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판 흔드는 안철수 논개작전 노림수

총선 포기하고 대권 직행?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다 같이 죽자는 거냐?” 야권통합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당 곳곳에서 충돌음이 들려오고 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차라리 광야에서 죽겠다’며 후보 단일화마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김한길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다수의 현역 의원들은 야권연대를 통해 개헌저지선을 지켜야 한다며 안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안 대표는 왜 끝까지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야권통합을 제안한 이후 국민의당 곳곳에서 충돌음이 들려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 4일 비공개 최고위를 통해 최종적으로 통합거부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당내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특히 김한길 선대위원장은 통합거부 당론을 정한지 3일 만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야권통합론을 다시 꺼내 들며 안철수 공동대표와 충돌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교섭단체 이상 의석만 확보하면 여당이 개헌선을 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안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현재 국민의당 의원들은 야권연대 여부를 놓고 의견이 둘로 나뉘면서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야권연대에 대한 이견으로 최고위에 불참하며 당무를 거부하다 지난 11일 선대위원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갈등 최고조
분당 임박?

야권연대를 지지하는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창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통합 제안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후보 단일화는 얼마든지 검토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안 대표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정말 다 같이 죽자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만약 국민의당이 끝까지 야권연대를 거부한다면 수도권 122개 지역구 가운데 80여곳 이상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단 2~3%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되는 수도권 선거에서 양당이 충돌한다면 새누리당에 대거 어부지리 승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정동영 실패한 길 그대로 답습
무대책 고집? 진짜 속셈에 주목

이런 상황에서도 안 대표는 왜 끝까지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안 대표의 공식적인 입장은 원칙 없이 뭉치기만 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야권통합으로 의석을 몇 석 더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정권교체 희망은 없다”며 “만년 2등, 만년 야당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의당의 분명한 목표는 기득권 양당 체제를 깨는 것이라며 야권연대조차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대표가 더민주와의 단일화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현재 국민의당 수도권 출마자 중 안 대표와 김한길 위원장 등 몇몇 현역 의원을 제외하고는 무게감 있는 후보자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민주와 무작정 단일화를 하자고 한다면 결국 국민의당 후보들이 대부분 경선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 대표가 이대로 시간을 끌면서 더민주가 백기투항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선이 임박하면 다급해진 더민주가 수도권 몇 석을 양보하며 단일화를 읍소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대 총선 때도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에 몇몇 지역구를 양보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또 안 대표로서는 단일화의 명분이 필요한대 시간을 끌면서 더민주에 여러 가지 개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7일 야권통합 수용의 전제 조건으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정계은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당 어부지리?
제3당 성공?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 당의 목표가 양당 기득권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더민주가 최소한 기득권을 내려놓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협력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선거 승리를 위해 무작정 단일화를 하자는 것은 아무런 감동도 없고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권연대 실패의 책임이 오히려 더민주 쪽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진정으로 야권통합이나 연대를 원했다면 ‘안철수 빼고 다 오라’는 무례한 합당 제안은 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민의당에 합류한 박지원 의원도 ‘김종인 위원장의 제안은 진실성이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의 야권 통합 제안은 사실상 안철수 죽이기 작전의 일환이었다”며 “국민의당이 통합에 응해도 좋고 거부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통합론을 놓고 국민의당이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하락세이던 국민의당의 지지도는 더욱 바닥을 치고 있다”며 “이대로 국민의당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면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사실상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1 대 1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써 더민주는 총선에서 지더라도 그 책임을 야권연대에 반대한 안 대표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됐다. 김 위원장의 이런 제안은 야권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호남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안 대표는 양당 기득권 체제를 깨야 한다며 야권 연대 불가론에 힘을 실어줄 것을 당 안팎에 호소하고 있지만 반향은 그리 크지 않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정치권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의 제안처럼 국민의당 현역 의원들이 ‘안철수만 빼고 개별 복당 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더민주가 정식으로 통합 제안을 한 것이라면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김종인 위원장이 전혀 진정성 없이 툭 던진 통합 제안 한마디에 우리 당이 이렇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그야말로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더민주 일각에선 안 대표가 차기 대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논개 작전을 구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안 대표가 끝까지 야권연대를 거부하며 총선 패배를 유도하고, 그 책임을 떠넘겨 문 전 대표와 친노 세력을 야권에서 축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안 대표가 총선 목표를 새누리당의 ‘과반 저지’가 아닌 ‘개헌선 저지’로 설정한 것도 총선 승리보다는 대선 승리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안 대표의 멘토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벼랑 끝에 선 제1야당과 문재인’이란 제목의 언론 기고문에서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며 “그러면 신당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다. 야권 개편의 회오리바람이 불 것”이라고 썼다.

논개 작전?
상생 작전?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내년 총선에서 어설프게 의석수를 유지한다면 친노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격밖에는 되지 않는다”며 “그렇게 되면 야권의 체질 개선은 유야무야될 것이고 차기 대선에서도 필패할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지금 철저히 깨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물론 안 대표 측은 더민주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벌써부터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총선 패배의 책임을 안 대표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안 대표가 그저 무대책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라는 냉혹한 평가도 있었다.

안 대표는 최근 “평소 말이 없는 아내가 ‘호사가의 안줏거리, 언론의 조롱거리가 돼도, 여의도의 아웃사이더가 돼도, 소위 정치9단의 비웃음거리가 돼도 괜찮다고. 처음 시작할 때 그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며 야권 연대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재차 밝혔다. 때문에 뾰족한 수도 없이 명분에만 매달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새정치연합과의 합당, 기초선거 무공천 등에서 발을 뺐던 안 대표가 이번에도 물러난다면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안 대표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안 대표의 무대책 고집이 야권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집에 수도권 그냥 내줄 판
심지어 새누리 입당설도 돌아


이 인사는 “정동영 전 의원이 국민모임이라는 제 3당 후보로 재보선에 출마했을 때 끝까지 단일화에 응하지 않자 정치권은 지금처럼 뭔가 대단한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결국 야권 텃밭에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어부지리 승리를 안기는 허망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며 “이번에도 안 대표에게 뾰족한 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고, 결국 정 전 의원의 실수를 반복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야권 텃밭에서 조차 야권이 분열하자 새누리당에 어부지리 승리를 내줬다. 그런데 안 대표는 정 전 의원이 실패한 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려 하고 있다”며 “당 이름도 ‘국민모임’과 ‘국민의당’으로 매우 흡사하고 안 대표의 상황인식도 당시 정 전 의원과 소름끼치게 닮았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평소 “야권 연대를 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퇴행적인 새누리당에 개헌저지선이 무너지는 결과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총선까지 채 30일도 남지 않게 되자 야권일각에서는 심지어 안 대표가 야권을 사실상 궤멸시킨 후 조경태 의원처럼 새누리당에 입당하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안 대표의 정책적 지향점이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미 국민의당에는 새누리당 출신 인사들이 많이 합류해 있는 상태라 별다른 거부감도 없다는 것이다.

안이한 인식
대선이 최우선?

마지막으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대표는 당장 눈앞의 총선보다는 2017년 대선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야권연대 여부는 총선에 도움이 되느냐보다 차기 대선에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하지만 국민의당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로서는 차기 대선보다 총선이 중요하다. 그러니 양측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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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