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묻지마 법안' 통과 실태

찬성할 땐 언제고 이제 와 남 탓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돌변한 연말정산으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국민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정치권은 뒤늦게 호들갑을 떨며 수습에 나섰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세법 개정안은 지난 2013년 여야의 합의로 통과됐지만 막상 문제가 불거지자 정치권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이 같은 해프닝은 국회의 ‘묻지마 법안’ 통과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29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무려 148건의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법안을 모두 표결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4시간 남짓. 법안 1건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40초 가량이었다. 국회에서 통과되는 법안 하나하나는 모두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법안 내용에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황당한 국회

법안 제안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에는 단체로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고, 일부 의원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동료의원들과 잡담을 하다 얼떨결에 투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상임위를 거쳐 여야 당 지도부 간 합의를 끝낸 법안들이라지만 방청석에서 지켜볼 때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마조마했다.

지난 2013년 처음 의원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한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 의원은 “법안 처리과정을 보니 회의 직전에야 상정될 법안의 최종안이 정해지거나,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새롭게 상정되는 안건도 많았다”며 “비록 상임위와 정당 차원에서 미리 검토하고 당론을 정하는 과정이 있지만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입법기관으로서 최종적인 판단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려했던 대로 이 같은 묻지마 법안 통과 실태는 곧바로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이번 세법 개정안 논란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모 의원은 자신이 해당 개정안에 찬성했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SNS를 통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가 “그렇다면 그 때 반대하지 그랬냐”며 오히려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연말정산 논란과 관련한 여야의 책임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당시 소득세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국회의원은 단 6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사태까지 불러온 택시법이나 법안의 핵심인 ‘심의’라는 문구가 ‘심사·의결’로 바뀌어 통과된 사학법 개정안 등도 모두 묻지마 법안 통과 실태가 불러온 참극이었다.

지난 한해 가계 통신비 부담만 늘렸다며 ‘국민 호갱(호구 고객)법’이라고 불리는 단말기유통법(이하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한 언론에 따르면 단통법을 심의한 지난 2013년 12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단통법과 관련된 18쪽의 내용 중 삼성전자 영업정보 보호에 관한 내용은 14페이지나 됐지만 소비자 부담과 직결되는 조항에 대한 심의는 2페이지에 그쳤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단통법 개정안 처리 당시 단 한 명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정쟁하다 마지막 날 무더기 처리
시키는 대로 누른 거수기 국회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묻지마 법안을 통과시키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보다 심의해야 할 법안이 크게 늘었다는 것. 실제로 11대 국회 당시 발의된 법안은 202건에 불과했지만 지난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무려 1만2220건에 달했다.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이처럼 크게 늘어난 것은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분위기 탓이다. 발의된 법안들 중 상당수는 알맹이가 없는 실적 쌓기용 법안이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의원 한 명이 모든 법안을 꼼꼼히 살펴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상임위 법안에는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은 웬만해서는 찬성표를 던져주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렸다. 본회의에서 반대에 부딪혀 법안이 부결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단 2건 뿐이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는 일종의 분업인 셈”이라며 “1만건이 넘는 법안을 국회의원들이 왜 다 꼼꼼히 살피지 않고 통과시켰냐고 비판한다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툭하면 마비됐던 국회도 묻지마 법안 통과를 부추겼다. 19대 국회 들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사태 등으로 국회의 공전이 길어지면서 상임위 역시 보이콧 되는 날이 많았다. 법안을 심사해야 하는 소위마저 여야의 대치 정국 속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으니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법안들이 무더기로 ‘땡처리’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부실입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여야 간 대치로 법안을 충분히 심사하지 못했다면 법안 통과를 미루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지만 국회는 과거와 연 평균 입법 수준을 맞추기 위해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지난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난 2000년 이래 가장 많은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자화자찬하기에만 바빴다.

또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더라도 현재의 국회 시스템 하에서는 여야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 때문에 상임위조차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야 지도부간 협상 실무를 담당하는 원내수석부대표가 합의하면 대부분 그대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제왕적 대통령’에 빗댄 ‘제왕적 원내수석’이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결국 대다수의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거수기 역할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다음 선거를 대비해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의 처지도 묻지마 입법의 한 원인이다. 대표적으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택시법’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지만 법안은 단 한 달 만에 처리됐다. 택시업계의 표가 버스업계보다 많고 택시기사를 통한 구전효과가 크다는 정치권의 속설 탓에 아무도 섣불리 반대표를 던지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 법안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까지 행사해 막아야 했다.

시키면 한다

그래서 국회 안팎에서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최종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국회 기구가 추가로 설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새정치연합 이춘석 의원은 “법사위가 본회의 전에 법안을 살펴보지만 법안 자구 심사에 한정된다”며 “국회의원과 외부 전문가들이 함께 법안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새해에도 국회의 고질적인 묻지마 법안 통과 행태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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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