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인> 자금세탁 조직 ‘H사’ 실체 추적

“검은돈 깨끗이 세탁해 드립니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한국 기업이 조세도피처에 넣어둔 돈은 약 880조원. 국가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인 ‘세금과 죽음’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현재까지 한국인 272명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하고 있다. 이중 32명은 중국과 홍콩을 통해 조세를 회피한다. <일요시사>는 90년대부터 홍콩에서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H사’를 단독으로 찾아냈다. 기업과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탈세를 조력한 의혹이 불거진다.

 
“혹시 자금세탁업에 관심 있으십니까?” 
 
A씨에게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였다. A씨는 얼떨결에 “네, 관심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수신인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소문만 무성한
유령회사 대행
 
“그러면 사장님이 수도권 지역으로 올라와서 저희 직원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장님 계좌로 해외 기업 자금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은 그 돈을 찾아서 직원에게 건네주십시오. 저희는 그것에 대한 대가로 자금의 5%를 수수료로 그 자리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이어 약속을 잡았다.
 
“일은 일단 저희가 일정이 나와야 압니다. 다음 주 정도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A씨는 업체명을 물었다. 의문의 상대방은 “H사”라고 답했다.
 
이 같은 내용을 제보받은 기자는 단순히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의심했다. H사를 검색해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그곳에 나온 회사 설명은 전화 통화 내용과 일치했다. H사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회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확인했다. 명백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였다.
 
H사는 국내 기업과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홍콩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등을 대행하는 전문 컨설팅 업체다. 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사모아, 세이셜 등 OECD 조세도피처 블랙리스트에 속한 국가에도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대행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제3자를 통해  해외 기업 자금을 국내로 조달한 의혹도 있다. 
 
이는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보도한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Portcullis Trust Net), CTL(Commonwealth Trust Ltd)과 유사한 업체로 보인다. 하지만 조세 관련 및 전문가들은 페이퍼컴퍼니 대행사가 “한 번도 한국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회계 사무실이지만 페이퍼컴퍼니도 설립한다. 기업들의 세금 절세·회피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H사 관계자는 자신의 회사를 이같이 소개했다. H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실제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 업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H사는 홍콩에 법인 회사를 설립하려는 고객에게 회사 설립 절차 대행과 홍콩사무실주소지 등을 제공한다. 회사 설립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의 행정비서 역할도 대신한다. H사는 회계, 은행, 사무, 기타 업무 서비스를 나눠 고객들의 페이퍼컴퍼니를 관리·유지한다. 
 
회계 지원 서비스로 홍콩회사 세무신고 및 회계 결산, 월 회계 관리 및 회계장부 정리와 은행 정리 및 보관, 연 회계 마감 및 결산 등을 대신한다. 고객에게 조세를 절감하는 세무 계획(Tax Planning) 등을 지원 및 대행한다. 각 고객의 페이퍼컴퍼니의 세무 대표가 돼 관련 세무 반대 신청 및 상소 사건 처리 등도 맡는다.   
 
“아무도 몰라”
포착 첫 사례
 
은행 업무 지원 서비스로 무역 거래를 개설, 해외 송금 업무, 현지 비용 결제, 입·출금 업무 지원, 인터넷, 폰뱅킹 등을 한다. 사무 지원 서비스는 월별 은행 명세서 및 우편 관리, 세무국 정부 서류 관리 및 통지, 고용 임금 신고, 홍콩 회사 등록 갱신, 연차보고서, 우편물 접수 등 호텔 티켓 예약 서비스까지 온갖 잡무도 맡아 한다. 
 
H사는 이 같은 서비스를 고객 업무 요청에 따라 진행한다. 고객은 업무량이나 업무 특성에 따라 매월 혹은 분기별로 업무 관리 서비스 비용을 별도로 지급한다.  
 
버진아일랜드, 사모아, 세이셜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서비스를 각각 제공한다. H사는 이들 나라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려는 고객에게 회사설립등록허가증, 회사등록대리관리인 증명서, 회사정관, 회사등기이사 주주명부, 회사주식증서, 회사 직인 및 철인, 은행계좌계설, 홍콩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공인된 회사설립서류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돈세탁 영업이다. H사는 서울에 직원을 파견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홍보팀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고객정보를 받아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금 조달업자를 물색한다. 보통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섭외한다. 30대 이하는 어리다는 이유로 섭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작업 날짜를 정하고 주로 수도권에서 만난다. 직원은 조달업자와 동행해 그 자리에서 조달업자 계좌를 빌려 해외 기업 자금이나 기타 돈을 송금한다. 계좌를 빌려준 조달업자는 그 돈을 인출해 직원에게 넘긴다. 직원은 송금된 돈의 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돈세탁의 수법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
기업·부자들 탈세 목적으로 일 맡겨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국제무역 도시 중 하나다. 
 

H사 관계자는 “홍콩에서 기업 활동 시 이러한 세법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절세를 통한 높은 이윤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며 자신들의 일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신원기 참여연대 간사는 “말이 절세지 탈세와 절세는 한 끗 차이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범죄가 아니다. 신 간사는 “페이퍼컴퍼니는 어떤 목적에 따라 만드느냐에 달렸다. 그 자체로 범죄는 아니다”며 “하지만 대부분 페이퍼컴퍼니가 탈세와 관련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조세도피처를 이용하는 목적은 ‘비밀 금융’이다. 특히 개인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 경우는 비자금 조성으로 흘러가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결국 탈세가 된다. 신 간사는 “대행업체가 ‘페이퍼컴퍼니는 불법이 아니니 우리가 하는 일도 문제없다’고 말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관련된 사례를 봐도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목적이 탈세였기 때문에 설립 자체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신 간사의 설명이다.
 
조세 감면 컨설팅
자금 조달책 물색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업체가 포착된 사례가 없다고 전해진다. 국세청 관계자들조차 이번 사례가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대표는 “한국도 페이퍼컴퍼니 대행업체가 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세청이나 관련 기관에서는 이런 대행업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직접 조사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대행업체들은 전문적인 집단으로 은밀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포착하기 어렵다고 전해진다. 특히 H사같이 20년 동안 운영한 대행업체라면 더욱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아직 한국에서 페이퍼컴퍼니 대행업체 관계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다만 법은 이런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주고 탈세를 돕는 자를 ‘조력자’라고 표현한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조력자들도 처벌 대상이 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몇몇 국가는 조세도피처 등 페이퍼컴퍼니를 대행한 관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했다.
 
제3자 통장 구하는 텔레마케팅 영업도
은행서 입금했다 출금…수수료 5% 지급
 
이 대표는 “우리나라 조력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미국과 영국은 Covered Person(해당 대상)이라는 규정을 적용해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는 국제적으로 컨설팅하는 전문가나 변호사, 회계사, 조세 전문가 등을 이 규정에 포함해 주의의무를 다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예를 들어 고객이 절세 계획을 너무 공격적으로 세웠을 때 ‘탈세가 될 수 있다’고 사전에 알려야 한다”며 “너무 명백하게 탈세를 기도하는 경우 관련 당국에 통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H사는 1995년 설립됐다. 지난 1995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급격하게 페이퍼컴퍼니가 증가한 시기와도 맞물려있다. H사 관계자는 “작은 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많이 커졌다”며 “현재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에서 많이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의뢰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H사의 도메인 정보를 보면 홈페이지 등록일은 2010년 8월31일이다. 등록자 주소는 경기도 안성시 마정리 공도읍으로 나와 있다. 전화번호도 있었으나 통화할 수 없는 번호다. <일요시사>는 카카오톡을 통해 H사 대표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대표는 메시지는 확인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H사의 사무실은 홍콩 완차이역 모 빌딩에 있다. 대표와 연락을 시도한 후 <일요시사>는 홍콩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H사가 맞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한국인이었지만 “잘못 걸었다”며 전화를 금방 끊어버렸다. 재차 전화를 해 기자는 “그럼 그곳이 뭐하는 곳이냐”는 물었지만 관계자는 “그런 거 없다”며 끊었다. 앞서 입수한 H사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끊어버렸다. 이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목적은 탈루
추적은 불가능?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사는 고객들의 비밀 보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들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 단순 계좌는 취급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도 실제 자금 흐름은 잡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은 “페이퍼컴퍼니는 만들었지만 큰 자금 거래를 하지 않는다”라는 해명을 내놓을 여지가 있었다. 대행사들의 비밀 보장 서비스 덕분이다. 결국 비자금 조성과 탈세 여부는 검찰 조사나 국세청 조사로 밝혀야 할 문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 일문일답
“H사 처벌 가능하다”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탈세 목적의 페이퍼컴퍼니는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직적, 적극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조력자는 정범에 준하여 처벌되도록 조세범처벌법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국내에서 조세도피 조력자들의 처벌은?
▲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외화불법유출, 비자금유출 역외탈세를 하는 경우에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 문제 된 회사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며 기업들이 세금을 저렴하게 혹은 회피하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또 당사 직원과 동행해 제3자의 계좌로 해외 기업 자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원은 제3자에게 계좌를 빌려준 대가로 자금의 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어떤 점에서 위법한가?
▲ 대법원은 구 조세범처벌법 제9조 제1항이 규정하는 조세포탈죄에 있어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는 조세 포탈을 할 수 있게 하며 사회통념상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를 일컫는다고 판시했다. 2010년 1월1일 이후 조세범처벌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제3조에서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에 관하여 유형별로 자세히 입법했다.
 
탈세 목적이라면 조세법 위반 
대행 조력자도 정범 처벌해야
 
-구체적으로 어떤 법에 위법한가?
▲ 문제가 된 회사가 납세의무자의 역외탈세를 위해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대법원 판시내용과 조세범처벌법을 고려해 볼 때 문제가 된 회사는 형법 32조에 따라 조세범처벌법 위반의 방조범으로 처벌된다.
이러한 역외탈세는 조세평등주의를 실현하는 실질과세의 원칙이다. 즉 과세를 함에 있어 법적 형식과 경제적 실질이 상이한 때는 경제적 실질에 따라 과세한다는 원칙에 반하게 된다. 
 
-국내에서 발견된 첫 사례라고 하는데?
▲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문제가 된 회사에 연락하여 역외탈세를 하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질과세의 원칙을 실현하는 수사기관의 조사정도에 따라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조직적, 적극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조력자는 정범에 준하여 처벌되도록 조세범처벌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