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홍’ YMCA 스캔들 막후

“그분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하면 떠오르는 건 젊음과 기독교다. 그런데 서울YMCA 내부는 젊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집행부의 비리 의혹이 연달아 터져 나오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YMCA가 내홍을 겪고 있다. 집행부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특정 인사들의 비리 의혹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그 중심엔 표용은 명예이사장이 있다. 원로들은 풍파의 근원으로 표 명예이사장을 지목했다.

표 명예이사장은 1988년부터 서울YMCA에서 이사직 1989년, 이사장직 16년 등을 지내며 장기 집권했다. 1933년생인 표 명예이사장은 1959년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1960년에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중앙교회(아들 표순환 목사 승계)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평범한 목사였지만 표 명예이사장은 교계정치에 능했다. 당시 가장 손쉬운 세력 확대 방법은 감리교 내 계파 장악이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군림
 

1960년대 이후 주요 계파로는 월남한 교인들이 주축이 된 성화파와 서울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정동파, 충청 지역 출신들로 구성된 호헌파를 꼽을 수 있는데, 얼마 뒤 호헌파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호헌파에 속했던 표 명예이사장은 1970년대 호헌파가 구파와 신파로 분열되고 1980년대초 신파 김창희 전 감독이 세상을 뜨면서 신파의 좌장으로 부상한다.

이렇게 세력을 형성한 그는 이미 197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운영위원, 1971년 KNCC 실행위원 부회장, 1973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실행위원, CBS(기독교방송) 이사장 등이 됨으로써 교계정치를 위한 든든한 기반을 마련한다.


표 명예이사장은 국내 교단의 주요 요직을 섭렵했다. 그리고 서울YMCA에 눈을 돌렸다. 1988년 서울YMCA 이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서울YMCA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자신들의 측근을 이사회에 앉혔다. 측근들은 서울YMCA 재단 이사회(9명)와 운영이사회(24명) 이사를 겸직하며 장기 연임했다.

심규성 감사는 “재단이사회와 운영이사회 대부분 명예이사장(표용은)에게 충성한 측근들로 채워졌다”며 “대부분 수십년째 서울YMCA이사로 지내고 있다. 새로운 인물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점입가경’ 집행부간 갈등 심화
특정인사 비리의혹 연달아 터져

심 감사는 사실상 표 명예이사장이 측근들을 통해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설명했다. 이사 연임 제한도 없어 사실상 종신이사가 가능한 체제다. 때문에 이사회는 상당히 노후화 됐다. 서울YMCA 이사들의 나이를 보면, 표 명예이사장 84세 조모 이사장 84세, 양모(73)·이모(71)·조모(80)·강모(73)·조모(61)·안모(60)·박모(82·사퇴) 이사 등 평균 연령이 70대 이상이다.

문제는 표 명예이사장과 이들 8명의 재단 이사가 서울YMCA 운영이사회가 관리해야 할 자산운영과 인사 등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 명예이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기 밑에 사람은 확실히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표 명예이사장의 사람 관리 방식은 철저한 논공행상이다. 20여년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서울YMCA의 일감을 몰아주거나, 측근의 지인들을 서울YMCA에 취직 시켜주는 방법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YMCA의 관계자는 “표 명예이사장 측근 이사들의 친인척들이 직원들로 많이 들어와 있다”며 “현 서울YMCA 회장도 표 명예이사장 조카”라고 말했다.

안창원 서울YMCA 회장은 표 명예이사장 여동생의 셋째 아들이다. 표 명예이사장이 안 회장의 외삼촌인 셈이다. 안 회장은 30여년 전 표 명예이사장을 통해 서울YMCA에 취직한 이후, 지난 2009년까지 기획행정국장으로 일하다 그해 9월 서울YMCA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안 회장은 자질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요직에 핏줄들
조직 쥐락펴락

2008년 안 회장이 기획행정국장으로 있을 당시 서울YMCA는 고위험투자상품인 ELS(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상품에 30억원을 투자해 11억원을 날렸고,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잔액을 다시 고위험 선물옵션에 투자해 지난해 말 기준, 원금을 완전히 탕진해 통장 잔액은 18만983원밖에 남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안 회장은 그의 측근과 함께 자금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3차례 이상 모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동산 투자로 위장하거나 분식하는 방안을 강구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재단 재산의 고위험 파생상품 투자로 인한 30억원대 손실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심 감사는 “재단법인이 기본자산을 고유목적 사업 이외의 곳에 지출하려면 주무관청에 신고해 허가받아야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고 내부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불법으로 투자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안 회장은 법인 소유의 대형승용차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의혹도 있다. 안 회장은 시민단체 책임자로서 어울리지 않게 에쿠스를 타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인사들의 이 같은 지적으로 타고 다니지 못했지만, 이 차는 아들이 물려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안 회장 부인이 법인카드로 선물용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등 직원들의 제보가 상당하다. 이에 대해 서울YMCA는 “해줄 말이 없다”며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안 회장은 일본 출장 중인 탓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표 명예이사장은 안 회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종조카인 고모씨를 서울YMCA 부설사회복지법인 삼동소년촌의 사무국장에 앉히기도 했다.

서울YMCA는 안 회장의 첫째 형 안태원 미환서비스 대표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환서비스는 청소용역 관리회사로 2007년 서울YMCA와 청소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이전까지 서울YMCA는 CBS미환이라는 업체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해왔으며, 이 계약기간 중임에도 계약을 해지했다. 이 자리를 표 명예이사장의 조카 회사인 미환서비스가 꽤찼다. 이 계약과 관련해 당시 이사장들이 서울YMCA에 2860여만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일감 밀어줘”
친인척 챙기기

서울YMCA는 미환서비스 산업에 매년 책정하는 용역비를 과대 계상한 의혹도 있다. 서울YMCA 내부 문서인 ‘2006∼2008년 용역현황비고’를 보면 CBS미환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계약금액이 상감됐다. 서울YMCA 종로 본관만 관리했다.

2007년부터 미환서비스는 종로 본관, 종로 별관, 강남·잠원스포츠 등 서울YMCA 시설등을 관리했다. 연간 시설 관리 계약금도 대폭 올랐다. 2007년 종로 본관 계약금액이 5921만원이었다면, 2008년 계약금액은 1억3605만원으로 2배 이상 인상됐다. 다른 시설 계약금도 배 이상 올랐다.

서울YMCA에서 근무 중인 한 관계자는 “여전히 미환서비스에서 청소용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때 당시 미환서비스의 이사를 보면 ‘가족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이사에는 안 대표의 부인과 표 명예이사장의 친동생인 표모씨, 또 다른 종친인 표모씨가 있었다.

<일요시사>는 미환서비스를 통해 안 대표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회사 관계자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표 명예이사장은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김모 전 YMCA 이사의 처조카 회사인 도량기업에 수년간 일감을 몰아준 의혹도 있다. 페인트 전문 업체로 설립된 도량기업은 표 명예이사장이 취임한 이후 지난 20여년 가까이 서울YMCA 도색 및 리모델링, 기타 공사를 독점했다.

장기 집권 명예이사장 풍파 중심에
측근들 낙하산 인사…이상한 거래도

서울YMCA가 도량기업에 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공사 대금을 과대 계상한 의혹이 있다. 2007년 서울YMCA 본관 옥상방수 비용으로 도량기업이 1억2320만원을 지출했지만, 당시 관련 업체에서 최고가격으로 견적을 받아본 결과 3384만원으로 책정됐다.

최근 고양시와 서울YMCA 뒷거래 의혹이 있는 일산풍동 수련원부지 골프장 공사도 도량기업이 수주했는데, 당시 공사비용이 부풀려졌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서울YMCA는 골프장 비용으로 142억원을 책정해 공사를 진행했지만, 시민들의 반발로 2010년 9월 고양시는 골프장 사업을 직권 취소했다. 그런데 이미 공사비의 60%인 80억원 이상 도량기업에 집행된 상태였다.

고양시는 ‘직권취소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대비해 이 공사에 대한 감정을 했지만, 공정률은 37%에 불가했다. 심 감사는 “공정률 20∼30% 수준의 공사에서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30억∼40억원 이상 투입될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이미 도량기업에 지출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도량기업 대표는 “김 전 이사의 조카가 맞다. 그동안 서울YMCA 공사를 많이 한 것도 맞다”며 “하지만 이 과정 불법적인 것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표 명예이사장의 측근인 전현직 이사들의 비리 의혹도 상당하다. 이중 이석하 이사는 표 명예이사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이사는 원래 1980년대 서울YMCA 지하에서 파친코 사업을 했었다. 표 명예이사장을 통해 서울YMCA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991년부터 24년째 서울YMCA 이사로 지내고 있다. 2008년 개인비리 혐의로 이사회에서 사임했으나, 다시 일산 골프장 공사 건축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복귀했다.

이 이사는 여성참정권문제(2005년 서울YMCA가 총회 투표권을 여성에게 주지 않자 소송까지 이어진 사건) 현안대책위원장직을 수행하며 성공사례비 1000만원도 받았다. 변호사도 아닌 그가 어떻게 성공사례비를 받았을까. 당시 이 이사는 “소송이 2년6개월 장기화되면서, 승소하면 변호사에게 성공사례비를 줘야한다”고 제안했지만, 2007년 9월 이사회에서 이 이사가 성공사례비를 횡령한 사실이 폭로됐다.

변호사 아닌데
성공보수 챙겨

2006년 이 이사가 마포구에 있는 강변한신코아 오피스텔의 대표회장으로 있을 당시 서울YMCA 이사들을 끌어와 대표회의를 장악하기도 했다. 이때 서울YMCA이사 7명이 총 14채의 오피스텔를 각각 소유했다. 이 이사는 당시 5채, 표 명예이사장은 2채를 부인 명의로 소유했다. 이 건물에는 현재 도량기업과 미환서비스가 입주해 있다.

서울YMCA는 1903년 설립돼 일제강점기 독립·계몽운동을 이끄는 등 11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민사회단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상 이유로 직원 급여 및 4대 보험금까지 내지 못해 고발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사들의 횡령, 배임, 일감몰아주기, 비자금 등 운영상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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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