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 의혹' 정재계 거물 리스트

칼 빼든 사정당국…'유령계좌' 몽땅 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아이슬란드 총리의 사임을 시작으로 각국 정상들이 연이은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OECD 산하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의 회원국 대표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 모든 게 ‘파나마 페이퍼스’로 명명된 비밀문서의 공개 후 벌어진 일들이다. 물론, 국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다. 벌써부터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더 큰 파장이 몰려올 수 있다는 뜻이다.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 문건은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익명의 취재원에게서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내부자료를 입수하면서 시작됐다. 유출된 자료는 2.6TB에 달한다. 자료의 방대한 규모와 공적 가치를 고려한 <쥐트도이체차이퉁>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협업을 요청하면서 대형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드디어 공개
커지는 의혹

모색 폰세카는 해외법무법인으로서는 세계 4번째 규모의 대형 법인으로 홍콩, 마이애미, 취리히 등 전 세계 35개 이상에 지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과 거래를 하고 있으며, 고객에게 조세당국이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어렵도록 도움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알려지자 세계 각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 회피 의혹에 대한 관련 조사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파나마 페이퍼스의 파급력은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다. 유출 데이터에 ‘Korea’로 검색되는 1만5000여건의 파일 중 한국 주소를 기재한 195명의 한국인 이름이 포함된 까닭이다.

시작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씨였다. 파나마 페이퍼스를 분석하던 조사단은 노씨가 노 전 대통령의 장남과 같은 이름이라는 점을 기반으로 생년월일과 사진을 검토한 결과 동일인물임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2012년 5월18일 버진아일랜드에서 3개의 회사를 설립해 주주 겸 이사에 취임했던 노씨는 2013년 5월 이사직에서 사퇴했다. 3개 회사 모두 1달러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에 가까웠다.


현재 노씨는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노씨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중국사업을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으나 사업진행이 안돼 계좌개설도 하지 않았다”며 “관계당국에서 필요하다면 해명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조세회피처나 비자금 등과는 일절 무관하다”고 말했다.

노씨는 첫 단추에 불과했다. 노씨와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면서 <뉴스타파>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추측되는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추가 공개를 공언했고 조금씩 해당 인물들의 정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자녀인 서영배·서미숙씨, 박병룡 파라다이스 대표, 김광호 전 모나리자 회장,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곳곳 드러난
페이퍼 흔적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2004년 9월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워터마크 캐피털’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워터마크 캐피털은 1달러짜리 주식 1주를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다. 주주는 서 회장 1명이었고 이사 역시 서 회장 혼자였다. 주소지로 명시된 버진아일랜드의 아카라빌딩은 모색 폰세카 버진아일랜드 지점이 있는 곳이다. 노재헌씨의 유령회사가 등록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서 회장은 2013년 6월 이 페이퍼컴퍼니의 실소유주 명단에서 사라졌고, 대신 ‘얼라이언스 코퍼레이트 서비시즈’라는 회사가 주주 겸 이사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회사 역시 실제 주인을 감춰주는 차명 서비스용 회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 서 회장의 다섯째인 서미숙씨도 2006년 4월 버진아일랜드에 ‘웨이즈 인터내셔널’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보통의 페이퍼컴퍼니가 1달러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하는 것과는 달리 이 회사는 주식을 4주 발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씨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의 주주는 그녀의 세 아들이었다. 불법 증여 혹은 상속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파마나 페이퍼스’ 만든 인사들 공개 
속속 드러나는 의혹들…검찰 수사는?


국내 최대 카지노 기업인 파라다이스 그룹의 페이퍼컴퍼니와 스위스 계좌도 확인됐다. 해당 페이퍼컴퍼니 이름은 ‘엔젤 캐피털 리미티드’(Angel Capital Limited)고 박병룡 파라다이스 대표이사는 회사가 만들어진 20여일 후에 단독 이사로 등재됐다.

다만 박 대표를 실소유주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해당 회사는 설립 당시 무기명 주식 1주를 발행해 주주를 익명으로 감춰놨다. 이후 2003년 6월 익명 주주를 차명주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크레디트 스위스가 개입했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모섹 폰세카에 차명주주 변경 서비스를 의뢰했고 연간 1500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했다.

김광호 전 모나리자 회장은 지난 2008년 5월20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트랜스 인터컨티넨탈(Trans Intercontinental)’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다. 설립 서류엔 김 회장의 여권 사본과 서명 등 그가 이 페이퍼컴퍼니의 실소유주임을 증명하는 다양한 자료가 들어있었다. 이 회사에는 김 회장이 유일한 이사와 주주로 등재돼 있다. 트랜스 인터컨티넨탈은 2008년 5월 설립돼 2012년 11월 폐쇄된 것으로 나온다.

전통 도자기 제조업체인 광주요그룹의 조태권 회장도 모색 폰세카를 통해 조세도피처인 바하마에 1998년 8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8년 부친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조 회장은 바하마에 설립된 ‘와 련 엔터프라이즈 리미티드(Wha Ryun Enterprise Limited)’라는 페이퍼컴퍼니의 이사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사의 1998년 9월7일자 회의록에는 조 회장뿐 아니라 부인인 성복화씨를 이사에 임명한다고 기록돼 있다. 두 사람은 페이퍼컴퍼니 설립 당시 일본의 주소를 거주지로 기재했다. 이 회사는 1달러 짜리 주식을발행했다. 조 회장 부부가 이사로 등재돼 있고, 계좌 서명권자도 조 회장 부부로 해놨다. ‘와 련 엔터프라이즈’는 설립 후 약 9년 뒤인 2007년 6월 폐쇄됐다.

그룹 차원에서 페이퍼컴퍼니를 개설했다는 의혹을 받는 곳도 눈에 띈다. 지난달 8일 <뉴스타파>는 포스코가 수백억원을 들여 영국 소재 페이퍼컴퍼니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포스코의 주력 계열사인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이 2011년 S&K홀딩이라는 파나마법인으로부터 ‘이피시에쿼티즈’(EPC Equities LLP)라는 회사의 지분을 각각 50%(394억원), 20%(157억원)씩 인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이피시에쿼티즈가 영국 법인이지만 2008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영국 공시자료에 자산이나 현금흐름이 완전 ‘0’인 휴면법인으로 돼 있다는 사실이다.

모색 폰세카는 이피시에쿼티즈 쪽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이 인수계약에 참여했다. 유출 자료엔 지분 인수 계약서 등 포스코 관련 문서가 수백 건 확인되는데 이 중엔 인수 당시 포스코건설 대표이사이던 정동화씨의 여권 사본도 포함돼 있다.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은 지난 2001년 터키에 K-9 자주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현대로템은 2009년 터키에 K-2 흑표전차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각각 조세회피처의 유령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모색 폰세카의 유출 자료에 따르면 삼성테크윈과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지난 2001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코오롱리미티드’, 현대로템이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2003년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KTR리미티드’다. 이 유령회사들은 사실 한 회사나 마찬가지다.

삼성테크윈과 현대로템이 계약을 맺은 유령회사들은 모두 스위스 UBS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주주는 무기명으로 돼 있고, 회사 이사는 차명 서비스에 전문으로 이름을 빌려주는 인물들이었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하이닉스 자회사였던 하이디스의 매각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유령회사도 발견됐다.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C&H 트레이딩(C&H Trading ltd.)’라는 회사의 설립 일자는 2003년 4월16일이다. 회사는 1달러짜리 주식 2주를 발행했으며 당시 하이디스 사장이었던 최병두씨와 중국인 한궈진씨가 각각 1주씩을 소유했다. 한씨는 당시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중국 BOE 그룹의 임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C&H 트레이딩'이 설립된 2003년 4월은 하이디스가 중국 BOE 그룹에 매각된 지 5개월 뒤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2004년 2월 28일에는 한씨가 자신의 주식 한 주를 최 전 사장에게 양도했다.


이름 오르내리는
거물급만 40명

파나마 페이퍼스의 후폭풍은 어느새 재계 유력인사들을 벌벌 떨게 만들만큼 확대되고 있다. 일전에 조세도피처 개설 의혹을 받던 인물들의 이름이 다시금 오르내리는 양상이다. 이들 상당수는 지난 2013년 조세회피지역에 유령회사를 세웠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정·재계 거물들이다.

당시 언급된 인물들은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삼남 김선용씨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 관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 회장과 그 장남 조현강씨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 ▲조용민 전 한진해운 홀딩스 대표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역사 황용득 사장 ▲조민호 전 SK증권 대표 부회장과 그 부인 김영혜씨 ▲이덕규 전 대우인터내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 폴란드 차 사장 등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조세회피 의혹을 받는 유력 인사들만 해도 40명이 넘는다. 수년 전부터 페이퍼컴퍼니 설립 의혹을 받았던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는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지난 2013년 8월 <뉴스타파>는 김씨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RNTS MEDIA N.Y’(이하 RNTS 미디어)라는 해외법인을 통해 국내 어린이용 교육 콘텐츠업체인 빅스타글로벌을 972만 유로(당시 140억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씨는 자신이 만든 페이퍼 컴퍼니 ‘멀티럭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RNTS 미디어의 지분 33%를 보유한 1대 주주였으며 한국 관련 사업을 직접 총괄했다고도 전했다.

RNTS 미디어는 지주회사로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다. 이 법인은 조세 리조트(Tax Resort)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에 설립돼 있어 직접세와 간접세를 내지 않는다. 이 법인의 201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RNTS 미디어 2대 주주는 지분 10.26%를 보유한 ‘SYSK Limited’인데, 여기에 배우 윤석화씨의 이름도 함께 게재돼 있다. 김씨의 부인인 배우 윤씨는 수백억원대 주식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절부절’ 거론되는 사람만 40명
‘흐지부지’ 검은돈 추적 이번엔?

파나마 페이퍼스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이름이 다수 발견되자 당국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국세청은 한국인 명단을 확보한 뒤 탈세 혐의와 관련 세원이 포착되는 경우 즉각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명단을 입수하는대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인지 거주자인지 등의 여부를 분석해 역외탈세인지 확인한 뒤 엄정하게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인 명단을 찾아 분석하고 조사하는 데까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신병확보다. 탈세 혐의를 확인한 뒤 세무조사에 착수하게 되면 출국금지 등 신병확보를 할 수 있지만 탈세 혐의자들이 세무조사 이전에 해외로 나가버리면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세회피처를 통한 역외탈세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난 2013년에도 국세청이 압수수색을 하러 현장에 나가보면 자료가 다 삭제되고 당사자는 해외로 도주해버린 경우가 상당수였다.

당시 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여겨지던 한국인 182명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삼남 김선용씨,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등 유력인사의 이름이 다수 포함됐다. 그러나 182명 중 실제 세무조사를 받은 경우는 48명에 그쳤고 고발조치가 취해진 인물은 3명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추징한 금액은 총 1324억원이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당장 국세청이 세무조사나 고발조치를 하기도 어렵다. 유출된 명단과 해당 인물들의 계좌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는 점도 수사를 늦추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솜방망이 처벌
이번에는 과연

통상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 법인자격을 갖추었으니 자회사를 두고 영업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탈세 목적의 자금세탁창구로 이용되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유령회사라는 이름이 뒤따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단순히 몇명만 고발조치했다는 수치만 갖고 판단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혐의내용이 법위반으로 드러났을 경우에만 고발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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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분당보건소 부지 올스톱 비스토리

[단독] 분당보건소 부지 올스톱 비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펜스로 둘러쳐진 땅에는 드문드문 잡초만 나 있었다. 입구 쪽의 주차 차단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사거리 주변서 이 땅만 ‘이가 빠진 듯’ 공터 상태다. 누가 봐도 ‘목이 좋다’는 말이 나올 법한 위치지만 오늘도 텅 비어있다. “원래 보건소가 들어오기로 했어요. 그전에는 정자1동 행정복지센터(임시 청사)가 있었고요. 노인분들이 휠체어 타고 다니면서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그랬어요.” 한 성남시민이 텅 빈 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는 대기업 사옥, 오른편으로는 상가, 뒤편으로는 아파트가 자리한 이른바 ‘노른자위 땅’이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지도를 확인한 뒤 “완전 정자동 메인이네. 부르는 게 값일 것”이라고 했다. 앞 뒤 양 옆 꽉꽉 찼는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163번지 일원 2832㎡(약 854평) 규모의 땅. 원래 성남시 소유의 땅이었다가 용도변경을 거쳐 기업에 매각됐다. 성남시가 ‘기업 유치’를 목적으로 부지의 매각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이다. 2020년 성남시 판교에 있는 한 기업이 4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문제는 그걸로 끝이었다는 점이다. 올해 6월에 이르도록 건물 건립을 위한 삽 한 번 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2022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공사가 어려웠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그 이후에도 해당 부지는 여전히 공터로 남아있다. 한 성남시민에 따르면 주차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을 뿐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초 성남시는 정자동 163번지에 보건소를 세우려 했다. 그러다 2015년 11월16일 성남도시관리계획에 의거해 공공청사 부지서 중심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성남시는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토지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수 기업을 유치하려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 2016년 1월21일 열린 성남시의회 제216회 경제환경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한 시의원이 “정자동에 있는 공공청사 부지를 매각해서 업무 단지로 사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지”라고 질문하자 성남시 회계과장은 “고용도 창출하고 시 재정의 효율성도 증대시키고, 실제로 보면 기업체가 유치됨으로써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성남시의회는 2016년 1월과 3월, 5월에 ‘정자동 163번지 기업 유치를 위한 매각’ 안건을 두고 질의와 토론을 진행했다. 두 번의 부결 끝에 2016년 5월24일 안건이 가결됐다. 당시 경제환경위원회 위원장은 “매각 대금이 지역주민들께 일정 부분 투입될 수 있도록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말한 뒤 안건 가결을 선포했다. ‘부르는 게 값’ 노른자위 땅 보건소 부지였다가 용도변경 성남시는 2017년 5월23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부지의 매각을 공식화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성남시는 첨단산업육성위원회를 열어 해당 부지에 기업 유치를 위한 공모 지침과 평가 기준을 확정한 뒤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모집 공고’를 냈다. 해당 부지의 공시지가는 211억원(㎡당 745만원), 감정평가액은 376억원(㎡당 1329만원)이라고 밝혔다. 당시 해당 부지에는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들어선 상태였고 정자1동 행정복지센터(임시청사)는 그해 9월 분당정자 청소년 수련관으로 옮긴다고 했다. 성남시는 부지 매입 자격을 ▲제조업의 연구시설 ▲벤처기업 집적 시설 ▲문화산업 진흥시설 등으로 제한했다. 지식산업, 전략산업, 벤처기업을 유치해 지역발전을 꾀하겠다는 취지다. 성남시는 “성남하이테크밸리, 판교테크노밸리, 분당벤처밸리 등 3대 산업집적지와 한 축을 이뤄 도시 균형발전과 첨단사업 고도화에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고 말했다. 부지 매각과 관련해 우선 협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접수는 그해 7월17일부터 21일까지 닷새 동안 이뤄졌다. 성남시는 공급 신청서, 기업 현황, 사업 계획, 입찰 계획 등을 작성해 성남시 창조산업과에 직접 방문해 제출하라고 고지했다. 8월 중에 개발 방향 이해도, 사업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고 득점 기업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뒤 협상을 거쳐 매매계약을 체결한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의회서도 지역 기여 강조 성남시는 ▲기업 현황(정량 300점) ▲사업 계획(정성 500점) ▲토지 가격(200점) 등 총 1000점 만점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현황의 경우 규모와 재무 상태로 구분해 각각 70점, 230점을 배점했다. 사업 계획은 사업 평가(200점), 건축 운영(150점), 지역 기여(150점) 등 세 분야로 나눴다. 2018년 4월 성남시는 드림시큐리티가 제안한 소프트웨어 진흥시설 설치 사업 계획이 시 첨단산업 육성위원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드림시큐리티는 핀테크 서비스와 FIDO 기반의 생체인증 기술,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과 암호를 개발하는 연구·개발 중심의 IT 벤처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남시와 드림시큐리티 간의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성남시 관계자에 따르면, 드림시큐리티 측에서 매입을 철회했다. 이후 재차 공모 절차를 거쳐 ㈜마이다스아이티가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회사 소개서에 따르면, 마이다스아이티는 공학기술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 및 구조 분야 엔지니어링 서비스와 웹 비즈니스 통합 설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마이다스아이티는 2020년 2월14일 424억원에 해당 부지를 샀다. 당시 성남시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마이다스아이티는 1114억원을 들여 연면적 3만963㎡, 지상 15층, 지하 5층 규모의 벤처기업 집적 시설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4개 이상의 벤처기업이 입주하고 판교제1테크노밸리에 있던 마이다스아이티 직원 600명이 모두 옮겨온다고도 덧붙였다. 삽 한 번 안 떠 시민 의문 제기 그러면서 “마이다스아이티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창업보육 지원, 커뮤니티 공간 조성, 청소년 자인씨앗학교를 운영하고 주말에 주차장(240면)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일자리 매칭·치매 예방·스마트 제조혁신 등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관련 기관에 무상 지원하고 지역 주민 고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고 했다. 성남시가 우선 협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서 150점을 배점한 ‘지역 기여’ 관련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는 공사 완공 시점으로 2023년을 언급하면서 조감도도 공개했다. 당시 성남시 관계자는 “정자동 163번지 부지는 분당벤처밸리 내 벤처기업 육성촉진지구고 인근엔 네이버, 넥슨, 엔씨소프트 등 첨단지식산업 업체가 대거 포진해 벤처기업 집적 시설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며 “아시아실리콘밸리 조성의 한 축이 돼 자족 기능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지 매각 이후 5년이 지났다. 매각 전인 2019년 12월부터 주민 자율 주차장(90면)으로 사용되던 것도 이제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마이다스아이티가 세운 ‘개발 부지 안내문’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안내문에는 ‘본 지역은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개발될 예정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연구/업무 공간 ▲자연주의 인본 경영 공간 ▲시민 행복 공간 등이라고 쓰여 있다. 한 성남시민은 “주민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기업에 매각된 이후 계속 비어있다. 성남시가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시기로 따지면 8년, 마이다스아이티가 땅을 산 시기로 보면 5년째 땅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성남시에서 어떤 제재를 가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사정은 둘째치고 성남시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판교 벤처기업 매입 “구체적인 내용 안내 어렵다” 성남시의회가 2020년 10월16일 진행한 경제환경위원회 제4차 회의서 정자동 163번지 관련 문제가 언급됐다. 매각 이후 8개월이 흐른 시점이다. 당시 한 시의원은 “빨리빨리 언제까지 안 되면 계약위반으로 통보해야 한다. 확인해야 한다”며 “계약위반이 될 수 있는 사항은 꼼꼼히 따져서 빨리빨리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남시 아시아실리콘밸리 담당관이 “지금 그곳은 설계 단계다. 주차장 사용 문제는 확인해서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시의원은 “우리가 정해진 규칙대로 (첨단산업)육성위원회에서 심의했던 내용대로 계약위반이 아닌지 우리가 따져야 하는 거고…(중략)…우리한테 제출한 계획대로 이행을 안 했을 경우 계약위반으로 취소할 수도 있다고 얘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회의 이후 성남시의회서 정자동 163번지 관련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성남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설계 변경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협약서에 공사 시점에 대한 부분이 있긴 하다. 다만 그 부분에 단서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마이다스아이티서 단서 조항을 통해 공사 기간을 연장해 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올해 상반기 중에 착공하는 것으로 얘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공사 지연에 대한 성남시 대응을 묻자 “더 이상 저희도 같은 사유로는 연장을 안 해주려는 상태”라면서도 “성남시 차원서 마이다스아이티 측에 법적으로 공사를 재촉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사항이 명확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시 직무유기? 제재 못한다 마이다스아이티 관계자는 “(해당 부지에)사옥을 지을 예정”이라며 “사옥을 처음 세우는 것이다 보니 잘 짓기 위해 설계를 변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남시 보도자료에 언급된 부분(지역 기여 관련)이 설계에 포함돼있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홍보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추가 질문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안내가 어려운 점 양해를 부탁한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