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대면병’을 아십니까

휴전선서 마이크 들고 원맨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북한의 잦은 미사일 실험으로 휴전선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국군은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북한이 민감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역으로 확대했다. 북한이 학을 떼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이미 잇단 보도를 통해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운용실태나 구체적인 임무는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다. 특히 확성기 방송요원에 대해서는 기밀사항 가운데 하나. 그런 확성기 방송요원의 임무와 활약상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도발 이후 4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국군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최전선 11곳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난 1월8일부터 일제히 재개했다. 북한은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에 잇달아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철저히 베일에

아예 공개경고장을 통해 “무차별 타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어지간한 경고나 조치에 꿈적도 않던 북한이 대북방송을 이토록 민감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북방송이 북한군의 ‘정신’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군사적 공격의 경우 더욱 강한 훈련과 동기부여, 그리고 ‘도발’이란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정신’을 공략하는 대북방송은 대응이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심리전’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리 군의 1차적인 대응 수단이다. 무력이 수반되지 않지만 북한군과 주민들을 상대로 한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린다.

확성기 방송요원의 역할은 군내의 기밀사항 가운데 하나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은 ‘방송병’과 ‘대면병’으로 분류된다. 방송병은 DMZ 철책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통해 ‘자유의 소리’를 방송하며 북한 김정은 체제와 4차 핵실험에 대한 비판, 북한의 실상을 알리거나 라디오 드라마, 일기예보, 최신가요 등을 송출한다.


대면병은 방송병과 달리 고지대에 설치돼 있는 ‘고가 초소’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말 그대로 대면 방송을 한다. 이들은 쌍방향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긴장감을 완화시켜 남한의 실생활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한다.

벙커 안에 있는 방송병은 밖으로 노출되지 않지만, 대면병은 상대의 표정이나 동작까지도 육안으로 살펴가면서 육성으로 대화해야 한다. 상대의 심리를 잘 읽어내고 적절한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임무의 관건. 그렇기 때문에 대면병에게는 고도의 순발력과 어휘력이 요구된다.

대면병들이 방송하는 초소들은 북측 초소와 불과 1㎞ 안팎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상대 초소의 병사들의 움직임까지도 육안으로 관찰되는 가까운 거리다. 방송 확성기 소리는 보통 10㎞까지 전달되지만 바람이 부는 날에는 더 멀리 있는 북측 마을까지 방송이 전파된다.

북한 민감해하는 대북방송 임무 수행
때론 직접 약올리기 작전으로 맞대응

국방부는 이들 대북심리전단의 편제나 규모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국방부 관계자는 “작전보안상 우리 군의 활동에 제한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역 시절 대면병으로 복무한 제대 장병들에 따르면 대면병의 선발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 임무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병사 가운데 차출되는 경우가 많다.

병력 충원은 주로 신병교육대에서 이뤄진다. 4주차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심리전단 소속 장교와 부사관이 훈련병 면접을 통해 뽑는다. 차출되더라도 부대 배치를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속과 임무를 알지 못한다.


대면병들은 자대에 도착해 2주간 특별교육을 받게 된다. 이 교육과정에서 대북 심리전의 의의, 글쓰기, 대응논리 개발법 등을 습득한다.

대면병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만복이’, ‘동건이’처럼 친숙한 가명을 쓰기도 한다. 또 군복 대신 밝고 화려한 색깔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초소에 올라간다. 감색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 등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복장이다. 군복은 휴가와 외출 시에만 착용한다.

대면방송을 할 때에는 친근감을 주고자 친구를 대하듯 반말을 사용한다. 대면 방송은 얼굴을 맞대고 하기에 개인적인 질문도 유도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때론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방식 중 가장 흔한 것은 ‘약 올리기’다. 예를 들어 남한군이 “오늘 점심에 갈비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하면 북한군은 “우리는 질려서 안 먹는다. 세 끼 갈비만 먹다 보니 이가 아파 먹지 못한다”고 대꾸한다.

북한의 대남 심리전도 비슷하다. “우리 개성에 나는 유명한 인삼 맛 아나? 몸에 정말 좋다네. 먹고 싶으면 당장 월북하게.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네. 부러우면 어서 오라우∼” 국경일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때는 양측이 경연을 펼친다. 북한은 김일성 부자의 생일, 인민군 창건일, 노동당 창건일 등에 대남 확성기 출력을 높여 화려한 공연을 중계한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인 ‘GP의 날’ 행사 때에는 푸짐한 삼겹살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불판 등이 보급된다. 이 역시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다. ‘삼겹살 파티’는 옥상에서 벌이게 돼 있었다. 북한 측에서도 우리 쪽을 관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때때로 ‘노래방 심리전’도 함께 진행된다. 노래방 기기 역시 방송장비 중 하나로 대형 스피커에 연결된다. 여군 하사가 한복을 입고 병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는 이만큼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고 있다”는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이다.

대면병 초소에는 여군도 투입된다. 여성 대면병의 목소리가 울리면 맞은편 북한 초소에서 대면병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 남쪽 초소로 시선을 고정한다. 일부는 망원경으로 남측 초소를 관찰하는 등 재미난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입심 심리전

원점타격을 향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지만 항시 긴장만 흐르는 건 아니다. 20대 병사들 사이에는 그들만의 동질감과 민족적인 교감이 존재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의 대면병들 사이에도 우정이 싹튼다는 것.

대면병들의 수칙 중 하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대응이나 역공에도 발끈하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면병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은 GP에서 철수하는 날 북쪽 대면병의 “가서 잘 살고 나 잊지 말라우” 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기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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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