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친일재산 환수' 이우영 돈 228억 향방은?

나라 팔아먹고 아직도 ‘떵떵’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토 카뮈가 말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미특위) 강제 해산 이후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던 친일재산 국고 귀속 작업이 올해 완료될 전망이다. 현재 관련 소송은 단 2건만 남았다. 2건의 주인은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낸 소송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 회장의 228억의 향방이 결정된다.  



이해승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는 친일파이다. 그는 사도세자의 후손으로 고종과 인척 관계로 조선 왕족이다. 한일강제병합 직후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매국공채 16만2000원(현재가치 20억원)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기간 총독부 외곽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과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조선귀족회 회장으로 이해승은 일제 육·해군에 각각 1만원씩 국방헌금을 전달했다. 해방 후 반미특위는 이해승을 체포했지만, 반미특위가 해체 돼서 풀려났다. 이해승은 6·25 전쟁 중 납북돼 행방불명됐고, 1957년 실종 선고가 내려졌다. 

땅 받아 호텔사업

이해승의 장남은 1943년 사망한 상태여서 손자인 이우영 회장이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회장은 1957년부터 옛 황실재산총국에 소송을 제기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신탁돼 있던 재산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까지 신탁재산의 75%인 땅 890만㎡를 되 찾았다. 이 중 절반가량인 435만㎡를 매각했다. 
 
1988년 이 회장은 반환받은 토지 중 전계대원군의 처 용성부대부인의 묘가 있었던 서울 홍은동 땅에 스위스그랜드호텔을 지었다. 이후 이 호텔은 그랜드힐튼호텔로 바뀐다. 특1급인 이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곳은 동원아이엔씨로 이 회장의 아들이 대표로 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재산조사위)가 발족하면서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 회장의 그랜드힐튼호텔부지와 성북동 자택 등이 그 대상으로 결정 돼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재산조사위는 2007년 11월 이 회장이 소유한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임야 118만㎡를 비롯해 경기도 평택시, 충북, 서울 은평구 땅 192만여㎡를 친일재산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시가로 320억원에 달하는 땅이었다. 재산조사위는 포천시 설운동 임야와 서울 은평구 토지 등 185만㎡(시가 228억원에 상당)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산조사위는 140만8000㎡의 땅은 이해승이 1910년~1932년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땅이므로 국가에 귀속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회장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이 친일행각으로 얻은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008년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고용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전이 시작됐다.
 
이 회장은 조부의 친일 행위를 인정하지만, “이해승은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제는 식민 지배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조선왕실 종친들을 회유하고 포섭했다. 이 회장은 왕족인 이해승도 포섭 대상이었으며, 작위를 거부하지 못했을 뿐 친일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는 논리다. 또 이해승이 일제에게 받은 땅은 협력한 대가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땅’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제기한 첫 소송에서 재판부는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한 이 회장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부는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1심을 뒤집는다. 재판부는 이해승이 한일합병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해승이 일제의 한일합병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고, 한일합병 이후에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했다는 데 대한 역사적·도덕적 비난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같은 소송의 다른 하급심 소송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판결은 5개월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회장은 첫 소송에서 320억원 상당의 땅을 지켜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한일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재산 귀속 대상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 회장 측은 이를 이용해 ‘한일병합의 공으로’작위를 받은 것은 아니므로 재산 귀속 대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승소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 이해승의 한일합병 이후 친일 행각이 인정되는데도 후손이 상속받은 친일 재산을 환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별법의 문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회는 2011년 5월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대표발의로 서둘러 특별법을 개정했다.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한일합병 가담 여부와 상관없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라면 모두 친일 재산 국가 귀속 대상이 됐다. 국회는 당시 ‘한일합병의 공’ 이라는 범위가 분명하지 않고 추상적인 문구이며, 친일 공적이 없는 사람에게 작위를 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 확정된 소송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머지 소송을 의식한 법 개정이었다. 
 
이 회장은 개정된 특별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 그는 2011년 12월 진행 중이던 관련 소송 담당 재판부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했다. 이 회장은 “친일행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기만 해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다”며 개정 특별법의 처분이 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정인을 겨냥한 법 개정이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재산환수법 10년 만에 마무리 눈앞
친일파 왕족 이해승 유산판결 주목
 
하지만 헌재는 특별법 개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는 일제의 반민족적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깊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또 일제의 귀족이 됐다는 의미를 짚었다. 헌재는 “일제의 귀족은 일제 강점기 초기에 형성된 친일 세력의 최정점에 있는 상징적 존재”라고 평가했다.
 
지위 자체만으로 친일 세력의 형성과 확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 체제의 유지·강화에 협력해 조선사회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제의 작위를 반납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은 예외로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도 참작됐다. 
 
정부는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이 회장과 관련된 모든 소송에 승소했다. 2013년 정부는 국가 귀속 절차까지 마친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땅 4만여㎡에 대해 이 회장이 제기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항소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다. 이해승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재판과 서울 은평구 토지 12필지에 대한 소송에서도 정부가 이겼다. 
 
오히려 정부는 이 회장을 상대로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번 돈 228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2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개정 특별법에 따라 이해승은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해당한다”며 “해당 토지도 일제의 식민지 토지정비 정책에 편승해 받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회장 측은 소송에 불복, 패소한 모든 사건을 상급법원에 상소했다.

최종 2건만 남아

지난 1일 법무부는 “2006년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결정으로 국고 귀속이 결정된 토지에 대한 소송 96건 중 94건이 상고심까지 확정됐고 2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 2건은 모두 이 회장이 제기한 소송이다. 이 회장은 정부가 환수한 친일재산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 1건과 국가가 이 회장을 상대로 친일재산 처분으로 인한 부당이득을 반환하라며 낸 국가소송 1건이다.
 
이들 사건은 모두 연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선고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계류 중인 2건도 1·2심에서 정부 측 손을 들어줘 국고에 환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일재산 환수 현황

친일세력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해 후손 등에게 넘긴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사업이 착수 10년 만인 올해 모두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 사업의 법적 근거가 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2005년 시행된 이후 정부 차원의 조사 활동을 거쳐 친일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까지 대부분 완료됐다.  
 
소송은 3가지 종류다. 친일파의 재산을 후손이 처분해 얻은 부당한 이득을 되돌려받기 위해 정부가 소송 원고로 참여하는 국가소송이 96건 중 16건을 차지한다.
 
정부가 친일 재산을 국고로 돌려놓은 데 대해 후손 등이 불복해 낸 행정소송이 71건, 국고 환수 작업의 위헌성을 따지려고 제기한 헌법소송이 9건이다. 확정된 소송 94건 중 정부는 91건에서 이겨 전체 승소율 97%를 기록했다.
 
사건 유형별 승소율은 국가소송 100%(15건), 행정소송 96%(70건 중 67건), 헌법소송 100%(9건) 등이다. 정부가 패소한 것은 행정소송 3건에 불과했다. 문제의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였는지가 불분명하거나 친일행위자로 지목한 인물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수여받은 사람인지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경우로 판단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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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