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재벌가’ 골육상쟁 흑역사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재계에 물고 물리는 골육상쟁이 시작됐다. 롯데가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재계에서는 ‘피보다 진한 것이 돈(경영권)’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거에도 재계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아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골육상쟁’의 흑역사를 정리했다.

지난달 말 재계를 뒤흔든 사건이 터졌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전격 해임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해임하려다 역풍을 맞고 해임당한 사실까지 추가로 알려지면서 가족간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열렸다.

'형님-아우 전쟁' 형제끼리 한판 

재계에서는 그동안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동주 전 부회장이 부각되면서 형제의 난이 본격화 되는 모습이다. 현재 신 총괄회장을 비롯해 장녀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등이 신 전 부회장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 동주·동빈 형제의 난은 ‘반동빈VS동빈’ 구도로 확대됐다. 

재계 1위 삼성가도 형제의 난으로 몸살을 앓았다. 2012년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남긴 유산을 두고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CJ그룹) 회장과 3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간 법정 다툼을 벌였다. 이맹희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주식을 아버지 이 초대 회장의 유산으로 받았는데 이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차명 주식을 이 회장이 가져갔다며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맹희 회장은 1심에서 패한 뒤 극적으로 화해를 하며 서둘러 왕자의 난을 수습했다.

 

두산그룹은 삼성보다 더 비참한 골육상쟁을 벌였다. 두산그룹의 창업주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차남인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은 두산그룹 총수까지 올랐지만 2005년 가족회의에서 3남 박용성 전 회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갈등의 씨앗’이 발아했다.


박용오 전 회장은 자신을 회장직에서 내린 것이 형 박용곤 회장(당시)과 박용만 부회장의 계획 하에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비자금 폭로전을 벌였다. 진흙탕 싸움을 벌인 대가는 컸다. 박용오 전 회장과 용성 전 회장 그리고 용만 회장까지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그룹내 모든 지위를 잃고 가문으로부터 제적당했다. 후에 박용오 회장은 자살을 한다. 유서에서 그는 성지건설의 경영난을 자살의 이유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가문에서 제적 당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박용오 회장이 왕자의 난 이후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주요 그룹 대부분 오너일가 경영 다툼
선대 유산 두고 가족간 소송전도 불사 

대성그룹도 돈 앞에서 형제끼리 이빨을 드러냈다. 고 김수근 명예그룹 회장이 2001년 타계할 당시 마지막 유언은 3형제간의 우애였지만 자식들은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김 명예 회장은 장남 김영대 회장에게는 대성그룹을, 차남 김영민 회장에게는 서울도시가스를, 3남 김영훈 회장에게는 대구도시가스를 넘겨줘 경영권 분쟁을 대비했지만 형제의 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 명예회장이 타계한 후 3형제는 남은 주식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다툼을 벌인 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유산과 회사의 상호 등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재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진그룹도 골육상쟁의 흑역사가 있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전 회장이 2002년 작고한 뒤 남겨진 유산을 두고 형제간 치열한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조 전 회장은 유언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형제들은 재산 다툼을 벌였다.
 
재산을 두고 의견이 갈렸던 4형제(양호, 남호, 수호(2006년 사망), 정호)가 법정 다툼까지 가면서 세간의 눈살을 찌푸린 것. 결국 재산과 관련된 여러 소송 끝에 2011년 법원의 화해 권고를 받아들여 형제의 난은 마무리 됐지만 씁쓸한 재계의 단면을 드러냈다.

한화그룹 역시 창업주의 유언이 없어 형제의 난이 일어난 경우다. 1981년 고 김종희 창업주가 작고하면서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지만 승연-호연 형제의 공동경영 체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992년 회사가 나뉘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에 들어갔다.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이후 3년이 넘는 소송을 벌이다가 양측이 극적 화해를 하면서 한화가의 형제의 난은 끝이 났다.
 
금호그룹의 형제의 난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형제 경영을 해오던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를 계기로 형제의 난이 발발했다. 대우건설 인수후 회사의 경영난이 계속되자 2009년 넷째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을 키우겠다며 분리경영을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양 측은 소송전으로 확대되면서 현재까지 소송을 벌이고 있다.
 

효성도 형제간 갈등을 드러냈다. 효성의 둘째 아들 조현문 변호사는 2011년까지 효성 부회장을 역임하다 회사를 떠나면서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형인 조현문 회장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오너 2·3세 많을수록 십중팔구 서로 ‘멱살잡이’
형제 3명 이상 집안서 거의 예외없이 ‘물고뜯어’
 
한라그룹은 왕자의 난 당시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며 눈총을 사기도 했다.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1997년 장남승계 원칙을 깨고 차남 정몽원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장남 정몽국 씨와의 갈등이 시작됐다.
 
정 회장 취임 후 1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그룹이 경영난에 빠지자 계열사 지분을 매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몽국 씨의 지분도 처분한다. 이일을 계기로 몽국씨가 정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형제의 난이 발발했다. 결국 2009년 대법원이 정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몽국 씨는 한라그룹 경영권에서 멀어졌다.

   
현대차 그룹 내에서 2000년 발생한 왕자의 난은 골육상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장남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측근을 인사 조치하면서 왕자의 난은 시작됐다. 당시 현대차 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있었지만 고령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왕자의 난을 막지 못했다. 왕자의 난 이후 갈등 끝에 현대가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등으로 나눠졌다. 정몽헌 회장은 후에 2003년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 투신해 자살했다.
 
'배다른 게 죄' 이복형제 불화
 
샘표의 경우는 좀 더 살벌하다. 이복형제 간의 다툼으로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형제의 난은 박승복 회장이 1997년 박진선 현 샘표 사장에게 넘겨주면서 시작됐다. 박 회장의 이복동생 박승재 전 사장이 반발한 것. 이후 박 회장을 비롯한 이복형제 일가가 우리투자증권의 사모펀드(PEF)에 지분 24.1%를 넘기면서 샘표그룹은 한동안 경영권 방어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대한전선그룹도 이복 형제의 난을 겪었다. 대한전선그룹은 설경동 창업주가 둘째 부인의 자녀 고 설원량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면서 이복형제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가족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태광그룹 역시 이복형제 간의 유산지급 소송에 휘말려 있으며 현재 진행중이다.
 
파라다이스도 이복형제들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파라다이스 전락원 창업주는 전처 사이에 1남1녀, 재혼후 만난 둘째 부인 사이에 한명의 딸이 있다. 이후 전 창업주가 타계한 뒤 유산을 놓고 이복형제들간 법정 소송전을 치렀다.
 
“돈 너무 좋아” 부모-자녀 소송
 
동아제약은 이복형제의 다툼이 부모자녀 간의 다툼으로 확대된 경우다. 강신호 회장이 첫 번째 부인 자식을 배제하고 재혼한 3·4남을 중심으로 승계작업에 들어가자 장남 강문석 회장이 반기를 들며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녹십자는 ‘모자의 난’이 일어났다. 고 허영섭 회장의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허 회장이 타계하면서 ‘장남의 상속을 배제한다’라는 유언을 남김에 따라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되자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허 전 사장은 어머니 정인애씨를 상대로 유언장이 거짓으로 작성됐다며 유언 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모자간 피말리는 소송전을 벌였다.
 

오양수산은 부모자녀간 갈등이 끝에 경쟁사로 넘어가는 비극을 맞았다. 고 김성수 회장이 2007년 작고한 뒤 상속 지분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장남의 갈등이 터졌다. 갈등 끝에 어머니와 가족들이 김 회장의 소유 오양수산 지분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기면서 오양수산은 사조산업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남보다 더해” 친인척도 적
 
대림그룹의 경우 배다른 삼촌과 조카 등이 이른바 ‘숙질의 난’을 일으켰다. 대림통상의 이재우 회장과 그의 조카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맞붙었다. 현대가는 2000년 발생한 왕자의 난 이후 시숙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3년 고 정몽헌 회장이 타계한 후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는 현정은 회장(정 회장 부인)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맞붙은 것. 현 회장은 사모펀드를 끌어들여 간신히 경영권을 방어하면서 시숙의 난을 정리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오너 분쟁 없는 기업은?
 
모든 기업이 골육상쟁의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SK, LG, 신세계, 부영, OCI 등의 기업은 현재까지 친족간 큰 문제없이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SK의 경우 최태원을 주축으로 한 형제경영으로 친족간 별다른 다툼 없이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LG그룹의 경우는 큰 분쟁없이 계열분리에 성공해 성공적인 가족경영 사례로 꼽힌다. LG그룹은 2004년 LG그룹과 GS그룹으로 나눠졌으며, 이후 LG그룹은 LG그룹과 LS그룹으로 계열분리에 성공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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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