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칸의 남자’ 봉준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6.03 10:17:20
  • 호수 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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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만에 일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봉준호 감독이 칸국제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최초로 100년 역사상 최고의 쾌거다. 단편영화로 일찍이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던 봉 감독은 떡잎부터 달랐다. 
 

▲ <기생충>으로 ‘칸의 남자’가 된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저녁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서 진행된 폐막식서 올해 수상 결과를 발표했다. 

독특한 감독
위대한 배우

봉 감독의 <기생충>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장피에르 다르덴과 뤼크 다르덴의 <영 아메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 등 21개 작품 가운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결정됐다”며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기생충>이라고 발표했다. 

봉 감독은 수상자로 호명되자 자신의 페르소나이자 <기생충>의 주연 배우인 송강호와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프랑스의 대배우 카트린 드뇌브에게 트로피를 받은 봉 감독은 “메르시(Merci·감사합니다)”라고 짧게 프랑스어로 인사한 뒤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큰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은 저와 함께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스태프와 제작·투자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찍지 못했을 영화다.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배우 송강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송강호는 “배우로서 인내심과 슬기로움, 그리고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 분들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며 한국 배우들에게 수상의 공을 돌렸다.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봉 감독은 “저는 12세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질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고 수상 소감을 마쳤다.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고급 저택에 사는 부유한 가족, 두 가족을 통해 빈부격차로 양극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 계층·계급 갈등, 부유층의 허영과 위선·무관심, 개인주의와 공동체 의식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서 <기생충>에 대해 “재밌고 유머러스하며 따뜻한 영화”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그는 수상작 선정에 대해 “우리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유로 수상작을 결정하지 않는다. 감독이 누구고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영화 그 자체로만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2000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첫 진출한 이후 19년 만에 거둔 쾌거다. 아시아 국가로선 일본과 중국, 이란, 태국에 이어 다섯 번째 영예, 아시아 영화로선 아홉 번째 수상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맞이한 경사라 더 의미가 깊다.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상 수상 영예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영화는 칸영화제와 그다지 인연이 없었다.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정도였다. 


칸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었던 것과는 달랐다. 베를린영화제는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에 은곰상을, 베니스영화제는 1987년 <씨받이>(감독 임권택)의 배우 강수연에게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여했다.

칸영화제와 한국영화의 본격적인 인연은 2000년에 시작됐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후 한국영화는 칸의 단골손님이 됐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두 편이 초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04년 <올드보이>(감독 박찬욱)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감독 홍상수) 두 편이 경쟁부문에 초대됐다. 2007년엔 <밀양>(감독 이창동)과 <숨>(감독 김기덕)이, 2010년엔 <시>(감독 이창동)와 <하녀>(감독 임상수), 2012년엔 <돈의 맛>(감독 임상수)과 <다른 나라에서>(감독 홍상수)가 나란히 경쟁부문 초대장을 받았다. 

2016년에도 <아가씨>(감독 박찬욱)와 <그후>(감독 홍상수)가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2017년에는 <옥자>를 포함해 16편이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16전17기인 셈이다.

2002년 <취화선>이 칸영화제서 감독상(임권택)을 받으면서 수상의 물꼬가 텄다. 2004년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 2007년 <밀양>의 배우 전도연이 최우수여자배우상, 2009년 <박쥐>(감독 박찬욱)가 심사위원상, 2010년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2010년 <하하하>(감독 홍상수), 2011년 <아리랑>(감독 김기덕)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각각 수상했다. 

지난해까지 경쟁부분 상 중에서 받지 못한 상은 황금종려상과 최우수남자배우상뿐이었다. 단편부문에선 문병곤 감독이 2013년 <셰이프>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 감독은 그동안 칸영화제의 주요 초대객 중 한 명이었다. 2008년 옴니버스영화 <도쿄!>와 2009년 <마더>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다. 2011년엔 신진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보고 싶다”

2017년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 제작 영화 <옥자>가 경쟁부문에 처음 올랐으나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라는 넷플릭스의 사업 방식에 프랑스 영화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영화제 초반 “극장서 상영되지 않을 영화에 상을 줄 수 없다”고 공언하면서 일찌감치 수상권서 멀어졌다.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세계적 보편성을 지녔음을 공인받았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더구나 칸영화제를 안방처럼 드나드는 세계적 감독들을 물리치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더욱 가치가 빛난다. 장르영화에 상 주기를 꺼리는 칸영화제의 기존 관성을 뚫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받았다는 것도 수상의 의미를 높인다.

수상 소식에 각계각층의 축전도 이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도 봉 감독을 축하했다.

영진위는 “<기생충>의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물론이고, 영화의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성취를 위해 영화인들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한국영화가 태동한 지 100년을 맞이한 해에 얻은 결과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며 “축적된 한국영화 역사 100년의 저력이 그 바탕이며 한국영화를 열정적으로 아끼는 국민의 성원이 함께 이룬 성과”라고 덧붙였다.

봉 감독의 수상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도 빨리 영화를 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기생충>이 지난 1년 제작된 모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며 “매우 영예로운 일”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어 “무엇보다 열두 살 시절부터 꿔온 꿈을 차곡차곡 쌓아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선 봉준호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우리의 일상서 출발해 그 일상의 역동성과 소중함을 보여준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삶에서 찾은 이야기들이 참 대단하다. 이번 영화 <기생충>도 너무 궁금하고 빨리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추기경)도 봉 감독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염 추기경은 “(수상 소식에) 국민 모두 기쁨과 자긍심을 느꼈다”며 봉 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 관계자 모두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밝혔다. 이어 “특히 영화 <기생충>을 제작하는 동안 표준근로계약을 지켰다는 감독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며 “영화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의 노동 환경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 역시 봉 감독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여당과 바른미래당은 봉 감독이 ‘주52시간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영화제서 최고상을 수상했다”며 “봉 감독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높은 수준의 감성으로 해석했고, 이번 수상으로 한국영화계의 경사를 이뤘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봉 감독의 수상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주52시간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영화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불편함을 봉 감독이 감내했기 때문이다. 좋은 제작과정이 훌륭한 영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했다.


배우 출신인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축하인사를 전했다. 오 원내대표는 “2019년이 한국영화가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문화 예술이 세계문화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뜻깊은 수상을 하게 됐다”며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과 저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송강호, 이선균 배우, 모든 관계자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금의환향’
영화계 경사

바른미래당 채이배 정책위의장은 “영화계 노동현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장시간 노동에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영화 <기생충>은 근로기준법 등을 지키며 만든 작품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제작 환경이 한 걸음 나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봉 감독은 <기생충> 촬영 시 노동 사각지대에 있는 스탭들과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생충>은 스탭들의 표준근로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완성된 작품임이 알려져 팬들의 더욱 큰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봉 감독은 “<기생충>만 유별난 건 아니고 2~3년 전부터 영화 스탭들의 급여나 그런 건 정상적으로 정리가 됐다”며 “영화인들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 칸 영화제

봉 감독은 열악한 근무 조건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영화 스텝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처우 개선에 노력했다. 이 같은 인식과 실천에 의해 영화 <기생충>은 스텝 모두가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는 등의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영화를 촬영했다. 이번 봉 감독의 수상은 그동안 ‘근로기준법 등을 준수하면 제대로 된 작품을 찍을 수 없다’는 사용자 논리가 횡행하던 한국 영화계 세태를 보기 좋게 날려버린 쾌거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1969년 9월14일 대구 출생으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교수인 봉상균씨,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인 박소영씨다. 형인 준수씨는 서울대 교수, 누나인 지희씨는 패션디자이너이자 국제문화협회 이사로 지식인과 예술가 집안의 출신인 셈이다. 아내는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정선영씨고, 아들 봉효민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감독이 됐다.

봉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아카데미서 1년 동안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학보 <연세춘추>에 시사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봉 감독은 습작 시절부터 일찌감치 충무로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는데, 1994년 제작한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 <지리멸렬>은 영화 애호가들 사이서 화제를 일으켰다. 이들 작품은 1994년 밴쿠버와 홍콩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위대한 배우 없으면 못 찍었을 것”
충무로 잔칫집 분위기…각계서 축전

봉 감독은 31세였던 2000년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로 입봉했다. 사라진 개를 둘러싼 일대 소동극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들춘 이 영화는 홍콩 국제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봉 감독은 여러 인터뷰서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의 기호에 대해 절실히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봉 감독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03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였다. <살인의 추억>은 그해 최대 흥행을 거두고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 면에서 특히 호평을 받았다. 이후 <괴물>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당시 대한민국 역대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다.

2009년에는 스릴러 영화 <마더>로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2013년 제작한 SF 영화 <설국열차>는 167개국에 판매돼 역대 한국영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 <옥자>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전 세계 190개국을 통해 <옥자>를 공개했다. 그는 이 영화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국제비평가연맹상과 디렉터스 컷 시상식 감독상, 국제환경미디어협회상 작품상 수상, PETA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쳤다. 

봉 감독은 지난 10년간 정부 차원서 관리했던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봉 감독은 이명박·박근혜정권 당시 감시와 배제의 타깃이었다.  

당시 국정원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82명 중 60명이 영화인이었는데, 봉 감독을 포함해 이창동, 박찬욱, 문성근, 권해효, 문소리, 김민선, 유준상 등이 망라됐다. 정권 초기부터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대중적인 파급력이 높은 영화를 집중 단속하려고 했던 결과였다.

이·박 시절
블랙리스트에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보고서에는 이명박·박근혜정권서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지목한 상업영화 15편의 목록과 그 이유가 나온다. 봉 감독의 작품으로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가 포함돼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서도 호평받은 이 작품들을 두고 블랙리스트에서는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며 국민 의식을 좌경화”(<괴물>)한다거나 “공무원·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살인의 추억>)한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설국열차>)고 단정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수상작

▲황금종려상-봉준호 <기생충>
▲심사위원대상-마티 디옵 <아틀란틱스>
▲심사위원상-라즈 리 <레 미제라블>, 클레버 멘돈사 필로 <바쿠라우>
▲남우주연상-안토니오 반데라스 <페인 앤 글로리>
▲감독상-장 피에르·뤼크 다르덴 <영 아메드>
▲여우주연상-에밀리 비샴 <리틀 조>
▲각본상-셀린 시아마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특별심사위원언급상-엘리아 술레이만 <잇 머스트 비 헤븐>
▲황금카메라상-세사르 디아스 <누에스트라 마드레스>
▲단편 황금종려상-바실리스 케카토스 <더 디스턴스 비트윈 어스 앤 더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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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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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