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반문연대 뜨는 이유

'친문 vs 반문' 이미 쪼개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다 죽는다. 뭉쳐야 하는데 반문(반 문재인)만한 명분이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이 연대를 위해 12인 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현역 의원들의 참여가 절실한 이들은 반문을 기치로 내걸고 새정치연합 내 비노 진영 인사들과 연대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천정배 신당, 박주선 신당, 박준영 신당, 안철수계 신당, 민주당, 정의당 등 4자연대 신당까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내 신당 창당 움직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야권 신당의 난립은 야권 전체의 몰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야권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이 최근 연대를 위해 ‘12인 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야권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함께 해보자는 의미에서 각 계파에서 2명씩 파견해 12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무실도 함께 운영하자는 논의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신당 우후죽순
반문으로 뭉쳐라

야권의 한 관계자는 “통합 신당 창당을 위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차피 이대로 선거에 나가면 야권은 다 죽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년 총선 전 통합 야권 신당이 출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통합을 위한 마땅한 명분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각 당마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은 반문이라는 것인데 정치는 원래 100가지가 달라도 한 가지가 같다면 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선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들이 정책이나 정치 노선 등을 통합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일단 반문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구심점으로 느슨한 연대를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라는 것이다.


비노진영 다시 정치적 기지개 펼까
친노패권 청산 못하면 백약이 무효

현역 의원들의 참여가 절실한 야권 신당으로서는 반문을 기치로 내걸면 새정치연합 내 비노 진영 인사들과 연대하기도 쉬워진다. 현재 비노 인사들은 친노 세력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신당 추진 인사들은 비노 인사들이 당 혁신위원회의 공천안 등에 반발해 곧 추가 탈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현재 야권 내 신당 난립 현상은 호남 내 반문 정서가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통합 신당은 사실상 반문 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 신당들이 반문을 기치로 내걸고 통합하면 현재 새정치연합 혁신위로부터 사실상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호남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의 신당 참여가 봇물을 이룰 수도 있다.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력한 대권주자가 있어야 하는데 문재인 대표에 가려져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이 희박해진 유력 대권주자들의 신당 참여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미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탈당하면서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 없는 친노 패권정당이라는 점이라고 꼬집고 반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박 의원 외에도 현재 야권 신당 추진 세력들은 너도나도 새정치연합 내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문 대표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고

지난달 30일에는 비노 진영에서 문 대표의 대항마로 손꼽히는 안철수 의원의 측근들이 탈노(탈 노무현)를 전면에 내세운 ‘국민공감’이라는 단체를 출범시켜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야권 분열의 근원은 친노 대 비노의 프레임이라면서 이제는 야권이 탈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론적인 주장일 수도 있지만 평소 자신은 친노고 친노라는 점이 부끄럽지도 않다고 당당하게 말해온 문 대표로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막상 국민공감의 뚜껑을 열어보니 정치권에서는 탈노가 아니라 반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김근식 상임대표는 “(뇌물수수로 구속된)한명숙 전 총리는 훌륭한 민주투사가 되고 새누리당의 구속된 사람은 적이 되는 이런 이중잣대를 더 이상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며 한 전 총리를 옹호해온 문 대표를 직접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현재 국민공감에는 상임대표를 맡은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비롯해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김경록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등 지난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공감이 안 의원의 외곽지원조직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원래는 발족식에 참석하기로 했던 안 의원은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축사만 보냈다.
 

국민공감 발족식에는 문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비노계 이종걸 원내대표와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 등이 축사자로 나섰다. 천 의원은 이날 축사를 통해 “국민공감 발족 선언문이 제 입맛에 딱 맞다”며 “신당은 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 계신 개혁적인 분들이 함께해주시기를 호소한다”고 했다. 국민공감을 잠재적 신당 세력으로 보고 자신과 함께 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또 안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지난달 30일 전격 회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당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당내 친노 진영과 비노 진영의 극한 대립에도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던 김 의원이 다시 전면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표의 재신임 승부수 이후 완전히 당내 세력 싸움에서 밀린 비노 진영이 전열 정비 후 반격에 나서려는 모양새다.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은 반문 연대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안 의원의 영입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주선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안 의원이 주장하는 혁신 방향이 문 대표 체제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안 의원이 당에 머무를 명분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깜짝 재신임 카드로 사그라들었던 당내 비노계의 문 대표 흔들기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논란으로 재점화됐다.

안 의원의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은 최근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문 대표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모바일 동원력이 강한 친노 진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룰이라는 것이 비노 진영의 주장이다.

정치적 지향점 달라
반문 유일한 공통점

문 대표가 김무성 대표와의 부산회동에서 비례대표 축소는 절대 안 된다고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남권 의원들의 반문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줄여서라도 농어촌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문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새정치연합에서 농어촌 의원의 상당수는 호남이 지역구다. 문 대표의 비례대표 축소 불가 방침이 호남 의원들을 자극하면서 새정치연합 분열의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의원은 문 대표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탈당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호남과 문 대표의 정서적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호남 중심의 반문 연대 신당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호남에서 문 대표와 친노 진영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고, 현재 야권에서  천정배, 박주선 의원 등이 모두 호남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호남권 중심의 반문 연대 신당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야권 신당 통합작업 시작
반문 구심점 느슨한 연대


문 대표를 비롯한 친문(친 문재인) 세력을 친노 영남 패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반친노 호남 중심의 야권 개편을 시도하면 내년 총선에서 호남에서만큼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신당은 지역주의를 배제하고 반드시 전국적인 정당으로 발족해야 한다. 일부 신당 추진 세력들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고 보자는 절박감으로 이런 유혹에 현혹되고 있다”며 “호남 중심의 야권 신당을 출범시킨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신당 세력은 물론이고 당내 비노 진영도 반문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뭉치는 듯한 모양새가 되면서 문 대표로서는 정치적으로 무척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신당 세력이 반문이라는 기치아래 뭉쳐 문 대표를 향해 집중포화를 쏟아 부으면 그 과정에서 문 대표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다만 변수는 문 대표의 비주류 끌어안기 행보다. 문 대표는 재신임 정국 이후 최고위원들을 자택에 초대해 만찬을 갖는 등 비주류 끌어안기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노 진영 인사들을 대거 포함시키는 특보단을 꾸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친노패권 끔찍
패권척결이 혁신

이에 대해 친노 진영의 한 관계자는 “비노 진영이 강력하게 반발했던 중앙위에서도 비노 인사들이 우루루 나갈 줄 알았는데 몇 명이나 나갔나? 당내 반문 세력의 실체다. 그냥 몇몇 사람이 시끄럽게 떠드는 수준”이라며 “반문을 구심점으로 신당을 창당한다면 공천 탈락한 떨거지 같은 인사들 끌어들이기는 수월하겠지만 과연 어떤 유권자들이 표를 줄지 의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또 “결국 신당을 추진하는 인사들이 비전도 없고 정치적 지향점도 모호하니 그런 무리수를 두려는 것 아니겠냐”며 “신당을 창당하려는 이유가 고작 공천 탈락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국민들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친노 세력이 당을 장악하면서 새정치연합은 민생무시 수구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문 대표와 친노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제1의 목표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 없이는 어떤 혁신도 무의미한 상황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해주실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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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