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시즌 눈치보는 대기업 속사정

살 떨리는 주총장 ‘예전 같지 않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지난달 17일 넥센타이어를 시작으로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가 막을 올렸다. 배당금 증액 등 주주친화 정책이 현안으로 부각된 만큼 주가부양을 위한 액면분할이나 자사주 매입 등이 안건으로 상정될 전망이다. 기존 경영진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어떻게 결정될지 지켜보는 일도 나름의 관전 포인트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3월에 주주총회 일정을 공시한 상장사는 모두 826곳. 이 가운데 77.96%에 해당하는 644곳이 11일, 18일, 25일에 주총을 실시한다. 모두 금요일이다. 특히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367곳은 오는 25일 주총을 열겠다고 신고했다. ‘주총데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매주 금요일
슈퍼주총 예고

날짜별로 살펴보면 11일에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총이 몰려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과 포스코의 주총도 이날 열린다. 18일에는 SK그룹 계열사와 LG그룹 계열사들이 일제히 주총을 실시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도 이날 주총을 실시한다.

25일에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주총을 갖는다. 이밖에 KB금융, 대림산업, 대한전선, 엔씨소프트, 팬오션, 현대홈쇼핑, NHN엔터테인먼트, LS, 코오롱, 웅진에너지, E1, 남양유업 등의 주총이 예정돼 있다.
주총의 최대 화두는 배당 확대로 귀결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주주들의 요구대로 배당을 늘리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주당 1000원이던 배당액을 2500원으로 크게 늘렸다. 2014년 350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조6111억원으로 359%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라홀딩스는 배당액을 500원에서 1200원으로 늘렸고 S&T중공업도 배당금을 전년도 100원에서 200원으로 2배 증액했다고 공시했다. 이외에 SK하이닉스, 삼성정밀화학, 동아타이어, LG유플러스, 등도 배당액을 60% 이상 늘렸다.


분기배당을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 1회 중간배당이 가능하도록 규정된 정관을 변경해 매 분기배당이 가능하도록 한 안건을 11일 주총에 상정한다. 포스코와 한온시스템도 분기배당을 도입한다고 공시했다.

더욱이 ‘증권가 큰손’ 국민연금은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중점 관리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금운용본부가 저배당 기업을 몰아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배당확대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기준을 이미 마련하고 전담팀까지 꾸렸다. 저배당 기업을 선정해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표적대상 기업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배당 관련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거나 배당 성향이 낮은 기업 중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해당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예고될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율 5% 이상 가진 기업은 대략 250곳에 이른다. 기금운용본부는 주총시즌이 끝나는 3월 말 이후 배당성향을 분석해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기업들을 가려낼 계획이다. 우선 구체적으로 배당정책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시장 상황과 산업의 특성, 개별기업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대상기업을 선정할 방침이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배당정책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 막 올라…관전 포인트는?
배당 확대로 주주 달래기 “국민연금 신경쓰이네”

국민연금의 배당확대 요구 움직임에 대해 기업들은 긴장과 함께 내심 경영권 간섭으로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국민연금 주권행사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유통주식 수를 늘리기 위한 액면분할도 주총을 관통하는 핵심 안건으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액면분할을 통해 주가를 상승시켰던 전례를 참고삼아 주주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액면분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양상이다.

통상 액면분할은 거래량 증가를 수반하며 이를 통한 주가 상승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액면분할을 결정 공시한 기업은 모두 26곳으로,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종목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나타냈다. 시총 1000억원 이상 기업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6개 기업 가운데 3개는 주가가 상승했고, 나머지 절반인 3개는 주가가 하락했다.

흥미로운 점은 액면분할 이후 대부분의 종목에서 일일 평균 거래대금이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거래대금 상승은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가세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올해는 주당 액면분할이 한층 적극적으로 상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 테이프는 크라운제과가 끊었다. 크라운제과는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주당 5000원인 주식을 500원으로 분할하는 액면분할을 발표하고 오는 25일 예정인 정기 주총에 안건으로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라운제과 이외에도 KNN, 넥센, 성보화학, 엠에스씨, 케이티롤, 동양물산, 극동유화 등이 액면분할을 예고한 상황이다.

하지만 액면분할이 모든 기업들에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오뚜기, 오리온 등 이른바 식품업종 황제주들은 거듭된 액면분할 요구를 무작정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이들은 액면분할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배당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 눈치껏
배당 늘리나

실제로 오리온은 보통주 1주당 60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한 상황이다. 최대 주주인 이화경 부회장(86만5204주)은 약 50억원, 이 부회장의 남편인 2대 주주 담철곤 회장(77만626주)은 45억원을 챙기게 된다.
오뚜기는 보통주 1주당 5200원을 현금으로 배당한다. 주식 57만543주(16.5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은 약 30억원, 함 명예회장의 장남인 함영준 회장은 약 28억원을 각각 배당금으로 받는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은 아직 배당금을 확정하지 않았다. 롯데 계열사의 배당성향(이익대비 배당총액)은 낮은 편이지만 개인투자자 비중이 낮아 배당금 수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예년 수준의 배당을 결정하더라도 사실상 ‘그들만의 배당 잔치’는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기업별 이해관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에 배당수혜가 집중되는 황제주를 액면분할해 투자 진입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거래소 역시 우량 대형주를 대상으로 액면분할 여부을 저울질하고 있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시장본부 부이사장은 “지난해 황제주였던 아모레퍼시픽의 액면분할 사례를 통해 주가 상승과 거래량 증가 등의 효과가 확인됐다”며 “많은 기업이 액면분할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제주 피해
액면분할 효과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도 관심이다. 주요 그룹들의 사업 재편과 대규모 투자가 예정된 가운데 등기이사 선임은 오너들의 책임경영 확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가시화된 모습이다. 최 회장은 SK·SK C&C·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 등 4개 회사 등기이사를 맡아왔으나 지난 2014년 횡령 혐의로 수감되면서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사면 이후 그룹 대규모 투자를 주도하는 등 그룹 전반의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

LG그룹에서는 신성장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의 LG화학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한다. LG화학은 18일 주총에서 구본준 부회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안을 상정해 의결할 예정이다. 구 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LG전자 CEO를 역임하다 올해부터 지주사로 자리를 옮겨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1일 예정된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지난달 임기가 종료된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4년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는 물러난 바 있다.
 

정의선 부회장 역시 같은 날 열리는 현대차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맡고 있다.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등재는 오너가 그에 대해 법적인 영역의 책임까지 진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그룹 오너들이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말뿐이 아닌 책임경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액면분할 확대…황제주 ‘글쎄’
이사회 재선임 ‘갈등의 화약고’


재계 관계자는 “오너들의 등기이사 선임은 단순히 감투 하나를 쓰는 의미가 아니라 경영에 대한 책임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오너의 책임경영 확대는 성장 정체 속에 그룹의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등기이사 재선임 이전에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본적인 장치를 함께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불법행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일정 기간 등기임원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존 이사회 구성원의 재선임을 원하는 회사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주주들 간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면서 주가는 3년 전에 비해 70% 떨어졌지만 박대영 대표이사 재선임이 주총 안건에 올라와 있다. 수주산업 특성상 프로젝트가 장기간에 걸쳐 마무리되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효성 주주총회에서 조석래 회장의 재선임 여부도 관심사다. 조 회장에게  지난달 15일 법원은 총 1358억원의 탈세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갈등의 내막
이사 재선임

GS건설, 베이직하우스, 세아제강 등도 실적이 바닥을 치면서 3년 전에 비해 주가는 반 토막이 난 상태지만 사내외이사와 감사의 재선임을 안건에 올렸다. 

IB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적자가 났는데도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책임경영을 담보할 수 없다”며 “주총은 경영진 재선임에 대해 주주들 의견을 묻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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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