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때우는' 예비군 훈련장서 무슨 일이…

부실한 훈련 ‘뭐하러 하나’

[일요시사 사회부] 박호민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사격 훈련을 받던 예비군 최모(23)씨가 다른 예비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자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최 씨를 비롯해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따라 예비군 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향토예비군은 1968년 북한에서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김신조 등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1·21사태와 미군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에서 납북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예비군은 실제 울진 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에서 무장간첩들을 제압하며 활약하기도 했다.
 
[실효성 논란]
 
그러나 현재 예비군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각종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예비군의 실효성 논란이다. 사실 예비군 실효성 논란은 연혁이 길다. 예비군 창설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의원)은 예비군 창설 2개월만에 ‘향군법 폐지안’을 제출했다. 이후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예비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비군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971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당시 신민당 후보가 ‘예비군 폐지’를 주장하며 유력 후보로 떠올라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기도 했다.
 
예비군 훈련 대상자 사이에서도 실효성을 두고 불만이 많다. 실효성에 비해 생업에 지장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예비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나 일용근로자의 경우, 예비군 훈련을 가면 그날은 보상받기 힘들기 때문에 반발이 거세다.
 

생업에 지장을 크게 받는 예비역의 일부는 아예 훈련을 불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관할경찰서로부터 고발당해 전과자가 된다. 실제 2001년 이후 2012년까지 매년 3만명 이상이 예비군 훈련 불참을 이유로 고발당하는 등 많은 전과자가 양산됐다. 이 때문에 ‘향토예비군설치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과자를 많이 양산해 내는 법률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 발생…3명 사망
‘기강해이’ 반복되는 사고 “대책이 없다”
 
항토예비군 설치법에 따르면(2015년 현재 기준) 정당한 사유 없이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 불참의 ‘정당한 사유’의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예비군법 전과자 양산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비군이 받는 훈련 프로그램도 실효성 논란이 있다. 예비군 훈련 프로그램이 너무 형식적이지 않냐는 것. 예비역들 대다수는 훈련이나 안보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잠을 자는 등 적당히 시간만 때우자는 태도가 많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군 당국도 이를 의식해서 ‘예비군 정예화’를 목표로 예비군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일례로 올해부터 개선된 향방기본훈련은 원래 8시간으로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나지만 훈련에 성실히 임한 예비역에 한해 조기퇴소를 시키기로 했다. 훈련 참여의식을 높여 예비군 정예화를 이루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나 훈련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예비역의 훈련의지만 높아진다고 해서 예비군이 정예화 되겠냐는 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예비역 1∼4년차가 받는 동원과 5∼6년차가 받는 향방이 훈련기간만 다를 뿐 내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예비군 정예화의 길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예산 논란]
 
이 같은 논란 속에 예비군과 예비역은 50년 가까이 존속돼 왔지만 정작 처우는 열악하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예비역에게 지급되는 교통비는 5000원이었다. 통상 예비역은 집에서 먼 예비군 훈련장에 가야하는데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지역에 사는 경우 교통비가 5000원을 초과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이 책정한 교통비가 현실과 맞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부족한 예비군 관련 예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군 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 34조원 가운데 예비군 운용비는 1.15%인 1214억원에 불과했다.
 
훈련 과정에서도 예산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예비군 약 290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동원훈련시 6·25전쟁에 사용된 칼빈 소총으로 훈련 받은 경험이 있다. 예산 부적으로 부실한 전투장비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진지구축 작전 및 적의 도발에 대비한 비상훈련 시에도 탄띠와 수통, 소총만 들고 나서거나 아예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영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간첩을 보내 대테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현역보다는 그 지역에 익숙한 예비군 전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그런데 현실은 제가 예비군 훈련을 받아봤을 때도 아직도 칼빈 소총을 사용하던데 그나마도 실탄이 안나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가장 시급한 것은 M16소총 정도는 보급하고 개인장구 탄띠 및 탄익대(탄창을 집어넣는 장비) 정도는 줘야하는데 너무 허술하다”고 꼬집었다.
 
민관군병영문화혁신위원회 제2분과장인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도 <뉴스1>과의 통화에서 “첫째는 군내에서 동원병과의 위상이 너무 열악한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의 여건상 미국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예비군 관련 예산이 이게 말이 되느냐”며 “이를 보다 현실화해 예비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예비군 처우 문제를 놓고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인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예비전력 개선은 시급하다”며 “허술한 체계에 대해 국방위에서도 여러차례 지적했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 역시 “예비군 전력은 우선 순위로 예산을 올려야 한다”며 “군 당국 자체에서도 요구가 있었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군 당국자는 한 언론을 통해 “예비군들이 동원훈련이든 하루교육이든 생업을 뒤로하고 참가했을 때는 그에 따른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현재는 1만원 안팎으로 훈련참가비가 주어진다”며 “몇천원 더 올려보려고 해도 국회 국방위 등에서는 협조적이지만 기획재정부 쪽에서 막히는 것 같아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전 논란]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비군 안전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난사사건을 일으킨 현역 최 모(23)씨가 과거 관심사병 B급으로 분류된 전력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최 씨는 사격 훈련 과정에서 실탄과 총기를 지급받는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예비군 안전 관리의 허술한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예비군 안전문제를 질타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지난 14일 이와 관련 “안전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군의 당연한 책무”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예비군 운용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에 대해 “이른바 현역 관심 병사들에 대한 관리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비군 관심병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셈”이라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 곳곳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예비군 훈련장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은 현역병이 아닌 사람들이 총기와 폭발물 등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자칫 사건·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 예비군 사고 중 가장 인명피해 규모가 컸던 것은 1993년 6월 10일 경기도 연천의 포병사격훈련장에서 포 사격 훈련을 하다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다. 당시 155㎜ 고폭탄 장약통 4개에 원인 모를 불이 붙어 옆에 있던 고폭탄 1발과 조명탄 2발이 함께 터졌다.
 
이 사고로 동원예비군 16명과 현역 장병 3명 등 모두 19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해당 여단장은 보직해임 되고, 장교 3명이 구속됐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사고 이후 예비군 제도 운영상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예비군제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예비군훈련 사고는 계속됐다. 바로 이듬해 5월 3일 경기도 미금시(지금의 남양주)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시가지 전투훈련을 받던 대학생이 동료 예비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 시가지전투를 하던 예비군들은 모두 공포탄을 지급받았으나 동료 예비군의 소총에는 공포탄과 함께 실탄이 한 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7월에는 대구의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대학생이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1999년에도 광주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던 20대 남성이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해 중상을 입었다.
 
[대책 논란]
 
인천에서는 2001년 5월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연습용 수류탄이 터져 예비군 1명의 오른손 손가락이 부러졌다. 이 사고는 해당 예비군이 2차 안전핀을 제대로 잡지 않아 일어난 것이지만, 문제의 연습용 수류탄에 규정과 달리 철제 외피가 없어 부상이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 4월에는 경기도 양주에서 훈련용 전지 뇌관이 터져 예비군 훈련 참가자 4명이 얼굴과 팔, 다리에 상처를 입는 사고도 있다.
 
<donky@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갑론을박'
 
국방부가 대학생 예비군의 동원훈련 참여를 검토하기로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동원훈련에 참여하는 일반 예비군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대학생 예비군도 동원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학 진학률이 1970년대 30%대에서 현재 80% 수준으로 높아져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면제는 ‘과도한 혜택’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70년대 400만명에서 최근 290만명으로 감소한 예비군 동원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대학생 예비군은 현재 55만명 규모다.
 
하지만 대학생 예비군을 동원훈련 대상에 포함시키면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더할 수 있고 대학 학사일정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향후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대학생 예비군은 1971년부터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동원훈련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상 예비군은 4년차까지 매년 지정된 부대에서 2박3일간(28∼36시간) 동원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대학생 예비군은 학교 등에서 하루 8시간의 교육으로 동원훈련을 대체하고 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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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