출전 포기를 강요하는 등 압력을 행사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부터다.

30년 만 재등장
이미지 회복도

김 전 차관은 박태환에게 올림픽 출전을 고집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은 언론과 인터뷰서 “(김 전 차관이) 너무 높으신 분이라 무서웠지만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밝혔다.

박태환은 최근 일본 도쿄서 열린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박태환에게 네비도를 투약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김씨 상고심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박태환은 약물 고의 투여 의혹을 벗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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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