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에 손짓하는 보이지 않는 손 실체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손잡자 손"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손학규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기획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고문은 비록 원외인사지만 요즘 야권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손 전 고문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도 모자라 아예 정치권과 연을 끊겠다며 전남 강진의 한 토굴집에 기거하고 있지만 주변인들은 끊임없이 그를 흔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손 전 고문 측에서는 손 전 고문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한 토굴집에서 칩거 중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주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손 전 고문이 칩거 중인 토굴집은 손 전 고문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연일 문전성시다. 선거에서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정치인에게 이처럼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호남이 부른다?
비노가 부른다?

손 전 고문 부부는 몰려드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죽하면 손 전 고문 부부는 이들을 피해 아예 토굴집을 비우는 날이 점점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 전 고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계에 복귀할 뜻이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정계복귀설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손 전 고문 측근들 사이에서는 손 전 고문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가만히 있는 손 전 고문을 주변에서 흔드는 바람에 토굴집에서 칩거하고 있는 손 전 고문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게 됐다는 불만이다. 그들은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기획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지지자 100여명 토굴집서 복귀 촉구
야권 위기 처하자 몸값 높아진 손학규


손 전 고문에게 야권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이유는 현재 새정치연합이 처해있는 상황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4·29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손 전 고문이 이를 수습할 구심점이 되어달라는 요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놓고 각 계파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비노계(비노무현계)의 경우에는 손 전 고문을 통해 문재인 대표와 친노계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농후하다. 손 전 고문은 지난해 치러진 7·30재보선에서 패하자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깜짝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유독 책임감이 강한 손 전 고문의 성격 탓이다. 손 전 고문은 지난 2008년에도 대통합민주신당 당대표로 선출된 후 3개월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하자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당시에도 손 전 고문은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무려 2년간이나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약속 지킬까?
복귀 할까?

이를 두고 비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대선과 재보선 패배 이후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문재인 대표와 비교하면 손 전 고문은 너무 책임감이 강해서 탈”이라며 “문 대표와 친노계(친노무현계)가 손 전 고문의 반만큼이라도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 대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행보를 걸어온 손 전 고문을 띄움으로써 교묘하게 문 대표와 친노계를 깎아내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손 전 고문 띄우기는 ‘호남신당론’과도 맞닿아 있다. 비노계를 중심으로 야권에서는 최근 신당론이 무게감 있게 거론되고 있는데,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심점이 될 만한 거물급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호남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손 전 고문이 야권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손 전 고문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등 야권 내 쟁쟁한 대권주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호남은 야권의 심장이다. 야권 후보가 호남의 민심을 얻지 않고는 어떤 선거에서도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호남의 민심이 손 전 고문에게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번 여론조사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이른바 야권 빅3로 불리는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등이 모두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호남의 민심이 수도권 출신인 손 전 고문을 대안으로 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신당까지 가지 않더라도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비노계로서는 문 대표의 대안으로 손 전 고문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비노진영에서는 꾸준히 문 대표 체제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문 대표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임시 전당대회를 열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런데 문 대표가 실제로 당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현재 당내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손 전 고문은 매우 매력적인 카드다.

특히 총선과 대선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중도층의 표심인데 문 대표와 비교해 손 전 고문은 중도 이미지가 강해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게다가 손 전 고문은 3선의원을 하면서 당 대표까지 지냈고 보건복지부장관과 경기도지사까지 역임해 정치력과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가장 경계하는 상대라는 평가도 있다. 당대표를 지냈지만 초선의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차례 정치적 미숙함을 보여준 문 대표나 안철수 의원과 비교하면 손 전 고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한다.

손 전 고문은 친노계를 제외한 당내 다양한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크게 친노계와 비노계로 나뉘고 있는데 비노계는 사실 동교동계, 안철수계, 김한길계, 김근태계 등등 다양한 계파의 느슨한 집합체에 불과하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도 최근 비노계에 대해 “친노가 있기 때문에 그 나머지인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게 됐을 뿐”이라며 “소위 비노라고 불리는 이들은 친노가 아니라는 게 유일한 공통점일 뿐, 하나의 조직이나 이해로 뭉쳐 있는 계파가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느슨한 집합체를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 이끌기 위해서는 모든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손 전 고문만한 인물이 없다는 지적이다.


손 전 고문은 당내 인사들은 물론이고 당을 떠난 인사들과도 관계가 원만하다는 장점이 있다. 정동영 전 의원 같은 경우는 탈당을 선언하기 전 강진에 있는 손 전 고문을 먼저 찾아가기도 했다.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 후 비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친노를 제외한 야권 빅텐트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야권 빅텐트
친노만 왕따?

여기에 친노 대 비노의 대립구도를 형성하기 위해서 손 전 고문만큼 제격인 인물도 없다. 손 전 고문은 친노 패권주의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후보경선에서 손 전 고문은 문 대표에게 패했는데, 당시 불공정 경선 논란으로 손 전 고문 측 지지자들이 보안요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단상을 향해 패트병과 계란을 투척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때문에 손 전 고문은 친노 패권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문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었다. 비노계로서는 손 전 고문이 꼭 필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과도 같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친노계가 손 전 고문의 조기등판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바람에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다소 과대평가되는 부분도 있다”라며 “손 전 고문을 조기 등판 시키지 않을 경우 대선을 앞두고 손 전 고문이 마치 구원자처럼 나타나 속된 말로 대선을 날로 먹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친노진영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차기 총리로 손 전 고문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부의장은 지난 1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계를 은퇴한 손 전 고문을 야권의 동의하에 삼고초려해 책임총리의 실권을 준다면 통합과 안정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손 전 고문을 차기 총리로 추천했다.

호남권 여론조사서 차기 대권주자 1위
정치1번지 종로 입주, 복귀 초읽기?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이 부의장의 제안은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공개적인 회의에서 왜 뜬끔없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주변 반응이었다”며 “자꾸 외곽에서 손학규 대망론이 뜨니까 친노진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손 전 고문을 조기등판 시켜야겠다는 조급함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를 떠나 총선과 대선 패배의 공포감이 손 전 고문의 복귀를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4·29재보선에서 수도권 3곳은 물론이고 텃밭인 광주 서구을까지 무소속 후보에게 내줬다. 충격적인 패배에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둔 국회의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이젠 새정치연합 깃발을 달고는 호남에 출마해도 당선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식으로든 당을 싹 갈아엎기를 원하는 당내 인사들의 불안감이 손 전 고문의 복귀 요구로 분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손 전 고문의 토굴집으로 모여들고 있는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은 “토굴을 부수고라도 (손 전 고문을) 여의도에 모시고 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점점 과격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하필 호남?
대권 노리나?

이른바 손학규 대망론을 손 전 고문이 스스로 띄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왜 하필 야권의 심장인 호남에 거처를 마련했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친자식도 아니고 사위 고향이 전남 강진이라 그쪽에 거처를 마련한 것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

손 전 고문이 정말 정치에 복귀할 뜻이 없었다면 토굴집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자택에 머물렀으면 된다. 애초부터 정계복귀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손 전 고문은 최근 정치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새 거처를 마련했고, 측근들과 5·18묘역 참배를 하는 등 사실상 정계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과연 손 전 고문에게 손짓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일까? 손 전 고문은 화려하게 복귀해 ‘제2의 김대중’이 될 수 있을까?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되돌아 본 김대중의 정계복귀
손학규, DJ 길 걸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후 다음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 성명을 발표한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1월에 영국으로 출국해 케임브리지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다가 1993년 7월 귀국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상임공동의장을 지내다가 김영삼정부가 부침을 겪자 정계은퇴선언 2년7개월 만에 다시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는 은퇴 번복 시비가 있었으나 이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결국엔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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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