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혈투’ 금호가 전쟁 풀스토리

‘형제의 난’드디어 끝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지리멸렬했던 박삼구-박찬구 형제의 다툼이 종지부를 찍었다. 화해의 손을 내민 동생에게 형은 고마움을 표했고 이제 각자의 길을 갈 일만 남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7년이다.

지난 11일 금호석유화학은 박삼구 금호아시나아그룹 회장과 기옥 전 금호석화 대표이사를 상대로 한 ‘CP 부당지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아시아나항공 이사진에 대한 배임 혐의 형사고발을 취하했다. 현재 진행 중인 상표권 소송 역시 원만하게 조정하는 방향으로 뜻을 모았다.

따로 또 같이
갈 길 간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주주에게 이익을 되돌려주는 기업 본연의 목적에 더욱 집중하고자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모든 송사를 내려놓고 갈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며 “금호아시아나도 하루빨리 정상화돼 주주와 임직원, 국가경제에 보다 더 기여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취하 배경을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금호석유화학의 모든 소송 취하에 대해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양 그룹간 화해를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소송 취하는 박삼구·박찬구 형제 간 갈등이 일정 부분 봉합됐음을 의미한다. 지난 2009년 촉발된 경영권 분쟁 이후 서먹해진 둘 간의 관계가 7년이 지나서야 회복된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전남 나주 출신의 고 박인천 창업주가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세운 광주택시에서 출발했다. 1971년 금호석유화학을 시작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면서 어느덧 건설, 물류, 금융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또 한 번 대담한 도박을 단행한다. 2006년 11월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2008년에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그 사이 재계 순위는 7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박삼구-박찬구 형제 다툼 종지부
손 내민 동생에 형 고마움 내비쳐

그러나 연이은 인수합병은 악재로 되돌아왔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는 통에 현금 유동성에 허점이 생긴 것이다. 특히 대우건설을 품에 안는 과정에서 쌓였던 빚이 발목을 잡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전체 지분 6조4000억원 가운데 3조5000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대출해 충당했다. 2009년 말까지 인수 당시 주가 2만6000원보다 6000원 높은 3만2000원이 안 될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그러나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했고 투자자에게 약속한 3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풋백옵션 행사하며 대우건설을 3만원에 사줄 것을 요구했고 이 금액의 총액은 무려 4조2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대우건설 인수 이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부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잇단 재매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과정에서 형제 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동지서 적으로
7년의 비방전

박삼구 회장이 그룹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반면 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이끌던 박찬구 회장은 이를 극구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이 이를 묵살했고 둘은 그룹 경영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먼저 움직인 쪽은 박찬구 회장이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재매각하자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의 공격적 경영 실패를 문제 삼고 나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2009년에는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한 뒤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 분리를 시도했다.

여기에 맞서 박삼구 회장은 같은 해 7월 ‘지분공동보유’ 규칙을 깬 박찬구 회장을 해임한 채 본인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표면상 동반 퇴진이었지만 사실상 형이 동생을 내보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동생인 박찬구 화학 부문 회장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해임 조치를 단행했다”며 “동생을 해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박찬구 회장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박찬구 회장은 2011년 3월 금호석유화학 계열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분리시켜 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분리를 신청했다. 이때부터 수십건에 달하는 소송이 본격화됐다.

2013년 9월에는 ‘금호’ 상표권을 놓고 형제간 소송에 돌입해 지난해 7월 법원이 박찬구 회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박삼구 회장은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2014년에는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2014년 기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 계열사의 피소건수는 91건, 피소금액은 2193억원에 달했다.

심지어 2010년부터 그룹 창립기념일 행사도 따로 치를 만큼 형제간 불신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창업주의 기일과 성묘도 각각 챙기는 등 갈등의 골이 쉽게 메워지지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소송 취하로
화해무드 조성

그러나 평행선을 달리던 형제간 대립은 2015년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변했다. 둘 사이에 어딘지 모를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잇따랐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9월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했던 어음대금 90억원과 이자 30억원을 법원에 공탁했고 금호피앤비화학은 소송을 취하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고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이다.

금호그룹은 계열 분리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을 대상으로 각각 90억원, 3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CP)을 매입토록 했다. 그러나 2010년 초 금호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CP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어음금 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물론 1건의 소송취하로 둘 사이 쌓인 앙금이 전부 해소된 건 아니었다. 금호산업이 어음 원금과 이자를 법원에 공탁했고 금호석유화학에서 소송을 취소한 과정은 상표권 소송 판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던 모습은 일정 부분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었다.

화해무드는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화그룹이 완전 분리된 후 한층 뚜렷해졌다. 박삼구 회장이 그룹 재건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박찬구 회장이 진정성에 동조하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9월, 박삼구 회장이 “동생과 추석에 함께 성묘를 가고 싶다”고 화해 용의를 내비쳤다. 박찬구 회장도 올해 초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화해 가능성을 생각해 보겠다”고 언급했고 급기야 형제간 화해가 현실이 되기에 이른다.


물론 7년간 쌓인 해묵은 감정이 완전히 해소됐을지는 의문이다. 박찬구 회장의 여건이 박삼구 회장보다 유리한 상태였기에 가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금호그룹 재건 후 또다시 '형제의 난'이 불거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금호타이어 인수에 난항을 겪는 만큼 형제 간 갈등이 부각될 가능성을 일단 차단하겠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석유화학의 소송 취하로 당장 금호터미널 부실 실사와 합병 정당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특히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 인수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금호타이어는 오는 11월 예비 입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불거진 금호터미널 실사 보고서 조작 논란이 화해모드를 조성하는 계기가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호터미널의 실사 용역을 수주한 삼덕회계법인은 최근 금호아시아나 측 회계사가 금호터미널의 실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직인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 인수로 표출된 갈등
이후 계속된 제살깎기 소송전

해당 회계사는 사문서 위조 혐의로 종로경찰서와 서울남부지검에 고소된 상태다. 경찰은 해당 문서의 위조 및 경위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실사는 삼덕회계법인이 아닌 삼정KPMG가 진행하고 금호아시아나 측이 삼덕회계 법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재건의 중추가 될 금호타이어 인수 과정서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에게 공동인수 등을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금호타이어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이 모종의 역할을 하고 그룹 재건을 마무리한 뒤 일정 계열사를 박찬구 회장이 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소송 취하 과정에서 마음을 비우고 ‘각자의 길’을 가겠다던 박찬구 회장의 입장을 감안하면 공동 인수 가능성은 희박하다. 박찬구 회장이 애써 분리한 회사를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로 편입시킬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이다.

분쟁 마무리
향후 행보는?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화해무드는 재벌가 분쟁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아 수사기관의 타깃이 된 롯데그룹 사례처럼 갈등이 지속되면 서로 이로운 점이 없다는 교훈이 컸을 것”이라며 “금호타이어 인수전과 관련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박찬구 회장이 향후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서발전 유해물질 방류 파문
녹색기업 맞아?


동서발전이 울산 앞바다에 유해물질을 방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최근 울산해양경비안전서는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에서 ‘디메틸폴리실록산’을 배출했다고 밝히면서 표면화됐다.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500톤에 달하는 양이 발전소 주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동서발전은 2004년부터 12년간 녹색기업으로 선정된 곳이다.

울산해경에 따르면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는 해양 방출이 금지된 소포제 ‘디메틸폴리실록산’을 5년간 무단방류했다. 관련 직원 2명이 불구속 입건돼 조사 중이다. 발전소는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거품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물질을 섞은 것으로 밝혀졌다. 디메딜폴리실록산은 인체 노출 시 눈 손상 및 피부염을 일으키고 다량 투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디메틸폴리실록산 바다에 배출
2004년부터 12년 녹색기업 선정

울산해경은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가 유수분리조 안에 잠수펌프를 설치한 사실도 밝혀냈다. 폐유가 섞인 물을 바다로 몰래 흘려보낸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동서발전은 “잠수펌프는 홍수 등 유사시 유성혼합물이 넘칠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경찰의 수사는 전현직 임직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동서발전은 2004년부터 12년간 녹색기업으로 선정된 전례가 있다. 녹색기업에 선정된 동서발전은 그간 각종 특혜를 누려왔다. 시설 점검을 피할 수 있는 면책특권은 환경 점검 소홀로 이어졌다. 동서발전은 지난해 8월에도 평택화력에서 같은 물질 배출 건으로 조사를 받았던 전례가 있다. <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