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꼬마 니콜라’의 아버지 장 자끄 상뻬

‘파리서 뉴욕까지’ 거장의 작품 속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60년 전 ‘꼬마 니콜라’의 창조주로 우리 곁을 찾아왔던 장 자끄 상뻬가 아티스트로 또 한 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장 자끄 상뻬’라는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도 그가 그린 ‘꼬마 니콜라’ ‘좀머씨 이야기’ 등의 삽화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장 자끄 상뻬의 작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풍자와 해학

KT&G 상상마당과 프랑스 마틴 고시아 갤러리가 함께 준비한 ‘장 자끄 상뻬 - 파리에서 뉴욕까지’ 기획전이 8월31일까지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기획전은 KT&G 상상마당이 매년 진행하는 20세기 거장 시리즈의 일환으로 2014년 로베르 두아노, 2015년 레이먼 사비냑 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T&G 상상마당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작가들의 우수한 작품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 문화 예술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20세기 거장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기획전은 상뻬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상경한 도시 파리를 시작으로, 미국의 주간잡지 <뉴요커> 표지 작업을 위해 도착한 도시 뉴욕에 이르기까지 초기작부터 미공개 된 최근작까지를 총망라한다.
 

 


관객들은 이번 기획전을 통해 상뻬의 60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국내 팬에게는 생생한 펜 터치와 수정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뻬의 작품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꼬마 니콜라’ ‘좀머씨 이야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포함한 상뻬의 원화작품 150여점이 공개된다. 또한 지난 2010년 한국 전시에서 미공개 된 최근 작품과 ‘뉴욕의 상뻬’ 원화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부족하고 실수투성 상뻬의 아이들
경쟁 내몰린 현대인에 따스함 전해

상뻬의 작품은 해학적이고 때로는 비판적이며 현대사회를 신랄하게 비꼬는 면모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비판 안에는 점잖고 따스한 유머, 오랫동안 변치 않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 상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욕망과 갈등, 문명 비판적인 요소에 인생과 사랑을 녹여 부드럽고 친절하게 풍자하는 방식을 취한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 프레스>는 “상뻬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만의 경이로운 능력을 지켜가고 있다”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깊고 씁쓸하면서도 예리한 시선,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스케치 안에서 상뻬 특유의 순수함이 빛난다”고 평했다.
 

상뻬의 작품에 드러나는 풍자적인 요소는 그가 가장 프랑스다운 작가라고 불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상뻬는 삶의 어두운 단면들을 유머와 풍자로 승화시켜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한없이 가벼운 그림들로 표현했다. 간결한 문체와 그림으로 이뤄진 그의 작품은 누구나 쉽게 공감하면서 왠지 모를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들곤 했다.

60년 총망라


관람객들은 이번 기획전을 통해 “상뻬의 작품은 따분한 천 편의 논문보다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표현했던 프랑스 언론의 평가가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자료 및 사진 = KT&G 상상마당)
 

<jsjang@ilyosisa.co.kr>

 

 

[장 자끄 상뻬는?]

20세기 데생 거장 장 자끄 상뻬는 1932년 8월17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상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데생 작가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불우했다. 상뻬의 집은 양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 이복 여동생과 남동생이 신경 발작을 일으키는 소리로 언제나 가득했다. 그런 상뻬에게 유일한 피난처는 학교였다.

6살의 상뻬는 라디오에 나오는 오케스트라, 재즈연주자에 매료됐고, 11살에는 추리소설에 심취하기도 했다. 14살에 학업을 그만둔 상뻬는 1950년 지방 일간지에 첫 데생을 기고하면서 삽화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그 이후 1960년 르네 고니시와 함께 만든 ‘꼬마 니콜라’가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1962년 작품집 ‘쉬운 일은 아무 것도 없다’가 나올 무렵에는 이미 프랑스에서 데생 1인자가 됐다.

상뻬는 지금까지 30여권의 작품집을 발표했고, 세계 유수한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1991년 상뻬가 30여년간 그려온 데생과 수채화가 ‘빠삐용 데 자르’에 전시됐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서 사회학 논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상뻬는 정치나 성(性)을 소재로 삼지 않으면서도 성인층에까지 두터운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미국 주간지 <뉴요커>의 표지만 53점을 그린 가장 중요한 기고자이며, 파리 외에도 뮌헨, 뉴욕, 런던, 잘츠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랑베르씨’ ‘사치와 평온의 쾌락’ ‘라울 따뷔랭’ ‘상뻬의 어린 시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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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폴 적색수배’<br> 황하나 근황 포착

[단독] ‘인터폴 적색수배’
황하나 근황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은 황하나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1월3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황씨를 형사 입건했다. 앞서 황씨는 2023년 9월, 영화배우 고 이선균을 협박한 유흥업소 실장 김모씨 등과 함께 내사를 받아왔다. 지난해 2월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간이시약 검사 등을 통해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했다. 수사를 받던 황씨는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마약과 성매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나자 태국에 있는 황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현지 영사 조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폴 적색수배 중인 황씨는 지난 1년 사이 캄보디아로 이동했다. 유튜브 채널 ‘크라임넷’을 운영하는 제보자 A씨에 따르면 현재 프놈펜 소재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한국인 남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태국으로 도주한 황씨는 자동차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현지인 N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N씨는 태국 상류층을 뜻하는 ‘하이소(High-Society)’로 분류되는 유명인사다. 황씨의 지인이자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했던 여성 Y씨는 “(자신과 함께) N씨가 클럽, 유흥업소 등에서 황씨와 파티를 즐겼다”고 알려왔다. 태국에서 상위 10% 미만에 속하는 재벌인 하이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파티를 즐길 뿐더러, 전관예우 등에 따라 현지 경찰의 수사가 어려운 대상이다. 황씨가 N씨의 비호를 받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Y씨를 비롯한 다수의 제보자는 황씨가 태국,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성매매,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한국에 있던 Y씨 등을 불러 현지 남성과의 성매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 황씨는 과거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에이미(이윤지) 등 유명인들과 어울리며 여유로운 삶을 이어갔다. 현지 정보망에 따르면 황씨는 하이소들과 함께 했기에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하이소의 권력이 얼만큼인지 나타내는 실제 사례도 있다. 스포츠음료 ‘레드불’ 공동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의 뺑소니 사망사건이다. 오라윳은 2012년 9월 방콕 시내에서 술과 마약에 취해 페라리를 과속으로 몰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후 도망쳤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 후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 측 주장을 인정하고 음주 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오라윳은 불기소됐고, 이후 마약 복용에 따른 처벌도 면했다. 경찰 추적 중에도 호화 생활 동남아 오가며 ‘환락 파티’ 2022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마약법 개정으로 만료됐다고 현지 검찰총장실 대변인이 밝혔다. 1979년 제정된 마약법을 보면 코카인 불법 복용자는 6개월~3년 징역에 처하고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오라윳의 공소시효는 그해 9월3일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1년 12월 발효된 새로운 마약법에 따르면, 코카인 복용은 징역 1년에 공소시효는 5년이다. 이에 따라 오라윳의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는 자동 기각됐다는 것이다. 오라윳은 이를 틈타 해외로 도주했다. 불기소 결정 뒤 반정부 집회가 열릴 만큼 반발은 심했다. 결국 총리 지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검찰과 경찰의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검·경은 뒤늦게 부주의한 운전에 의한 과실치사에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오라윳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찰은 경찰이 오라윳을 체포해 데려오기 전까지는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현재 오라윳에게 남은 혐의는 과실치사뿐이며 공소시효는 2027년 9월3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동남아로 도주하기 전 마약을 투약한 것과 더불어 지인에게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황씨의 지인 J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황하나가 나에게 좋은 거 있는데 해볼래?”라며 팔에 주사로 된 약물을 주입했다. 그는 “좋은 거라길래 설마 했는데,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를 하게 됐다”며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 주사기들이 놓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J씨는 “마약을 투약한 것 같다”고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황씨는 지난해 3월19일 취재진과 통화에서 “술은 왜 마셔요? 마약이 더 좋은데”라며 “왜 기자들은 내 기사만 쓰는지 모르겠다. 다른 약쟁이들도 많은데, 좀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씨의 아버지 황재필씨는 “딸이 적색수배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카카오 메시지를 읽었지만, 묵묵부답이다. 태국 재벌 ‘하이소’ 조력 “나 잡아봐라” 수사망 피해 한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로 전환된 황하나에 대해 출국금지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적색수배가 내려진 황씨가 이번에 귀국하게 되면, 앞으로 1년 이상 태국에 재입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이자, 동방신기 출신 박유천의 전 약혼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수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황씨는 2019년 11월 항소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면서 석방됐다. 앞서 여러 차례 마약 투약으로 처벌받은 이력도 있다. 2015년 5~9월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세 차례 투약했다. 2018년 4월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 없이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21년 7월9일 재차 마약을 투약해 1심 판결로 추징금 40만원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에 마약 투약죄로 선고받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종범죄 재범에 이종범죄까지 저지른 대가로 가중처벌을 받은 것이다. 당시 마약 혐의와 함께 2020년 11월, 시가 500만원 상당의 명품 신발 등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기소된 이후 세 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28일 2심 판결서 검찰은 황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황씨는 최후 진술에서 “휴대전화도 없애고 시골로 내려가 열심히 살고 제가 할 수 있는 성취감 느끼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보겠다”면서 “지난 3~4년간 수면제나 마약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제가 너무 하찮게 다뤘고 죽음도 쉽게 생각하며 저를 막 대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변론했다. 그해 11월15일 2심 판결서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추징금은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태국서 이동 이후 2023년 이선균 마약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황씨를 포함해 총 8명이 마약을 투약한 단서를 포착하고, 일부는 형사 입건해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황씨는 내사자 신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내사 대상에 오른 인물 1명과 성명불상자 1명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도 파악했다. 다수의 제보자들은 “황하나는 이선균이 협박당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선균을 협박해 금품을 뜯은 전직 영화배우 박모씨와 유흥업소 여종업원 김씨의 협박 행각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