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VS 박원순 ‘한판대결’ 전말

3라운드는 여의도서…이기면 대권티켓 쥔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관가에서는 두 대선주자 간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수당’을 두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승자는 부상(副賞)으로 ‘대선행 티켓’을 거머쥘 예정이다.

‘청년수당’이라는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대결이 흥미롭다. 1라운드에서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파이팅으로 나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장관에게 한방 날렸다. 곧 이어 벌어진 2라운드에서는 최 부총리가 한발 물러서는가 싶더니 매서운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서로 한 방식 유효타를 주고받은 상황에서 국민의 눈과 귀는 3라운드로 향해 있다.

청코너 최경환

지난달 초 아젠다가 던져지자 최 부총리는 “선심성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고 평가절하 했고, 박 시장은 “현장에 20여일이라도 가보고 그런 말을 하라”고 응수했다. 예열을 마친 박 시장은 매섭게 파고들었다. MBC <100분토론>이 청년수당을 주제로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과의 토론을 제안하자 박 시장은 최 부총리와의 끝장토론을 역 제안했다. 표면적 이유는 “고용뿐 아니라 복지정책까지 맡고 있는 사람이 토론장에 나오는 게 맞다”는 논리였지만, 최 부총리를 노렸다는 게 정가의 시선이다.

박 시장의 제안에 최 부총리는 아웃복싱으로 응수했다. 끝장토론에 대해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최 부총리는 “주요20개국(G20) 출장 중인 가운데 박 시장이 청년고통 문제 해결을 위해 나와 끝장토론을 하자는 이야기를 보도를 통해 들었다”며 “박 시장이 청년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면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야당대표를 먼저 만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최 부총리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박 시장에 대한 반격을 준비했고 한다. G20 일정을 소화하고 지난달 18일 저녁에 귀국한 최 부총리는 다음날 있을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위해 실무진이 준비한 두 개의 발표문 중 청년수당 발언이 강한 쪽을 골랐다고 전해진다.


2라운드가 끝난 상황에서 일단 여론은 최 부총리에게 유리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18일에 조사해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시장의 정책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7.4%를 기록, ‘반대한다’는 54.4%에 17%포인트 차로 밀렸다(‘잘 모름’ 8.2%, 전국 성인남녀 5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

한방 날린 박원순·카운터 날린 최경환
복귀 전 ‘박원순 때리기’ 타켓 삼았나?

기세를 이어 최 부총리는 지난달 23일 기재부회의에 참석해 다시 한 번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는 “일부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혜성 현금지급 등의 포퓰리즘 정책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혜성 현금지급’의 대상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 시장이었지만, 앞선 상황을 봤을 때 박 시장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정가의 중론이다.

또한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해당 정책을 멈추지 않을 경우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음을 전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지방교부세 감액 등의 패널티를 주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이어서 지난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교부세 배분·삭감 기준 등이 수정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개정안’이 의결됐다. 최 부총리의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사태는 어느덧 정부 대 박 시장의 국면으로 전환됐다. 장외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과 박 시장 간의 설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무대도 다양하다. 한 번은 국무회의에서 또 한 번은 SNS 상에서 펼쳐졌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최 부총리와 함께 참석한 정 장관은 “지자체의 과한 복지사업은 ‘범죄’로 규정될 수도 있으나, 처벌조항이 없어 교부세로 컨트롤하기로 했다”라며 시행령 개정 취지를 밝혔다. 이에 박 시장은 “정책의 차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건 지나치다”고 맞섰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중재에 나설 때까지 박 시장과 참석 장관들 사이의 언쟁은 끊이지 않았다.

국무회의 즉시 김인철 서울시 대변인은 긴급브리핑을 열고 “서울시의 반대의견에도 개정안이 결국 원안 통과된 데 대해 서울시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청년수당 제도를 도입해 불이익을 받더라도) 도입을 강행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 사태는 진실게임으로 번졌다. 정 장관은 지난 2일 자신의 SNS 계정에 “(서울시의 전언과 달리) 청년수당을 ‘범죄’라고 언급한 바가 없다”고 글을 올려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앞서 1일 밤늦게 박 시장이 SNS에 올린 글에 대한 반박이었다. 박 시장은 ‘청년수당은 범죄?…정종섭-박원순 국무회의서 충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링크하고, ‘시민 여러분의 생각도 같으신지요? 청년수당이 범죄인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홍코너 박원순

청년수당은 단순 정책의 문제를 넘어서 문·박 연대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또한 최 부총리와 박 시장 간 대결의 서막을 알렸다. 잠룡들의 대진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12월 중으로 최 부총리의 정가 복귀가 예상되고 있어 3라운드는 여의도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최 부총리가 복귀 신호탄으로 박 시장을 골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최 부총리의 합동 공세에 주춤한 모습을 보였던 박 시장의 다음 카드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경환·정종섭 무혐의 처분
“총선필승”은 의례적 발언

‘선거개입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던 ‘총선필승’ 발언이 결국 무혐의로 결론 났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신 부장검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이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한 발언이 의례적인 것이라 보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발언은 두 사람의 지휘·감독권이 미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초대받은 입장에서 나온 의례적 발언이거나 정부 시책에 대한 지원과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표출된 즉흥적 또는 단발성 발언으로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즉 해당 발언이 공직자 직무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 8월경 있었던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최 부총리는 “내년에 잠재성장률 수준인 3% 중반 정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 당의 총선 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며, 정 장관은 연찬회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쳤다.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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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