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명 사망에 징역 5년’ 음주운전 벤츠 가해자 형량 논란

3명이나 죽였는데 5년만 살면 된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커뮤니티 <다음 아고라>에 고급 외제차를 몰고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가 3명의 사망자를 냈음에도 징역 5년 형이 길다고 항소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해자는 이미 음주 전력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애초에 징역 5년도 짧다는 지적과 음주운전에 관한 처벌 형량이 너무 관대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가해자 정모(31)씨는 면허 취소 기준을 넘긴 알콜 농도 0.196%로 벤츠 승용차를 몰고 원당역 고가도로를 달렸다. 정씨는 앞서가던 SM5 차량을 들이받고, 피해 차량은 사고 충격으로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로에서 마주 오던 올란도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총 8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죽은 사람만 억울
적반하장 항소까지

SM5에 타고 있던 1명 사망, 올란도에 타고 있던 2명 사망 등 5명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3명은 사고 피해 차량인 올란도 탑승자로 목, 척추, 다리 등 중상을 입었다. 나머지 부상자 2명은 가해 차량인 벤츠 탑승자와 그의 동승자로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12월 고양지방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가해자 정씨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정씨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사고 현장에서 중상을 입은 김모(34)씨는 먼저 가해자 측의 무성의에 울분을 토했다. “사고가 난 지 한달이 지나도 피해자 측에 전화 한통도 없었다. 너무 황당해 수사관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자 다음날 가해자 아버지가 왔다”며 “가해자 아버지는 자신이 의붓아버지라고 밝히고 말도 안 되는 자기 입장만 일관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해자 아버지가 “자신은 의붓아버지다. 하루 놀고 하루 일하고 있다. 고의로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술 한잔 하고 그렇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왜 친어머니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고 의붓아버지만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에서 합의를 본 피해자는 SM5 차량을 운전했던 이모(36)씨를 제외하곤 없다. 올란도 차량에 탔던 피해자 5명의 유족들은 김씨를 제외하곤 가해자 측에서 단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인 이모(31)씨의 동생은 “가해자 측에서 지금까지 딱 두 번 연락이 왔다”며. “한 번은 1차 공판이 끝나고 왔다. 유가족 중 먼저 합의하는 사람에게 30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원당역 고가도로서 앞서가던 SM5 충돌
알콜농도 0.196% 거의 만취상태로 운전

이어 “김씨에게 찾아가 ‘다른 집 모두 합의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조차 덜고자 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또 “두 번째는 사고 100일 뒤에 문자가 한 통 왔다. 사망자의 명복과 부상자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백일기도한 사진을 보냈는데, 정말 황당했다”고 밝혔다.

유족은 피해자 측이 직접 찾아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하는 게 자식 있는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라는 입장이다. 특히 가해자의 항소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김씨는 “검사가 7년 형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5년 형 선고했다”며 “사람 3명을 죽였는데, 술 먹었다는 이유로 5년 형이 말이 됩니까”라고 격분했다. 이어 “재판 때는 감형을 받으려고, 우리한테는 한 장의 진심 어린 편지도 써주지 않았던 가해자가 재판관한테만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한민국 법은 정말 복수극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솜방망이 처벌
적정한 수위는?

사망자 3명은 모두 30대 초반이었으며, 김씨는 사망한 이씨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그는 “3월15일 오늘은 원래 내 결혼식이었다. 사람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게 법이라고 따라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때 병실에 있던 배선줄로 목을 매어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다.

가해자 의붓아버지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자식과 다르게 작은 설렁탕집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는 의붓아버지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해자 유족을 지금까지 한 사람밖에 찾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 의붓아버지는 “합의를 안 한다고 해서 안 갔다”며 “유족 측에서 나를 죽인다고 해서 살해 당할 것 같아서 못 갔다”고 답했다. 이어 “병원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고, 주위 사람들은 49일이 지나고 가는 게 맞다고 해서 늦게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해자의 친어머니는 어디 가셨으며, 그동안 왜 유족들을 찾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의붓아버지는 “아내까지 유족들 만나러 다녔다간 쌍초상이 난다. 심장이 좋지 않아 충격 받을까 봐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가해자 어머니는 절에서 100일 동안 불공을 드렸으며, 여전히 절에서 사망자의 명복과 피해자의 쾌유를 빌고 있다고 한다. 의붓아버지는 가해자 어머니가 불공드리는 모습을 항소심에서 재판 증거로 제출할 것이며, 공탁금 1억을 법원에 걸어 놨다고 전했다.

“100% 우리의 잘못이니깐 보험 회사에서도 최선의 금액을 주라고 했으며, 보상금 때문에 집도 팔아서 이제 아무것도 없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붓아버지는 “피해자 측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며, 뭘 해도 하나하나 다 서운할 것이다”고 수긍했다. 가해자 측은 형량에 대해서도 “많이 배운 판사들이 정한 것이지 우리가 논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형량? 많이 배운
판사 몫 아닌가”

현행법과 판례를 보면 이번 사건의 판결은 ‘극히 통상적’이라는 게 현실이다. 현행법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상)에 따르면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원동기포함)을 운전해 사람을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였을 때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가들은 쉽게 말해 살인죄도 참작할 동기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4∼6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물며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실수로 죽였는데 “어떻게 형량이 더 나올 수 있겠는가”라는 반응이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형량(처벌수위)을 여러 기준을 고려해 판단한다. 피해 정도뿐만 아니라 공탁 여부와 합의 여부 피해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 등을 보고 판단한다. 피해자 수가 같은 사건에서도 형량이 달리 적용될 수 있다.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한달 지나도 전화 한통이 없어”

판례를 본다면 2012년 대구고등법원은 음주운전으로 2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원심 징역 2년 판결을 파기하고, 가해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 일부를 보면 “가해자가 벌금형 전과 외 다른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과 가로등 조명이 없어 어두웠던 만큼 피해자들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피해자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참작하며 가해자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볌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해 원심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지난 3월12일 김씨는 이 사건을 <다음 아고라>에 ‘이슈 청원’을 했다. 19일까지 약 2200명 의 누리꾼이 서명했으며, 서명 목표 100%를 달성했다. 대부분 누리꾼은 “현행법이 음주운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사건의 가해자가 재범이며, 3명의 사망자를 냈음에도 ‘징역 5년 밖에 안 된다’는 게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최근 잇따른 음주운전 사건·사고로 피해예방을 위해 혈중알콜농도 0.05%에서 0.03%로 줄이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2년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강화해 음주로 인한 사망사고 건수가 2000년 1276건에서 2010년 287건으로 10년 만에 4분의 1로 감소했다.

“판결이 너무해”
네티즌 부글부글

경찰청 교통사고통계에 따르면 한국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0년 1만236명에서 2013년 5092명으로 절반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음주사고 사망자 수는 2000년 1217명에서 2013년 727명으로 감소율이 미흡하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음주사고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11.9%였지만 2013년 14.3%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식사 시 반주 습관과 음주 빈도의 증가로 향후 사망자 비율이 더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속 인터뷰> ‘3명 사망에 징역 5년’ 김기윤 변호사에 물었더니…
“음주운전 사망, 피해자만 억울”

음주운전 사건의 피해자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청원서는 현재까지 2200명이 서명했다. 발의 5일 만에 2000명을 달성한 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잇따른 음주운전 사건사고로 국민들은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강화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윤 중앙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나 이번 사건을 진단해봤다.


▲음주운전 형량이 낮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법원에서 유사한 사건을 선고한 판례에 비추어 볼 때, 특별히 형량에서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이 사건 판결에서 국민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이유는 형량이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괴리인 것 같다. 아무리 음주운전으로 3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해도 무기징역을 선고한 예는 드물다. 가장 최근에 나온 판례들만 보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징역 1년에서 5년 사이 정도다.


▲개선해야 하지 않나?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사법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민의식 면에서 지금까지 음주에 무척 관대했다. 억울한 사람이 참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재판부가 이를 참작해 개선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또 막연히 판사한테 형량을 높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판사는 기존의 판례와 양형위원회의 권고 사항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양형위원회도 양형기준을 만들 때 최대한 국민의 의식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국민 법감정이 사회에서 이슈가 되지 못하면 양형위원회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국민의 법감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결국 국민이 음주운전 처벌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게 중요하다. 그건 언론이 보도하거나 <다음 아고라> 같은 곳에서 관심을 끌게 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적 관심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다음 아고라>같은 청원 서명이 효과는 있다. 하지만 당장 가해자의 형량을 높게 선고할 수는 없다. 재판부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중립적인 판결을 한다. 누구의 입장도 더 들어주거나 덜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결국 재판부는 국민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의지와 형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동일할지라도 오늘날에 적용되는 형량은 더 무거울 수 있다. 꾸준히 청원서나 기사를 양형위원회에 보내 양형위원회에서 참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활동들이 사회적 역할의 씨가 될 것이다.

▲그래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데?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피해자만 억울하다. 또 가해자는 형량이 길다는 이유로 항소까지 해 분통이 터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 쌍방이 상소했기 때문에 형량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유족들은 가해자가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황당하고 서운할 수 있다. 가해자 측은 나름 유족들을 뵐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판사도 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재판부에서 피해자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가해자가 피해회복을 위하여 공탁금을 납부한 사실이 있는지, 진지한 반성이 있었는지, 합의를 위해 노력을 하였는지, 피해자의 유족들이 보험금을 수령하였는지 등을 재판부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여전히 법은 음주에 너그러운 편인가?

음주에 대한 처벌이 많이 강화된 편이다. 과거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불구속 수사가 대부분이었고, 판결 선고 역시 집행유예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음주운전으로 연예인들이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에 대해 질타를 받는다. 경찰 수사도 구속수사로 전환됐고, 실형도 많이 선고한다. 점점 강화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그렇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앞으로 음주운전의 최대 쟁점은?

음주운전을 다시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일 것이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재발률은 40%에 달한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아직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편이며, 사회의식이 ‘술 먹고 실수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주에 대한 사회적 문화가 전반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양형이 계속 높아지거나 형사처벌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불이익을 점차 증가하면서도 음주운전을 습관처럼 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음주운전 개선을 국민 개개인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도 음주운전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 및 시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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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