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후보 과거 논란

‘탁치니 억했다’던 박종철사건 은폐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박상옥 후보자가 임명 제청됐다. 대법원 측은 당시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 발표했다. 또한 그가 대법관이 된다면 헌법적 사명을 다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법부가 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 적어도 ‘헌법적 사명’과 ‘국민의 신뢰’라는 부분에서 대법원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공산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1987년 6월, 부산 사하구 괴정동 사리암은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바로 물고문을 받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부당한 공권력이 서민들을 향해 행해지던 시절, 박 열사의 죽음은 모두를 분노케 했고 이후 ‘6·10민주항쟁’ ‘6·29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탁치니 억하고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13일 서울의 한 하숙집에서 의문의 남성들에게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고문장소로 악명 높던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의문의 남성들은 다름 아닌 대공 수사관들이었다. 그곳에서 박 열사는 그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을 한 이유는 당시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를 받고 있던 박 열사의 선배 박종운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는 것. 혹독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던 박 열사는 끌려온 지 하루 만에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3살, 서울대학교 3학년이던 대한민국의 꿈 많은 청년은 그렇게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하고 공권력에 짓밟혔다.

이후 경찰이 발표한 내용은 국민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다. 박 열사의 고문치사는 5공정권이 얼마나 폭압하게 공권력을 휘둘렀는지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전국에선 재수사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지만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들려오는 것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변명뿐이었다. 경찰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박모군(박종운)의 소재를 물으면서 책상을 세게 두드리는 순간 의자에 앉은 채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사망했다”는 것이다.

혈육의 죽음은 흔히 애간장을 끊는 슬픔에 비유된다. 즉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 박정기씨와 어머니 정차순씨의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그들의 애끊는 슬픔이 전해지면서 전국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민주화 시위 현장에는 꼭 등장하는 문구가 있었다.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는 먼저 간 아들에게 아버지 박씨가 전하는 장송곡이었다. 그리고 이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은 항상 선두에 서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지켜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고문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관련 경찰 2명만 구속한 뒤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하려 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고문을 했던 경관들이 스스로 다른 가담자가 있다는 진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사건을 조기 종결시킨 검찰의 행태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현재의 박 후보자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팀에 속해 있던 박 후보자는 1987년 1월24일 고문경찰관 2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2월27일 안상수 검사가 수사도중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자백을 받게 되고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게 된다. 그러나 추가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에 대한 사건 은폐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2차 수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범인 축소 조작에 가담한 혐의가 전혀 없다”고 말하며 무혐의 처리했다. 박 후보자는 이때 1·2차 검찰 수사에 모두 참여했다.

사건 당시 1·2차 조사팀 소속 수사검사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까지 사퇴 촉구

박 후보자는 이후 검사장급까지 승진했다. 그리고 헌법적 사명을 가지고 국민적 신뢰를 받는 대법관후보자에 올랐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한 대법관 후보 임명동의 요청서를 보면 다른 경력과는 달리 수사를 조기 종결시킨 이력만 빼고 제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후보자로서의 자격에 결격사유가 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박 후보자는) 대법관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서 박 대변인은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된다면 이는 박종철 열사를 두 번 죽이고 6월 민주항쟁정신을 짓밟는 것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박 후보자는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4일 성명서를 통해 “법원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고 양심을 대변하는 최후기관이며 특히 대법원은 최고의 사법기관으로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사회구성원을 보호해야 한다”며 “박 후보자는 고문 끝에 억울하게 죽어간 한 대학생의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숨기려는 시도를 알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했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법조계도 반대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 수사 검사는 대법관이 될 수 없다”며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박 후보자 임명동의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 정의와 인권의 보루이자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할 최고법원의 법관으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다”며 “박 후보자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 후보자는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내용에 따르면 “당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고, 의혹 없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수사 검사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수사경력을 일부러 누락한 건 아니다”며 “통상적인 방식에 따라 후보자의 근무처와 근무기간, 직위만이 기재됐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이어서 박 후보자는 “당시 담당했던 역할은 청문회 과정에서 성실하게 말씀 드리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법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오는 11일로 예정된 가운데 박 후보자는 과연 헌법적 사명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용감한 검찰 그 후
진실 은폐에 맞서 부검 지시, 증거 확보 노력

당시 경찰의 고문치사 은폐를 밝혀낸 ‘용감한 검찰’이 있다. 최 환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은 시신을 얼른 화장하려는 경찰에 맞서 부검을 지시했고, 안상수 당직검사는 부검의 황적준 박사가 제대로 된 부검을 할 수 있게 현장에서 그를 보호한다. 모든 것을 은폐하려고만 했던 당시 정부와는 상반된 태도였다.

이후 최 부장은 1995년에 5·18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3월 광주를 찾아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묘소 등을 참배해 “수사 과정에서 북한군 침투설, 폭동설 등과 관련된 증거는 전혀 없었다”며 “오늘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는 5·18에 대한 억측은 없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소신을 말했다.

당시 은폐를 제지하고 물고문이 있었음을 밝히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는데 일조한 안상수 당직검사는 1987년 9월9일 사표를 내고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가 변호사 생활을 했다. 이후 1990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2~3년만 더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안 검사는 경상남도 창원시장이 되어 민생을 살피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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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