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동교동계 부활 노림수

DJ파 원로들의 반란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다. 권노갑 전 상임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는 지난 12일 집단 탈당을 선언했다. 권 전 고문은 탈당 직후 신당 추진 야권 인사들과 잇달아 접촉하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DJ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14년 만에 다시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는 동교동계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기지개를 펴고 있다. 권노갑 전 상임고문은 지난 12일, 동교동계 인사 수십 명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집단 탈당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을 지탱해온 두 기둥인 운동권과 호남 가운데 한 축이 무너지면서 더민주는 총선을 앞두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서는 현역의원들의 탈당 러시로 더민주가 국민의당에 밀려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권 전 상임고문은 이날 탈당을 선언하면서 더민주를 선거 패배에 책임지지 않고, 정권교체의 희망도 주지 못하는 당이라고 규정했다. 동교동계의 목표는 제대로 된 야당을 부활시키고 정권교체를 성공시키기 위한 길에 미력이나마 혼신의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도 했다.

정권교체?
지분 요구?

호남과 친노의 결별은 친노의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이 야권 내에서 팽배해지면서 서서히 시작됐다. 지난 2007년 대선부터 최근 각종 재보선에 이르기까지 친노가 장악해온 야당은 참패를 이어왔다. 문재인 체제로는 내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동교동계를 움직였다는 것이다.

권 전 고문은 탈당 후 곧바로 국민의당에 합류하는 대신 제3지대에서 신당 세력의 통합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고문은 탈당 다음날부터 무척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권 전 고문은 이미 탈당을 결심한 박지원 의원, 탈당 후 호남 독자 신당을 추진 중인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전남지사를 잇달아 만났다. 이어 국민의당에 합류한 김한길 의원과도 만났다.


김대중 가신들 친노와 완전 결별
신당 추진 야권 인사들과 접촉중

더민주를 제외한 야권 주요 세력을 대부분 만난 셈이다. 일각에선 권 전 고문의 동선을 보면 동교동계의 통합 시나리오를 엿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교동계의 탈당으로 야권은 문재인 대표를 축으로 한 친노·386·운동권 중심의 더민주와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노·호남·중도의 국민의당으로 완벽하게 양분된 모양새가 됐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동교동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동교동계의 ‘지분 요구설’이다. 동교동계가 야권 분열을 기회로 삼아 몸값을 높이고 지분을 요구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권 전 고문은 지난해 4월, 새정치연합(현 더민주)의 재보선 지원을 약속하면서 “지금까지 당을 운영하면서 (지분을) 주류 60퍼센트, 비주류 40퍼센트로 나누는 관행을 지켜왔는데, 문재인 대표도 그 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동교동계가 재보선을 지원했음에도 문 대표 측의 아무런 배려가 없자 결국 탈당까지 강행하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친노와 악연
복수 위해?

최근에는 동교동계가 탈당 후 국민의당에 곧바로 합류하지 않은 이유가 안철수 의원 측과 지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의혹제기를 한 언론보도도 있었다. 동교동계의 지분 요구에 안 의원 측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양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동교동계는 지난 19대 총선 당시 공천 문제로 집단 탈당한 전력도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당시 탈당을 하면서 ‘친노 패권주의로 불공정한 공천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는데 이후 친노 인사들에게는 ‘친노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동교동계는 크게 신파와 구파로 나뉜다. 구파는 권노갑 고문을 중심으로 김옥두, 이훈평, 박양수 전 의원 등이 있고 신파는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전 의원 등이 주축이다. 동교동계 신파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친노 진영이 주도한 공천 과정에서 대거 탈락하자 탈당해 정통민주당을 창당한 후 총선에 나섰으나 대부분 낙선했다.

그러자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에서는 동교동계 신파 인사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여권 행을 택했다. 이후 한광옥 전 의원은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으며 김경재 전 의원은 최근까지 청와대 홍보특보를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동교동계의 집단 탈당에 대해 단지 친노 진영에 대한 복수의 일환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동교동계 대부분이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인데 지분을 챙겨주려고 해도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겠냐”며 “동교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사건건 친노 진영에 시비를 걸어왔고 과거 쌓인 앙금이 해소되지 않아 탈당한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호남의 한 인사는 지난 해부터 이미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의석을)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친노를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언급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동교동계와 친노 진영은 지독한 악연이다. 2002년 민주당의 대선 경선 때 동교동계가 노무현 후보를 배후에서 지원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정작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동교동계는 줄곧 시련을 겪었다.

계획된 탈당
친노 고립작전?

특히 지난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이 시작되자 동교동계는 참여정부가 DJ의 최대 치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리려 한다고 반발했고, 수사 과정에서 권 전 고문과 박지원 의원 등 동교동계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어 그해 11월 친노 진영이 당시 민주당을 구태 정치세력으로 몰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자 동교동계의 친노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이)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회창이 될까 봐 찍었지”라며 동교동계와 호남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표의 “우리는 부산 정권”이라는 발언도 논란이 됐다. 동교동계의 이훈평 전 의원은 “50년 만에 정권 창출하고 재창출해줬는데, 친노 패거리들이 망쳐버렸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특히 노무현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은 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모이면 “(대북송금 현대 비자금 사건 때) 언론 보도로만 치면 동교동계 인사들은 재벌인데 이 나이에도 식당 등을 운영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친노 진영을 비판할 정도다.

게다가 지난 2012년 총선 이후에도 동교동계 인사들은 당내 경선에서 친노 진영 인사들에게 번번이 밀렸다. 지난해 4월 재보선 당시 관악을에 출마했던 동교동계 김희철 전 의원이 친노로 분류되는 정태호 후보에게 당내 경선에서 밀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탈당 시나리오 오래전부터 준비
지분 요구? 앞으로 행보 주목

당시 국민경선 여론조사에서 두 곳의 여론조사 기관이 동시에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양 기관 간 조사 결과가 15%나 차이가 나 논란이 됐었다. 일반적인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5∼6% 정도다. 김 전 의원 측이 항의했지만 당 지도부는 항의를 묵살해버렸다. 당내 경선 때마다 이 같은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교동계가 오래전부터 친노 고립작전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권 전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손잡고 국민동행이라는 정치 결사체를 만들어 오래 전부터 신당 추진 작업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민동행은 상도동계 좌장 역할을 했던 김덕룡 전 의원과 권 전 고문이 주축으로 만든 단체다. 국민동행에는 상도동계 김덕룡 전 의원과 함께 문정수 전 부산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이, 동교동계는 권노갑 전 고문과 정대철 전 상임고문 등이 참여했었다.
 

국민동행 발족 당시부터 정가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측근인 김성식 전 의원이 국민동행 발족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었다. 안 의원 측이 안 의원에게 힘을 실어 줄 여야 원로 인사들을 규합하고 있다는 설이었다. 지난 2014년에는 동교동계 정대철 전상임고문이 주축이 돼 구당구국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는 지금은 더민주를 탈당한 정동영 전 상임고문, 천정배 의원 등이 참여했었다. 정대철 전 고문도 지난 15일 탈당을 선언한 상태다.

순수성 의심
진짜 목적은?

당시부터 구당구국 모임이 사실상 중도, 온건파 성향의 정치인들을 규합해 신당 창당을 추진하려는 단체가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구당구국 모임에 참여했던 인사들 중 상당수가 신당행을 선택하면서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됐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탈당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발휘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교동계가 DJ의 가신그룹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은 지니고 있지만 현역 의원이라고는 박지원 의원이 유일하다.

이미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인사들이 민심을 대표하거나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다만 호남 내 반 친노 정서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교동계의 이탈은 호남의 반 친노 정서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호남 출신의 한 인사는 “동교동계는 DJ와 험난한 한국 정치사를 함께한 민주화의 산 증인들”이라며 “당의 어른들도 제대로 못 챙기는 정당이 누굴 챙기겠느냐”고 비난했다.


한편 이 같은 정치권의 풍문들에 대해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무슨 욕심이 있겠나? 집권 가능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우리를 깎아내리려는 공작이 시작된 것 같다”며 “그런 허무맹랑한 목소리엔 신경 쓰지 않고 정권 교체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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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