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선거조직 뒷거래 의혹 집중추적

당사자는 모르는데 보내기로 합의?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선거조직 뒷거래 의혹’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궁지에 몰린 하 의원은 거짓해명까지 하다 들통났다. 야권에서는 구설수에 휘말린 의원들이 잇달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쇄신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하 의원은 해당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총선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선거조직 뒷거래 의혹’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앞서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하 의원은 지난 1월 자신의 김모 보좌관을 윤상직 전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선거운동원으로 파견하는 대신 1000만원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의혹이 사실이라면 선거운동과 관련해 금전적 이익을 주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선거법 위반?
출마는 강행

이에 대해 하 의원 측은 ‘1000만원을 윤 전 장관 측으로부터 받기로 한 것은 해당 보좌관의 급여 보조비 명목이었다’며 ‘4급 보좌관의 월급이 400만∼500만원에 이르는데, 선거캠프 일당은 하루 7만원, 한달에 200만원에 불과해 나머지 차액을 후원회를 통해 받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보좌관 임금 보전 차원에서 한 달에 200만원씩 5달을 보전하려면 1000만원이 필요한데, 그것을 후원금으로 지원받기로 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 의원과 윤 전 장관은 “하지만 해당 보좌관의 선거법 위반 전력 때문에 파견 계획을 취소하면서 후원 논의도 없었던 일이 됐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장관은 최근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 사람당 100만원씩 하 의원 후원회 계좌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한 합법적으로 돈을 건네기 위해 하 의원의 후원회를 이용하기로 했고, 지인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100만원씩 ‘쪼개기 후원’을 택한 것이다. 하 의원이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보좌관 파견을 논의한 것은 지난 1월5일이고, 해당보좌관이 선거운동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계획을 취소한 것은 1월6일이다.


보좌관 윤상직 선거캠프에 파견 약속?
대가로 1000만원 받기로 한 의혹 

하 의원의 해명대로라면 논의 하루 만에 해당 계획이 취소되었음에도 윤 전 장관이 왜 지인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요청했는지 의문이다. 일각에선 이미 윤 전 장관 측에서 하 의원의 후원금 계좌로 400여만원을 입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선관위 측은 후원금 내역 자료를 확보하고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 의원 측은 “실제 돈이 후원금 계좌에 들어 왔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으며, 들어왔다면 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오는 4월에 치러질 20대 총선에서 하 의원의 지역구가 속해 있는 부산 기장군 출마를 준비 중이다. 하 의원 지역구인 부산 해운대 기장을 지역은 기장군 전체와 해운대구 일부가 묶여 있는 곳이다. 그런데 하 의원의 지역구는 인구가 많아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기장군이 독립할 가능성이 크다. 하 의원의 입장에선 어차피 기장군 선거사무소나 선거조직을 정리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보좌관과 선거조직을 윤 전 장관에게 넘겨주는 대신 윤 전 장관에게 어떤 대가를 받기로 거래 했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입장문도 거짓?
거짓해명?

두 사람은 보좌관 지원을 논의만 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하 의원은 자신이 쓰던 기장군 선거사무실을 최근 윤 전 장관 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무실은 시당 연락사무소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해당 지역구 출마자들은 ‘사람 주고 받기’ ‘사무실 주고 받기’ 등 편법으로 하 의원이 윤 전 장관을 지원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 의원은 지난 2012년 치러진 총선에서도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린 전력이 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김모 보좌관은 지난 총선 당시 하 의원의 선거사무장을 맡았었다. 당시 김모 보좌관은 선거사무소 인근에 90만 원을 주고 원룸 2개를 한 달간 빌린 뒤 선거운동 자원봉사자 4명에게 숙박을 제공한 혐의와 선거운동 대가로 200만원을 지급한 혐의 등으로 입건돼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선거법상 선거사무장이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후보자의 당선이 무효가 되지만 김모 보좌관이 벌금 200만원 형을 받으면서 하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김모 보좌관은 해당 사건 이후 하 의원실 4급 보좌관으로 임명됐고 지금까지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당시 하 의원은 선거법 위반 사건을 제보한 제보자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아들 때문에 주변 사람 20명이 조사를 받게 됐다’며 ‘결과야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OO이가 앞으로 사는 게 힘들어 지겠다는 생각도 자꾸 든다’며 사실상 협박성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제보자의 아버지와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고 아버지가 해당 사건으로 아들을 걱정 하길래 인간적으로 걱정을 공유했던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야권에서는 구설수에 휘말린 의원들이 잇달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쇄신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하 의원은 이 같은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총선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 의원 측의 해명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현역 국회의원이 특정 지역구에 출마할 후보자를 돕기 위해 물밑에서 협상을 벌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정경선 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하 의원은 그동안 안대희, 김만복 등 거물급 인사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낙하산 공천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자 강하게 반발하며 공정경선을 거듭 주장해온 인물이다.

때문에 당 내에서도 하 의원과 윤 전 장관을 공천 부적격 대상으로 분류해야 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새누리당에서는 “공천 부적격 사유에는 부정범죄를 저지른 인사 외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신망이 저하된 인사도 포함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해운대기장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전면에 나서길 꺼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윤 전 장관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기 때문에 다른 후보자들이 전면에 나서길 꺼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윤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내려 꽂은 ‘진박’ 인사가 아니냐?”며 “다른 인사가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면 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공격을 받았을텐데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조용한 반응이다. 괜히 진박 인사를 건드렸다가 청와대와 중앙당으로부터 찍히면 앞으로 정치 생활이 힘들어 질수 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해야 할 부산 기장군 선관위는 현재 검찰이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하 의원의 후원금 내역을 확보하고도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선관위 모르쇠
후원금 받았나?

게다가 하 의원은 해당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거짓해명을 남발하고 있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하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 언론사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신과 윤 전 장관과의 ‘선거조직 뒷거래 의혹’에 대해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심지어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가 자신의 사무실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지난달 25일 무혐의 종결 처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구체적인 정황까지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의혹에 대해 전혀 조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하 의원이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사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 역시 내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 의원이 왜 곧바로 들통 날 거짓말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또 해당 사건이 불거진 후 하 의원이 내놓은 입장문 역시 거짓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하 의원은 입장문에서 ‘윤 전 장관의 총선 출마 시 도움을 주는 방안을 상의한 것은 사실이나 해당 보좌관이 개인 사정상 선거사무원 자격이 없다는 것이 확인돼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작 당사자는 “그런 적 없다”
두 사람 공천 부적격 될 수도

하 의원은 해당 보좌관의 개인 사정에 대해 ‘과거 선거법 위반 전력이 있어 선거사무원으로 등록할 수 없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해당 보좌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 총선 당시 하 의원 선거캠프에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불법 선거운동을 벌여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정작 해당 보좌관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저는 (윤 전 장관 캠프에) 가기로 한 적이 없었다”며 “두 분이 어떤 논의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방에서 구체적으로 가기로 했던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 의원이 왜 이런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냐고 묻자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해당 보좌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 의원은 해당 보좌관의 의견도 묻지 않고 논의를 진행했거나, 실제로는 해당 보좌관을 파견하는 논의 자체를 하지 않았으나 뒤늦게 말을 짜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가능하다.


공천 부적격
총선 변수되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해당 보좌관이 선거법 위반으로 선거운동원 등록이 안 된다면 다른 보좌진을 보내면 될 일 아닌가? 겨우 그런 일 때문에 협상이 깨진 것이라는 두 사람의 주장은 믿기 힘들다”며 “협상이 중간에 깨지지 않고 지금까지 진행됐다고 하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으니까 협상이 중간에 깨져 아무런 거래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 의원 측은 “억측에 불과하다”며 “해당 보좌관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내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과연 두 사람의 선거조직 뒷거래 의혹의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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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