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신후 허위공시 공방

대주주가 개미투자자 피 빨았다?

[일요시사 취재2팀] 이창근 기자 = 코스닥기업 ㈜신후가 수상하다. 작년 하반기 1000원대 초반에 머무르던 주가가 11월에 1만3000원을 찍더니 현재는 3000원 선에 머물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작전세력의 신후 개입설과 신후의 전임 대표이사와 현 대표이사가 짜고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더불어 회자되고 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신후의 전·현직 경영진이 허위공시로 주가를 띄운 뒤 개미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급기야 청와대 신문고와 금감원 등에 민원을 넣은 주주와 검찰에 소를 제기한 주주까지 등장했다. 오는 3월30일 오전 9시. 신후 본사 2층 회의실에서 개최될 주주총회가 조용히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배경이다.

작년 6월18일까지 신후의 주가는 880원이었다. 이전 3년 동안 매출부진과 그에 따른 적자경영으로 인해 주가가 바닥을 긴 것이다. 그러던 것이 6월19일부터 나흘간 매일 30%씩 상한가를 쳤다. 그 결과 주가는 4일 만에 120%가 상승한 1920원이 됐다.

나흘간 매일
30%씩 상한가

이러한 신후의 주가상승에는 에너지 신기술사업 진출 공시가 큰 배경이 됐다. 당시 경영진인 정모, 김모씨가 임시이사회를 열어 이장헌(58) ㈜이에스에스콤 대표를 신후의 각자대표로 영입한 것이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이장헌 대표는 국내 신기술 1호인 에너지저감장치(Ess시스템)의 개발자다. 이장헌 대표의 영입에는 신후의 이사회 의장인 이준희(53)씨 역할이 컸다. 기존 사업의 실적부진 탓에 사업 다각화가 절실했던 신후 경영진의 ‘신의 한 수’가 시장의 호응을 받은 것이다.


새로 취임한 이장헌 각자대표의 활동은 대단했다. 취임 두 달 만에 중국 가스계량기 1위 제조업체인 단동동발그룹과 단동로봇과학기술 유한공사로부터 각각 20억원씩 총 4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신사옥 건축현장을 비롯한 2건의 Ess시스템 공급계약을 따낸 것이다.

이러한 호재들은 곧바로 주식시장에 반영됐다. 그 결과 작년 6월 880원이던 주가는 10월 슬슬 바람을 타더니 11월에는 1만3000원 고지를 밟았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 대박을 낸 것이다. 시가총액도 160억원에서 2600억원으로 급등했다.

이런 신후의 대박은 ㈜이에스에스콤 이장헌 대표의 영입이 큰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그전까지 신후의 매출액은 50억원 규모에 불과했고 심지어 3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영업적자만 26억원 규모다. 따라서 신후의 주가폭등은 매출 실적의 반영이라기보다 향후 전개될 신사업의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가 고점을 찍은 11월 이후 신후 경영진이 보여준 행보다. 12월 최대주주이자 각자대표인 김모씨가 갑자기 사퇴를 하고 그 자리를 이사회 의장인 이준희씨가 취임한 것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김씨와 이 의장은 부부지간으로 특수관계인이고, 그간 회사 내부의 결재들도 이 의장이 대리 서명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임 대표를 겸임한 이 의장이 최근 개최한 이사회에서 자신이 영입한 이장헌 각자대표를 해임시키면서 발생했다. 그 동안 감춰진 내부 갈등이 외부로 표면화된 것이다. 여기에 대주주 먹튀설과 허위공시를 통한 작전설 그리고 이사회 회의록 위조를 비롯한 전·현직 대표의 횡령과 배임 의혹 등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가장 민감한 사안은 대주주 먹튀설이다. 최대주주이자 경영자인 김모씨가 주가 최고점에서 대량의 주식을 매각, 100억원 대의 이익을 챙기고 사임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량의 주식매각으로 인해 최대주주가 변경된 사실을 새 대표의 지시로 은폐되고 있다는 의혹이 덧붙었다.
 

공시은폐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자본시장법 위반에 따른 처벌은 차지하더라도 소액주주들의 엄청난 비난이 잇따를 것이 자명해 보인다. 더불어 김씨와 부부관계에 있는 현 대표에게도 큰 부담이 될 사안이다. 투자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주요 정보를 감춰 온 것은 부부가 짜고 개미들을 유인해 왔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후의 공시 담당자는 대주주 먹튀설에 손사레를 쳤다. 작년 10월14일과 15일에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였던 김씨가 143만주를 시장에 매각한 것은 맞지만 먹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처분단가는 1900원에서 2000원 정도였고, 최대주주의 지분 변동에 대해 금감원에 신고했다”고 덧붙였다. 1만3000원대에 주식을 팔았다는 얘기는 모함이라는 것이다.

또 “신후가 금감원에 거짓 신고했으면 곧바로 정정요구가 온다. 그런데 아직까지 정정요구가 없다. 정당한 근거 없이 신후를 흠집 내는 세력에게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신후 담당자의 주장은 한국예탁원에 보관된 주주명부에 의해 사실과 다름이 입증되고 있다. 2015년 12월31일 기준 정기주주총회 주주일람부 세부 변동내역을 살펴보면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김모씨가 10월15일에 143만주를 장내매도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처분단가는 2911원. 1900원에서 2000원 정도에 매각했다는 공시담당자의 발언과는 격차가 있으나 소소한 문제로 치부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예탁원이 보유한 주주일람부에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 존재한다.

자료에는 작년 12월31일 기준 최대주주였던 김모씨의 보유주식이 343만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당초 김씨가 보유한 주식은 580만주. 이 중 장내 매도를 통해 143만주를 매도했으니 437만주가 남아야 한다. 그런데 예탁원의 주주명부상 김씨의 보유주식은 보호예수가 걸려 있는 343만주로 나타났다. 93만주가 빈 것이다.

주가 고점서 최대주주 먹튀
현 대표는 배임 의혹 일어

이미 주주들 중에서는 “작년 11월 주가최고점에 난데없이 무더기로 물량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때 김대표가 물량을 털어냈을 것”이란 의혹이 공유된 바 있다. 이번 입수된 예탁원의 자료는 그때의 의혹이 허위가 아닌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당시 주가는 1만원에서 1만3000원 사이에 움직였으니 93만주의 처분총액은 93억원에서 120억원 사이로 추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93만주의 추가매각으로 인해 김씨의 보유주식이 줄어들면서 최대주주가 바뀐 대목이다. 자료에 의하면 현재 신후의 최대주주는 이장헌 전 각자대표의 이에스에스홀딩스다. 총 365만주. 김씨의 잔여 보유주식보다 22만주 많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후는 아직까지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하지 않고 있다. 개연성은 두 가지. 김씨가 내부 임직원들에게 주식매각 사실을 숨겼거나 아니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면서 이를 쉬쉬하고 있거나다.

코스닥상장협의회 관계자는 “최대주주 변경 공시를 숨긴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거래소의 시장조사팀이나 금감원의 실사결과에 따라 검찰고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를 경영하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가 보호예수 주식 외의 주식 전부를 처분하고 회사를 떠난 사실을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부분은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는 첨언이다.   

수상한 대주주
“물증 나왔다”

공시은폐에 대한 이슈는 이준희 현 대표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911원에 매도한 143만주로 41억원, 여기에 1만원대에 처분한 93만주 금액을 계산하면 최소 130억원 상당의 거금이 부인 통장에 들어왔는데 이를 남편이 모를 리가 없다는 눈총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주주의 변경 등이 알려져 개미들이 떨어져 나가면 3000원 전후의 현 주가가 무너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은폐했다고 오해 받을 공산도 크다. 공시로 부양된 주가가 공시로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준희 대표를 압박하는 카드는 또 있다.

이 대표가 의장 시절에 영입했다 최근 해임한 이에스에스콤 이장헌 전 각자대표가 이 대표와 부인 김씨를 상대로 횡령과 배임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상태다. 이장헌 전 대표는 “이준희 현 대표가 내 이름과 기술을 철저히 이용해 먹고 버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신이 취임 초에 유치한 중국 투자금 40억원을 이 대표 부부가 횡령 또는 전용하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나름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작년 10월29일 신후와 중국 투자자 사이에 작성된 보충합의서가 그 근거다. 보충합의서 제4조에 의하면 ‘투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이에스에스콤의 Ess 에너지 절약계열 상품발전에 이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자금의 집행에 있어 각자대표인 이장헌의 사전 승인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항도 붙어 있다.
 

자금의 용도와 절차, 승인 주체 등이 명확히 규정된 계약이다. 문제는 이러한 명확한 계약 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금이 집행됐다는 점이다. 작년 10월30일 입금된 중국 측 투자금 40억원은 나흘 뒤인 11월4일부터 12월9일까지 현금 10억원과 수표 30억원으로 전액 인출된 상태다. 이는 이장헌 전 각자대표가 해임 직전에 주거래은행을 통해 확인한 사안이다.

이 전 대표가 신후 경영진을 상대로 횡령과 배임 의혹을 제기한 근거다. 물론 이장헌 대표는 수상한 자금 인출에 대해 김 대표와 이 의장을 추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금의 이동과 집행에 대한 사전 승인을 한 적이 없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각자대표에서 해임됐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가 40억원 중국 투자금의 횡령이나 전용은 국제사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신후 관계자는 “당시 중국 측 투자는 운영자금 명목으로 투자받은 것”이라고 반박하다가 보충합의서의 내용을 확인했다는 기자의 반문에 입장을 바꿨다. 계약을 인정한다고 쳐도 투자금 40억원을 Ess 사업에 집행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Ess시스템 관련한 기술과 사업체에 아무런 실체가 없었기 때문”으로 돌렸다. 자금을 집행하려 해도 이장헌 대표의 회사가 이를 받을 상태가 안 됐다는 것이다. 중국 측에 약속한 Ess시스템 샘플의 납기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도 반복해서 강조했다. 또 40억원은 회사 운영비로 집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허위증시 증거 확보
공시로 흥한 자 공시로 망하나

그러나 이장헌 전 대표는 “신후 측 담당자가 너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신후에 투자한 것은 에너지사업과 관련한 Ess시스템에 대한 관심 때문이지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를 보고 투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이 계약서에 자금의 용도와 절차를 지정한 것이 그 반증이라는 주장이다. 샘플의 납기를 어긴 것도 당시 신후의 김 대표와 이 의장 측이 모든 자금을 횡령해 간 여파라는 입장이다.

“실체가 없어 자금을 집행할 수 없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안색이 돌변했다.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놓은 문건이 국민보험공단 신축공사를 맡은 협력사가 신후에 보낸 문건이다. 이 문건은 에 Ess시스템 납품함에 있어 신후가 상주시에 지방세를 체납하고 있어 상주시로부터 채권압류통지를 받았고, 그에 따라 물품공급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후 측은 Ess시스템에 대해 실체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각자대표로 취임했을 때 신후는 상장폐지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었다. 세금, 4대보험 모두 연체 중이었다. 그런 회사에 중국 자금을 유치해 놓으니까 두 부부가 40억원을 다 빼돌려 놓고 이제 와서 오리발이다.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장헌 전 대표 외에도 이준희 현 대표를 벼르고 있는 이들이 더 있다. 신후의 소액주주인 채모씨와 김모씨 등이 현 대표를 사문서 위조와 인장, 사인 등의 위조 및 부정사용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한 것이다. 이 고발장 내용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이사회의 일원인 김모 이사의 자필확인서다.
 

확인서 내용을 요약하면, 김 이사는 이사 선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이사회 개최를 통보받거나 참석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사회 회의록에 있는 자신의 도장과 서명은 불법으로 위조, 날인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신후 측 담당자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결국 신후의 전+현직 경영진을 둘러싼 날 선 공방은 검찰과 금감원 등에 의해 그 진위가 드러날 전망이다. 그 여정도 짧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오는 31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는 현 경영진을 상대로 한 이장헌 전 대표의 거센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김씨의 주식매도로 인해 이장헌 전 대표의 이에스에스홀딩스가 신후의 최대주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이번 주총에서 현 경영진 해임을 안건으로 한 표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이준희 대표를 해임시키고 본인 또는 전문경영인을 대표로 앉혀서 신후 경영진이 감추고 있는 온갖 비밀을 파헤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특히 동부코어 20억 유상증자의 공시에 대한 진실규명에 주력할 방침이다. 당초 신후는 작년 9월 동부코어가 20억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했다가 올해 1월 중국 홍룬로봇과학기술 유한공사가 대신 투자한다고 공시했고, 다시 지난 3월10일 두 명의 개인 투자자로 정정한 바 있다.

이 전 대표가 주목하는 부분은 동부코어 대신 중국 회사가 유증에 참여한다고 변경한 부분이다. 신후의 현 대표가 애초부터 허위공시를 띄워 소액주주를 기만한 정황과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동부코어 유증 발표 시점부터 사기공시였다. 주가를 띄우기 위한 현 대표의 작전에 개미투자자들이 놀아난 것이다. 동부코어가 5개월 동안 대금을 납부하지 않았던 것이 그 증거다. 또 중국 기업이 대신 참여하기로 한 공시는 완전 사기다. 내가 직접 중국 측에 확인한 사실이다. 나만 확인한 것이 아니다. 소액 주주들이 직접 중국 측으로부터 답변까지 받았다.”

계약 위반은
국제범죄

그러면서 내놓은 것이 소액주주들이 회신을 받은 중국 측의 답변이다. 답변 중 주목할 대목은 ‘당사는 신후의 20억 출자에 대해 아무런 약속이나 계약의 서명을 한 적이 없고, 이에 대한 공고나 발표를 한 적이 없다’는 부분이다.

여기에 신후의 이준희 대표로부터 “중국의 투자금 납입은 사실이 아니고 회사를 위해 편리하게 공시한 것이다. 급해서 그랬다. 나중에 자금을 만들어 넣으면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직접 들었다는 인물까지 등장했다. 이씨 부부가 상장폐지 직전의 회사를 가지고 한국과 중국 투자자를 기만하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또한 현 대표인 이씨와 부인 김씨가 저지른 불법행위가 용인될 경우 다수의 선량한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큰 피해가 돌아갈 것임을 경고했다. 더 이상 실적개선이 아닌 공시조작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는 30일, 신후의 주총에서 누가 경영권을 확보할 지가 주목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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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