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깃발 꽂는' 중국자본 대침공 막전막후

‘못 먹어도 고’ 왕서방 전대 열었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중국자본의 한국기업 인수합병(M&A) 작업이 한창이다. 금융산업에서부터 아기용품산업까지 영역을 불문하고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숨가쁘게 우리기업을 집어삼키고 있는 중국의 막강한 자본의 힘을 조명했다.
 

 
지난주 중국자본이 금융산업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지난 10일 금융위원회가 안방보험이 동양생명 대주주가 되는 것을 승인한 것. 이제 중국자본이 도전하지 못할 M&A 영역은 없는 셈이다.
 
금융업 최초 개방
이제부터 물밀듯?
 
그동안 국내 업계에서는 중국 금융사가 우리나라 금융사를 인수하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중국 금융당국에서 우리금융사의 중국금융사 인수를 까다롭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상호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안방보험이 우리은행 경영권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을 때 이같은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가 ‘상호주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검토한 결과 국내법과 국제조약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중국기업의 국내 금융산업 진출에 빗장을 풀었다.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2월 보고펀드가 보유한 지분과 유안타증권,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의 지분 총 6777만9432주(63.01%)를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매각 가격은 주당 1만6700원으로 총 매각 대금은 1조1319억원이다.
 
이후 안방보험은 지난 3월25일 금융위원회에 동양생명 경영권 인수를 위한 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서를 접수했다. 우리 금융당국은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안방보험이 최근 3년간 제재 받은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를 확인하고 심사를 마무리하면서 안방보험의 대주주 자격을 승인했다. 2004년 설립된 안방(安邦)보험은 총 자산 자국내 약 10위권에 포함된 대형 보험사다.
 
안방보험, 동양생명 인수…금융업 처음 진출
‘영역 불문’한국기업 눈독 “M&A 작업 한창” 
 
동양생명의 인수로 자신감을 얻은 안방보험은 우리은행 인수에 다시 한 번 도전할지 눈길이 쏠린다. 안방보험은 지난해 12월 우리은행 경영권 예비입찰 마감에서 유일하게 예비입찰제안서를 제출하며 우리은행 인수에 열을 올렸으나 당시 2곳 이상이 유효경쟁을 해야한다는 조건에 위배돼 인수가 무산된 바 있다.
 
금융당국의 태도도 안방보험의 우리은행 인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자본에 대한 우려에 금융당국이 소극적인 태도로 법리적인 해석을 해왔는데, 이번 동양생명 대주주 변경 승인건으로 중국자본에 대한 제재 근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주채권자인 정부의 우리은행 매각 의지도 안방보험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매각과 관련해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제값을 받고 파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현재 매각가격에 비해 자산가치가 높지 않아 국내 기업 가운데 적극적으로 입찰 경쟁에 참여할 기업이 마땅히 없는 분위기다. 따라서 국내 은행업계에 진출을 노리는 안방보험의 강한 M&A 의지와 맞물린다면 우리은행도 중국자본에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자본에 대한 우리 금융당국의 태도 변화는 KDB생명 매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KDB생명은 2013년부터 여러차례 M&A 시장에 나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 자본과 가격협상을 진행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유찰됐고, 이후 한 차례 더 매물로 나왔지만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굴욕을 당하며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유아·게임·완구
닥치는 대로 꿀꺽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기조 변화는 KDB생명 채권단에 호재로 작용했다. KDB생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칸서스 컨소시엄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인수의향을 밝혀오면 당연히 진행할 것”이라며 중국자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KDB생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국계 기업은 안방보험과 지난해 KDB생명 매각에 관심을 보였던 푸싱그룹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유통업계 2위 홈플러스가 M&A 시장에 나오면서 중국자본이 서서히 입질하는 모양새다.
매각가격은 7조∼10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6조3000억원에 홈플러스 인수 제안이 있었으나, 홈플러스 측의 거부하면서 매매가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업체가 선뜻 인수에 나서기 부담스럽다는 것이 업계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중견기업이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대기업이 나서기에는 독과점 규제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유력 유통업체인 뱅가드가 홈플러스 매각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지난해 테스코의 중국 지분을 사들인 뱅가드가 내친김에 홈플러스까지 매입하면서 국내 유통업계에 진출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예비입찰이 시작돼 중국자본 진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는 국내 유일 파운드리 업체인 동부하이텍 인수전에 힘을 주고 있다. SMIC는 인수 협상 과정에서 인수자문사를 새로 고용하는 등 동부하이텍 인수전에 집중하고 있다.
 
SMIC는 세계 5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생산업체다. 이미 포화상태인 생산설비를 확장하기 위해 세계 9위권인 동부하이텍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팬택
동부하이텍…
 

지난해 국내 유아복 1위 업체 아가방컴퍼니는 중국 기업 랑시에 인수됐다. 랑시코리아는 중국 패션 기업 랑시그룹이 한국에 설립한 의류 도소매 전문 자회사다. 모기업인 랑시그룹은 중국 내 6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 여성복 패션 전문 기업이다. 랑시그룹은 아가방앤컴퍼니를 인수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 유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랑시그룹 신동일 회장은 “올해 중국의 신생아 수는 약 2000만명으로 한국 신생아 수 40만명의 약 50배다. 최근 1가구 1자녀 정책 완화로 중국의 신생아 수가 연간 3000만명까지 늘 것으로 예상되어 시장 전망이 더욱 밝아졌다. ‘바링허우(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의 한국 유아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와 선호도가 매우 높아, 35년 역사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아가방앤컴퍼니와의 전략적 제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히트 완구 ‘또봇’을 만든 영실업도 중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지난달 업계에 따르면 영실업은 지난 20일 홍콩의 사모펀드 퍼시픽아시아그룹(PAG)이 인수하기로 했다. 영실업 최대주주인 헤드랜드캐피털파트너스로부터 2220억원(2억310만달러)에 보유지분 전부를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외에도 뽀로로를 만든 아이코닉스, 라바를 만든 투바앤 등은 중국 기업들의 인수제의를 받으면서 중국자본의 국내 유아 관련 기업의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시장 나온 굵직한 매물들
‘왕서방’ 싹쓸이 가능성도
 
중국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기업이 파산 위기에 몰린 예도 있다. 중국자본은 M&A 시장에 나온 팬택을 노렸었다. 그러나 팬택은 M&A 협상이 불발로 끝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0월 법정관리 중인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 결과 중국업체를 포함한 복수 업체가 참여했다.
팬택은 앞서 채권단 실사에서 계속기업가치가 3824억원으로, 청산가치 1895억원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당시 팬택 매각에 중국업체가 참여함에 따라 기술유출 논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여론이 부정적으로 형성됐다.
 

되팔고 먹튀?
한국시장 독식?
 
이같은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중국자본의 팬택 M&A는 불발로 끝났다. 이후 팬택은 M&A 시장에서 외면 받다가 지난달 법정관리를 포기하면서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했다. 팬택은 국내외 등록특허 4985건 등 총 1만4573건의 출원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폰 도난방지 기술이나 지문인식 기능, 지문인식 모바일 결제 서비스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donky@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중국 자본’ 전 세계 활약상
 
중국 자본은 전세계의 기업 인수합병(M&A)에 힘을 쏟으면서 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지난달 말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국기업들의 해외(outbound) 기업 인수합병은 36% 급증한 202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 기간에 체결된 인수건은 전년 대비 33% 증가한 77건으로 민간 기업이 M&A 건수의 68%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246건의 M&A가 성사돼 전년보다 32% 늘었으며, 그 가치는 모두 550억 달러에 육박했다. 지난해 중국의 M&A는 주로 미국과 유럽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아시아에서는 세번째로 많은 거래가 이뤄졌다.
 
중국기업의 공격적인 M&A는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아래 가능했다. 실제 올해 3월 중국 당국은 중국이 인수합병(M&A) 자금 대출 상환기한을 연장하기로 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M&A를 장려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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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