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치고 개명한 회사들 백태

‘바꾸면 모르겠지∼’ 속 보이는 간판 교체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기업은 브랜드 관리를 통해 자산과 가치를 극대화하고자 노력한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가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특정기업 혹은 브랜드가 금기처럼 여겨지는 구설에 휘말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간 쌓아온 대중적인 인지도는 일순간 화살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숱한 뒷말을 양산했던 문제의 기업들이 사명을 바꾸면서까지 새출발을 다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옥시, 영남제분, 동양증권, 씨앤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근 몇 년 간 달갑지 않은 구설로 대중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사명을 버리면서까지 변화를 모색한 것도 비슷하다. 자신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고자 계획한 일종의 꼼수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의도된 꼼수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곤혹스런 옥시는 2011년 말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2014년에는 사명에서 옥시를 완전히 빼고 레킷벤키저의 앞글자만 딴 RB코리아로 바꿨다.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주주와 임원, 상호를 모두 넘겨받은 채 새로운 법인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파산했을 때 주주와 사원의 책임이 제한되는 유한회사는 외부감사 및 공시 의무에서 벗어난다. 주식회사보다 폐쇄적인 성격을 띠며 조직 변경 사실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옥시가 조직 변경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56년 전통의 제분·배합사료 전문기업인 영남제분은 지난해 3월 (주)한탑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당시 강신우 대표는 “제분과 배합사료에 국한돼 있던 사업 분야에서 더 나아가 친환경식품, 생명공학 등 생활문화기업으로 거듭나고자 사명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영남제분 사모님 사건’이 사명 변경의 결정적 사유라고 바라보고 있다.
 


류원기 전 회장의 아내 윤모씨는 사위와 이종사촌 여동생인 하씨의 관계를 의심해 청부살인을 지시했던 ‘영남제분 사모님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당시 윤씨는 조카에게 1억7500만원을 주고 청부살인을 의뢰했고 숨진 하씨는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살인교사 혐의로 윤씨는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2007년부터 허위진단서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감옥이 아닌 병원에서 생활했다. 이 과정에서 류 전 회장은 77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했다. 류 전 회장은 2014년 대표직을 사임했으며 강신우 대표가 취임했다.

2014년 6월 대만 유안타증권에 인수된 동양증권은 그해 10월 ‘유안타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62년 설립된 ‘일국증권주식회사’를 모태로 하는 동양증권은 2013년 9월 일부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불완전판매한 ‘동양증권 사태’로 잘 알려져 있다.

3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유안타증권은 CP 불완전판매의 후폭풍을 상당 부분 털어버린 분위기다. 지난 3월 한국기업평가는 유안타증권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0로 상향했다. 유안타증권이 인수하기 직전 한국기업평가는 동양증권에 신용등급 BBB-를 내린 바 있다.

수도권 최대 케이블방송사인 씨앤앰은 지난달 6일, 창립 16년만에 ‘딜라이브(D’LIVE)’로 사명을 변경했다. 방송, 인터넷, 집전화 등 기존 사업분야에서 벗어나 O2O(온오프라인 연계) 사업에도 진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손가락질 피하고자 이름 살짝 교체 
조용히 상호 바꾸고…불편한 새출발

그러나 업계에서는 씨앤앰의 사명 변경을 다른 의도로 해석한다. 매각이 시급한 시점에서 딜라이브로 회사명을 바꿔 이미지 제고를 꾀하고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여 매각 협상 시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씨앤앰은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에 대한 비판적인 국내 여론, 연이은 매각 실패, 케이블 설치기사 부당 해고 논란 등으로 심심치 않게 구설을 만들었던 전례가 있다.
 


철 스크랩 전문기업인 스틸앤리소시즈는 지난 3월 사명을 지엠알머티리얼즈로 변경했다. (주)자원에서 스틸앤리소시즈로 사명을 교체한 지 2년여 만에 또 한 번 간판을 바꿔단 셈이다.

스틸앤리소시즈는 자본전액잠식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 자본금은 85억3493만원인데 자기자본이 마이너스 82억9170만원으로 자본잠식률이 197.1%에 달했다. 지난달 28일 한국거래소는 유통주식 수 부족으로 스틸앤리소시즈의 주권매매거래 정지 기간을 신주권 변경상장일(29일) 전일까지에서 유통주식 수 부족 사유 해소가 확인되는 날까지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스틸앤리소시즈는 총 발행물량 대비 유통주식 수 비중이 5% 이상이 될 때까지 거래가 정지된다. 현재 유통주식 물량은 총 발행주식의 1.4%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상장사들이 실적부진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사명변경을 활용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기업의 사명 변경으로 인한 주가부양 효과는 생각만큼 즉각적이지 않다는 게 공통적인 견해다. 사명 변경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 변경을 단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회사명이 가져다 줄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앞에서 열거한 기업들의 경우 대외적으로 문제점이 낱낱이 밝혀진 만큼 기존 사명을 유지하는 게 득이 될 건 없는 상황이다.

나몰라 선긋기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호 변경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사회적 문제로 손가락질 받는 기업들은 기존 이름을 버리면서까지 선긋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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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