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임 한 달 맞은 김경재 청와대 홍보특보

"친노와 앙숙? 진정한 대화는 적수와 하는 것"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김경재 전 의원이 박근혜정권의 홍보특보를 맡게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박 대통령은 김 특보에게 야당과의 소통을 주문했지만 김 특보는 친노계와 앙숙관계로 유명하다. 때문에 임명 당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많은 우려와 기대 속에 활동을 시작했던 김 특보는 그동안 어떤 성과를 얻어냈을까?

김경재 청와대 홍보특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캠프에 참여하긴 했었지만 그런 그가 박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홍보특보까지 맡게 된 것은 의외다.

한편 김 특보는 지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홍보본부장을 맡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해 낸 정치권의 홍보전문가다. 일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 여러 차례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김 특보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서 그 점을 오히려 큰 장점으로 활용했다.

집권 3년차. 박근혜정부는 지금 민심이반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특보는 과연 박근혜정부를 향해 쌓여있는 세간의 오해들을 시원하게 걷어낼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임명 당시 화제를 모았던 김 특보를 취임 한 달 만에 다시 만나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지난 2월27일 청와대 홍보특보에 임명된 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어떤 성과를 얻었나?
▲ 제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정부의 정책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미진한 것이 있으면 잘 풀어서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일부 정책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또 제가 야당을 잘 아니까 야당과의 소통을 주문하셨고, 지금 호남이 이번 정부 들어서 소외됐다고 하는데 호남뿐만 아니라 국민여론을 종합해 가감 없이 보고해달라고 하시더라. 지금까지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께서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을 자꾸 들으셨는데 제가 일을 시작한 후 소통문제가 많이 해소 된 것 같다.

- 야당과의 소통을 임무로 받으셨는데 김 특보께서는 제1야당의 당권을 쥐고 있는 친노계와는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진정한 대화라는 것은 적수와 하는 것이다. 친구끼리 하는 게 단합대회지 대화인가? 예를 들면 서희가 북방민족이랑 대화하는 것 그런 것이 협상이다. 그리고 친노 하고는 10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마찰 때문에 사이가 벌어진 것이지 현재 친노라고 불리는 사람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세상이라는 게 재밌다. 10년이 지나니 싹 바뀌었다. 예를 들어 천정배, 정동영 두 사람은 노무현정부에서 장관했던 사람들인데 친노와 각을 세우고 탈당하지 않았나?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제가 문재인 대표나 친노계와 대화를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 홍보특보는 국정홍보의 역할도 하게 된다. 청와대는 민심이반 현상이 일어난 것이 홍보 부족의 문제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 국민들에게 가장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예를 들어 지난해 벌어진 연말정산 논란은 정부의 의도하고 언론보도나 국민들의 이해와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 또 공무원 연금 문제 같은 것도 지금 하루에 80억씩 국민의 혈세가 연금을 메우기 위해 들어간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하루에 100억씩 든다고 한다. 그래서 이걸 고쳐야 하는 것은 정치권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데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 같다. 대통령께서는 공무원 입장에서 권리를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잘 설득하시려고 한다.

- 민심이반 현상이 일어난 데에는 정부의 잘못도 분명히 있지 않나?
▲ 솔직히 정부가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시행착오가 없을 수 있겠나? 그러나 본의가 곡해된 점도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지금 정부가 사정작업을 벌이는 것을 두고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몇 년 된 사건을 왜 이제 와서 수사하느냐?’ 이런 말씀들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말이 안된다. 그땐 그런 사실들을 몰랐으니까 못한 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정작업은 이렇게 일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성역을 가리지 않고 상시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비리를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 호남 출신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지역편중인사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지역탕평인사를 건의할 생각은 없나?
▲ 물론 있다. 당연히 해야 한다. 대통령께서는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다.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국정 3년차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국정에 자신감도 생겼고 이제는 탕평인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께서도 이제는 탕평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더라. 대통령인들 임기가 끝난 후에 탕평인사를 하지 않고 일부 사람만 썼다는 비판을 받고 싶겠나? 저도 좋은 사람이 발견되는 대로 서슴없이 천거하고 지역탕평인사를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 이미 지역탕평인사에 대한 건의를 했나?
▲ 그건 비밀이다.(웃음)

"대통령이 불통? 저한테 먼저 전화 주시는 분"
"정부 잘못도 있지만 사실 곡해된 것도 많아"

- 박 대통령은 불통이란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청와대 홍보특보로서 대통령과 소통은 잘되고 있나? 중진 친박계 인사조차 이른바 문고리3인방(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을 거치지 않고서는 박 대통령과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는 정설처럼 되어 있다.
▲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분들과 인사는 했지만 그 분들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급한 일이 있어 부속실에 전화하면 직통으로 바꿔주시고 대통령께서 틈틈이 저한테 전화도 먼저 해주신다.
 

- 그렇다면 왜 소통이 안된다는 말이 나왔다고 생각하나?
▲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 많이 생각한다. 감히 저와 대통령을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예를 들어 저만 해도 청와대 홍보특보가 된 후 별별 전화가 다 온다. 전화가 100통이 온다고 하면 95통 정도는 개인 청탁이다. 전화기에 이름이 뜨면 벌써 무슨 전화인지 감이 온다. 그래서 받지 않으면 대통령이 전화도 안 받고 소통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100통 전화 중 주옥같은 5통의 전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소통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대통령과 무엇을 소통하고자 했는지 먼저 반성해봐야 한다.

- 가장 최근에 홍보특보로서 박 대통령에게 건의 드린 사항은 무엇인가?
▲ 아이러니하지만 제가 대통령께 요즘 너무 소통이 잘돼서 문제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막 웃으시더라.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분이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냐고. 그래서 양쪽 면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다. 대통령은 너무 다 까발려져서는 안 된다. 지도자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지면 국민들이 지도자에게 관심을 안 가진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한다. 대통령에 대해 막 소설을 쓰고 복잡하게 만든다. 대통령은 정말 인기 없는 고난의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아우라랄까?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좀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에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 김 특보께서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홍보본부장을 맡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해 낸 정치권의 홍보전문가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홍보할 것인지 획기적인 복안이 있나?
▲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 여러 차례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있었다.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저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서 오히려 큰 장점으로 만들었다. 당시 슬로건이 굉장히 대중들에게 잘 어필됐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16번의 전국 순회경선을 거쳐 후보가 됐는데 그래서 ‘국민의 후보’라는 슬로건을 생각해 냈다. 저는 박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 시대를 여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다. 메르켈 같은 인물로 만들고 싶다. 이슈는 통일로 잡으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DMZ를 공동 개발하는 복안도 가지고 있다. 서로가 총으로 겨누고 있던 곳을 산업화 시켜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자. 동족상잔 비극의 상징이었던 DMZ를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만들자는 것이 나의 복안이다.


-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개헌을 요구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모양새다.
▲ 개헌의 필요성은 있지만 지금 개헌 논의를 하면 현 정부는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개헌을 논의하더라도 임기 마지막 해에 하는 것이 좋다. 그때 논의를 해서 차차기에 적용한다면 국민들도 공감해줄 것이다. 저는 개헌보다도 선거제도 개편이 시급한 문제라고 본다. 현재 선거제도는 실력 있는 인물이 정치권에 진입하기가 너무 어려운 구조다. 국회에 들어가려면 맨날 인사권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거나 만날 술사고 밥 사고 그러고 다닌다. 비례대표라는 것도 당대표가 사실상 자기사람 챙기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를 이끌어갈 만한 인재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국회로 진입하지 못해 아쉽다.

- 앞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나는 대통령하고 운명을 같이하려고 한다. 국회의원을 8년 했는데 자기자랑 같지만 국회에 있을 때 입법활동 같은 것들을 착실하게 했다. 8년 동안 매년 최우수 국회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할 만큼 했다. 이제는 젊은 후배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해야 되고 임기가 끝나면 통일운동에 매진할 생각이다. 또 지금까지 책을 몇 권 썼는데 퇴임하면 글 쓰고 여행하고 그렇게 지내려 한다. 뭐 하러 다시 국회에 들어가겠나?


<mi737@ilyosisa.co.kr>


<김경재 청와대 홍보특보 프로필>
▲ 공군사관학교 교관
▲ <월간 사상계> 정치담당 편집자
▲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특보
▲ 제15~16대 국회의원
▲ 제18대 대통령인수위 국민대통합 수석부위원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