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탈당파 이합집산 액션플랜

총선 막판 ‘백의 연대’ 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 탈당파 후보들의 생환 작전은 성공할 것인가. 열쇠는 ‘연대’에 있다는 게 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이를 잘 아는 후보들은 ‘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세를 결집하는 상황. 만약 두 연대가 한 번 더 ‘연대’한다면, 종국으로 치닫는 총선 정국에 막판 대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적 생명 연장을 꿈꾸는 탈당파 후보들의 액션플랜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이재오·유승민 등의 새누리당 복당은 총선 후 정치판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은 복당을 언급하기 전 당선이라는 선결과제부터 풀어내야 한다. ‘이합집산’이라는 정치인의 생존 DNA가 발동되는 순간. 20대 국회 입성을 노리는 탈당파 후보들은 이미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친이명박계(이하 친이계)의 수도권 후보들과 친유승민계(이하 친유계)의 영남권 후보들은 각각의 맹주로 향했다. 더 나아가 정치권은 두 연대의 ‘연대’ 여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수도권 친이계
영남권 친유계

지금까지 새누리당을 떠난 현역의원은 총 11명(강길부·권은희·김태환·류성걸·안상수·유승민·윤상현·이재오·조해진·주호영·진영). 강승규·박승호·임태희 등 현역이 아닌 후보들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당초 정치권은 이들 탈당파 후보들의 ‘비박 무소속 연대’ 가능성을 높게 봤다.

연대는 더 이상 야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친이계는 발 빠르게 구체적 결사체를 구성해 주목받았다. ‘바른정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하 바른정치)이라는 이름의 해당 연대는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권자들에게 활동을 알렸다.

연대에는 과거 MB정부 시절 대통령실장을 지낸 임태희 후보를 비롯해 강승규·조진형 등 국회 재입성을 노리는 사람들은 물론,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안상수 등 현역의원들까지 총 10명이 뜻을 함께 했다.


수도권과 친이계. 정치권은 바른정치의 정체성으로 이 두 가지를 꼽았다. 박승호(경북 포항북), 이철규(강원 동해삼척), 김준환(충북 청주 흥덕) 등 내부인 중 수도권 후보가 아닌 사람도 있지만, 연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오(서울 은평을), 임태희(경기 성남 분당을), 안상수(인천 중동강화옹진), 강승규(서울 마포갑) 등은 오랜 세월 수도권에서 터를 닦아온 유력 정치인들이다. 더불어 이들 대부분이 MB정부에서 요직을 지냈던 핵심참모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새로운 결사체는
‘바른정치’ 연대

정의화 국회의장의 합류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바른정치 구성원 중 한 명인 임태희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찾은 정 의장은 바른정치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시기상 결성이 있고 난 직후의 행보라서 여러 가지 정치적 해석이 뒤따랐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정 의장은 단상에 올라 “(새누리)당을 망치는 악랄한 ‘사천’이 근절돼야 한다”며 “여러분의 힘으로 (임 후보와 같은) 훌륭한 후보가 국가를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정 의장은 결성을 알린 바른정치에 대해 “정치를 바로 세우고 당을 정상화하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며 “내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지금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정체성이라면 나라가 밝지 않다”며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고 싶다. 뜻 맞는 사람끼리 모여 정치결사체를 만들어볼 것”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정치결사체’는 정 의장이 누차 희망한 사항이다. 앞서 정 의장은 지난달 말 남아공 순방과 국제의회연맹(IPU) 총회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뒤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의 공천은) 공천이 아니라 악랄한 사천이며 비민주적인 정치숙청”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모두 날려버리는 조선시대의 ‘사화’와 같은 꼴”이라고 쏘아 붙인 적 있다. 뒤이어 정 의장은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고 싶다”며 “괜찮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치결사체를 만들어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친유계 생환? ‘유’만 남을지도
수도권·영남권, 막판 연대 주목


두 발언의 공통분모는 사천과 정치결사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정 의장이 밝힌 정치결사체가 바로 바른정치가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사천을 언급하며 새누리당 공천을 비판한 일 또한 총선 뒤를 생각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즉 새누리당 공천의 정당성과 민주성을 지적해 향후 여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결사체를 구성했을 때 새누리당에 비교 우위를 점하겠다는 속내가 아니겠냐는 주장이다. 또한 향후 대권까지 생각하는 정 의장이 일찌감치 우군 확보를 위해 정치적 보폭을 늘려가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임 후보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캠프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정 의장 방문은) 사전에 약속이 잡힌 것이 아니어서 당시 우리들도 당황했었다”며 “개인적 친분에 의한 방문이었다. 어떤 시나리오가 개입된 부분은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선이 목전에 있는 상황에서 보인 국회의장의 행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호기로운 출발과는 달리 바른정치는 아직 수도권에서 이렇다 할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재오·안상수 등 현역들은 선전하고 있지만, 다른 후보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문화일보>와 여론조사전문기관 포커스컴퍼니가 지난 4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은평을 후보지지도는 무소속 이재오(30.6%), 국민의당 고연호(20.7%),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강병원(19.2%), 정의당 김제남(7.1%) 후보 순으로 조사됐다(지난 1~2일 서울 은평을 선거구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500명 대상, 유선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미풍에 그친 효과
새로운 변곡점은?

<중앙일보>와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이 함께 지난 6일 발표한 인천 중동강화옹진 후보지지도를 보면 새누리당 배준영(26.6%) 후보와 무소속 안상수(26.3%) 후보가 0.3포인트 차이로 초 근접전을 벌이고 있으며, 후보단일화에 성공한 정의당 조택상(11.7%), 국민의당 김회창(8.5%) 후보가 뒤를 잇고 있다(지난달 28~30일 인천 중동강화옹진 지역구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유권자 600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진행,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0%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고 강승규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민주 노웅래, 새누리당 안대희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임태희 후보 역시 새누리당 전하진 후보를 쫓는 중이다. 바른정치 소속 캠프 관계자 중 한 명은 “(언론에서 얘기하는) 미풍이라는 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초 이들의 탈당 러시는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유승민 후보의 탈당과 맞물려 수도권에 적지 않은 돌풍을 예고했었다. 그 돌풍이 사그라들고 있는 지금, 바른정치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카드는 역시 유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유계 무소속연대(이하 친유계연대)와의 연대다. 이는 전체 총선 판에 반향을 불러오기 충분한 이슈로, 부침을 겪고 있는 선거판에 막판 역전을 불러올만하다. 때문에 바른정치는 유승민 후보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줄곧 러브콜을 보내왔다.

이재오·임태희 ‘바른 정치’ 결성
정의화 “새로운 정치판 만들고파”

바른정치처럼 공식 명칭은 없지만, 대구 동을 유 후보는 류성걸(대구 동갑), 권은희(대구 북갑) 후보와 함께 ‘공동 출정식’을 갖고 뜻을 모았다. 여기에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후보까지 합세한 모습이다.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들의 정체성은 영남권과 친유계다. 거기에 ‘친박 심판론’이라는 무기를 내세웠다.

아직 친유계연대는 바른정치와 선을 긋고 있다. 유세 직후 유 후보는 바른정치와의 연대 여부를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일단 대구랑 영남권만 주력할 계획”이라며 “수도권(바른정치)과의 연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거리를 뒀다.


다만 “조해진 후보가 그 분들(이재오·임태희)과 예전부터 정치를 오래 했다. 조 후보를 통해서든 내가 직접 하든, 그 분들과 연락은 (계속) 하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임태희 후보 측 관계자 또한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친유계연대와) 계속 교감을 나누고 있는 상황”이라며 “더 진척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친유계연대 입장에서는 바른정치와 같은 배를 타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친이계와 손잡는 그림은 영남권 유권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 또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의 연대는 자칫 유권자들에게 ‘야합’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이 유 후보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정치권은 총선 막판에 있을 극적인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먼저 류성걸 후보는 새누리당 정종섭 후보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BS와 여론조사전문기관 TNS가 지난 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류 후보(42.7%)가 정 후보(36.6%)를 6.1%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다.

‘현장만 가면 1번을 찍는다’는 영남권 투표장 민심을 감안하면 불안한 리드인 게 사실이다(지난 2~5일 대구 동갑 지역구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유권자 502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진행,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목전 다가온 총선
막판 연대 가능성


다른 후보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 북갑 지역구 지지율에서 권은희 후보는 새누리당 정태옥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오차범위를 벗어났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영남일보>와 대구MBC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지역 유권자 514명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하고, 지난 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3%포인트) 정 후보는 49.9%의 지지율을 기록, 권 후보(21.4%)를 28.5%포인트 차로 앞섰다.

조해진 후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일부터 이틀간 이 지역 유권자 515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지난 4일 공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3%포인트)에 따르면, 지지율은 새누리당 엄용수(34.3%), 무소속 조해진(24.0%), 무소속 김충근(7.0%), 국민의당 우일식(4.0%), 무소속 이구녕(0.6%) 순으로 나타났다(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유 후보는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유세 현장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경남 함안군을 방문한 그는 “<조선일보>에서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조 후보가 조금 뒤졌다. 그런데 오늘(지난 5일) 여론조사에서는 그 사이 (지지율이) 쑥 올라갔다”며 “조 후보가 얼마나 깨끗한지, 얼마나 능력 있고 개혁적인지 알게 되면 함안군민들이 압도적으로 조 후보를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얀 바람’을 예고한 탈당파 후보들. 백의를 입은 그들은 과연 단일 결사체를 만드는 데 성공할 것인가. 유권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열쇠는 새누리당 복당을 제1과제로 삼고 있는 유 후보에게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토론회 불참’ 후보들 속사정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토론회.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이를 외면하는 후보들이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서울 송파병의 김을동 후보는 지역 선관위에서 개최한 TV 토론에 불참했다. 김 후보 측은 언론을 통해 “총선 수도권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어 다른 후보들 지원 일정 때문에 (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토론회가 열리는 동안 자신의 지역구 일대에서 선거유세를 벌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전라일보>와 전북CBS <해피데이고창>이 공동 주최해 열린 정읍고창선거구 토론회에서는 무소속 이강수 후보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그러나 당일 이 후보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이 일었다. 이 후보는 “기침이 너무 많이 나와 토론회 참석이 어려웠다”며 “선거운동도 아침 인사정도만 하는 형편”이라고 해명했다.

부산 사하갑의 김척수 후보는 중앙선관위에서 주최한 TV토론이 예정돼 있었으나 불참했다. 사유는 “방송 울렁증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많은 후보들이 건강상 이유, 또는 개인일정을 들어 불참을 선언하고 있다. 때문에 불참 시 과태료 400만원만 내면 되는 기존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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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