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④천태만상 유학시대 '앞과 뒤'

비행기 탄 아이들이 되돌아 온다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어 교육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당시 돈 좀 있는 집안은 어린자녀를 앞다퉈 해외로 보냈다. 조기유학이 큰 폭으로 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열풍 15년이 넘은 이 시점, 유학에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두드러지면서 유학열풍이 한풀 꺾인 모양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학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2000년 이후 조기유학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떠났다. 개중에는 유수의 명문대에 진학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학생이 있는 반면 학업에 흥미를 잃어 탈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학지에서 방황하는 학생 대부분은 ‘치맛바람’에 억지로 떠밀려 타지에 홀로 남겨진 상태였고 이들 중 다수는 조기유학에 실패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조기유학의 문제점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채
각종 위험 노출
 
A씨는 부모의 권유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나이에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 하는 게 여간 어려웠다. 언어의 장벽과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은 A씨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A씨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언어도 학위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마냥 빈손은 아니었다.
 
A씨는 유학생활 중 외로움을 달래고자 접했던 마약을 끊지 못해 미국인 친구를 통해 국제택배로 마약을 제공 받아 서울 강남, 홍대 클럽가에서 흡연하고 주변에 유통시킨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마약에 관대한 문화에 익숙한 탓에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A씨의 부모는 대학교수로 알려져 충격이 더했다. 유학생활 중 마약을 배우고 국내에 마약을 밀반입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마 종자를 밀반입해 직접 재배하고 거래까지 한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유학지의 환경도 한 몫 한다. 필리핀에 조기유학을 간 10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억지로 술을 먹이는가 하면 성추행까지 저지른 기숙사 운영자에게 징역 6개월이 선고되는 일이 지난해 3월 벌어졌다. 당시 법원 등에 따르면 2007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 유학생 기숙사를 운영해온 최모(38)씨는 2011∼2012년 A(18)군을 수차례 손찌검하고 각목,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허벅지 등을 때렸다. A군이 농구 경기 중 실수를 했다거나 다른 학생을 빨리 불러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2012년 10월에는 기숙사 인근 식당에서 A군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거부하자 최씨는 “어른이 주는데 안 먹어?”라고 위협했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맥주 40여병을 구입해 구토를 할 때까지 계속 마시게 했다. 또한 최씨는 2012년 1월 B(16)군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 B군의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하기도 했다. 최씨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가서 부모님에게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한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영국 <데일리메일>은 외국 이민자 및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흉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십대 청소년 갱단이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소년 갱단은 UCLAN(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형 학교 기숙사 건물에 수시로 침입해 테러행위를 했다.
 
기숙사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며 유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등 여학생이 혼자 머무는 방을 밖에서 파괴하려 시도하는 등 공공기물 파손 및 주거 침입과 같은 악질적 범죄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청소년 갱단의 각종 방해 행위 때문에 유학생들은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학교도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다.

고스펙 인재 넘쳐
유학 실패 증가
 
일련의 사건들은 조기유학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6년 교육부는 ‘조기유학 제대로 알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 바 있으나 이후 해외 조기유학이나 해당 기숙사들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조기유학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기유학을 비판하는 이들은 조기유학의 문제점을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찾는다. 한국 학교와 달리 외국 학교는 자유시간이 많다. 외국 학교의 경우 오후 3시는 전후로 수업이 끝난다. 이후 시간은 학생 각자에게 맡겨져 있다. 한국처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아이는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지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적지 않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혼자 유학하는 경우에는 통제가 힘들어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어렵다.
 
그럼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담배와 마약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유학생 출신 청소년 갱단원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탈은 정체성혼란에서 나온다. 낯선 곳에서 타인종과 어울려 생활한다는 자체가 곤욕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성인도 힘들어 하는 영어 공부를 매일 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한다. 종합해보면 조기유학생들은 유학지에서 문화차이, 언어문제, 보호자 부재, 외로움 등으로 힘들어 한다.
 
돈 좀 있는 집안 어린자녀들 앞다퉈 해외행
각종 부작용 드러나면서 유턴…그럼 어디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0년 발표한 SERI 경제포커스 제310호 ‘국제 유학시장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명 중 1명이 유학을 떠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KB daily 지식 비타민 <한국의 유학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유학 연수비용은 2000∼2011년 중 367% 증가해 동기간 도시가계지출 증가율을 큰 폭으로 상회했다.
 
한국의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2011년 기준 44.7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다가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감소세로 전환됐으나 2010년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2011년 기준 한국인 해외 유학생 수는 28만9000명이며, 이 중 57%는 학위를 위해, 37%는 어학연수를 위해 유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일본은 학위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은 반면, 중국, 영국, 호주 등은 어학연수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았다.
 
초·중·고 유학생 수는 2006년을 정점으로 이후 3년간 지속적으로 감소세였으나 2010년에는 18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2010년 기준 초·중·고 유학생 중 초등학생이 87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학생 5870명, 고등학생 4077명 순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5.1%, 2.6%, 1.3% 증가했다. 2010년 기준 학생 1만명당 유학생 수는 중학생이 29.7명, 초등학생이 26.7명, 고등학생이 20.8명으로 특히 중학생이 유학을 많이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을 떠난 국가별로 살펴보면 초·중·고 유학생은 미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대학 유학생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유학했다. 전체적으로 유럽보다는 북미와 아시아권에 유학생이 집중돼 있었다. 고등학생은 49.5%가 미국에 집중돼 있었다. 이는 2008년 대비 5.9% 증가한 수치다. 대학 유학생은 초·중·고 유학생에 비해 미국 및 동남아 비중이 낮은 반면, 중국, 일본, 호주, 영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다 다양한 나라에 유학 중이다.

유학 성공해도
취업난 사슬에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14서울교육통계 분석자료집>을 보면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의 유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학생, 고등학생 유학 비율은 감소세다. 2003년과 2013년 유학생 수를 비교한 결과 초등학생은 13.8% 증가한 반면 중학생은 -21.4%, 고등학생은 -20.5% 감소했다. 유학 실패사례 등 각종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기홍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으로의 조기유학 청소년의 적응과 열망’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조기유학은 성공의 가능성보다 훨씬 큰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드러난 비용에 더해 숨은 비용을 고려하면 그 대가가 막대하게 크다는 것이다.
 
 
또 조기유학생들의 경우 발달과정에 있으며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업 성취의 문제뿐 아니라 언어소통조차 불편한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기유학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조기유학생들은 같은 또래의 이민자 자녀들에 비해 우울증의 평균 수치는 23%가 높았으며 자살 관념의 평균 수치는 90%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학교중퇴, 청소년범죄, 폭력조직 구성, 마약, 음주 등 탈선은 물론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공식적인 통계 수치로 확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유학생의 절반 정도는 학업을 포기하고 중도에 귀국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 교수는 청소년을 조기유학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사회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학에 성공했다고 해서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인재시장에서 나타난다. 헤드헌팅업체 탑앤스카우트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서 해외대 출신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등한 학위를 갖고 있다면 취업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피성은 대부분 실패…중도 포기 많아
국내대 출신이나 해외대 출신이나 비슷
 

헤드헌팅업체 써치앤컴퍼니 관계자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지만 100위권 대학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라면서 “요즘에는 고스펙 인재가 많아서 50위권, 30위권 대학을 나와야 인재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급인재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지만 해외대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유명 해외대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있어야 고급인재로 인정받는다고 전해진다. 업계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 이상 사실상 국내대 출신과 해외대 출신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해외 유학이 예전과 같지 않자 적은 비용으로 해외대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유학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송도가 국내 유학지로 부상하고 있다. 인천 송도의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대학생 50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강의동과 도서관, 기숙사, 게스트하우스, 교수아파트, 복합문화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2단계로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해 10개 대학의 1만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한국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미국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벨기에 겐트대 등 4대 대학이 자리를 잡았다. 4개 대학 정원은 3876명이다. 현재 학부·대학원 등 재학생은 606명, 외국인 학생은 66명이다. 앞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컨서바토리(피아노·관현악·성악·합창지휘과)와 미국 네바다주립대(호텔경영학), 러시아 불쇼이국립발레아카데미(지도자·무용수·안무가 과정) 등도 입주할 예정이다.
 
인천글로벌캠퍼스 내 대학은 한국 대학처럼 수능으로 학생들을 뽑지 않는다. 고등학교 공식 성적 증명서와 영어 능력 증명서가 평가 기준이 된다. 영어는 토플 IBT 80점 이상, LELTS(영국·호주 영어테스트 시험) 6.5이상, SAT Critical Reading 450점 이상, ACT-English(미국 대학입학학력고사) 20점 이상의 기준 가운데 한 가지를 충족하면 입학에 도전할 수 있다. 

조폭, 마약 등 
만만찮은 부작용
 
현실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에서 글로벌캠퍼스에 입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목고와 국제고나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제도권 밖 교육이 인기다. 문제는 진입장벽이다.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글로벌캠퍼스는 고사하고 그 길목이 되는 학교에도 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리잡은 대안교육 '허와 실'
 
대안학교는 서구 교육계의 ‘얼터너티브 스쿨(alternative school)’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학교를 말한다.
 
대안학교는 특성을 살려 건학 이념에 따라 생태농업, 건축, 대중매체이해 등 다양한 특성화 과목을 가르친다. 이외에도 종교·환경·시민단체에서 주말이나 방학에 자연답사, 체험활동, 방과 후 학습활동 등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상설 대안학교 등이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대안학교 특별전형으로 대안학교 출신을 선발하기도 한다.
 
대안교육의 교육적 가치는 훌륭하나 사회성 발달이 뒤쳐진다는 단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학교와 달리 자유로운 학풍 때문에 대안학교 안에서는 적응을 잘 하지만 밖에서는 사회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나 자급자족과 같이 스스로 생활하는 방식을 중시하는 대안학교의 특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칫 사회와 동떨어진 주변인으로 남게 될 우려가 적지 않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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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