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솜방망이 처벌’ 논란

진짜 몸통 나누고 깃털만 살짝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지난 4년간 실체가 없는 지주사라는 의혹을 꾸준히 받고 있는 회사가 있다. 삼양라면으로 유명한 삼양그룹 실질적 지주사인 ‘비글스’다. 페이퍼컴퍼니 논란까지 있는 비글스지만 관계 당국의 감독을 피해가는 모습이다. 감독당국은 하위 계열사에 변죽만 울리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양식품이 계열사에 부당지원한 사실을 확인하고 과징금 총 3억200만원을 지난달 20일 부과했다. 부당지원을 받은 회사 에코그린캠퍼 역시 100만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과징금 3억 부과
 
공정위에 따르면 에코그린캠퍼스는 삼양식품과 총수일가 등 내부 지분율이 100%에 달하는 비상장 계열사다. 원유 생산 및 목장 관광업을 하는 사업체로 강원도에서 대관령 삼양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1995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20여년 회사 임직원 총 13명에게 에코그린캠퍼스 업무를 맡기고 인건비를 대신 지급했다. 또 에코그린캠퍼스의 관광사업을 위해 삼양식품은 자사 셔틀버스를 2007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연평균 450대 이상 무상 대여했다.
 
삼양식품의 지원금액은 총 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10년간 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재무적으로 열악했던 에코그린캠퍼스는 삼양식품의 지원으로 경쟁 사업자에 비해 유리한 여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정위가 지난해 2월 모기업에서 부당지원 받은 계열사도 제재할 수 있도록 근거조항을 도입한 이후 모기업과 계열사를 함께 제재한 첫 사례다. 공정위는 “중견그룹의 부당지원 행위도 공정위의 감시 대상”이라며 “에코그린은 법 시행 유예기간(1년) 경과 이후 행위에 대해서만 제재를 받아 과징금액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양식품에 대한 제재를 두고 업계에서는 뒷말이 나온다. 삼양식품 지주사의 각종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에 내린 제재가 ‘변죽만 울리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삼양그룹은 불투명한 지배구조 탓에 많은 의혹의 시선을 받아왔다. 당장 삼양그룹은 중견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삼양식품을 제외한 모든 지주사와 계열사가 비상장사로 이뤄져 있어 내부 비리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 최근 삼양그룹이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대다수의 사례를 살펴보면 상장사에 이름을 올린 삼양식품에서부터 사정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상장사에 비해 비상장사는 상대적으로 관리 감독이 소홀해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양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비글스’에 대한 많은 의혹에 대해 감독 당국의 무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비글스는 2011년 세상에 존재를 처음 드러내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의 아들 병우씨가 지분 100%를 쥐고 계열사에 실질적인 지주사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과 법인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는 오너일가의 편법 자산 증식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검찰·국세청·공정위를 비롯한 관계 당국은 외면하는 모양새다.
 
비글스는 설립부터 의뭉스러운 모습이다. 비글스는 2007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됐는데 당시 13세였던 병우씨가 지분을 100%를 쥐고 있어 설립 자본금 출처 논란이 일었다. 특히, 2012년에는 삼양그룹의 지주사 내츄럴삼양의 지분 26.9%를 매입해 어떤 돈으로 지분을 사들였는지에 대한 의혹의 증폭됐다. 이 과정에서 내츄럴삼양의 지분을 정당한 가격에 매입했는 지에 대한 의혹도 동시에 불거졌다.
 

아울러 대표를 제외하고 종업원이 없는 회사로 알려진 비글스가 2010년 기준 6억원의 매출을 올린 상황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비글스는 내츄럴삼양의 지분을 매입해 실질적인 그룹 지주사의 영향을 행사했다. 문제는 비글스가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내츄럴삼양의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을 당시 비글스가 법인에 올린 사무실 주소가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찜질방으로 알려지면서 페이퍼컴퍼니 논란에 휩싸였다.
 
공정위 대관령목장 부당지원 사실 적발
이상한 지주사 모르쇠 “변죽만 울렸다”
 
논란이 거세지자 비글스는 회사의 주소를 오피스텔로 옮겼지만 실체가 없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옮긴 주소지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사무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법인 등기에 등록된 주소지의 사무실이 실질적으로 직원들이 운영하는 회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의혹이 재차 제기된 것이다. 설립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비글스의 설립목적은 농산물 도소매업, 수출입업, 경영컨설팅 및 기업 투자관리업과 해외기술알선-보급 및 이를 추진하기 위한 해외투자업 등이지만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양그룹 측은 비글스의 존재가 처음 언론에 나올 당시 관계를 부정하는 모양새였다.
 
 
이후 비글스가 내츄럴삼양의 최대주주이자 오너3세의 개인회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삼양그룹은 비글스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협력사일 뿐”이라며 비글스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었다. 지난 4년간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비글스와의 관계 설명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
 
비글스는 설립 과정부터 삼양그룹의 실질적인 지주사가 되기까지 많은 의혹을 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관리당국이 조사에 착수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감독 당국은 비글스에 대한 의혹 제기가 시작된지 4년이 지나고 있는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비글스가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미성년자인 병우씨가 어떤 자금으로 비글스를 설립하고 내츄럴삼양의 지분(26.9%) 인수했는지에 대한 의혹과, 정당한 대가로 내츄럴삼양의 지분을 인수 했는지에 대한 의혹이다.
 
자금 출처에 대한 의심은 국세청(증여)이, 또한 정당한 대가로 내츄럴삼양의 지분을 사들였는가에 대한 의혹은 검찰(배임)이, 수상한 매출과 관련해서는 공정위(일감몰아주기)가 각각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통상적인 것으로 보여지지만 비글스에 대한 의혹이 지난 4년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도 관련 당국의 어떠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미성년자인 병우 씨가 설립한 자금의 출처와 관련한 내용은 국세청 소관 업무가 맞다”면서도 “해당 사안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감독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삼양그룹이 각종 의혹 제기에 좀더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독당국 무관심
 
감독당국 관계자는 삼양그룹과 관련된 논란이 지속된 데 대해 “비글스의 경우 제기된 의혹이 많아 감독 당국 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면서 “삼양그룹이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이 아닌 중견기업이기 때문에 감독당국의 시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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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