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살생부’ 계파별 손익계산서

여의도 칼바람에 떠는 비박 뜨는 친박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결국 올 것이 왔다.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얘기가 새누리당을 강타했다. ‘찌라시(증권가 정보지)’도 대서특필되는 민감한 시기에 유력 정치인의 입을 통해 나왔으니, 당이 발칵 뒤집힌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사태는 당 대표의 백기투항으로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지도부가 의원들 입단속에 들어갔음에도 계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당내 분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 ‘공천극장’의 막이 올랐다. 제1막 ‘살생부’는 김무성 대표의 사과로 끝났다.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이하 최고위)의 의결사항을 전달받은 그는 “당 대표로서 국민과 당원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전하고, 클린공천지원단에서 진행하는 진상조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최고위는 사태의 진원지 중 하나인 정두언 의원을 불러 조사를 실시, 재발을 막기 위한 사항들을 의결했다.

흥미진진…
새누리 공천극장

의결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의 공정성이 저해되는 언행 금지 ▲이를 어길 시 클린공천지원단이 즉각 조사해 엄중 처리한다가 그것이다. 엄중 처리는 공천 배제까지 염두에 둔 말일 가능성이 높다.

사태는 숨 가쁘게 진행됐다. 지난달 26일 언론에 처음 공개됐고 27일 공천면접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의원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알려졌다. 이날 정 의원은 자신을 포함해 40여명의 이름이 적힌 물갈이 명단이 친박계 핵심인사에 의해 김 대표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즉 휴대폰으로 나도는 찌라시가 아니라 명단이 있고 이것을 친박계 인사가 비박계 수장이자 당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그동안 우리 당에서 진박 마케팅이니 정말 웃기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일도 그 일환이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40인 살생부’라는 뇌관이 터졌다.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4일 정 의원은 김 대표와 평소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K교수로부터 40인 살생부 얘기를 듣게 된다. 앞서 그 교수는 김 대표에게서 존재 여부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평소 K교수는 김 대표에게 조언을 해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김 대표 측은 K교수에 대해 이미 김 대표와 멀어진 사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정 의원은 같은 내용을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으로부터 재차 듣게 된다.

이틀이 지난 26일 정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공천배제 인사 40명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천장에 도장을 안 찍고 버티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정 의원에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의원의 표현에 따르면 당시 김 대표는 그야말로 ‘비분강개’했다. 정 의원은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답했다.

1막 살생부
김무성 사과

정 의원은 한 번 더 확인을 받았다. “대표실로부터 살생부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을 한 언론사 기자를 통해 듣게 된 것. 40인 살생부는 그날 저녁 모 일간지를 통해 기사화됐다. 이후 김 대표 측에선 기사 내용 중 ‘대표에게 들었다’를 ‘대표 측에게 들었다’로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고 정 의원이 직접 해당 기자에게 수정 내용을 전달했다.
 

27일 면접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의원에게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사실 여부를 물었고 정 의원은 이 위원장을 따로 만나 “대표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튿날인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의 공식 기구에서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요청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찌라시 작가’ ‘찌라시 전달자’라는 말을 했다. 시중에는 4, 5개 유형의 소위 살생부라는 찌라시가 돌고 있던 상황이었다).

단발마의 총성은 대대적인 포격의 신호탄이었다. 29일 최고위에 참석한 김 대표는 “내 입으로 그 누구에게도 공천 관련 문건이나 살생부 얘기를 한 바 없다”며 정 의원의 말을 전면 반박했다. 이 자리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은 정 의원의 출석을 요구했다.

엇갈리는 말, 진실한 사람은 누구?
“리스트 없다” 무대 백기 들었지만…


사태는 의원총회(이하 의총)로 넘어갔다. 의총이 비공개로 전환되자 모든 것을 밝히라는 성토가 의원들 사이에서 거셌다는 전언이다. 첫 주자로 단상에 선 김 대표는 “살생부는 없다”고 말했고 이어서 의원들 앞에 선 정 의원은 “(대표가) 앞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더 뭘 말하겠나”라며 “최고위에서 모든 걸 말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의총 중간에 김을동 최고위원은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A∼Z까지 다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대표는 의총장에 남고 정 의원은 긴급 최고위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살생부의 진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 의원은 “‘당 대표가 찌라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김 대표가 나한테 ‘청와대 관계자가 자기한테 살생부 명단을 언급했다’고 말했다”며 청와대를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같은 날 “청와대에 물어볼 일이 아니다”라며 “얘기를 꺼낸 당사자들이 설명할 일”이라고 논평을 자제했다.

의총이 끝나고 정 의원은 기자들에게 “이제는 빨리 수습해 전열을 정비해야 할 때”라며 “다행히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천 과정에 외부의 부당한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최고위 의결사항을 전달받은 김 대표는 앞서 내용처럼 사과했다.
 

4일간의 진실게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계파 손익을 따진다면, 향후 4년의 주도권이 결정될 만한 사건이었다. 한 비박계 인사는 29일 “무게추가 친박계로 많이 기울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 유출자로 낙인 찍혔던 친박계는 파상 공세를 펼쳤다. 대표직까지 거론하며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그(살생부 사태) 중심에 당 대표 있다는 거 자체가 심각한 일이다”라며 “그럼에도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한 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한구·이인제 의원은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특히 이인제 최고위원은 “공관위가 공천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도 거기 나가서 면접을 봤다”며 “공관위는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다. 공관위원들은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을 대신해 우리 당의 당헌·당규 정신을 받들어서 공명정대하게 민주적인 경선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손을 들어줬다.

2막 입단속
불똥 주의보

실세 최경환 의원은 자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문화일보>와의 대화에서 “지금 파악된 상황으로만 본다면 김 대표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당시 시점은 의총이 열리기 전이었다. 김태흠 의원은 “만약 정 의원의 주장처럼 당 대표가 친박 핵심 인사로부터 물갈이 명단을 받았다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이건 김 대표가 거짓말까지 한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며 “지금부터 공천이든 뭐든 당 대표로서의 권한을 내려놔야 한다는 뜻”이라고 몰아세웠다.

반면 비박계는 이번 사태로 가장 득을 본 게 누군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애초에 살생부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 비박계 인사는 지난달 29일 “살생부는 없을 것”이라며 “당장 어떤 사람이 써서 돌려도 살생부라는 이름이 붙는 상황에서 관리하는 살생부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즉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정가에서 흘러나오던 소문들의 종합이 이번 살생부 사태 전말이라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이 진상 규명을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도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 게 비박계의 시선이다. 또 다른 비박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공천이 투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고 내다본다. 즉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살생부를 조사해봤자 결국 실체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 위원장의 공천이 깨끗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가는 비박 “힘 받는 사람이 범인”
논란 이후…공관위 현역 컷오프 시사


해당 사태로 가장 힘이 실리게 된 쪽은 누가 뭐래도 공관위다.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논란이 결과적으로 공관위 입지 확대로 연결될 것으로 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 (김 대표가) 공관위의 공정성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최고위에서 발표했지 않았느냐”며 “(앞으로) 이 위원장이 상당한 권한을 발휘해서 공천에 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당성을 확보한 이 위원장은 사태가 진정된 지 하루 만에 현역 컷오프를 시사했다. 지난 2일 공관위는 구체적 기준안을 제시했다. 현역의 지지율이 당 지지도보다 낮다든지 몇 가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집중심사에 나설 방침이라고 알렸다. 공관위 전체회의가 끝난 후 이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그런 경우(현역이 당 지지도가 낮을 경우)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 볼 것”이라며 “무조건 자르는 것(컷오프)이 아니라 일단 집중적으로 심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근 공관위는 내부적으로 단수·우선추천을 적용할 지역과 부적격 현역 등 공천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잡아놓은 상황이라고 한다. 일례로 공관위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클린공천지원단이 투서 등을 종합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컷오프의 기준이 될 것이란 예상이 있다.

새누리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멸’이다. 사태를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공감대가 계파를 넘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익명의 당 관계자 표현을 빌리자면 선거전 계파 갈등은 자칫 국민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2막 ‘입단속’은 확전 자제를 원하는 두 계파의 이해관계가 맞아 시작됐고 현재 진행 중이다. 대표의 사과로 이번 사태는 사실상 종결됐다는 게 최고위의 시선이다.

3막 컷오프
경선 레이스

그러나 갈등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미봉(彌縫)에 그쳐 더 큰 갈등으로 번질 여지가 충분하다. 복수의 당 관계자는 이한구 위원장을 두고 ‘확실’한 친박이라고 말하고 있고,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르면 오는 10일, 새누리당 경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제3막 ‘컷오프’가 막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필리버스터 후일담
새누리당 프레임에 화들짝해 중단?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포함한 야당이 테러방지법 표결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지난 2일 중단했다. 당초 2월 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10일까지 계속 진행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급선회를 결정했다.

필리버스터는 9일간 지속됐다. 지난달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한 후 이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이 릴레이 반대토론을 시작한 것. 더민주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38번째인 이종걸 원내대표까지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그 중 몇몇 의원들은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3번째 주자로 나선 더민주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헌정사상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우고 내려왔다. 동료 의원들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후 최장 기록은 17번째로 나선 정청래 의원에 의해 깨졌다가, 38번째로 나선 이 원내대표가 12시간 31분을 기록하면서 경신됐다.

8 번째로 나선 신경민 의원은 새누리당 19대 총선 공약 중 필리버스터가 있었다며 “(새누리당) 홈페이지에서 공약집을 확인해보라”고 말해 한때 접속자가 폭주,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컷오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강기정 의원은 필리버스터 도중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눈길을 모았다.

국회법상 본회의장에서 주제와 관련 없는 발언이 금지돼 있지만, 당시 사회를 보던 정갑윤 국회 부의장은 제지하지 않았다. 노래를 다 부른 강 의원이 단상을 내려가자 정 부의장은 “(필리버스터에) 나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고 배웅했다. 강 의원은 단상에 오르기 전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으로부터 당이 자신의 지역구인 광주 북갑에 전략공천을 할 것이란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10일까지 진행하려다 급선회
38명 의원 단상 올라 열변

필 리버스터 중단이 알려진 지난 1일 34번째로 단상에 오른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은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소식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계시다는 것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박 비대위원의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이 ‘선거용’이라며 비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박 비대위원은 “여러분이 분노하신 만큼 4월13일 총선에서 야당에게 표를 주시라”며 “야당이 이겨야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주셔야 한다. 더민주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주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2일에 있었던 의원총회에서 “어제 더민주의 박모 의원께서 필리버스터 도중에 눈물을 쏟으면서 총선에서 표를 모아달라고 하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며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총선을 위한 선거버스터였음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고 날을 세웠다.

한 야당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을 전후로 더민주 내에서는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꽤 나왔다고 한다. 같은 날 저녁 김종인 대표의 입에서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 선거판을 책임질 것이냐”고 한 발언도 이의 연장선이란 게 정가의 관측이다. 2월을 넘길 경우 여론이 악화돼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의원들 사이에 빠르게 번졌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그 이면에 새누리당의 프레임이 있었다고 본다. 익명의 정가 관계자는 “최근 새누리당에서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이유가 필리버스터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있었다”라며 “더민주 내에는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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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