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망 밝힐 7대 횃불

7개 중 4개만 켜져도 대권 청신호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한 통신사가 11월 셋째 주 중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이 성사될 것이라 보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기문 대망론’은 공식처럼 불거졌다. 그러나 기대했던 방북 소식은 도통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지난 5월경 북한으로부터 한차례 퇴짜를 맞은 반 총장이다.

이대로 ‘반기문 대망론’이 가라앉을 것인가. 지난 18일 <연합뉴스>를 통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평양 방문 논의가 사실임을 확인한 복수의 언론은 대망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차일피일 소식이 미뤄지면서 다시 잠잠해지고 있다. 일찍이 지난해 연말부터 ‘점화(點火)’와 ‘소화(消火)’를 반복하고 있는 대망론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①정치색 명확화

반 총장의 경쟁력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다. <머니투데이 더300>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조사·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반 총장은 김무성·문재인·박원순 등 차기 대선주자 빅3와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맞붙는다는 시나리오에서 반 총장은 55.1%의 지지율을 차지, 31.7%의 김 대표를 23.4%포인트 차로 이겼다. 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맞붙는다는 구도에서도 모두 승리했다(반 총장 55.0% VS 문 대표 33.9%, 반 총장 51.0% VS 박 시장 38.1%).

특히 모든 대결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 ‘지역’ ‘계층’에 관계없이 중도층·무당층의 결집력을 불러왔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그러나 동시에 취약점도 드러났다. 이는 반 총장이 차기 대선 출마를 염두 해두고 있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앞선 결과와 달리, 반 총장은 빅3가 아닌 ‘불특정후보’를 상대할 때 모두 패한다고 나왔다.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시 반 총장의 지지율은 36.0%를 기록, 46.0%를 얻은 가상의 야당후보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새정치연합 후보로 반 총장이 출마한다고 가정해도 지지율이 33.9%로 나타나, 51.6%인 가상의 여당후보에게 패했다(지난 19~20일, 23~24일 실시.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국내외 산적한 과제들 ‘암초 혹은 등대’
김·문·박 빅3 상대 모두 승리, 변수는?

즉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빅3와의 대결에서는 정당 지지층에 중도층까지 흡수해 경쟁력을 보였지만, 가상의 상대와의 대결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혹여 상대 정당에서 반 총장의 대항마로 새로운 인물을 내세운다면 밀릴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그 새로운 인물이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처럼 신드롬을 일으킬만한 파급력을 지녔다면, 반 총장은 의외로 부침을 겪을 수 있다. 불특정후보를 상대할 때 반 총장은 수도권·중도층·무당층을 끌어들이는 힘이 약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뚜렷한 정치색 없음이 향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②김정은 만남

국외에서는 반 총장이 극복해야할 두 가지 과제가 존재한다. ‘방북’과 ‘테러리즘’은 최근 반 총장을 괴롭히는 사안이면서, 만약 해결만 한다면 단숨에 대선 길을 열어줄 횃불이 될 수 있다.

앞서 유엔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밝혔듯, 반 총장은 방북을 오랜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왔다. 중국 <신화통신>은 지난 17일 반 총장이 23일부터 나흘간 방북한다고 전해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재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일찍이 반 총장은 지난 5월경 방북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적 있다. 반 총장은 방한 일정 중 하루를 비워 깜짝 방북을 예고했으나, 갑작스런 북한의 입국 거부로 무산됐다. 당시 반 총장은 서울디지털포럼 연설에서 “북측은 갑작스러운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전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여야 정치권도 잇따라 유감을 표했을 정도로 실망이 컸다.

걸림돌이 있다. 설사 방북이 성사되더라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만남까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정상급 인사와의 만남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총장 임기가 끝나는 2016년 12월31일까지 방북을 성사시킬 수 있다면, ‘평화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반 총장의 방북 추진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 5월경 방북 추진 당시에는 청와대·정부가 적극 협조했지만, 최근 청와대는 방북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미국·중국 등 강대국과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선임 유엔사무총장 중 북한 방문을 통해 대통령이 된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쿠르트 발트하임 총장은 지난 1979년 5월경 북한을 전격 방문,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과 만났고 그렇게 평화의 상징이 된 그는 지난 198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③테러 종식

‘테러리즘’ 또한 반 총장이 2016년까지 해결해야 될 과제다. 지금 세계는 이슬람국가(IS)의 무차별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를 자행한 IS는 얼마 뒤 튀니지에서 일어난 자폭테러 또한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반 총장은 IS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반(反)IS전선’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결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반 총장이 언급한 반IS전선에 대해 러시아의 역할을 언급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최근 러시아-터키 간 갈등이 발발하면서 변수가 많아졌다.

더군다나 일각에서는 반 총장의 테러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있는 상황이다. 주요 20개국(G20)이 테러 대응 공조를 천명한 데 비해 유엔의 대응이 늦었다는 데서 나오는 지적이다. 방북 추진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테러리즘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반 총장 측이 느낄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④지지세력 결집

국내로 눈을 돌리면 교통정리가 시급한 부분이 있다. 최근 반 총장을 지지하는 군소정당들이 늘어나고 있어 향후 ‘호재’로 작용할지 ‘악재’가 될지 알 수 없다.

지난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서를 제출한 12개 단체 중 ‘친반연대’가 있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친박연대’처럼 지지자의 성을 붙였음에도 해당 단체가 비난받은 이유는 당사자인 반 총장이 해당 단체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소식이 전해진 후 반 총장 측근은 “반 총장이 모르는 분들 같다. 그분들이 설마 반 총장과 교감을 갖고 그런 모임을 만들었겠느냐”고 반문했고,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씨는 지난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친반연대를 결성한) 사람 자체도 모르고 황당한 얘기”라며 “(결성한 분들이) 연세도 드셨는데 자중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희망”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명확한 정치색 없어…모호함이 무기될까
국외완 다른 국내 정치판, 세 결집 필수

그러나 친반연대를 제외하더라도 반 총장을 지지하는 단체는 많은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살아생전에 충청포럼을 만들어 반 총장의 대통령 추대를 위해 움직였다. 그 외에도 충청정가를 대표하는 ‘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랑들의 모임(반사모)’, 충청권 명사들의 모임인 ‘백소회’ ‘충청향우회’ 등이 존재한다. 반 총장이 대선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들의 열의를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⑤국내 접촉 확대

국내 접촉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대망론이 있지만 충청권은 여전히 정치의 변두리에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영·호남과 수도권 접촉을 늘려갈 것이란 예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20대 총선이 있는 4월이 지나면, 5월부터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과정이 진행된다”며 “반 총장의 일정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차기 총장 인선이 완료될 시점을 전후로 국내 방문 횟수가 늘어날 수 있다.

#⑥친인척 비리

사적인 부분에서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지난 5월28일 JTBC는 경남기업이 카타르 투자청에 ‘랜드마크72’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반 총장의 조카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해당 보도가 당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반 총장의 친인척이 반 총장의 이름을 활용했다는 정황증거 때문이다. 보도 이후 반씨 집안 가계도가 집중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사자인 조카 반주현씨는 JTBC의 보도가 있던 당일 <연합뉴스>를 통해 “결단코 (반 총장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며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서 반씨는 “(반 총장에게) 경남기업 문제를 부탁했다면 성사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국외에 있기 때문에 친인척 관리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공직자와 그 가족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피해갈 수 없다는 측면에서 향후 대선길을 좌우할 요소로 꼽힌다.

#⑦차별화 전략

반 총장은 세계정상급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력을 선보인 적은 전무하다. 따라서 주변 인물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기는 한낱 ‘일장춘몽’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충청권 신예들의 약진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반 총장만의 차별화된 모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제는 누가 뭐래도 반 총장의 출마 여부다. 수차례 대망론에 오르내렸지만, 반 총장은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반 총장의 출마에 힘을 싣는 부분이라고 정가는 보고 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친박계와의 교감설이 언론을 통해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지, 반 총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내년 4월13일로 예정된 제20대 총선 이후에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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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