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②그들은 어떻게?

“한번 죽이면 또 죽이고 싶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913건의 살인범죄가 발생했다. 이 중 총기, 칼, 독극물 등을 이용한 소지범죄가 771건, 미소지범죄가 142건으로 조사됐다. <일요시사>에서는 범행 강도가 높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유형별로 정리해봤다.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치정, 원한, 재물(강도), 정신병으로 인한 살인이 일반적이나 장기간에 걸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도 더러 발생한다.

대한민국 발칵 연쇄살인

연쇄살인은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살인범과 피해자 사이에 원한, 치정, 채무 등의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에 행해지는 살인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은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대구동구연쇄살인사건’ ‘정두영연쇄살인사건’ ‘유영철연쇄살인사건’ ‘서울서남부연쇄살인사건’ ‘경기서남부부녀자연쇄살인사건’ 등 7건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은 1975년에 발생한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사건’이다. 살인범 김대두(당시 27세)는 8월13일부터 10월7일까지 55일간 전남 광산군민 안종현(당시 63)씨를 시작으로 경기도 평택, 양주, 시흥, 수원 등 전국 9개 지역의 외딴집에서 17명을 살해했다.

가장 참혹한 살인으로는 평택의 외딴 초가집에 살던 할머니(당시 71)와 손주(당시 5·7·11세)를 장도리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과 시흥군의 20대 여성을 강간한 후 부엌칼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이 꼽힌다. 시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자녀인 생후 3개월 된 아기도 발로 짓밟아 내장 파열시켜 살해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세탁소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김대두는 1976년 12월28일에 사형됐다.


다음으로 알려진 연쇄살인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재조명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1986년 9월19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여성 10명이 살해된 이 사건은 2006년 4월2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1986년 9월1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서 하의가 벗겨진 노인(당시 71세)이 목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 데 이어 불특정 다수 여성 9명이 강간 살해됐다.
 

피해자 전원이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살해돼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80만명의 경찰이 동원돼 수사를 벌였으나 3000여명이 용의자로 지목된 채 미제사건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이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져 항간에 ‘화성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1997년 2월20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도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살인범 이승수(당시 21세)는 함께 잠을 자던 김(당시 27세)씨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데 격분해 흉기로 살해한 후 도주했다. 50m 근방의 분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려다 “식사 안 된다”는 종업원 이모양(18세)의 말에 또 다시 격분해 이양을 살해했으며 새벽기도를 가던 60대 여성도 살해했다. 총 4명을 살해한 이승수는 사형을 선고받아 현재도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 김찬일(당시 43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11년간 복역한 정두영(당시 32세)은 출소 직후인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6번의 강도짓을 하고 9명을 살해했다. 부산과 울산 등 경남 일대에서 살인강도 행각을 벌인 정두영은 충남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체포됐다.

1999년 6월2일 부산 서구 부민동의 한 부유층 주택에 무단침입한 정두영은 가정부의 머리와 얼굴이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해 살해했으며 2000년 3월11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고급 주택에서 두 명의 여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했다. 같은 해 4월8일에는 DCM철강 정진태 회장의 자택에 침입해 정회장과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유영철(당시 34세)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은 주로 80대 이상의 노인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으며 8월13일 구속 기소돼 ‘이문동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 사형 선고를 받았다. 미국 잡지 <라이프>의 ‘20세기 대표 연쇄살인자 30인’에 선정돼 역대 최악의 살인마로 통한다.

유영철과 살인수법이 비슷한 살인범 정남규는 2004년 2월26일부터 2년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월14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공터 놀이터에서 놀던 초등학생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인근 야산에 암매장한 데 이어 20대 여성 두 명도 둔기로 가격해 살해했다.


또 조선족 김모씨는 옆구리와 가슴 등 4곳을 칼에 찔렸고,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배달을 하던 김모씨도 20차례 칼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유행으로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주목받은 정남규는 2006년 4월22일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남규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납치·살해된 ‘경기서남부부녀자연쇄살인사건’도 발생했다. 강호순은 납치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인근 절벽 및 농가에 암매장했다. 

길가다 ‘푹’ 묻지마살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들이 있는가 하면, 동시간대에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 살해한 묻지마살인범들도 최근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군부대의 총기난사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82년 4월26일, 청와대 근무요원을 지낸 우범곤 순경(당시 26세)이 지방 발령 및 동거녀와의 불화에 인근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훔친 후 62명을 살해하고 3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우범곤은 우체국에 들러 집배원과 전화교화원을 살해해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경남 의령군 궁류면 일대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트렸다. 이튿날 새벽 5시 평촌리의 한 가정집에서 자고 있던 일가족 5명을 깨워 함께 자폭했다.

1991년 10월17일,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는 농부 김정수(당시 29세)가 무대 위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16명이 사망했다. 그는 옷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 받자 격분해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아동황산테러사건’은 1999년 5월20일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김태완(당시 6세)군이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황산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황산테러를 당한 김태완군은 실명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49일 만에 숨졌다. 경찰은 2013년과 2014년에 재수사를 벌였으나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다. 이 사건은 2014년 7월7일부로 공시시효가 만료됐다.

최대 참사로 꼽히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는 지난 2003년 2월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했다. 이 화재참사로 19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됐으며 151명이 부상당했다.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은 경찰 조사에서 뇌졸중으로 오른쪽 상·하반신의 장애 및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되자 삶을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대한은 이듬해인 2004년 8월30일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
 

2005년 6월19일에 발생한 ‘연천군부대총기난사사건’으로 28사단 소속 GP 간부 1명과 병사 7명이 사망했다.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4발을 난사해 현장에서 8명 모두 즉사했다. 당시 연천군총기사건유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련해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닌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김동민 일병은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5월13일에는 서울 서초구 소재의 한 예비군훈련장에서 사격훈련 도중 한 예비군이 동료 예비군 4명에게 총기를 난사해 3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자살한 가해자에게서 범행 계획을 적은 유서가 발견됐다.

벌레 취급하는 엽기살인


살인범들은 살해 대상자에게 독극물을 먹이거나 살인 후 사체를 토막 내는 등 극악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파주전기톱살인사건’과 ‘시화호토막살인사건’, ‘상주농약사이다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4월1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던 조선족 오원춘이 28세 여성을 납치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범행 직전 여성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경찰이 주변을 수사하던 중 스패너로 여성을 내려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오원춘은 사체를 358점으로 토막내 여행용 가방과 비닐봉지에 담아 팔달산에 버렸다. 검찰은 오원춘이 장기매매 목적으로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원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지난해 5월26일, 파주에서 핸드폰 채팅어플로 성매매를 해온 A(당시 37세, 여)씨가 모텔에서 성매수자 B(당시 50세, 남)씨의 신체 41곳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A씨는 B씨의 사체를 전기톱으로 토막 낸 후 인천 남동구의 한 공장 앞과 파주시의 농수로에 상·하반신을 나눠 버렸다. A씨는 범행 직후 B씨의 신용카드로 귀금속을 구매하고 다른 남성과의 성매매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A씨에 대해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4일, 수원시의 팔달산에서 얼굴과 팔, 다리가 없는 상반신 사체가 비닐봉투에 담긴 채 발견됐다. 당시 신장으로 추정되는 장기 일부만 있고 심장, 간 등의 주요 장기는 없었다. 사체 발견 지역은 오원춘 사건 발생 지역에서 1km도 채 되지 않은 곳이었다.

일주일 후 수원천 매세교 인근에서 검은색 비닐봉투에 담긴 살점과 속옷이 추가 발견됐다. 두 장소에서 발견된 사체 일부가 동일인이라는 국과수 감정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피해자와 동거한 박춘봉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월4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일대에서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 인근 거주자 박(당시 67세, 여)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박씨의 별채에 불이 난 점 등을 수상히 여겨 별채에 세 들어 살던 김(당시 58세, 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조사 결과, 김씨가 내다버린 육절기(고기뼈를 자르는 기계)에서 박씨의 혈흔과 인체 조직이 발견됐으며 인터넷에 ‘인체해부학’ 등을 검색한 사실을 확보해 김씨를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박씨가 김씨의 구애를 거절하고 방을 빼라고 한 데 앙심을 품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7일, 조선족 김하일이 토막 사체를 유기하다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방조제에서 토막난 김하일의 부인 사체가 발견된 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김하일은 부부싸움에 우발적으로 아내를 망치로 때린 후 목 졸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하일은 아내의 사체를 화장실에서 부엌칼로 토막낸 후 시화방조제와 조카의 집 등 4곳에 유기했다.

지난 7월14일,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금계1리의 한 마을에서 초복 잔치를 하던 7명의 할머니가 사이다를 마신 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태에 빠졌다. 3일 후 초복 잔치에 동석했으나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모(당시 82세) 할머니가 긴급 체포됐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오는 12월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기사 속 기사> 살인사건 최다 발생지역 "역시 살인의 추억"
경기 화성시 태안읍 불명예, 10건 중 4건 '집안'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 범죄자를 중심으로’연구자료에 따르면, 살인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집안’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0년간 살인사건의 발생장소를 취합한 결과, 집안 발생이 41∼45%의 비율로 나타났으며, 이어 노상(16∼19%), 기타(12∼18%), 숙박 및 유흥업소(8∼10%), 상점 및 시장(2~5%), 야외(1∼5%) 순으로 나타났다. 이외 사무실과 공사장·창고·공지, 기관의 살인범죄 비율은 1∼3%대였다. 10년간 평균치는 집안(43.4%), 노상(18.3%), 기타(15.1%), 숙박·유흥업소(9.2%), 야외(3.5%), 상점·시장(3.4%), 사무실(2.3%), 공사장·창고·공지(2.1%), 기관(1.9%), 교통수단(0.8%) 순이다.

살인범죄를 포함한 전체 범죄 발생도가 가장 높은 장소는 노상(60.8%), 기타(11.1%), 집안(10.4%), 숙박·유흥업소(5.1%) 순으로 나타나 살인범죄 발생 장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최다 발생 지역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으로 나타났다.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3명, 안녕리에서 2명, 황계리·병점리에서 각 1명씩 살해돼 총 7명이 살해됐다. <혁>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