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홈플러스 인수전 '관전포인트5'

‘얼마에 팔릴까’ 자욱한 먹튀 그림자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홈플러스가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M&A가 성사된다면 국내 최대 M&A로 기록될 전망이다. 홈플러스는 누구의 품에 안길까. 매각을 둘러싼 주요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홈플러스 인수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예비 입찰 참여 여부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인수후보들에게 투자설명서(IM)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매각 신호탄을 쏜 것이다.
 
포인트1
[진짜로 팔긴 파나]
 
그동안 홈플러스는 수많은 매각설이 나돌며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국내 유통업계 2위라는 무게감에 7조원(최대 10조)이 넘는 매각 예상가까지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에 충분했다. 그러나 홈플러스의 지분 100%를 쥐고 있는 영국 테스코가 과거 M&A 성사 직전 매각을 포기한 전례가 있어 M&A 성사여부는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봐야할 듯 싶다.
 
앞서 지난해 테스코는 미국 카알라일의 40억 파운드(6조5561억원) 규모의 홈플러스 M&A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테스코가 6조5000억원 이하에는 홈플러스를 매각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매각가격이 최소 7조원 이상으로 형성되지 않을 경우 M&A 협상 자체가 무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홈플러스의 모회사 테스코의 유동성이 여의치 않은 만큼 매각을 미루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테스코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10조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또,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2억 5000만 파운드(약 4000억원) 부풀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은행들로부터 차입금 상환 압박을 받고 있다. 게다가 분식회계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때문에 테스코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가격을 협상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테스코의 홈플러스 매각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점도 이들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발표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홈플러스는 보유하고 있던 회사채 1조9008억원 가운데 4550억원을 조기에 상환했다. 2008년 체스헌트 오버시즈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이래 처음으로 상환한 것이다. 이는 홈플러스의 매각을 앞두고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테스코의 매각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인트2 
[해외기업이 먹나]
 
홈플러스가 해외 기업에 인수될지 여부도 시장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현재 가능성이 있는 자금은 중국계 자본이다. 테스코와 중국 테스코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 유통업체 뱅가드가 홈플러스 인수에 참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뱅가드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길 원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뱅가드는 테스코 본사로부터 중국 테스코를 인수했다. 다만, 테스코는 중국 테스코의 지분율을 20%로 유지하며 뱅가드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에 진출한 해외 대형 할인매장이 현지화 실패로 사업을 접은 사례가 많아 뱅가드가 적극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프랑스 까르푸의 경우 대형마트 부문 세계 2위라는 시장 장악력을 확대하기 위해 1996년 중동점을 열고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전국 32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현지화를 배제한 글로벌 스탠다드 경영전략으로 일관하다 실패를 맛봐야 했다.
 

M&A 시장 최대 매물로…성사 여부 주목
‘누구 품에 안길까’ 돌발 변수에 관심↑
 
월마트 역시 까르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월마트는 1998년 네덜란드 합작법인 한국마크로 점포의 인수를 통해 한국시장에 들어왔다. 전국 16개 매장을 운영했다. 따라서 외국계 기업이 인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다만 외국계 사모펀드(PEF)가 유입될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홈플러스를 매입한 후 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려는 세력들로 KKR, 칼라일, CVC 파트너스, TPG, MBK파트너스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포인트3
[국내기업 가능성은?]
 
시장이 특히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는 부분은 국내 기업의 인수전 참여 여부다. 국내업계 2위의 지위를 갖고 있는 홈플러스를 인수할 경우 단번에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조원을 상회하는 높은 매각 예상가는 국내 기업인수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섣부른 인수가 ‘승자의 저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비싼 홈플러스 매각가격 때문에 국내 기업이 단독으로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국내 기업이 아무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동종업계 1위 이마트나 3위 롯데마트는 공정거래법 독점규제에 걸릴 수 있어 아예 입찰 참여를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온이 슬며시 관심을 드러냈다. 오리온은 지난 15일 공시를 통해 “홈플러스 인수 관련,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입찰참여 여부 등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면서 “향후 홈플러스 입찰과 관련해 구체적 상황이 확정되는 대로 공시하겠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오리온의 인수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다. 오리온의 자금 사정이 넉넉치 않기 때문이다.
 
박찬은 IBK 연구원은 “오리온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2900억원 수준으로 홈플러스 인수 시 재무적 투자자와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매각대금 대비 현금과 현금성 자산 규모가 매우 작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리온이 비제과 사업부문을 매각했기 때문에 인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의 존재감이 인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모습이다. 허 부회장은 2006년 신세계그룹의 월마트코리아(현재 이마트)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신세계 사장, 이마트 사장을 지낸 허 부회장은 지난해 1월 신세계그룹에서 퇴사해 그해 7월 오리온에 입사했다.
 
 
현대백화점도 홈플러스 인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내 유통업체 가운데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유일하게 “제안이 온다면 검토할 것”이라면서 인수 경쟁에 참여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현대백화점이 홈플러스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동원 가능한 현금은 2조원에 2조원을 대출받아 예상 인수가 7조원 가운데 4조원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머지 지분은 사모펀드에게 넘긴다면 자금 마련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시너지 효과도 있다. 현대백화점이 홈플러스를 인수할 경우 현대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 리바트, 한섬 등이 140여개의 홈플러스 유통망을 통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최근 현대백화점이 백화점 빅3(롯데, 신세계, 현대) 구도에서 밀려나는 양상이라는 점도 깜짝 인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현대백화점이 사업을 확장하는데 있어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전향적인 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적극적으로 인수입찰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포인트4
비싸 쪼개 팔수도?
 

홈플러스 인수 주체만큼 매각 방식도 시장의 주요 관심 포인트다. 업계에서는 유동성(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테스코가 분할 매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대 10조원에 이르는 매각 대금을 마련할 기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테스코는 지난해말 분리매각을 시도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홈플러스는 부산 경남을 기반으로 13곳의 대형마트를 운영 중인 메가마트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마트 모회사인 농심 관계자는 “홈플러스 측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협상한 사실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기업 vs 해외기업
속속 드러나는 도전자
먹으면 승자의 저주?

 
현재 홈플러스는 분할매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일단은 일괄매각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적극적인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분할매각 가능성은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분할매각은 인수자를 찾는 데는 용이하지만 결국 처치 곤란한 사업(또는 점포)만 남을 가능성이 커 매각사 측에서는 꺼리는 것이 통상적이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주)와 홈플러스테스코(주), 홈플러스베이커리(주)로 구성돼 있다. 홈플러스는 테스코홀딩스 B.V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홈플러스테스코는 지난 2008년 이랜드가 운영하던 홈에버를 인수한 것이다. 현재 홈플러스테스코의 지분은 홈플러스와 테스코스토어리미티드가 절반씩 갖고 있다.
 
홈플러스 노조의 반발도 M&A 과정에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노조는 고용 불안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며 M&A 과정에 노조가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사모펀드의 유입과 분할매각을 경계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홈플러스 매각과 관련 17일 “분할매각이나 투기자본인 사모펀드로의 매각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홈플러스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홈플러스는 1999년 창립이후 임직원의 헌신과 희생, 한국소비자의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분할매각과 투기자본으로의 매각이 시도된다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체 직원들과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며 “노동단체, 시민사회단체, 정당, 소비자와 연대해 전면적인 사회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홈플러스 인수전에서 유력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사모펀드 KKR과 칼라일그룹, MBK 등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홈플러스 노조는 “언론보도, 현장제보, 업계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테스코와 홈플러스 경영진은 비밀매각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이달 중에만 두 차례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테스코와 경영진은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인트5
심상찮은 노조
  
노조는 “홈플러스는 임직원 2만5000여명, 협력업체 2000여개와 수만명 직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고 수백만 한국소비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업체”라며 “매각과정 또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매각과정에 노동조합과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며 M&A 과정에 노조의 의견 반영을 주장했다. 이날 노조는 전 직원에게 힘을 모아 스스로를 지키자는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호소문은 이날부터 전국 홈플러스 매장에 배포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노조 달래기’에 들어갔으나, 원론적인 해명에 그치며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홈플러스는 노조의 기자회견에 대해 “테스코는 지난 1월 ‘당분간 해외자산 매각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이후 별다른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다”며 “모두가 하나 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조가 큰 힘이 돼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침체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모든 유통업체들이 매출이 급락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당사는 매각설까지 불거져 더 험한 길을 걷고 있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단결된 모습이 필요한 시기”라고 전했다.
 
 
<donky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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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