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인> 자금세탁 조직 ‘H사’ 실체 추적

“검은돈 깨끗이 세탁해 드립니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한국 기업이 조세도피처에 넣어둔 돈은 약 880조원. 국가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인 ‘세금과 죽음’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현재까지 한국인 272명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하고 있다. 이중 32명은 중국과 홍콩을 통해 조세를 회피한다. <일요시사>는 90년대부터 홍콩에서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H사’를 단독으로 찾아냈다. 기업과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탈세를 조력한 의혹이 불거진다.

 
“혹시 자금세탁업에 관심 있으십니까?” 
 
A씨에게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였다. A씨는 얼떨결에 “네, 관심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수신인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소문만 무성한
유령회사 대행
 
“그러면 사장님이 수도권 지역으로 올라와서 저희 직원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장님 계좌로 해외 기업 자금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은 그 돈을 찾아서 직원에게 건네주십시오. 저희는 그것에 대한 대가로 자금의 5%를 수수료로 그 자리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이어 약속을 잡았다.
 
“일은 일단 저희가 일정이 나와야 압니다. 다음 주 정도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A씨는 업체명을 물었다. 의문의 상대방은 “H사”라고 답했다.
 
이 같은 내용을 제보받은 기자는 단순히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의심했다. H사를 검색해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그곳에 나온 회사 설명은 전화 통화 내용과 일치했다. H사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회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확인했다. 명백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였다.
 
H사는 국내 기업과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홍콩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등을 대행하는 전문 컨설팅 업체다. 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사모아, 세이셜 등 OECD 조세도피처 블랙리스트에 속한 국가에도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대행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제3자를 통해  해외 기업 자금을 국내로 조달한 의혹도 있다. 
 
이는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보도한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Portcullis Trust Net), CTL(Commonwealth Trust Ltd)과 유사한 업체로 보인다. 하지만 조세 관련 및 전문가들은 페이퍼컴퍼니 대행사가 “한 번도 한국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회계 사무실이지만 페이퍼컴퍼니도 설립한다. 기업들의 세금 절세·회피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H사 관계자는 자신의 회사를 이같이 소개했다. H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실제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 업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H사는 홍콩에 법인 회사를 설립하려는 고객에게 회사 설립 절차 대행과 홍콩사무실주소지 등을 제공한다. 회사 설립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의 행정비서 역할도 대신한다. H사는 회계, 은행, 사무, 기타 업무 서비스를 나눠 고객들의 페이퍼컴퍼니를 관리·유지한다. 
 
회계 지원 서비스로 홍콩회사 세무신고 및 회계 결산, 월 회계 관리 및 회계장부 정리와 은행 정리 및 보관, 연 회계 마감 및 결산 등을 대신한다. 고객에게 조세를 절감하는 세무 계획(Tax Planning) 등을 지원 및 대행한다. 각 고객의 페이퍼컴퍼니의 세무 대표가 돼 관련 세무 반대 신청 및 상소 사건 처리 등도 맡는다.   
 
“아무도 몰라”
포착 첫 사례
 
은행 업무 지원 서비스로 무역 거래를 개설, 해외 송금 업무, 현지 비용 결제, 입·출금 업무 지원, 인터넷, 폰뱅킹 등을 한다. 사무 지원 서비스는 월별 은행 명세서 및 우편 관리, 세무국 정부 서류 관리 및 통지, 고용 임금 신고, 홍콩 회사 등록 갱신, 연차보고서, 우편물 접수 등 호텔 티켓 예약 서비스까지 온갖 잡무도 맡아 한다. 
 
H사는 이 같은 서비스를 고객 업무 요청에 따라 진행한다. 고객은 업무량이나 업무 특성에 따라 매월 혹은 분기별로 업무 관리 서비스 비용을 별도로 지급한다.  
 
버진아일랜드, 사모아, 세이셜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서비스를 각각 제공한다. H사는 이들 나라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려는 고객에게 회사설립등록허가증, 회사등록대리관리인 증명서, 회사정관, 회사등기이사 주주명부, 회사주식증서, 회사 직인 및 철인, 은행계좌계설, 홍콩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공인된 회사설립서류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돈세탁 영업이다. H사는 서울에 직원을 파견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홍보팀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고객정보를 받아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금 조달업자를 물색한다. 보통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섭외한다. 30대 이하는 어리다는 이유로 섭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작업 날짜를 정하고 주로 수도권에서 만난다. 직원은 조달업자와 동행해 그 자리에서 조달업자 계좌를 빌려 해외 기업 자금이나 기타 돈을 송금한다. 계좌를 빌려준 조달업자는 그 돈을 인출해 직원에게 넘긴다. 직원은 송금된 돈의 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돈세탁의 수법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
기업·부자들 탈세 목적으로 일 맡겨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국제무역 도시 중 하나다. 
 

H사 관계자는 “홍콩에서 기업 활동 시 이러한 세법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절세를 통한 높은 이윤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며 자신들의 일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신원기 참여연대 간사는 “말이 절세지 탈세와 절세는 한 끗 차이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범죄가 아니다. 신 간사는 “페이퍼컴퍼니는 어떤 목적에 따라 만드느냐에 달렸다. 그 자체로 범죄는 아니다”며 “하지만 대부분 페이퍼컴퍼니가 탈세와 관련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조세도피처를 이용하는 목적은 ‘비밀 금융’이다. 특히 개인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 경우는 비자금 조성으로 흘러가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결국 탈세가 된다. 신 간사는 “대행업체가 ‘페이퍼컴퍼니는 불법이 아니니 우리가 하는 일도 문제없다’고 말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관련된 사례를 봐도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목적이 탈세였기 때문에 설립 자체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신 간사의 설명이다.
 
조세 감면 컨설팅
자금 조달책 물색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업체가 포착된 사례가 없다고 전해진다. 국세청 관계자들조차 이번 사례가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대표는 “한국도 페이퍼컴퍼니 대행업체가 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세청이나 관련 기관에서는 이런 대행업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직접 조사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대행업체들은 전문적인 집단으로 은밀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포착하기 어렵다고 전해진다. 특히 H사같이 20년 동안 운영한 대행업체라면 더욱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아직 한국에서 페이퍼컴퍼니 대행업체 관계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다만 법은 이런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주고 탈세를 돕는 자를 ‘조력자’라고 표현한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조력자들도 처벌 대상이 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몇몇 국가는 조세도피처 등 페이퍼컴퍼니를 대행한 관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했다.
 
제3자 통장 구하는 텔레마케팅 영업도
은행서 입금했다 출금…수수료 5% 지급
 
이 대표는 “우리나라 조력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미국과 영국은 Covered Person(해당 대상)이라는 규정을 적용해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는 국제적으로 컨설팅하는 전문가나 변호사, 회계사, 조세 전문가 등을 이 규정에 포함해 주의의무를 다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예를 들어 고객이 절세 계획을 너무 공격적으로 세웠을 때 ‘탈세가 될 수 있다’고 사전에 알려야 한다”며 “너무 명백하게 탈세를 기도하는 경우 관련 당국에 통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H사는 1995년 설립됐다. 지난 1995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급격하게 페이퍼컴퍼니가 증가한 시기와도 맞물려있다. H사 관계자는 “작은 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많이 커졌다”며 “현재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에서 많이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의뢰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H사의 도메인 정보를 보면 홈페이지 등록일은 2010년 8월31일이다. 등록자 주소는 경기도 안성시 마정리 공도읍으로 나와 있다. 전화번호도 있었으나 통화할 수 없는 번호다. <일요시사>는 카카오톡을 통해 H사 대표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대표는 메시지는 확인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H사의 사무실은 홍콩 완차이역 모 빌딩에 있다. 대표와 연락을 시도한 후 <일요시사>는 홍콩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H사가 맞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한국인이었지만 “잘못 걸었다”며 전화를 금방 끊어버렸다. 재차 전화를 해 기자는 “그럼 그곳이 뭐하는 곳이냐”는 물었지만 관계자는 “그런 거 없다”며 끊었다. 앞서 입수한 H사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끊어버렸다. 이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목적은 탈루
추적은 불가능?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사는 고객들의 비밀 보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들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 단순 계좌는 취급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도 실제 자금 흐름은 잡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은 “페이퍼컴퍼니는 만들었지만 큰 자금 거래를 하지 않는다”라는 해명을 내놓을 여지가 있었다. 대행사들의 비밀 보장 서비스 덕분이다. 결국 비자금 조성과 탈세 여부는 검찰 조사나 국세청 조사로 밝혀야 할 문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 일문일답
“H사 처벌 가능하다”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탈세 목적의 페이퍼컴퍼니는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직적, 적극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조력자는 정범에 준하여 처벌되도록 조세범처벌법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국내에서 조세도피 조력자들의 처벌은?
▲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외화불법유출, 비자금유출 역외탈세를 하는 경우에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 문제 된 회사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며 기업들이 세금을 저렴하게 혹은 회피하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또 당사 직원과 동행해 제3자의 계좌로 해외 기업 자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원은 제3자에게 계좌를 빌려준 대가로 자금의 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어떤 점에서 위법한가?
▲ 대법원은 구 조세범처벌법 제9조 제1항이 규정하는 조세포탈죄에 있어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는 조세 포탈을 할 수 있게 하며 사회통념상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를 일컫는다고 판시했다. 2010년 1월1일 이후 조세범처벌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제3조에서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에 관하여 유형별로 자세히 입법했다.
 
탈세 목적이라면 조세법 위반 
대행 조력자도 정범 처벌해야
 
-구체적으로 어떤 법에 위법한가?
▲ 문제가 된 회사가 납세의무자의 역외탈세를 위해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대법원 판시내용과 조세범처벌법을 고려해 볼 때 문제가 된 회사는 형법 32조에 따라 조세범처벌법 위반의 방조범으로 처벌된다.
이러한 역외탈세는 조세평등주의를 실현하는 실질과세의 원칙이다. 즉 과세를 함에 있어 법적 형식과 경제적 실질이 상이한 때는 경제적 실질에 따라 과세한다는 원칙에 반하게 된다. 
 
-국내에서 발견된 첫 사례라고 하는데?
▲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문제가 된 회사에 연락하여 역외탈세를 하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질과세의 원칙을 실현하는 수사기관의 조사정도에 따라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조직적, 적극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조력자는 정범에 준하여 처벌되도록 조세범처벌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