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관왕’ 홍만표 면죄부 후폭풍

“또 제 식구 봐주기” 역시 대한민국 검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우리 식구(?) 중에는 청탁 받은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가 검찰을 상대로 한 구명로비 의혹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홍 변호사에 이어 수사선상에 오른 두 현직 검사에 대한 결과도 비슷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검찰 안팎에선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 여론이 들끓지만 이를 무마할 ‘카드’가 대기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검찰은 최근 경찰들과 관련한 대형 사건을 수사했다. 국면전환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이 제 식구 수사를 제대로 했겠느냐?”

부장검사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이같이 평가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검찰 청탁·알선 명목으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 20일, 홍 변호사를 구속기소했다.

홍 변호사에게는 ▲변호사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조세범처벌법 위반 ▲지방세기본법 위반 등 4개 죄명이 적용됐다.

날카로운 칼끝
왜 무뎌졌을까

검찰은 이날 홍 변호사를 기소하면서 수사검사의 ‘정운호 봐주기’ 등 소위 전관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도 함께 공개했다. 조사 결과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검사들이 홍 변호사에게 전관예우를 한 적이 없으며, 로비 또한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어 검찰은 “지난해 홍 변호사가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검사 등을 두 차례 찾아갔고, 이들과 20여 차례 통화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해당 고위 관계자가 ‘정 대표를 구속할 것’이라며 ‘싸늘하게’ 거절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결국 국민적 이목이 집중됐던 검찰 전관로비 의혹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피의자 외에 털끝 하나 안 다치는 정밀 수사”라고 평가했다. 앞서 홍 변호사는 지난달 27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제가 감당할 부분은 감당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홍 변호사의 말처럼 검찰은 ‘법조계 선배’가 감당할 정도의 수사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홍 변호사 외에 정운호 법조비리에 엮인 또 다른 법조인은 박모 부장검사다. 검찰은 정 대표에게 억대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박 검사의 자택과 그가 근무한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사무실을 지난 21일 압수수색했다. 이날 검찰은 박 검사의 개인 통장과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검사는 지난 2014년 정 대표의 지인 최모씨를 통해 감사원 감사 무마 대가로 1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감사원은 서울메트로가 지하철 상가 운영업체로 A사를 선정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감사를 진행 중이었다. 정 대표는 앞서 A사의 사업권을 매수해 사업을 확장 중이었다. A사가 감사를 받게 되면 정 대표의 사업 또한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정 대표가 박 검사를 통해 해당 감사 무마를 시도했으며, 박 검사는 해당 감사에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감사원 간부에게 “편의를 봐달라”고 청탁하는 명목으로 1억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검찰은 박 검사에게 자금을 전달한 최모씨에게서 구체적인 돈 전달 장소와 시기에 대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검사가 지난달 초 뇌출혈로 입원하면서 수사는 난항이 예상된다. 박 검사는 실어증을 보이는 등 인지·판단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방문조사를 비롯한 조사 방법과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검찰은 박 검사가 실제 감사원 간부에게 해당 자금을 전달했는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운호 구명로비 ‘혐의 없음’ 결론
전관예우 없었다? “먼지만 털었다”


그런데 박 검사에 대한 수사 배경을 놓고 검찰 안팎에선 ‘검찰이 홍만표는 살리고 다른 검사 사건을 꺼내 체면치레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박 검사는 홍 변호사와 가까운 ‘실세 법조인’과 달리 쳐내기기 쉽다는 평가가 조심스레 나온다.
 

박 검사는 사법연수원 16기로 김현웅 법무부장관, 김수남 검찰총창 등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동기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박 검사는 서울고검에 근무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서울고검은 한직으로 통한다. 조직 서열상 서울지검의 상급 기관이지만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반부패부 제외) 실제 영향력은 전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울고검은 주로 항고사건과 관련한 법률 자문 및 행정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가장 만만한 게 고검 검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검찰에서 홍 변호사에게 청탁 받은 의혹이 있는 실세 검사(박 지검장과 최 3차장검사) 대신 비주류인 박 검사를 제물로 삼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선 박 검사에 대해서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기소 중지’ 등 면죄부를 줄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세 살리고
비주류 쳐내나

이와 함께 상반기 법조계 최대 이슈로 꼽히는 것이 바로 ‘진경준 사건’이다. 그런데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100억대 시세 차익 의혹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진경준 사건은 정운호 게이트·롯데그룹 비자금 사건 등이 터지며 사실상 톱이슈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심우정 부장검사)는 지난 23일, 진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시세 차익 의혹과 관련해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더딘 수사 속도는 검찰의 수사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검찰은 김 대표를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진 전 검사장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진 전 검사장은 지난 2005년 넥슨 주식 1만주를 주당 4만2500원에 매입했다. 주식 매입 대금은 4억5000만원이다. 그런데 진 전 검사장은 지난해 보유 중인 넥슨 일본법인 주식을 전량 매각하며 126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당시 시민사회 안팎에선 대박 주식 거래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4월12일 “현직 검사가 성장성이 높은 넥슨 주식을 뇌물로 받은 것”이라며 진 전 검사장을 대검찰청에 특정경제범죄법상 뇌물 혐의로 고발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이첩됐다.

지난 11일 고발인 조사를 받은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이 사건은 당연히 압수수색이 이뤄져야 한다”며 “김 회장이 자신의 지분 출자를 포기하고 넥슨재팬을 만들면서 유상증자를 통해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주식을 나눠줬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중은 제 머리
못 깎는데…

이에 앞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진 전 검사장이 넥슨 주식에 대한 시세 차익 의혹을 조사받는 과정에서 거짓으로 소명했다며 징계를 의결했다. 그러나 주식 취득 및 처분 과정에서의 위법 행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같은 달 진 전 검사장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이동시켰다.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난이 적지 않았다.


최근 전·현직 검사들의 비리가 쏟아지면서 검찰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일각에선 물타기를 의심할 정도로 서울중앙지검 일선 부서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홍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던 지난 1일 형사5부는 폭스바겐을 압수수색했다. 특수2부는 1년 가까이 끌어 오던 KT&G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튿날 오전엔 방위사업수사부가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로비 의혹과 관련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판·검사 로비 의혹 수사에 대한 유의미한 진전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4일 진경준 사건이 언론 보도로 재점화되자 국민적 공분은 검찰에 쏠렸다. 공교롭게도 나흘 뒤 반부패범죄특별범죄수사단은 대우조선해양을 압수수색했다. 이틀 뒤엔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 등이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최근 벌인 수사 대부분이 시기에 구애 받지 않는 기획수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다’는 세간의 의심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검찰은 현재 대기업 사정과 별개로 경찰 수사 카드를 만지고 있다. 홍 변호사의 전관로비 의혹에 대한 무혐의 수사가 문제가 되자 이를 덮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신자용 부장검사)에서는 두 건의 경찰 비리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다.

국민에 뺨맞고 경찰에 화풀이
비난 여론 덮을 카드 대기?

첫 번째 건은 지난 3월에 터질 뻔했던 ‘북창동 게이트’(일요시사 1050호, 1054호 참조) 사건이다. 당시 북창동에 있는 B룸살롱 바지사장 주모씨는 “업소 실질 사장인 봉모씨가 경찰과 세무서 직원에게 수십년간 로비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주씨와 봉씨의 동업자 서모씨와 이모씨를 지난 3월 조사했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형사 4부는 B룸살롱과 서씨와 이씨의 집을 추가 압수수색했다. B룸살롱 경리 탁모씨의 집도 압수수색했다. 형사 4부는 이 때 압수수색에서 ‘관처리 비용’이라는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처리 비용은 공무원(경찰, 구청 공무원, 세무서 직원)에게 상납한 리스트를 의미한다. 이때는 정 대표의 법조비리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홍 변호사와 얽힌 검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SBS는 지난 22일 검찰이 강남 룸살롱 단속 정보를 흘려준 브로커를 구속했으며, 브로커가 경찰에게 상납한 로비리스트를 확보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홍 변호사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로부터 이틀 뒤다. 공교롭게도 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은 형사 4부였다. 형사 4부가 국면전환용으로 경찰 비리를 ‘전담 마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경찰 관계자들은 “검찰이 표적수사(정치적인 목적으로 특정 대상이나 인물을 정해 놓고 벌이는 수사. 편파성이 문제가 되곤 한다)를 하고 있다”고 입 모아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요새 법조계 내부비리 때문에 (경찰을 수사해 법조비리를) 희석하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본건과 별도로
경찰비리 수집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들도 검찰의 이런 움직임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법사위 출신 한 법조인은 “쥐고 있던 것을 터트려서 물타기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인지사건은 처리 시한이 없으므로 검찰이 패를 쥐고 있다가 필요할 때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수사 중인 경찰 수사 두 건과 관련해 “수사 중인 사항으로 가타부타할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홍만표 비리' 특검 가능성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 로비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내부 인사들에 대해 ‘로비와 무관하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은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중심으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정운호 게이트’와 법조 비리에 대해 국회 청문회를 열자고 합의한 야3당은 특검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사정기관 내부 식구의 문제를 스스로 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큰 만큼 (법조비리 사건이야말로) 가장 특검에 적합한 사건이라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법사위 간사인 이용주 의원도 “특검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며 “지도부와 향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이번 법조비리를 특검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민변은 지난 23일 논평을 내고 “정운호 대표를 둘러싼 법조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홍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실제 로비가 성사된 것은 아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검찰 스스로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국회는 하루 빨리 특검을 구성해 사법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검찰 고위직 인사에 대한 검찰 내부의 자정 작용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신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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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