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경성에 푹 빠진 도미 마사노리 객원교수

서울서 ‘모던경성’ 흔적 찾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김사량 단편 <천마>(1940) 속 주인공 현룡은 아침에 유곽에서 일어나 혼마치(本町) 방향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유곽은 현재 동국대∼그랜드앰배서더 호텔 사이에 있었고 혼마치는 명동 일대다. 혼마치에서 동료들을 만나 논쟁하다가 소설 말미엔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 앉아서 존다. 도미 마사노리(67) 한양대 건축과 객원교수는 소설을 보고 현장을 찾아 “김사량이 여기서 그랬구나”라며 ‘모던경성’의 거리 모습을 복원해왔다.     

“명동 예술극장(1936년 메이지좌로 설립)이 상징적 의미가 큰 공간이다. 맞은편에 카바레가 있었고, 뒤엔 주식거래소가 있었다. 여기에 전 세계 정보가 다 모였다. 주식해서 돈 벌면 카바레 가서 펑펑 쓰고 잘 안되면 ‘오늘은 한 잔 하자’ 하고 또 카바레로 갔다. 예술극장 주변엔 예술가가 다 모였다. 지금은 명동8길이 지가가 가장 높지만 당시엔 남대문로와 태평로가 가장 비쌌다.”

1983년 한국으로

도미 교수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적도와 전화번호부를 구해 등재된 상호와 주소를 지적도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경성거리를 복원해나갔다. 1년6개월이 걸려 종로(일민미술관∼동대문), 명동(신세계 본점∼동국대) 구간 전체 4.8㎞를 입체적으로 재현해 냈다.

혼마치 83곳, 메이지마치 74곳, 종로 102곳의 카페 상호와 주소를 알아냈다. 그의 작업을 통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김사량의 <천마>에 나오는 거리 풍경을 가늠해낼 수 있다. 건물은 다 바뀌었지만 당시의 대로와 필지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지난 2011년 ‘이방인의 순간 포착, 경성 1930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석 달간 전시하면서 첫 두 달엔 관람자가 뜸했다. 마지막 한 달엔 입소문이 나면서 도시연구자는 물론 사회사, 패션사, 젠더 연구자가 몰렸다. 그는 틈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같은 전시를 동경과 요코하마에서 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서 나고 자란 일본인과 가족이 전시장을 찾았다.


80∼90대 노인들이 “여기 빵가게에서 빵 먹었잖아”라며 미소 지었다. 현재는 없는 고향을 찾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명동에 일본 초등학교가 2개 있었는데 동문회에서 많이 왔다고. 두 나라의 전시 분위기는 그렇게 달랐다.

도미 교수가 한국에 온 것은 1983년, 35세 때다. 주남철 고려대 교수의 논문 <한국의 전통적 주거>를 읽고 한옥의 매력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낭을 둘러메고 양동마을, 하회마을, 부여,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는 “내가 연구하고 싶은 앞마당이 한국에 있더라. 깊은 문화에 생활이 보이는 환경이 맘에 들었다”며 “식사도 맛있고 문화수준도 아주 높았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한국문화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지금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다 아팠다”며 웃었다.

그는 또 “일본은 가볍고 인공적인 건축인데 비해 한국은 무겁고 자연친화적인 건축”이라며 “석굴암과 부석사를 좋아한다. 부석사는 돌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무거운 것이 떠 있는 것, 그것이 한국건축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도미 교수는 한옥 연구를 시작으로 대만, 만주, 한국, 일본의 근대가옥과 그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나라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일본식 주택에 해당국가 사람이 거주하면서 어떻게 리노베이션 해왔는지가 주제다.

그는 “각 나라의 국민성과 지역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건 문화 이야기다. 그 시대에 건축을 문화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좋아 혹은 싫어, 그런 얘기가 아니다. 모르고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런 시대가 앞으로 올 거 같아서 천천히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명동의 일본식 2층 목조주택, 문래동 방적공장 터, 인천 차이나타운, 군산·목포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한국서 제일 인상 깊었던 일본주택을 꼽아달라고 하자, 군산 이영춘 가옥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쓰비시(三菱) 줄사택 단지를 꼽았다. 군산의 대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는 2만명의 한국인 소작농을 거느렸다. 이들은 노역에 시달리며 자주 아팠다. 구마모토는 의사 이영춘을 고용해 이들을 돌보게 했다.


“지자체에서 근대가옥 복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영춘 가옥은 한지붕 밑에 리빙룸, 다다미, 온돌방까지 3개가 다 있어 굉장히 재밌다. 여름엔 다다미, 겨울엔 온돌을 쓴 거다. 지금은 전시장으로 만들어 보존 중인데 건물은 생활이 보이는 방식이 좋다. 전시장은 옆에 만들고 건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 좋을 것 같다. 부평동은 일제강점기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건축가가 720채에 달하는 대규모 사택을 설계한 거다. 지금은 대우공장이 있다.” 

전통한옥 매력에 빠져 현해탄 건너
조선총독부 지적도로 경성거리 복원

도미 교수는 보통 건축사학자들과 달리 교육과 건축설계도 병행한다. 그는 지난 8일, 한양대 내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학생들과 새 집 천정에 들어갈 한지 조명을 작업 중이었다. 도미 교수는 “학생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연구실에 와서 고생한다”며 취재진에게 옥수수수염차를 거듭 권했다.

2014년 인천 관동갤러리 작업 당시 학생들과 섞여 지붕 위에서 일했다. 망치질도 하고 톱질도 했다. 건축사들이 설계를 마치면 현장에 잘 가지 않는 것에 비해 도미 교수는 일주일에 2회씩 현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인부들이 “진짜 교수냐”고 물을 정도다.

현재 그는 용인 동천동 마을 건립 프로젝트의 막바지 작업 중이다. 건축사 6명과 공동설계자로 참여했다. 경사지를 그대로 살려 마을을 만드는 레퍼런스를 찾아 건축주와 함께 오사카, 도쿄에도 다녀왔다. 교사와 학부모가 공동설립한 협동조합이 건축주가 돼 주택 15채와 마을회관, 어린이집까지 마을 하나를 완성하는 큰 프로젝트다. 도미 교수는 이 중 주택 5채를 설계했다.

그는 “보통은 건축에 소통을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데 처음부터 커뮤니티가 있는 사람들이 땅을 공동으로 사서 하나하나 만든 것”이라며 “어떤 멋있는 마을을 만들어줄까 고민했다”고.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13년이 됐다. 그 때부터 제자들에게 ‘단독주택 설계시대’가 올 거라며 어떻게 좋은 설계를 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국도 일본도 내 집을 장만하는 데 돈을 쏟아 붓고 나면 여유자금이 없다. 그렇게 구입한 집들은 자녀들이 출가하고 생애주기가 바뀌면 빈 방이 생긴다. 자기 집을 마련하고 나면 결혼한 자녀들 집을 또 걱정한다. 도미 교수는 그런 부분에 건축가들이 주목하고 서포트해야 한다고 했다. 

앞마당 연구

“짓고 싶은 집은 역시 목조주택이다. 다른 재료보다 싸다. 돈이 없어도 잘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설계하고 싶다. 주택엔 일상생활 뿐 아니라 생산적 프로그램도 병행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뜰리에를 만들 수도 있고 비즈니스 매매를 해도 좋고 레스토랑 공간을 만들어 줘도 된다. 결혼한 딸과 함께 사는 2∼3세대 주택도 짓고 싶다. 단독주택은 별채, 반지하, 다락방 같은 재밌는 공간이 많이 나온다. 그런 걸 연구하면 주택난이 해결될 거다.”


<shin@ilyosisa.co.kr>

 

[도미 교수는?]

▲1948년 도쿄 생
▲가나가와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72)
▲가나가와대학교 재직(1973~2008)
▲서울대학교 재외 연구원(1987~1988)
▲동경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1996)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1997~현재)
▲한양대학교 건축대학 전임교수(2008~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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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