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경성에 푹 빠진 도미 마사노리 객원교수

서울서 ‘모던경성’ 흔적 찾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김사량 단편 <천마>(1940) 속 주인공 현룡은 아침에 유곽에서 일어나 혼마치(本町) 방향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유곽은 현재 동국대∼그랜드앰배서더 호텔 사이에 있었고 혼마치는 명동 일대다. 혼마치에서 동료들을 만나 논쟁하다가 소설 말미엔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 앉아서 존다. 도미 마사노리(67) 한양대 건축과 객원교수는 소설을 보고 현장을 찾아 “김사량이 여기서 그랬구나”라며 ‘모던경성’의 거리 모습을 복원해왔다.     

“명동 예술극장(1936년 메이지좌로 설립)이 상징적 의미가 큰 공간이다. 맞은편에 카바레가 있었고, 뒤엔 주식거래소가 있었다. 여기에 전 세계 정보가 다 모였다. 주식해서 돈 벌면 카바레 가서 펑펑 쓰고 잘 안되면 ‘오늘은 한 잔 하자’ 하고 또 카바레로 갔다. 예술극장 주변엔 예술가가 다 모였다. 지금은 명동8길이 지가가 가장 높지만 당시엔 남대문로와 태평로가 가장 비쌌다.”

1983년 한국으로

도미 교수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적도와 전화번호부를 구해 등재된 상호와 주소를 지적도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경성거리를 복원해나갔다. 1년6개월이 걸려 종로(일민미술관∼동대문), 명동(신세계 본점∼동국대) 구간 전체 4.8㎞를 입체적으로 재현해 냈다.

혼마치 83곳, 메이지마치 74곳, 종로 102곳의 카페 상호와 주소를 알아냈다. 그의 작업을 통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김사량의 <천마>에 나오는 거리 풍경을 가늠해낼 수 있다. 건물은 다 바뀌었지만 당시의 대로와 필지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지난 2011년 ‘이방인의 순간 포착, 경성 1930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석 달간 전시하면서 첫 두 달엔 관람자가 뜸했다. 마지막 한 달엔 입소문이 나면서 도시연구자는 물론 사회사, 패션사, 젠더 연구자가 몰렸다. 그는 틈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같은 전시를 동경과 요코하마에서 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서 나고 자란 일본인과 가족이 전시장을 찾았다.


80∼90대 노인들이 “여기 빵가게에서 빵 먹었잖아”라며 미소 지었다. 현재는 없는 고향을 찾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명동에 일본 초등학교가 2개 있었는데 동문회에서 많이 왔다고. 두 나라의 전시 분위기는 그렇게 달랐다.

도미 교수가 한국에 온 것은 1983년, 35세 때다. 주남철 고려대 교수의 논문 <한국의 전통적 주거>를 읽고 한옥의 매력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낭을 둘러메고 양동마을, 하회마을, 부여,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는 “내가 연구하고 싶은 앞마당이 한국에 있더라. 깊은 문화에 생활이 보이는 환경이 맘에 들었다”며 “식사도 맛있고 문화수준도 아주 높았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한국문화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지금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다 아팠다”며 웃었다.

그는 또 “일본은 가볍고 인공적인 건축인데 비해 한국은 무겁고 자연친화적인 건축”이라며 “석굴암과 부석사를 좋아한다. 부석사는 돌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무거운 것이 떠 있는 것, 그것이 한국건축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도미 교수는 한옥 연구를 시작으로 대만, 만주, 한국, 일본의 근대가옥과 그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나라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일본식 주택에 해당국가 사람이 거주하면서 어떻게 리노베이션 해왔는지가 주제다.

그는 “각 나라의 국민성과 지역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건 문화 이야기다. 그 시대에 건축을 문화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좋아 혹은 싫어, 그런 얘기가 아니다. 모르고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런 시대가 앞으로 올 거 같아서 천천히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명동의 일본식 2층 목조주택, 문래동 방적공장 터, 인천 차이나타운, 군산·목포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한국서 제일 인상 깊었던 일본주택을 꼽아달라고 하자, 군산 이영춘 가옥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쓰비시(三菱) 줄사택 단지를 꼽았다. 군산의 대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는 2만명의 한국인 소작농을 거느렸다. 이들은 노역에 시달리며 자주 아팠다. 구마모토는 의사 이영춘을 고용해 이들을 돌보게 했다.


“지자체에서 근대가옥 복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영춘 가옥은 한지붕 밑에 리빙룸, 다다미, 온돌방까지 3개가 다 있어 굉장히 재밌다. 여름엔 다다미, 겨울엔 온돌을 쓴 거다. 지금은 전시장으로 만들어 보존 중인데 건물은 생활이 보이는 방식이 좋다. 전시장은 옆에 만들고 건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 좋을 것 같다. 부평동은 일제강점기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건축가가 720채에 달하는 대규모 사택을 설계한 거다. 지금은 대우공장이 있다.” 

전통한옥 매력에 빠져 현해탄 건너
조선총독부 지적도로 경성거리 복원

도미 교수는 보통 건축사학자들과 달리 교육과 건축설계도 병행한다. 그는 지난 8일, 한양대 내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학생들과 새 집 천정에 들어갈 한지 조명을 작업 중이었다. 도미 교수는 “학생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연구실에 와서 고생한다”며 취재진에게 옥수수수염차를 거듭 권했다.

2014년 인천 관동갤러리 작업 당시 학생들과 섞여 지붕 위에서 일했다. 망치질도 하고 톱질도 했다. 건축사들이 설계를 마치면 현장에 잘 가지 않는 것에 비해 도미 교수는 일주일에 2회씩 현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인부들이 “진짜 교수냐”고 물을 정도다.

현재 그는 용인 동천동 마을 건립 프로젝트의 막바지 작업 중이다. 건축사 6명과 공동설계자로 참여했다. 경사지를 그대로 살려 마을을 만드는 레퍼런스를 찾아 건축주와 함께 오사카, 도쿄에도 다녀왔다. 교사와 학부모가 공동설립한 협동조합이 건축주가 돼 주택 15채와 마을회관, 어린이집까지 마을 하나를 완성하는 큰 프로젝트다. 도미 교수는 이 중 주택 5채를 설계했다.

그는 “보통은 건축에 소통을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데 처음부터 커뮤니티가 있는 사람들이 땅을 공동으로 사서 하나하나 만든 것”이라며 “어떤 멋있는 마을을 만들어줄까 고민했다”고.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13년이 됐다. 그 때부터 제자들에게 ‘단독주택 설계시대’가 올 거라며 어떻게 좋은 설계를 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국도 일본도 내 집을 장만하는 데 돈을 쏟아 붓고 나면 여유자금이 없다. 그렇게 구입한 집들은 자녀들이 출가하고 생애주기가 바뀌면 빈 방이 생긴다. 자기 집을 마련하고 나면 결혼한 자녀들 집을 또 걱정한다. 도미 교수는 그런 부분에 건축가들이 주목하고 서포트해야 한다고 했다. 

앞마당 연구

“짓고 싶은 집은 역시 목조주택이다. 다른 재료보다 싸다. 돈이 없어도 잘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설계하고 싶다. 주택엔 일상생활 뿐 아니라 생산적 프로그램도 병행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뜰리에를 만들 수도 있고 비즈니스 매매를 해도 좋고 레스토랑 공간을 만들어 줘도 된다. 결혼한 딸과 함께 사는 2∼3세대 주택도 짓고 싶다. 단독주택은 별채, 반지하, 다락방 같은 재밌는 공간이 많이 나온다. 그런 걸 연구하면 주택난이 해결될 거다.”


<shin@ilyosisa.co.kr>

 

[도미 교수는?]

▲1948년 도쿄 생
▲가나가와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72)
▲가나가와대학교 재직(1973~2008)
▲서울대학교 재외 연구원(1987~1988)
▲동경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1996)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1997~현재)
▲한양대학교 건축대학 전임교수(2008~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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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