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인> 자금세탁 조직 ‘H사’ 실체 추적

“검은돈 깨끗이 세탁해 드립니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한국 기업이 조세도피처에 넣어둔 돈은 약 880조원. 국가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인 ‘세금과 죽음’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현재까지 한국인 272명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하고 있다. 이중 32명은 중국과 홍콩을 통해 조세를 회피한다. <일요시사>는 90년대부터 홍콩에서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H사’를 단독으로 찾아냈다. 기업과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탈세를 조력한 의혹이 불거진다.

 
“혹시 자금세탁업에 관심 있으십니까?” 
 
A씨에게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였다. A씨는 얼떨결에 “네, 관심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수신인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소문만 무성한
유령회사 대행
 
“그러면 사장님이 수도권 지역으로 올라와서 저희 직원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장님 계좌로 해외 기업 자금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은 그 돈을 찾아서 직원에게 건네주십시오. 저희는 그것에 대한 대가로 자금의 5%를 수수료로 그 자리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이어 약속을 잡았다.
 
“일은 일단 저희가 일정이 나와야 압니다. 다음 주 정도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A씨는 업체명을 물었다. 의문의 상대방은 “H사”라고 답했다.
 
이 같은 내용을 제보받은 기자는 단순히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의심했다. H사를 검색해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그곳에 나온 회사 설명은 전화 통화 내용과 일치했다. H사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회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확인했다. 명백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였다.
 
H사는 국내 기업과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홍콩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등을 대행하는 전문 컨설팅 업체다. 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사모아, 세이셜 등 OECD 조세도피처 블랙리스트에 속한 국가에도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대행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제3자를 통해  해외 기업 자금을 국내로 조달한 의혹도 있다. 
 
이는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보도한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Portcullis Trust Net), CTL(Commonwealth Trust Ltd)과 유사한 업체로 보인다. 하지만 조세 관련 및 전문가들은 페이퍼컴퍼니 대행사가 “한 번도 한국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회계 사무실이지만 페이퍼컴퍼니도 설립한다. 기업들의 세금 절세·회피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H사 관계자는 자신의 회사를 이같이 소개했다. H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실제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 업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H사는 홍콩에 법인 회사를 설립하려는 고객에게 회사 설립 절차 대행과 홍콩사무실주소지 등을 제공한다. 회사 설립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의 행정비서 역할도 대신한다. H사는 회계, 은행, 사무, 기타 업무 서비스를 나눠 고객들의 페이퍼컴퍼니를 관리·유지한다. 
 
회계 지원 서비스로 홍콩회사 세무신고 및 회계 결산, 월 회계 관리 및 회계장부 정리와 은행 정리 및 보관, 연 회계 마감 및 결산 등을 대신한다. 고객에게 조세를 절감하는 세무 계획(Tax Planning) 등을 지원 및 대행한다. 각 고객의 페이퍼컴퍼니의 세무 대표가 돼 관련 세무 반대 신청 및 상소 사건 처리 등도 맡는다.   
 
“아무도 몰라”
포착 첫 사례
 
은행 업무 지원 서비스로 무역 거래를 개설, 해외 송금 업무, 현지 비용 결제, 입·출금 업무 지원, 인터넷, 폰뱅킹 등을 한다. 사무 지원 서비스는 월별 은행 명세서 및 우편 관리, 세무국 정부 서류 관리 및 통지, 고용 임금 신고, 홍콩 회사 등록 갱신, 연차보고서, 우편물 접수 등 호텔 티켓 예약 서비스까지 온갖 잡무도 맡아 한다. 
 
H사는 이 같은 서비스를 고객 업무 요청에 따라 진행한다. 고객은 업무량이나 업무 특성에 따라 매월 혹은 분기별로 업무 관리 서비스 비용을 별도로 지급한다.  
 
버진아일랜드, 사모아, 세이셜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서비스를 각각 제공한다. H사는 이들 나라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려는 고객에게 회사설립등록허가증, 회사등록대리관리인 증명서, 회사정관, 회사등기이사 주주명부, 회사주식증서, 회사 직인 및 철인, 은행계좌계설, 홍콩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공인된 회사설립서류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돈세탁 영업이다. H사는 서울에 직원을 파견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홍보팀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고객정보를 받아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금 조달업자를 물색한다. 보통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섭외한다. 30대 이하는 어리다는 이유로 섭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작업 날짜를 정하고 주로 수도권에서 만난다. 직원은 조달업자와 동행해 그 자리에서 조달업자 계좌를 빌려 해외 기업 자금이나 기타 돈을 송금한다. 계좌를 빌려준 조달업자는 그 돈을 인출해 직원에게 넘긴다. 직원은 송금된 돈의 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돈세탁의 수법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
기업·부자들 탈세 목적으로 일 맡겨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국제무역 도시 중 하나다. 
 

H사 관계자는 “홍콩에서 기업 활동 시 이러한 세법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절세를 통한 높은 이윤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며 자신들의 일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신원기 참여연대 간사는 “말이 절세지 탈세와 절세는 한 끗 차이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범죄가 아니다. 신 간사는 “페이퍼컴퍼니는 어떤 목적에 따라 만드느냐에 달렸다. 그 자체로 범죄는 아니다”며 “하지만 대부분 페이퍼컴퍼니가 탈세와 관련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조세도피처를 이용하는 목적은 ‘비밀 금융’이다. 특히 개인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 경우는 비자금 조성으로 흘러가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결국 탈세가 된다. 신 간사는 “대행업체가 ‘페이퍼컴퍼니는 불법이 아니니 우리가 하는 일도 문제없다’고 말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관련된 사례를 봐도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목적이 탈세였기 때문에 설립 자체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신 간사의 설명이다.
 
조세 감면 컨설팅
자금 조달책 물색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업체가 포착된 사례가 없다고 전해진다. 국세청 관계자들조차 이번 사례가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대표는 “한국도 페이퍼컴퍼니 대행업체가 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세청이나 관련 기관에서는 이런 대행업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직접 조사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대행업체들은 전문적인 집단으로 은밀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포착하기 어렵다고 전해진다. 특히 H사같이 20년 동안 운영한 대행업체라면 더욱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아직 한국에서 페이퍼컴퍼니 대행업체 관계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다만 법은 이런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주고 탈세를 돕는 자를 ‘조력자’라고 표현한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조력자들도 처벌 대상이 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몇몇 국가는 조세도피처 등 페이퍼컴퍼니를 대행한 관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했다.
 
제3자 통장 구하는 텔레마케팅 영업도
은행서 입금했다 출금…수수료 5% 지급
 
이 대표는 “우리나라 조력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미국과 영국은 Covered Person(해당 대상)이라는 규정을 적용해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는 국제적으로 컨설팅하는 전문가나 변호사, 회계사, 조세 전문가 등을 이 규정에 포함해 주의의무를 다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예를 들어 고객이 절세 계획을 너무 공격적으로 세웠을 때 ‘탈세가 될 수 있다’고 사전에 알려야 한다”며 “너무 명백하게 탈세를 기도하는 경우 관련 당국에 통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H사는 1995년 설립됐다. 지난 1995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급격하게 페이퍼컴퍼니가 증가한 시기와도 맞물려있다. H사 관계자는 “작은 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많이 커졌다”며 “현재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에서 많이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의뢰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H사의 도메인 정보를 보면 홈페이지 등록일은 2010년 8월31일이다. 등록자 주소는 경기도 안성시 마정리 공도읍으로 나와 있다. 전화번호도 있었으나 통화할 수 없는 번호다. <일요시사>는 카카오톡을 통해 H사 대표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대표는 메시지는 확인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H사의 사무실은 홍콩 완차이역 모 빌딩에 있다. 대표와 연락을 시도한 후 <일요시사>는 홍콩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H사가 맞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한국인이었지만 “잘못 걸었다”며 전화를 금방 끊어버렸다. 재차 전화를 해 기자는 “그럼 그곳이 뭐하는 곳이냐”는 물었지만 관계자는 “그런 거 없다”며 끊었다. 앞서 입수한 H사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끊어버렸다. 이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목적은 탈루
추적은 불가능?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사는 고객들의 비밀 보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들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 단순 계좌는 취급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도 실제 자금 흐름은 잡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은 “페이퍼컴퍼니는 만들었지만 큰 자금 거래를 하지 않는다”라는 해명을 내놓을 여지가 있었다. 대행사들의 비밀 보장 서비스 덕분이다. 결국 비자금 조성과 탈세 여부는 검찰 조사나 국세청 조사로 밝혀야 할 문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 일문일답
“H사 처벌 가능하다”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탈세 목적의 페이퍼컴퍼니는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직적, 적극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조력자는 정범에 준하여 처벌되도록 조세범처벌법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국내에서 조세도피 조력자들의 처벌은?
▲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외화불법유출, 비자금유출 역외탈세를 하는 경우에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 문제 된 회사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며 기업들이 세금을 저렴하게 혹은 회피하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또 당사 직원과 동행해 제3자의 계좌로 해외 기업 자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원은 제3자에게 계좌를 빌려준 대가로 자금의 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어떤 점에서 위법한가?
▲ 대법원은 구 조세범처벌법 제9조 제1항이 규정하는 조세포탈죄에 있어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는 조세 포탈을 할 수 있게 하며 사회통념상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를 일컫는다고 판시했다. 2010년 1월1일 이후 조세범처벌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제3조에서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에 관하여 유형별로 자세히 입법했다.
 
탈세 목적이라면 조세법 위반 
대행 조력자도 정범 처벌해야
 
-구체적으로 어떤 법에 위법한가?
▲ 문제가 된 회사가 납세의무자의 역외탈세를 위해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대법원 판시내용과 조세범처벌법을 고려해 볼 때 문제가 된 회사는 형법 32조에 따라 조세범처벌법 위반의 방조범으로 처벌된다.
이러한 역외탈세는 조세평등주의를 실현하는 실질과세의 원칙이다. 즉 과세를 함에 있어 법적 형식과 경제적 실질이 상이한 때는 경제적 실질에 따라 과세한다는 원칙에 반하게 된다. 
 
-국내에서 발견된 첫 사례라고 하는데?
▲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문제가 된 회사에 연락하여 역외탈세를 하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질과세의 원칙을 실현하는 수사기관의 조사정도에 따라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조직적, 적극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조력자는 정범에 준하여 처벌되도록 조세범처벌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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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