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바빠지는 ‘무대 활용법’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너도나도 김칫국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에서는 ‘무대(김무성 대표)’를 이리 떼고 저리 붙여보는 작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너도나도 제 입맛에 맞는 활용법만 고집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정작 당사자는 황당하다는 반응. 고차방정식으로 치닫고 있는 ‘무대 활용법’을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YS의 영결식이 끝난 후, 위정자들은 앞 다퉈 ‘통합과 화합’을 얘기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예상대로 평화 분위기는 며칠을 넘기지 않고 깨졌다. 야당이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로 시끄러웠다면, 여당은 때 아닌 ‘무대 활용법’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본인이 부산 영도구 출마를 고집하고 있음에도 주변에서 군불을 지피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PK 물갈이론
진원지 어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4·13총선과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설의 중심에 있다. ‘PK(부산·경남) 물갈이론’ ‘서울험지출마론’ ‘비례대표 출마론’이 그것이다. 당내 압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친박-비박’을 가리지 않고 김 대표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PK지역 총선이 대선 전초전으로 불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면면부터 남다르다. 문안박에 김 대표까지 핵심 대선주자 모두 PK 출신이다. 야당에서는 PK 잡고 대선승리로 이어간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야당이 차지한 PK 의석수는 총 34석 중 단 3석(문재인-사상구·조경태-사하구을·민홍철-김해시갑)으로 전체 8.82%에 불과하다. 이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야당 의석수를 두 자릿수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총선 룰과 관련해 야당이 해당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이면에 이와 같은 복안이 숨어있다고 여당은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내에서는 PK 물갈이론이 불거졌다. 지난 9월경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깜짝 대구 방문, 그리고 ‘총선 심판론’으로부터 대두된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의 연장선이다. TK에 튄 불똥이 PK로 옮겨 붙은 모양새다. 앞선 물갈이론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했다면, 이번에는 김 대표를 겨냥했다는 점이 차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22일 YS 빈소를 지키는 와중에 찾아온 부산지역 의원들 입에서 TK 물갈이론이 튀어나오자 “‘물갈이, 물갈이’하는 사람들이 물갈이 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험지출마론
무대 바뀌나

친박계는 일찌감치 PK에 눈독을 들여왔다. ‘영남 패권’을 위해선 꼭 필요한 퍼즐조각이다. 소위 ‘진박(진짜 친박)’들이 출마 예상자 명단에 오르내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정가의 시선이다.

현재 PK 중에서 부산 출마가 유력시 되는 친박계 인사는 약10~15명 정도. 그중 부산 기장 출마가 예상되는 윤상직 산업통상부장관을 포함해 해운대 분구 지역으로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는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띈다.

안 전 대법관은 해운대구 출마를 알렸다. 지난 1일 안 전 대법관 측과 새누리당 소식에 따르면, 그는 해운대 지역으로 출마키로 하고 이러한 뜻을 지도부에 전했다. 지난달 25일 사하경제포럼 특강을 위해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지 약 일주일만이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는 점, 5년 전까지 부모가 해운대에 거주했다는 점, 20대 총선에서 해운대구가 분구 예정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출마를 선언한 현역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안 전 대법관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신박(새로운 친박)’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 일각에서는 안 전 대법관을 두고 PK 공략에 나선 친박계 선봉장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 장관은 진박이라는 점에서 PK 물갈이론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당 인물들의 출마는 도미노가 되어 김 대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 대표가 있는 영도구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동구,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서구와 함께 선거구 획정 문제가 걸려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지역 3곳이 2곳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이다. 엮여 있는 사람이 당 대표, 국회의장, 전 장관이라는 점에서 최대 뇌관으로 꼽힌다.

PK 물갈이론, 유승민 다음은 김무성?
강북 출마 요구 거절 “영도서 승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다. 지금 PK 정가가 딱 그렇다. 너도나도 자신이 진박임을 자처하며, 청와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역 언론은 최근 해당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김 대표의 PK 장악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변수는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YS의 서거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의 PK 지역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평가를 내리긴 이르지만, 김 대표의 ‘빈소정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고 할 만한 변화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주중 정례조사 결과를 보면, YS의 영결식이 있었던 11월4주차 박 대통령의 부산·경남·울산 지지율을 보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 57.4%, ‘못하고 있다’가 39.8%를 기록, 높은 PK 지지를 얻었으나(무응답 2.7%), 12월1주차에는 ‘잘했다’는 응답이 46.9%로 하락해 오히려 ‘못했다’는 응답 47.4%에 뒤지는 상황이 됐다(무응답 5.7%). YS 영결식 불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김 대표가 서울의 험지로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이자 소장파 중 한명인 김용태 의원은 지난 1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무성) 대표는 서울에 출마할 정도라는 각오와 결단을 보여줘야지만 총선의 분수령이 될 수도권, 특히 서울의 선거 판도를 확 바꿀 수 있다”며 “서울 출마에 준하는 결단 없이는 내년 총선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출마론
박근혜가 롤모델

비박계 인사가 비박계 수장에게 한 말이라 정가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앞서 김 의원은 청와대를 나온 인사들이 TK 등 소위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수 있는 곳의 공천권을 노린다는 소문이 돌자 “박근혜정부 고위직에 있었다는 프리미엄만 누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라며 “야당 우세지역에 출마해 박근혜정부 성과로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결국 당내 힘 있는 중진들이 솔선수범해 험지에 나가야 서울을 수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 지역 48곳 중 여당이 차지한 곳은 단 17곳에 불과하다. 정두언 의원은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같은날 그는 “김 대표가 강북에 출마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 측은 거부의사를 전했다.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의원의 험지출마론 얘기가 나오자 “내 지역구의 지역주민들에게 심판받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TBS라디오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에 출연해 “어디에서 출마할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부산도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고, 편안한 지역이 아니다”라며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PK지역, 특히 부산은 또 야당에서도 굉장히 강조하는 지역”이라고 김 대표를 거들었다.

박근혜 길 가라? 비례대표 출마론 대두
고차방정식 되는 무대 활용법 종착점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서 김 대표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종로가 아닌 야당 텃밭 출마를 주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설득력을 잃었단 의견이 많다. 김 대표 또한 험지출마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비례대표 출마론도 있다. 그것도 ‘말번’을 배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진원지는 서울 험지출마론과 같다. ‘희생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용태 의원은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계복귀를 한 다음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할 총선이 있었다”며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지역구 출마를 하진 않으시고 비례대표 말번을 받으셨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밝힌 것 이외에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대 총선 당시 4선을 한 대구 달성군을 포기하고 순번 11번으로 나섰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박 대통령 또한 한나라당 대표로서 이런저런 요구의 중심에 있었다.

비박계 대표 공격수 중 한명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 2011년 7월20일 당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19대 총선에서도 달성군으로 출마하겠다”는 박 대통령을 향해 “박 대표는 영향력이 큰 지도자”라며 “비례대표 말번으로 나오겠다든지, 아니면 강북에서 출마하겠다든지 (해서) 당에 큰 변화를 주고 분위기 쇄신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4년 전 정두언 의원의 역할을 현재 김 의원이 받은 모습이다.

자기 입맛대로
바빠지는 셈법

이렇듯 험지출마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년마다 으레 반복되는 일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이번 험지론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박 대통령의 ‘물갈이론’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과연 김 대표는 전방위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4일 새벽 예산안을 처리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총선에 출마하려면 ‘1년 전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며, 그렇지 않을 시 “예비심사에서 탈락시키겠다”는 사실상의 ‘컷오프’를 시사했다. 이에 친박계 인사들은 참정권을 제한하는 위헌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치권 ‘기강잡기’ 총력
여 “공천 불이익” 야 “단호 조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노영민 의원이 피감기관에 시집을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발 빠르게 ‘기강잡기’에 나선 모습이다. 김무성 대표는 의원들의 책 판매 행위가 적발될 시 공천 심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새정치연합 노영민 의원이 출판기념회 관련 대국민 사과와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사퇴 등 논란을 일으켰다”며 “새누리당은 지난 보수혁신특별위에서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법안으로도 발의했다”고 말했다.

내용에 따르면, 대통령·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은 물론 후보자·예비후보자도 초청으로 출판물을 판매하거나 입장료 등 대가를 받는 출판기념회를 할 수 없다고 적시돼 있다. 이어서 그는 “북콘서트 등에서 책을 팔거나 봉투를 받으면 차후 공천심사에 반영하는 것을 김 대표에게 허락받았다”고 전했다.

새정치연합도 예외가 아니다. 김성수 대변인은 지난 3일 “문 대표가 당무감사를 거부한 비주류의 유성엽·황주홍 의원, 최근 도덕성 시비로 물의를 빚은 신기남·노영민 의원, 금품수수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근 소속 의원들의 일탈행위, 그리고 혁신전당대회 거부 등으로 흔들리는 리더십을 바로 잡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게 정가의 해석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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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