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조롱한 기업들 어디?

돌아가신 대통령을 갖고 놀다니…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6년이 지났다. 노 대통령은 세상을 등진 뒤에도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선다. 때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의 치열했던 삶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끊임없이 노 대통령을 비하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해당 기업들 대부분은 비하 논란이 일자 황급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양새다. 네티즌들을 분노케 했던 노무현 조롱 기업들을 정리했다.
 
조롱광고에 
뿔난 네티즌
 
유명 프랜차이즈인 네네치킨은 지난 1일 네네치킨 본사 페이스북 페이지와 경기서부지사 페이지 등에 “닭다리로 싸우지 마세요. 닭다리는 사랑입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이라는 내용과 함께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 속 노 대통령은 큰 닭다리를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합성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광고를 본 한 네티즌은 “해당 사진은 극우성향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희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사진”이라며 “이번 광고도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려는 목적 같다”고 말했다.
 

네네치킨은 해당 게시물을 게시 2시간여만에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에서 회사측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한 사진이 노출됐다”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가족을 비롯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하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불매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네네치킨은 한번 더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사고 전날 저녁 사태의 위중함을 파악한 경기서부지사장이 휴가로 부재 중인 페이스북 담당 직원과 연락을 취했으나 바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서 사과가 늦어졌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네네치킨에 따르면 사고를 일으킨 직원은 “자신이 올린 게시물이 맞고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네네치킨도 “경기서부지사 SNS는 원래 가맹점주들의 이야기와 네네치킨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이미지들을 매주 월·수·금요일마다 올려왔는데 지난해 10월 입사한 직원(사원)이 인터넷상에 떠도는 사진을 사용해 게시물을 게재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통해 SNS 관리의 미비점을 파악했고 이후 철저한 경위파악과 신속하고 엄중하게 조처할 것으로 약속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과거 홈플러스도 노 대통령 비하와 관련해 홍역을 치러야 했다.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한 합성사진이 대구 칠곡점 홈플러스 매장 TV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해당 TV에는 노 대통령 얼굴에 새부리 등을 합성한 사진이 게재됐다. 매장에서는 발견 직후 해당사진을 삭제했으나 이미 외부에 노출되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사건의 주범은 외주업체 직원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일베 회원인 20대의 외주업체 계약직 직원이 고의적으로 사진을 올렸다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사과 과정에서 거짓 해명 논란까지 일어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홈플러스는 임대매장인 이동통신사 직원이 인터넷을 하다 상품 설명 중 초등학생이 리모콘으로 장난 쳐 사진이 게재됐다고 해명을 했지만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 칠곡점에서 사건이 일어났던 날 홈플러스 경북 구미점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도 노트북에 노 대통령과 동물을 합성한 사진이 게재됐다 삭제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본의 아니게 홈플러스 매장에서 그런 합성 사진이 발견 돼 고인인 노무현 대통령과 유가족,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장과 입점 업체 직원 교육에 더 신경쓸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은 사고

기업은 사과
 
천안의 한 호두과자업체도 노 전 대통령을 희화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사건은 2013년 당시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천안의 한 호두과자 업체 제품 사진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해당 호두과자 포장박스에는 노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이미지 ‘노알라’가 새겨졌다. ‘노알라’는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호두과자업체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포장지에도 ‘중력의 맛’ ‘고노무 호두과자’ 등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들이 사용되면서 비난 여론이 가중됐다. 이 업체는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스탬프를 제작하거나 의뢰한 것이 아니고 재미 반 농담 반 식의 이벤트성으로 보내온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파문은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2014년 들어 호두과자 업체가 사과를 전면 취소하면서 다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호두과자업체는 “사과는 사태수습용이었다”며 “내용을 읽어보면 사과보다 해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그(사과문)마저도 이 시간부로 전부 다 취소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호두과자업체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여론을 악화시켰다. 업체 대표 B씨는 “당시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그 사람들은 홈페이지에 심한 욕을 썼다. 그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 금전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나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사건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동안에 따르면 지난달 1일까지 호두과자 제조업체로부터 고소당한 네티즌 164명 중 2명이 합의를 봤고 126명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제는 호두과자업체가 무고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몇몇 네티즌들은 호두과자업체를 상대로 고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네치킨, 닭다리 안은 희화 사진 파문
곧바로 사과했지만 이미 불매운동 확산
 
옥션에도 비하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옥션의 노트북 판매자가 노 대통령을 희화한 사진으로 노트북 광고를 해 물의를 빚은 것. 논란은 2013년 옥션의 노트북 판매 사업자가 일베에 ‘가격민주화’라는 제목의 노트북 광고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광고에는 노 대통령이 유채꽃밭에서 웃고 있는 사진이 사용됐는데, 해당사진은 ‘천국으로 간 노짱’이라는 제목으로 일베에서 노 전 대통령 조롱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곤 한다. 광고에 사용된 ‘민주화’라는 문구 역시 ‘비추천’ 또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광고가 나간 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광고주는 해명을 했지만 해명 과정에서 또 다시 노 대통령을 조롱하는 단어를 사용해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해당광고를 올린 사업자가 옥션 홈페이지 상품문의란에 올라온 고객의 항의글에 “가격을 내려서 저렴하게 국민들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취지이기에 서민 이미지 살리기 위해 ‘노 고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넣었다”면서 “가격민주화는 서민경제를 살리고 더불어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올렸다”고 해명했다.
 
사진으로 장난

일베가 문제?
 
그러나 네티즌들은 ‘노 고무현’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만큼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더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옥션 측은 해당 노트북 판매자에게 철퇴를 내렸다. 옥션이 물의를 빚은 옥션의 노트북 판매자에게 ‘부적합 문구’ 사유로 판매중단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 판매업체의 판매 페이지에 옥션은 “상기 상품은 부적합 문구 사유로 인해 조기마감 됐습니다”라는 공지를 올렸다.
 
닌텐도도 노무현 비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해당 게임을 살펴보면 2012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용으로 출시된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 2’ 게임 내의 리버스마운틴 지역을 가면 ‘백팩커 노현’이라는 캐릭터와 ‘등산가 학사가’라는 동행인이 나온다.
 
게임 플레이어가 노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옆에 있던 동행인은 노현에게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두고 당시 네티즌들은 노 대통령을 비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문구는 한 드링크제의 광고 문구이지만 일베에서는 노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을 빗대 조롱의 의미로 쓰인다. 노현이라는 캐릭터도 노무현과 발음이 비슷해 조롱의 의미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툭하면 한번씩 논란

조롱 대상으로 여겨
 
이 게임은 일본어 판을 번역해 한국판으로 출시했다. 일본어 판에는 ‘육근청정’(생명을 근원에서부터 깨끗하게 하는 모습을 뜻함)이라는 불교용어가 쓰이는데 ‘자연인’과는 큰 연관이 없다. 다만, ‘노무현’과 발음이 비슷한 노현이라는 캐릭터는 2002년부터 게임에 등장했다.
 
게임에 등장한 예는 또 있다. 해당 게임은 스마트폰 게임으로 ‘바운스볼’을 패러디한 ‘바운지볼’이다. 이 게임은 공을 튀기면서 스테이지를 깨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공 대신 사용된다. ‘노무현 공’은 바닥에 통통 튀며 가시밭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이때 가시에 닿으면 캐릭터가 죽고, 공이 밑으로 떨어질 땐 “으아아아 운지”라는 소리를 낸다. ‘운지’라는 단어는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조롱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글로벌 기업 구글도 노 대통령 비하 논란으로 항의를 받았다. 2013년 안드로이드용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에 등록된 ‘스카이 운지’라는 게임은 명칭부터 ‘운지’를 사용하고 있어 논란이 됐다. 앱 아이콘도 ‘노알라’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검은 양복을 입은 노알라 캐릭터가 화면 아래로 낙하하는데, 북한 미사일 등이 장애물로 등장하며, 게임 배경에는 부엉이 바위가 등장한다. 게임 제작자는 “귀여운 노알라 캐릭터로 몸에 해로운 계란과 부엉이를 피하는 게임입니다.
 
책임 미루기
진정성 논란
 
중력에 자유롭게 몸을 담아 시원하게 운지해보세요. 다함께 스카이 운지 즐겨보아요”라며 비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노무현재단 측은 구글에 항의를 했다. 정치권도 날을 세웠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꼬는 '운지'라는 앱 이름 자체도 문제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게임이 유료로 팔리고 있는 것도 충격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게임을 개발한 야필쏘굿(YaFeelSoGood)게임즈 개발자는 논란에 대해 “노알라 캐릭터, MC 무현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콘텐츠를 평소에 재미있게 보고 있어서 한 번 게임을 만들었다. 악의나 비난의 목적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donky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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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