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요동치는 대기업 서열 막전막후

엉성한 커트라인…개나 소나 재벌그룹?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매년 이맘때면 기업들의 시선은 공정거래위원회로 쏠린다. 대기업집단 지정현황이 공개되는 까닭이다. 기업의 외형을 가늠하는 수단이자 재계 서열을 구분 짓는 잣대라는 점에서 공정위의 발표에는 관심요소가 다분하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65개 기업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른바 대기업집단 선별작업으로 불리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는 데 뜻을 두고 있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총액 5조원을 초과한 기업이 포함 대상이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민간기업은 총 52곳. 지난해보다 3곳이 늘었다. 하림, 한국투자금융, 셀트리온, 금호석유화학, 카카오 등 총 5개 기업이 새롭게 이름을 올리고 홈플러스와 대성이 명단에서 빠진 덕분이다.

대기업 52곳
3개 늘어나

하림과 카카오는 인수합병에 따른 자산증가가 영향을 미쳤고 셀트리온은 보유주식 가치 상승으로 자산이 많아진 게 한몫했다. 비금융사 인수로 금융전업집단에서 제외(한국투자금융)되거나 계열분리(금호석유화학)를 거쳐 새롭게 명단에 오른 경우도 있다. 반면 최대주주가 바뀐 뒤 금융사지배집단으로 분리된 홈플러스(전년 기준 37위)와 계열회사 매각으로 자산이 줄어든 대성(전년 기준 43위)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통상 민간기업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포함된다는 것은 대기업으로 인정받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자산총액 규모에 따라 나열된 순번이 재계 서열을 구분 짓는 지표로 활용된다. 해당 기업에서 지난 1년 간 발생한 자산 증감 추이에 따라 서열에도 등락이 뒤따른다.


이번 발표에서는 순위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자산이 급감한 기업의 명단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로 자금난을 겪으며 부정적인 소식이 전해지던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극적인 서열 하락을 겪은 기업은 전년 대비 15계단 떨어진 동부(35위)였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14조6000억원 규모였던 동부의 자산총액은 1년이 지난 지금 8조2000억원으로 추락했다. 52개 민간기업 가운데 자산 하락폭은 단연 선두다. 최근 몇 년 간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주력계열사를 연이어 매각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사이 53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25개로 대폭 축소됐다.

동국제강(37위)은 재계 서열이 7계단 하락했다. 9조8000억원이던 자산은 2조원 가까이 줄어든 7조9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적극적인 부채 절감이 이뤄진 게 컸다. 동국제강은 사옥인 페럼타워 매각, 포스코 지분 매각, 포항 후판2공장 폐쇄, 사파이어 잉곳 제조업체 DK아즈텍 기업회생절차 신청 등 다방면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올해에도 국제종합기계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진중공업(38위)은 8조9000억원이던 자산이 7조8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재계 순위가 덩달아 6계단이나 떨어졌다. 2014년부터 8차례에 걸쳐 부동산을 매각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매각한 부동산자산만 해도 20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42위), 태광(43위), 현대산업개발(46위), 삼천리(49위)는 자산 감소폭은 미미했지만 비슷한 외형을 갖춘 경쟁사들이 상승세를 타면서 재계 서열이 자연스럽게 뒷걸음질한 케이스다. 한국GM은 8조2000억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자산이 감소하면서 6계단 떨어진데다 부채비율이 606.6% 이상 급등했다, 삼천리는 자산이 3000억원 줄어든 5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순위가 5계단 떨어졌다.
 

지난해 41위에 이름을 올렸던 현대산업개발(46위)은 5계단 뒤로 밀려났다. 자산총액은 6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중흥건설, 이랜드, 태영, 아모레퍼시픽 등 현대산업개발의 뒤쪽에 줄서 있던 기업들이 동반약진을 한 게 컸다. 4계단 떨어진 태광(43위) 역시 현대산업개발과 상황이 유사하다. 태광은 7조1000억원으로 자산이 전년 대비 2000억원 가량 줄었다. 계열사는 기존 32개에서 26개로 축소됐다.

희비교차…새로 등장한 하림, 사라진 대성
출자제한 순위 내 지각변동 ‘UP & DOWN’


금호아시아나(19위)는 계열분리가 재계 서열을 떨어뜨린 경우다. 지난해 17위에 이름을 올렸던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 뒤 자산이 15조2000억원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1년 전에 비해 3조6000억원이 빠져 나간 셈이다.

자산 감소가 대내외적 위상으로 직결된 앞의 사례와 달리 몸집이 줄었음에도 재계 순위에 별반 차이 없는 기업도 더러 보인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아도 자산 감소가 발생한 만큼 마음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열 8위에 이름을 올렸던 현대중공업(9위)은 자산총액 53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한 단계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다. 문제는 대폭 축소된 자산이다. 1년 사이에 자산 4조원이 증발했다.

KT(12위)는 자산이 3조2000억원 줄어든 31조3000억원으로 급감한데다 계열사도 50개에서 40개로 대폭 축소됐다. 공교롭게도 KT의 부진을 틈타 두산(11위)은 어부지리로 순위를 한단계 끌어올렸다. 두산 역시 자산이 감소했지만 하락폭이 월등했던 KT가 두산의 재계 서열 상승을 견인했다.
 

포스코(6위)는 재계 순위에 변동이 없었지만 자산이 4조원 이상 줄어든 80조2000억원으로 떨어졌고 계열사는 51개에서 45개로 줄었다. 실적 부진 계열사를 대상으로 매각 작업을 벌였던 포스코는 계열사 지분매각 등을 통해 부채율 개선에 힘쓴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17위)는 전년 대비 한 단계 순위 하락에 그쳤지만 부채비율 상승폭이 무려 3642.4%에 달했다. 대우조선해양 집단 계열사 14곳 중 부채배율 급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말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7308.4%에 달한다. 지난해 별도기준 3조 5272억 원의 순손실이 나면서 완전자본잠식을 간신히 면할 정도로 자본총액이 잠식된 결과다. 순이익이 크게 감소한 기업집단에서도 첫손에 꼽혔다.

위상 급추락
좋은 시절 끝나

앞서 열거한 기업들이 냉랭한 분위기에 놓여 있는 것과 달리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며 재계 서열 재편을 가속화하는 곳들도 제법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대기업 집단에 새롭게 편입된 하림(28위)이다.

신규 지정된 기업들 대다수가 대기업 명단 맨 하단에 몰려 있는 것과 달리 하림은 처음부터 30위권 안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4조7000억원대 자산으로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하림은 4조2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순식간에 10조원짜리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중흥건설(40위)의 약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재계 서열 48위였던 중흥건설은 5조6000억원이었던 자산을 2조원이나 불리는 데 성공했다. 2014년 발표 당시 3조8000억원던 자산이 2년 만에 2배나 증가한 셈이다. 그사이 계열사도 6개 늘어난 49개로 증가했다. 중흥건설의 자산이 급증한 이유는 소유권 이전이 마무리되지 않은 아파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다 광교신도시 땅값이 8000억원 가까이 급등한 까닭이다. 부채총액은 5조5천840억원으로 자본총액대비 부채비율은 276%이다. 임대주택의 자산이 부채로 잡혔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다.

미래에셋(24위)은 5계단 상승했다. 그사이 자산은 1조원 증가한 11조원을 기록했다. KT&G와 교보생명은 자산이 소폭 증가하면서 각각 5계단씩 뛰어 올랐다. KT&G는 부채도 함께 증가하면서 자산이 커졌다. 자본은 작년 초 담뱃값 인상으로 이익잉여금과 적립금이 증가했고 부채는 미지급 담배소비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부영(15위)은 4계단 상승했다. 16조8000억원이던 자산이 1년 사이에 4조원 가까이 증가한 게 결정적이었다. 계열사도 15개에서 3개 늘어난 18개로 재편됐다.


순위 올리고
자산도 키우고

재계 서열에 큰 변동이 없어도 함박웃음을 짓는 기업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화(8위)는 재계 서열이 2계단 오르는 데 그쳤지만 외형은 한층 커졌다. 현대중공업, 한진(10위)이 뒷걸음질 하는 사이 38조원이던 자산은 16조원 이상 증가했다. 삼성종합화학(1조309억원)과 삼성테크윈(8232억원) 등을 인수하면서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기업으로 우뚝 섰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한 단계 밑에 있던 KT와 비슷한 자산을 보유했지만 이제는 꽤나 차이가 벌어졌다.

현대자동차(2위)는 자산을 15조원 이상 불리며 자산 증가로는 한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계열사인 현대제철을 통해 현대종합특수강(구 동부특수강)의 지분을 거머쥔 게 주효했다. 다만 1위인 삼성과의 현격한 격차는 여전하기 때문에 당분간 자리바꿈을 기대하긴 힘들다.

지난해 '형제의 난'으로 떠들썩했던 롯데(5위)는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과 상관없이 자산을 크게 불렸다. 재계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지만 93조원대 자산이 1년 사이 무려 10조원 가까이 증가하면서 자산 변동이 미미했던 LG(4위)와의 간극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삼성SDI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KT렌탈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킨 게 결정적이었다.

CJ헬로비전과 OCI머티리얼즈를 연이어 인수한 SK(3위)는 152조원이던 자산을 8조원 가량 늘리면서 LG와 격차를 더욱 별렸다.
 

대기업들 사이에서 희비가 교차되는 상황에서 공정위는 추가적인 자료들을 더 공개할 예정이다. 지정 기업집단의 계열회사 소유지분현황과 출자현황을 분석한 내부지분율, 순환출자현황 등이 그것이다. 내부거래현황, 채무보증, 지배구조현황도 단계적인 분석 대상이다.


잘 나가던 동부·동국제강 좌충우돌
잘 나가는 한화·중흥건설 파죽지세

다만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이 동일한 범주에 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재벌기업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은 거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영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 등이 금지되고 소속 금융ㆍ보험사가 가진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되며, 공시의무도 대폭 강화된다.

제도의 시행으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억제되고,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업체와의 관계 등에서 경영 투명성이 개선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을 규제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생태계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라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몸집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8년 전 도입한 자산총액 기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두고 재계를 중심으로 말들이 많다. 규제를 받는 대기업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외국 기업보다 역차별을 받고 전반적인 경제 활력 제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30여 개 법령의 규제를 받게 돼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는 불만도 있다. 자산규모 5조원을 겨우 넘긴 기업집단을 글로벌 거대기업인 삼성이나 현대차, SK, LG그룹과 같이 상호출자제한 등의 각종 규제 대상으로 묶어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해외자산을 합할 경우 자산규모가 5조원을 훌쩍 넘는 네이버는 제외한 채 카카오를 대기업집단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자산 5조원 이상’을 한 묶음으로 분류하는 현행 방식이 무조건 합리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이유다. 경제력 차이가 현격한 다른 대상을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차별적인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카오(5조1000억원)와 삼성(348조2260억원)은 자산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70배가량 덩치 차이가 난다.

이렇게 되자 지정에서 탈락되는 게 속편한 일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이미 몇몇 기업은 몸집을 줄여 해당 규제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대기업집단에 속하면 그에 따른 각종 제약이 뒤따르는데 명예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는 계산이다.

덩치 상관없이
일괄적 적용?

일각에서는 그동안 경제 규모가 커진 것에 맞게 대기업집단의 자산총액 기준을 10조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그룹이 40개 미만으로 감소하게 된다. 대기업집단 간에도 규모에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차등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자산규모 4000억원에서 시작된 지정기준이 상위 30대 그룹, 2조원 이상을 거쳐 2009년 이후 지금껏 5조원 이상이다”며 “지정기준을 10조원으로 상향조정하자는 의견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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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