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국회의원 후원금 360억 완전해부

감시 사각지대, 사실상 로비창구?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모은 후원금 내역이 공개됐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2015년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후원금 모금 총액은 362억2980만원이었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고액 기부다. 직업란에 자영업이나 회사원으로 적거나 아예 직업을 적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들이 어떤 의도로 고액 기부를 했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수상한 국회의원 후원금을 <일요시사>가 전수조사 해봤다.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모은 후원금 내역이 공개됐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2015년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후원금 모금 총액은 362억2980만원이었다. 국회의원 총원 300명 중 의원직을 상실했거나 후원회를 해산한 의원 9명은 모금액 산정 명단에서 제외됐다. 1인당 평균 모금액은 1억2450만원이었다.

이는 19대 국회가 출범한 지난 2012년 이후 가장 적은 액수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어 각 의원실이 지난해 후원금 모금에 전력을 다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혐오와 무관심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후원금 총액은 전년(2014년)의 504억1170만원과 비교하면 28.2% 줄었고, 평균 모금액은 전년(1억 6860만원)보다 26.2% 줄었다.

후원금 크게 줄어
커지는 정치혐오

정당별로는 정의당의 1인당 평균 모금액이 1억588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1억2680만원, 새누리당 1억2290만원, 무소속 1억980만원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이 후원금을 모금한 국회의원은 정의당 정진후 원내대표로 1억7340만원을 모금했고, 1260만원으로 가장 적게 후원금을 모금한 사람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인 이한구 의원이었다.

정치권은 깨끗한 정치후원금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왔지만 국민들은 좀처럼 정치후원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19대 국회 들어 국회의원 후원금을 통한 입법로비 의혹이 잇따라 터져 나왔고, 이완구 의원은 국무총리 청문회 과정에서 지난 2013년 새누리당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고액의 정치후원금을 받은 것이 논란이 됐다.


이 의원은 그들이 자신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이 의원에게 고액 후원금을 냈던 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천과 관련해 (잘 보이려는) 그런 점도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조폭 두목이 주고 의원끼리 상부상조
사연 없는 후원금 얼마나 될까?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 2013년 고액 후원자 6명 중 무려 5명이 선거 출마 예정자였던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 발전을 위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여건상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국회의원 후원금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신원이 불분명한 이들의 고액 기부다. 우리나라는 연간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자의 이름과 직업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직업 등을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아 이름만으로는 이들이 어떤 의도로 해당 의원에게 고액 기부를 한 것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에도 연간 300만원 이상의 고액을 후원하면서 직업을 불분명하게 적거나 주소·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않아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500만원 쾌척?
500만원 상납?


어찌됐든 고액 기부자 명단을 살펴보면 자신의 지역구 소속 지방의원이나 선거 출마예정자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구태는 지난해에도 포착됐다. 국회의원은 지역 지방의원 공천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의당 임내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광주 북구 장영희 비례대표 구의원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 주석수 구의원에게 두 차례에 걸쳐 총 5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주 의원은 직업란에 구의원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기타'라고 적었다.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김영주 전 의원으로부터 5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두 사람은 과거 선진통일당에서 함께 활동했다. 지난 총선에서 이 의원은 선진통일당 대표를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했고 김 전 의원은 선진통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당직자가 공천 대가로 요구한 50억원을 약속한 혐의로 실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무직자나 주부가 고액의 기부를 하는 수상한 정황도 다수 포착됐다. 지난해 고액 기부자 명단에서 무직자는 9명이었고 직업란에 주부라고 적은 사람은 31명이나 됐다. 이들은 대부분 500만원씩 최대 한도액을 후원금으로 냈다. 보통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은 사람들이 부인을 통해 기부하는 경우가 많아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가장 많은 후원금을 모은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300만원 이상 고액 기부자가 단 2명뿐이었다. 그런데 정 의원의 고액기부자 중 한 사람은 지난해 12월4일 20만원을 기부한 후, 4일 후인 25일 300만원을 기부하고 또 4일 후 29일에 10만원을 기부하는 등 다소 특이한 패턴으로 기부를 해 눈길을 끌었다.

더민주 김광진 의원도 300만원 이상 고액 기부자가 2명밖에 없었지만 전체 국회의원 중 후원금 모금액 13위를 차지했다.

고액 기부자 2명 중 1명은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회장이다. 김 의원의 장인은 광주 남구 P호텔 사장이고, 여 회장은 장인의 친동생이다. 여 회장은 직업란에 기타라고 적고 김 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다. 여 회장은 지난 1991년 호남 최대 폭력조직 국제PJ파의 자금책 및 고문급 간부로 지목돼 4년을 옥살이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이용호 게이트’에도 연루돼 3년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중 다른 죄가 추가돼 총 8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여 회장이 연루된 사건은 인기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당시 여 회장을 검거한 검사가 홍준표 경남도지사다. 하지만 여 회장은 홍 지사가 공명심에서 누명을 씌웠고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 회장은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에게도 400만원을 후원했다.

국회의원이 다른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내는 일명 ‘품앗이 후원금’도 여전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친노인사가 비노인사에게 후원금을 내거나 친박인사가 비박인사에게 후원금을 내는 등 계파와 정당을 뛰어넘는 후원금들이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친노인사로 분류되는 한명숙 전 의원은 더민주를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한 박주선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박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려 하는 등 친노진영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온 인사다. 결국 당내에서 친노진영과 극심한 갈등을 겪다 지난해 9월 탈당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계 핵심으로 불리는 윤상현 의원이 김무성 대표의 최측근인 비박계 김영우 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다. 윤 의원이 김 의원에게 후원금을 기부했던 날은 하필 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지역구 간 자매결연을 맺는 등 평소부터 친분이 있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20대 총선에 출마하는 이계안 전 의원은 더민주 문 전 대표의 최측근인 이목희 정책위의장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다. 이 전 의원은 동양피엔에프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데 동양피엔에프는 이목희 의원의 지역구인 금천구에 소재하고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에게 총 500만원을 후원했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이 같은 당 유의동 의원에게 500만원, 더민주 이상직 의원은 같은 당 우윤근 의원에게 500만원을 각각 후원했다.

기초의원 삥뜯기?
대가성 짙어

일부 의원들은 자신이 속한 상임위와 연관된 기업이나 이익단체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일례로 국토교통위에 소속되어 있는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은 (주)세광종합기술단 이재완 대표이사에게 500만원을,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건설업체 대표에게 500만원을 후원받았다. 더민주 박수현 의원도 우석건설 박해상 회장에게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매달 40만원씩 480만원을 후원받았다.

유명 기업인들의 고액 후원은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은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과 이종진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최 회장은 윤재옥 의원에게 후원할 때는 직업란에 회장이라고 적시했으나, 이종진 의원을 후원할 때는 직업란에 자영업이라고 적었다. 손석효 전 아가방 회장도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에게 총 500만원을 후원했다.

수상한 고액기부자 지난 해도 득실
상임위 관련 기업이 밀어주기도


이준호 포스코플랜텍 부사장은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는데 증권가에선 포스코플랜텍이 유승민 테마주로 불리고 있다. 박도문 대원그룹 회장은 정갑윤 국회부의장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다.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금 모금액만 따져보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9950만원을 모아 1위를 차지했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은 9000만원으로 2위, 같은당 윤상현 의원과 이인제 의원은 각각 8500만원과 8480만원을 모금해 3, 4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모두 전체 후원금의 절반 이상을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금으로 채웠다. 윤상현 의원은 고액 후원자 17명이 모두 최대한도액인 500만원을 한번에 냈다. 지난해 최연소 고액 기부자는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1991년생 골프선수 조윤지씨다.

가장 통큰 고액 후원자는 박문수씨로 그는 직업란에 기타, 자영업 등이라고 적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9월2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각각 500만원씩 1500만원을 한꺼번에 후원한 통 큰 후원자다.

이처럼 300만원 이상 고액 정치후원금 기부자는 그나마 명단이 공개되고 있지만 300만원 미만 기부자는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사실상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를 악용해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이 로비 방법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어 문제다. 또 연말이 되면 어차피 10만원 이하의 정치후원금은 환급이 된다는 이유로 회사 직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강요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300만원 미만의 정치후원금 기부자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시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본질적으로 정치후원금은 대가성이 포함돼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이 통과됐는데 정치후원금 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중앙선관위가 후원금을 일괄적으로 모금해서 의정활동 실적에 따라 후원금을 배분한다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후원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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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