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검찰공약 중간점검

개혁 약속해놓고 ‘길들이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었다. 검찰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검사 파견관행 개선’ ‘중앙수사부 폐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 정부 출범 3년을 앞두고 있지만 이 공약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 개혁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가장 기대했던 정책분야였다. 무소불위의 ‘정치 검찰’ ‘비리 검사’라는 오명과 함께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호언장담했지만 현재까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믿었는데…
말짱 도루묵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박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아 대선에서 공약한 20대 분야 674개 세부 공약에 대한 이행 수준을 평가했다. 이중 검찰 개혁 공약 이행률은 16%에 불과했는데,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정책 중 가장 저조하다.

최근 ‘미니 중수부’로 불리는 부패범죄수사단이 출범하면서 검찰 개혁의 성과로 폐지 됐던 중수부가 사실상 부활했다. 오히려 올해 검찰 개혁이 지난해보다 더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개혁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정권에서는 집권 초기 이들 사정기관과 정보기관부터 장악하려 했다. 검찰 지휘부의 성향과 사정수사 방향에 따라 정권의 향배와 안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검찰 주요 요직에 포함되는 인사들이 정권과 결탁해 폐해가 일어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1997년 대선을 한달 앞두고 터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대선 이후를 기약하며 수사를 공개적으로 접었다. 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올랐다. DJ정부 시절 김 대통령과 동향(전남)이었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전임자인 박순용 총장의 총장 임기 2년 동안에도 ‘실세 대검차장’으로 불리며 사실상 총장 역할을 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대선 때 호언장담 ‘얼만큼 지켰나’
독립성 강조했는데…결국 흐지부지

박 대통령은 검찰의 이런 태생적 배경 때문에 검찰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 핵심은 검찰 권력 축소와 독립성이다. 검찰 개혁의 세부 공약을 보면 ‘검찰 인사제도 개선’ ‘비리 검사 퇴출’ ‘검찰 권한의 축소 및 통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다.

검찰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 관행’은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현직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은 빈말이 됐다. 참여연대가 법무부에서 받은 외부기관 파견검사 현황 자료 등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정부기구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국제기구 등에 파견돼 있는 현직 검사의 수는 총 6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62명, 2014년 63명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이명박정부 마지막 3년(2010∼2012년) 동안 해당 인원수가 68∼72명이었음을 고려할 때 사실상 ‘원상회복’된 셈이다.

검사가 파견되는 외부 기관의 수도 오히려 늘어났다. 2013년 32곳, 2014년 34곳에서 올해 42곳으로 늘어나 2010∼2012년 39∼46곳과 엇비슷한 수준이 됐다. 국민안전처와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광주광역시, 국제개발은행, 주네덜란드대사관 등 6곳에 새로 검사가 파견됐다. 감사원(1명→4명)과 금융위원회(5명→7명), 국무총리실(1명→2명), 헌법재판소(3명→4명) 등은 인원이 증원됐다.
 


2012년 12월2일 박 대통령은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해 파견기관을 통한 정치권의 외압을 차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대선공약집에도 그대로 담겼다.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발표한 국정과제에서도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검사에 대한 인력 및 조직 진단을 통한 단계적 감축’을 공언한 바 있다. 결국 취임 1, 2년째에만 파견검사 수를 줄이는 시늉을 하다 도로 제자리로 간 것이다.

수사권 조정
큰 변화 없어

특히 ‘법무부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호사 또는 일반직 공무원이 근무토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른바 ‘법무부의 비(非)검찰화’인데, 참여정부 시절 잠깐 시도됐을 뿐, 이후엔 여전히 법무부의 주요 국·실장과 과장 등을 거의 대부분 검사들이 맡고 있다. 법무부에서 근무하는 현직 검사들은 80∼90명으로, 전체 인원의 7분의 1 정도에 달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저해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청와대 편법 파견’ 관행도 여전했다.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는 검찰청법에 따라 민정수석실 등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은 ‘사표 제출→청와대 근무→검찰 재임용’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이런 편법으로 청와대를 거친 검사들이 검찰 요직에 중용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달 13일자로 단행한 560명의 고검검사급 인사에 따르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근무한 권정훈(47·사법연수원 24기) 민정비서관이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됐다. 법무부 인권국장은 검사장 승진 1순위인 요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이영상(43·29기) 검사는 범죄첩보를 수집하는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으로 임명됐다. 범정1담당관의 경우 각종 수사·범죄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일하던 검사가 곧바로 이 자리를 맡을 경우 청와대의 검찰 수사 통제와 정권 하명수사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청와대에서 근무한 박태호(43·32기), 박승환(39·32기) 검사도 각각 대검 검찰 연구관, 서울서부지검 검사로 보임됐다. 대검과 서울 일대 지검 역시 일선 검사들이 선호하는 근무지다.

이전에는 청와대에 파견됐다 복귀하는 검사들은 최소한 복귀 첫 인사에서는 한직으로 발령 나는 경우가 많았다. 2013년 초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간 이중희(49·23기) 전 민정비서관도 2014년 5월 복귀하기는 했지만 서울고검으로 요직은 아니었다. 즉 이번 인사에서는 ‘청와대 파견 우대’가 더욱 노골화 된 셈이다.

법무부 파견 감축은 검사가 법무부의 주요 고위직 등을 장악토록 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핵심인데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에 대한 개정 노력은 전혀 없었다. 여전히 법무부 장·차관을 비롯한 검찰국장, 법무실장, 기획조정실장, 감찰관 등 법무부 핵심직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책을 검찰이 장악하고 있다.

‘검찰 권한의 축소·통제’ 분야의 가장 상징적인 공약이었던 대검 중수부 폐지는 잠시나마 실현되긴 했다.

1981년 설치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대검찰청의 공직자 비리수사처로 공안부와 함께 검찰의 양대 중핵을 이루어온 핵심 부서다. 검찰총장의 직할 수사조직으로,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 사건 수사를 담당해 오면서 이철희·장영자씨 부부 어음사기사건, 명성사건, 5공 비리사건, 수서사건, 율곡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과 한보사건, 김현철씨 비리사건, 이용호게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중 서거로 정권마다 편향 수사 논란이 일면서 존폐위기에 몰렸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중수부 폐지를 내세웠고, 2013년 4월 중수부를 폐지했다.


검공약 이행률
고작 16% 불과

그러나 올해 1월 ‘미니 중수부’라 할 수 있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출범하면서 도루묵이 됐다. 전국 단위의 대형 사건 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대선 공약에도 “예외적으로 관할이 전국에 걸쳐 있거나 일선 지검에서 수사하기 부적당한 사건은 고검에 TF 성격의 한시적인 수사팀을 만든다”는 단서가 있었던 만큼 공약 파기라고 몰아세우기는 무리지만, 과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꾸려진 한시적 조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중요사건의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 등을 시민들이 직접 심의하는 검찰 시민위원회의 강화를 위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약속도 감감무소식이다.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2013년 6월 관련 법안을 제출하기만 했을 뿐, 실질적인 법제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수년째 논란이 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임기 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독립하겠다던 강신명 경찰청장의 공언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수사 지휘권을 놓지 않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강한데다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분점을 공약하고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청와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최근 검·경의 조희팔 사건 수사와 경찰의 김진태 전 검찰총장 내사 의혹, 문재인 야당 대표의 환기 발언 등으로 수사권 조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 차원의 의지부족으로 수사권 조정의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 채 국정과제를 추진한다는 형식적인 구색만 맞추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사 파견 제한? 도로 원상복귀
중수부 폐지? 이름만 바꿔 부활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잇따라 발의된 각종 법안들도 길게는 수년째 잠자고 있다. 총선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국회에서의 처리는 요원해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검찰청법 개정안(의원 발의)은 모두 9건이고 이 가운데 검찰 개혁과 직결되는 법안은 내용이 겹치는 것을 포함해 모두 8건이다.

앞에서 언급한 검사가 청와대 보직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인 '검사 편법파견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 정청래 의원 등이 2012∼2013년에 발의한 이 법안은 편법파견을 억제하기 위해 청와대에 몸담았던 검사의 재임용을 1∼3년간 금지하는 내용이다.

상급자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 권한을 현실화하고 이에 따른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화하는 법안 또한 2013년 새정치연합 이춘석·이종걸 의원 등이 발의했으나 여전히 계류중이다. 이밖에 ▲피의사실 공표 등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검찰 공보담당 검사 지정법 ▲검찰 정치중립을 위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제한법 ▲내부감찰 기능 정상화를 위한 감찰인력 배치절차 개선법 등이 여전히 상임위에 묶여 있다.

비리검사 퇴출
사실상 무용지물

현재까지 어느 정도 실적을 보이는 개정안은 ‘비리검사 퇴출’ 항목이 유일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검사적격심사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사적격심사제는 평생검사제 도입으로 검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대신 업무 실적이 좋지 않고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검사를 중간에 퇴출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제도다. ‘검사 징계 사유 명확화(향응, 금품수수 등) 및 처벌 수위 강화’는 2014년 5월 개정된 검사징계법에 반영됐다.

검사적격심사 제도는 ‘자격 미달’ 검사를 가려내기 위해 지난 2004년 도입됐지만, 도입 10년이 지나도록 심사위원회를 통해 검사가 면직된 사례가 없는 등 중간 평가 제도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 강압수사 증가?

 

최근 5년간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자살한 피의자나 참고인 등이 8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위원장(대전 유성구)이 제공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검찰 조사 도중 자살자는 ▲2010년 8명 ▲2011년 14명 ▲2012년 10명 ▲2013년 11명 ▲2014년 21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6월까지 15명이 검찰 수사 중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다 자살한 피의자는 전체 79명 중 19명(24%)으로 가장 많았다. 충청권에서는 ▲대전지검 4명 ▲대전고검 1명 ▲천안지청 2명 ▲홍성지청 2명 ▲청주지검 2명 ▲충주지청 1명 등 12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원회가 제출한 최근 3년간 검찰 관련 인권침해 진정사건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보면 검찰 관련 인권 침해가 2012년 147건에서 2014년 190건으로 30%가량 늘어났다. 법무부와 검찰 관련 차별 진정사건도 2012년 8건에서 지난해 15건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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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