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쥐락펴락 증권가 슈퍼개미들 정체

대박 아니면 쪽박 ‘중박은 없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주식시장에서 개미는 약한 존재다. 기관에 치이고 외국에 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개미 중에는 기업의 주가 흐름을 바꿔 놓을 만한 ‘머니파워’를 가진 개미도 있다. 이들을 시장에선 ‘슈퍼개미’라고 부른다. 그들을 조명했다.

지난달 주식시장에 눈길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박영옥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슈퍼개미 박영옥씨(현 스마트인컴 대표)가 투자한 기업들에 주가조작설이 돌면서 해당 기업들이 줄줄이 하한가를 맞았다. 

잇단 불패신화 
투자처에 관심
 
급락을 맞은 종목을 살펴보면 조광피혁, 대한방직, 디씨엠, 삼양통상, 아이에스동서 등 박영옥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기업에서 큰폭 하락했다. 금융조사 당국은 공식적으로 ‘박영옥 주가조작설’에 대한 소문에 사실무근이는 입장을 밝혔다.
 
거래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관련 종목에 대해 모니터링 중인데 시장 루머처럼 세무조사 등 불공정거래 관련 특이사항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시장 심리가 워낙 안 좋고, 악재에 민감한 코스닥 종목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다른 종목 대비 과도하게 빠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박영옥 사태는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슈퍼개미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됐다.
 

주식시장 판을 쥐고 흔든 박영옥씨는 전형적인 개미의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그는 가난했다. 그래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는 중졸이었던 학력을 극복하기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후 중앙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라는 학력은 자연스럽게 주식시장으로 그를 인도했다.
 
졸업 이후 대신증권, 교보증권 등을 거치며 주식시장에서 전문가로 거듭났다. 1997년에는 교보증권 압구정 지점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IMF 여파로 사글세를 전전하는 등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 개미가 됐다. 그가 가지고 있던 종잣돈은 4500만원.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01년 9·11 대테러로 주가가 폭락했을 당시 주식을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연 수익률 50%(지난해 기준)의 연 평균 수익률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슈퍼개미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있는 자산은 2000억원 수준으로 그는 기업 ‘사냥꾼’의 심정이 아닌 ‘농부’의 마음을 기본으로 하는 투자법을 설파하고 있다.
 
코스피·코스닥 미다스 손 ‘누구냐 니들’
주식시장 스타들…베팅 천재? 먹튀 본좌?
 
김봉수 카이스트 교수도 슈퍼개미로 통한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25일 부산방직의 주식을 5%이상 매수하면서 최고주주에 올르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주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교수의 월급으로 생활이 빠듯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교수 월급으로 자녀들의 결혼자금과 자신의 노후자금 그리고 생활비까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 주식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그는 주식관련 책 200권을 구입해 6개월 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그가 책을 통해 내린 결론은 국내 주식시장이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산대비 시가총액의 수준이 현저히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기본 투자원칙으로 삼았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지인과 은행대출을 통해 3억원의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10년만에 500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의 워렌버핏'으로 통한다.
 

손명완씨도 슈퍼개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사다. 경리일을 하던 손씨는 외환위기 때 주식을 시작해 숱한 실패를 맛봤다. 여기까지는 개미들이 겪는 흔한 주식 실패담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손씨는 실패를 바탕으로 투자원칙을 세우면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장기간 보유한 주식이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가치투자에 눈을 뜬 손씨는 5000만원의 초기 자본금을 1000억원대로 불렸다. 그가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18곳이다. 동원금속의 경우는 22.7%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단순 투자목적으로 이들 기업에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가 지분을 사고파는 것을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손씨의 입김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성훈씨도 로만손의 지분 8.3%(6월30일 기준)을 쥐고 있는 슈퍼개미다. 2003년 처음 주식을 시작한 정씨는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감에 의한 투자를 고수했다. 그 감이 처음에는 통한 듯 했다. 초기 자본금 400만원을 처음 투자한 ‘현대상선’은 이라크 발 이슈로 3배 가까이 폭등했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확고한 투자철학
성공투자 밑거름
 
가족들의 돈 1억원을 끌어모은 자금으로 그는 더 큰 수익을 내려했지만 30%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업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한 투자철학을 구축했다. 결국 그는 슈퍼개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현재 쥐고 있는 주식의 평가액은 대략 260억원(7월 기준)이다. 중소형 기업들에게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 교수의 아들 한세희씨도 슈퍼개미다. 그가 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포항제철 주식을 손주의 명의로 7주를 사주면서 그에게 주식시장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한 것은 대학 3학년(1998년)부터였다. 당시는 IMF로 바닥을 알 수 없던 시기였다.
 
종잣돈은 그동안 모아둔 400만원 남짓. 이 돈은 83억원(7월 기준)으로 불어났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처음 산 ‘나산’의 주식은 매수한지 하루만에 상장폐지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한씨는 모든 생활을 주식에 맞췄다. 온라인 주식투자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고, 여기서 만난 인연들과 합숙을 하기도 하면서 ‘내공’을 쌓아갔다. 결국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기업을 보는 눈을 키운 한씨는 하이트론씨스템즈를 24.5%(6월 기준)를 보유하면서 이 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또한 자신에게 수익을 안겨준 회사의 일부 주식(평가가치 3억원)을 해당 회사 임직원들에게 기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주식의 소유주가 일부 임원급에 주식을 나누주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직원들에게까지 주식을 나눠주는 사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주식을 기부하면서 “돈은 버는 것 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지한씨도 슈퍼개미다. 그가 보유한 주식 평가액(24억원)이 큰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일제지를 7.19% 보유하면서 3대주주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배씨의 직업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반찬가게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관련 커뮤니티에 반찬가게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면서 ‘반찬가게 슈퍼개미’라는 애칭이 붙었다.
 
부실기업 투자해 수백억원 차익
이면에 투자 기법·의도 논란도
 

이주영씨도 젊은 나이에 투자를 시작해 슈퍼개미로 발돋움했다. 그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어머니가 주식에 투자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머니로부터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연스레 투자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 결국 이씨는 스무살 무일푼에서 10년만에 100억대의 자산가로 성장했다. 현재 그는 방송 등에 출연하며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의 선생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격투가 출신 슈퍼개미도 있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는 고명환씨. 고 씨는 연간 10억원이 넘는 투자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잘나가던 파이터였다. 프로무대에서 그는 총 11번 싸워 10승(1패)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본인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해 과감히 격투가의 삶을 접었다. 그는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대한통운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 생활 중에 결혼을 하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직장 생활 중 우연히 알게 된 주식시장은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주식을 통해 하루에 수십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의 ‘파이터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그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다. 그가 투자에 나선 시기는 리먼 사태 이후 주식시장이 평가절하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가 감으로 찍은 주식은 우상향했다. 고씨가 투자한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전주, 테마주 등 감에 의존한 투자가 원인이 됐다. 어느새 그는 3억원에 가까운 빚을 져야했다. 그는 위기의 순간 기본으로 돌아갔다.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기초로, 글로벌 경제에 대한 흐름을 접목시켜 이른바 ‘수급단타매매기법’이라는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세운 것이다. 결국 그는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고씨는 연 수익률 10억원을 올리는 슈퍼개미로 성장했으며, 현재 증권투자 아카데미의 스타강사로 개미들에게 투자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전주의 ‘목포 세발낙지’ J모씨는 몰락한 슈퍼개미로 통한다. 90년대 중후반 증권사에서 잘나가던 목포 세발낙지는 이후 개인투자자로 전업했다. 전업 초기 그는 승승장구 했지만 이후 시장의 흐름을 읽는 데 실패하면서 개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최근 그는 무리하게 지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고소를 당했으며, 법원은 기소된 J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몰락한 개미들
의혹의 개미들
 
최근에는 B씨가 슈퍼개미 사칭 논란에 휘말렸다. 그는 인기 케이블 방송 등에 출연하며 국내 최연소 애널리스트라는 점과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자랑했다. 하지만 A 신문사가 그의 최연소 애널리스트 기록과 그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개미투자자들 사이에 의혹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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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