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철피아 비리' 눈감아 준 검찰 추적

'VIP 측근' 이름 나오자 비리 정황 덮었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의 출구전략으로 기획된 이른바 ‘철피아’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특정 업체를 비호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납품 비리 혐의를 인지했음에도 사실상 봐주기로 일관한 것이다. 납품 비리에 연루된 회사는 부산지역 대표기업인 동일고무벨트다. 회사 대주주인 '박근혜 친인척'과 상임감사를 지낸 '기춘대원군'의 의중을 살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19일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라며 이른바 '관피아' 수사를 주문했다. 검찰은 즉각 특수부 인력을 투입해 철피아(철도+마피아) 수사에 착수했다.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된 철피아 수사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철피아 수사 당시 검찰이 외면한 납품 비리 의혹이 새롭게 확인됐다. 사건을 인지했던 검찰은 무슨 이유인지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11월 검찰의 소환 통보에 응한 '참고인'을 만나 사실을 확인했다.

취재 과정에서 복수 철도업계 관계자는 관련 배경에 '정권에 대한 눈치 보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납품 비리에 연루된 회사는 동일고무벨트,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김 의원은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사위로 박 대통령과는 인척관계다. 부친은 한나라당 등에서 5선을 지낸 김진재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아들(김 의원)에게 동일고무벨트를 물려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13년 8월까지 동일고무벨트의 상임감사를 역임했다.

지난 7월 철도시설공단 감사실은 동일고무벨트가 연루된 납품 비리 의혹을 확인했다. 철도시설공단은 납품 비리의 주범으로 알티(RT)코리아를 지목했다. 감사결과 알티코리아는 전라선 BTL사업 과정에서 시공사와 발주처 등을 속이고, 승인 받지 않은 동일고무벨트 제품을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알티코리아의 대표 김모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일고무벨트가 외압을 행사해 (할 수 없이) 허위 납품을 했다"라고 증언했다. 납품 비리는 사실로 확인됐으며 검찰은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철피아 의혹 1] 내부감사는 왜?

고무제품 제조회사인 동일고무벨트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2012년 회사 분할을 거쳐 현재는 DRB동일이란 사명을 쓰고 있다. 회사 감사보고서를 살피면 지난해 연매출은 5800억원대로 확인된다. 철도산업 분야 매출은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 알티코리아는 국내외 철도부품을 전문적으로 공급해 온 에이전시다. 규모는 작지만 철도업계에선 제법 인지도가 있는 회사로 전해진다.

철도시설공단은 지난 6월과 7월 각각 '콘크리트궤도 자재 관련 민원 검토보고' '전라선 BTL사업 궤도자재 의혹 관련 검토현황'이란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 따르면 알티코리아는 지난 2011년 6월 전라선 BTL사업에 필요한 독일산 캠플레이트 완충재 9만8040개를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알티코리아는 이중 절반인 4만9020개를 독일제로 납품하고, 나머진 동일고무벨트 제품을 독일산인 것처럼 꾸며 납품했다.

검찰 '전라선 납품 비리' 인지
동일·RT 가짜 독일제품 납품

캠플레이트 완충재는 열차가 운행할 때 궤도에 가해지는 충격 또는 온도에 따른 TCL(도상콘크리트층) 거동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탄성분리재'(TCL 중간층 재료)와 함께 쓰이는데 세부 기능은 다르지만 어린이 안전매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호남고속철도 공사 등 여러 철도건설 현장을 관리한 허모 소장은 "캠플레이트와 탄성분리재가 철도 안전상 중요한 부품"이라고 강조했다. 열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충격을 궤도가 흡수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선로 이탈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20년간 철도기관사로 재직하며 철도정책 분야를 연구해 온 박모씨 역시 "철도사고는 한 번 나면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대형사고"라며 "웬만한 철도부품은 작은 결함에도 민감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라선 철도에는 기존 설계와 다른 부품이 삽입돼 있다. 축구선수로 비유하면 왼발은 '나이키' 오른발은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은 셈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운행이 계속되다 보면 사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철도안전분야 전문가인 장모씨는 "각 제품마다 품질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구간에는 동일한 제품을 쓰는 것이 상식"이라며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시 해당 납품업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다.

납품 비리에는 형사 고발, 입찰 제한 등 강도 높은 제제가 뒤따른다. 이번 감사 직후 철도시설공단은 "위법 부당한 사실에 대해 국토교통부에 보고하고, 사업시행자(전라선철도)에게 통보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자제 납품사(알티코리아)에 대해선 형법 제231호(사문서 위·변조)를 적용해 전라선철도가 고소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전라선철도는 지난달 29일 "공단 측으로부터 고발 등 조치와 관련해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형사고발에 대해서도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같은날 철도시설공단 홍보실은 "지난 9월 중순 국토교통부 쪽에 사건 조치를 질의해 놓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다음날 통화한 국토교통부 담당자는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고, 내부 일정상 결재가 늦어졌다"라며 "안전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 비리로부터 4년이 지났음에도 각 기관이 대책 마련을 놓고 '핑퐁게임'을 하는 격이다.

[철피아 의혹 2] 부품 안정성 논란

지난 6월 기자와 통화한 김씨는 동일고무벨트의 외압을 받고 이 같은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씨는 '부탁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부탁이 아니라 외압이었다"라며 "우리는 작은 회사인데 동일 쪽에서 자기들이 완제품 만들어놨으니까 쉽게 말하면 '까불지 마라' '가만 안 둔다' 이런 식으로 나왔고 (중략) 자세한 건 문서로 남겨놨다"라고 말했다.

반면 동일고무벨트는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도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 철도시설공단은 감사 문건에서 "동일고무벨트 제품 품질에 문제가 없다"라고 결론 냈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등 다른 공사에 납품된 제품이 품질을 검증받았으므로 허위 납품된 제품의 품질 또한 같다는 논리다.
 

이들은 '공급원 승인'을 근거로 제시했다. 공급원 승인은 제품 생산업체가 공인된 시험기관에서 실험을 받고 성적서를 제출하면 발주처가 품질 검토 후 납품을 허가한 서류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품질인증서와 같은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시험기관이 발급한 시험성적서는 공급원 승인을 좌우한다.

그런데 시험기관들은 제품 시험성적서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기자는 동일고무벨트가 발급받은 캠플레이트, 탄성분리재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입수했다. 각 시험성적서를 발급한 기관은 기계연구원과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다.

이들은 모두 업체가 의뢰한 방식대로 시험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자신들은 업체가 준비한 시방서(일종의 시험가이드라인)대로 시험했다는 것이다. 시험성적서를 발급한 ㅇ박사는 지난 5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체가 원하는 대로 해준 걸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설계도와 다른 부품 사용해 안전성 논란
'김세연 대주주' '김기춘 감사' 경력 원인?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의 답변은 더욱 의문이다. 지난 3월 시험성적서를 발급한 ㅎ연구원은 "현재 그 시험은 못한다. 용역을 줘야 한다"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ㅎ연구원은 "(시방서에 적힌) 어떤 조건을 삭제하면 (발급이) 가능할 수 있다"라고 귀띔했다. 2012년 이후 동일고무벨트 외에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서 관련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은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외국계 시험기관에서 재직 중인 임모씨는 "시방서 기준이 애매하다"라며 "완벽하게 시험하려면 그 조건(E축 진동시험)도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품을 독일로 보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씨는 "사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건 기술적인 해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철피아 의혹 3] 엇갈린 자료·진술

풀리지 않는 의혹은 더 있다. 앞서 기자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철도시설공단 측으로부터 호남고속철도(1·2공구) 납품 현황에 대한 자료를 확보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1공구에는 독일산 제품이 2공구에는 동일고무벨트 제품이 각각 납품됐다. 호남고속철도 사업 역시 이번 '민원 검토보고' 대상에 포함됐다.

1공구의 경우 독일계 두 회사가 캠플레이트, 탄성분리재를 따로 납품했다. 반면 2공구는 동일고무벨트가 캠플레이트, 탄성분리재를 일괄 납품했다. 세부적으로 캠플레이트(A·B·C·D형)는 45만1934개가 납품됐고, 탄성분리재는 26만282개가 납품됐다. 제품 단가는 5760~2만2000원 선이다. 독일 제품과 비교하면 개별 단가가 오차 없이 동일했다.


그런데 당시 사업에 참여한 관계자는 1공구 시공사가 독일 제품을 주문하자 공단 측이 여러 자료를 과도하게 요구하며 납품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2공구처럼 한국산 제품을 쓰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측은 새정치민주연합 한 의원실을 방문해 "납품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철도시설공단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첫 번째 회신에서 최초 제품 단가와 수량을 잘못 기재해 전달했다. 오류를 지적하고 나서야 정정된 자료를 송부했다.

[철피아 의혹 4] 정치권 비호설 왜?

상당수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피아 수사 당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는 등 비리의 온상으로 의심됐다. 반면 지난 1년여간 취재해 온 납품 비리 건은 단 한 차례도 검찰의 사실 조회가 없었다. 복수 업계 관계자는 "김광재(사망·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때부터 말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우리 철도인들의 잘못이 크다"라고 말했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위에서 눌렀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관련 납품 비리 건은 최소 두 차례 이상 검찰 간부급에 비중 있게 보고됐지만 수사로 전환되지 않았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철피아와 관련한 재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라선 납품 비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드러나지 않은 뿌리가 더 깊다는 것이다.

관련 대목에서 철피아 수사 도중 숨진 김광재 전 이사장의 유서가 눈길을 끈다. 김 전 이사장은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라고 적었다.

한편 김세연 의원실은 지난달 30일 오후 통화에서 "의원님과 의원실 모두 관련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동일고무벨트의 운영에는 5년 전부터 관여하고 있지 않고, 대주주인 것 외에는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회사 소식을 따로 보고받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반론보도문] ㈜디알비동일 납품 비리 의혹 관련

본지는 2015. 11. 1.자 1면 내지 3면에 “VIP 이름 나오자 비리 정황 덮었나” 제목의 기사에서 주식회사 디알비동일이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전라선 BTL철도 사업을 수주한 RT코리아에 외압을 행사하여 독일제품이 아닌 승인 받지 않은 디알비동일 제품을 납품하도록 한 비리 의혹이 있고, 검찰은 디알비동일의 대주주인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과 상임감사를 역임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때문에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디알비동일은 RT코리아에 외압을 행사하여 납품에 이른 사실이 없고 RT코리아의 주문을 받아 자사 제품을 납품한 것이며, 대주주인 김세연 의원과 전 상임감사인 김기춘 전 실장 때문에 검찰로부터 비호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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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