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으로 간 김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외톨이 왕따 ‘IS 전사’로 돌아올라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여행 중인 김모(17)군은 10일 터키 킬리스 지역에서 실종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김군의 컴퓨터와 이메일 등을 분석하고 부모, 터키에 동행한 홍모(45) 목사 등 주변인을 불러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외교부와 경찰 등 관계당국은 김군이 IS(이슬람 과격단체)에 가입하려고 자발적으로 터키로 간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김군의 납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터키 주재 한국 대사관은 한국에서 입국한 김군이 시리아 접경 지역인 킬리스에서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았다. 김군이 실종된 터키 동남부 일대는 여행경보 지역이다. 시리아 국경으로부터 10㎞까지는 ‘적색 여행경보 지역’으로 외교부가 우리 국민의 출입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터키까지 어떻게?
 
김군는 지인 홍씨와 함께 지난 8일 터키에 입국했으며 10일 킬리스 소재 메르투르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 연락이 끊겼다. 이에 홍씨는 지난 12일 대사관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실종자 가족은 14일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16일 금천경찰서 강력팀 긴급통신수사를 실시했다.
 
김군은 지난해 3월부터 IS 관련 신문기사 등 65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즐겨찾기 목록에 등록해두었으며, 지난 1년간 총 3000회 검색 기록 중 <IS><터키><시리아><이슬람> 등을 주요 검색어로 517회 검색한 바 있다고 밝혔다.
 
바탕화면에는 ‘IS 깃발을 든 전사들’의 사진파일 4점이 저장되어 있었고, 삭제된 자료 복원을 통해 IS관련 사진을 추가로 확인했다. 또 터키에 도착한 뒤에는 9일과 10일 각각 터키 현지 전화번호로 통화한 사실도 공개됐다.
 

경찰은 김군이 터키에 도착한 후인 지난 9일과 10일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두 차례 현지 휴대전화번호인 ‘15689053********’로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첫번째 통화는 김군이 가지안텝프 호텔에 체크인 하기 전후인 9일 오전 8시2분께 이뤄졌다. 10일 두번째 전화통화는 김군이 오전 8시30분 신원 미상의 남자와 시리아 번호판을 단 택시를 타고 킬리스 호텔을 떠났다. 김군은 당시 이 택시를 타고 킬리스 동쪽으로 약 25분 거리인 베리시에 마을의 시리아 난민촌에 내렸다. 
 
터키 킬리스 지역서 실종 “납치 아니다”
경찰 IS 자발적 가담 판단…치밀 계획적
 
경찰은 김군이 9일 첫 통화를 통해 이튿날 오전 만남을 약속하고 10일 신원미상의 남자의 안내로 시리아 난민촌으로 이동하고서 재차 터키 전화번호 상의 인물로부터 지령을 받아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군이 통화한 번호는 트위터 대화명 ‘Afriki’가 알려 준 ‘하산’의 전화번화와 다른 번호로, 슈어스팟을 통해 알게 된 번호로 추정된다. 
 
한국과 터키 경찰은 이 전화번호의 수신자 신원을 밝히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컴퓨터 분석 결과 김군은 지난해 10월 터키 현지인이 개설한 트위터 계정 ‘habdou****’과 수차례 IS 가입 방법 등에 대해 대화했다. 트위터 대화명이 ‘Afriki’인 이 계정의 인물은 김군에게 "이스탄불에 있는 하산이란 형제에게 연락하라"라며 그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경찰은 ‘Afriki’가 지난해 10월 15일 김군에게 “슈어스팟(surespot)에서 ‘ga***’를 찾으라. 그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대화 내용을 복원했다.
 
조력자 있었나?
 
김군은 또한 치밀하게 움직였다. 20일 외교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김군은 동행한 홍씨와 함께 8일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저녁에 가지안테프로 도착해 투숙했다. 다음날 바로 차량을 통해 킬리스로 이동했다. 두 지역은 가깝고 차 말고는 교통수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킬리스에 도착해 호텔에서 묵은 뒤 실종 당일인 10일 오전 배낭 하나를 메고 호텔을 나선 모습이 CCTV에 잡혔다. 
 
호텔 맞은편에 있는 모스크 앞에서 수 분간 서성였는데 아침에 남성 한 명을 만났다. 그 남성은 김군에게 손짓하며 신호를 보냈고, 시리아 번호판을 단 검정 카니발 차량이 이들을 태우고 이동했다. 



이 차량은 택시인데, 시리아 번호판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터키까지 오가는 차량으로 이미 터키 경찰은 해당 운전사 조사까지 마쳤다. 시리아인이 운영하는 불법택시이며, 실종 당일 오전 모스크 주변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이들을 태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이 난민촌 주변에서 하차했고, 그 뒤로 이들의 행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직 국경검문소를 통과한 기록도 없다”고 밝혔다.
 
외국어 능통했나?
 
경찰에 따르면 김군은 영어, 터키 현지에서 사용하는 아랍어 등에 능통하지 못했다. 그런  김군이 지난 9일과 10일 터키 현지 전화번호로 각각 2분31초, 4분38초 동안 통화했다.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과 달리 외국어로 직접 짧지 않은 시간 대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  정도의 통화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고 지적했다.
 
김군을 태운 택시 운전사에 따르면, 김군과 남성 등 이들 2명은 베사리에 마을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촌까지 25분간 탑승하면서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증언했다. 이는 불필요한 정보 노출을 꺼려 대화를 의도적으로 안 했거나, 영어 등 아랍어 구사능력에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에 따라 터키 번호로 통화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김군의 ‘조력자’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군과 화한 사람이 한국인이거나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인물일 가능성에 대해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동생만 통화 왜?
 
김군은 휴대전화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5일까지 총 1666번의 전화를 걸었는데 이 중 1657회를 동생에게 걸었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 직전까지 김군이 동생과 통화했다”고 말했다. 단순 수치만 놓고 봤을 때 김군은 동생과 하루에 22차례 정도 통화한 셈이다. 보통의 형제보다 더 각별한 관계로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접근부터 포섭·가입까지
수사발표에도 여전한 의문
 
이런 점으로 미뤄 동생은 사전에 김군의 IS가입 시도 등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아가 김군이 동생에게도 IS가입 등을 권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동생이 ‘패닉’ 상태이기도 하고 동생을 조사한다고 해서 김군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돼 조사하지 않았다”며 “우리 수사 영역은 김군이 해외에서 실종을 당했는지 등 피해부분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동생 등에 대한 조사는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666회 중 동생에게 전화를 건 횟수를 제외하면 김군은 2개월 반 동안 단 9차례만 동생 이외의 사람들과 연락했다. 지난 9일과 10일 터키 현지 전화로 건 국제전화 내역을 빼면 동생 이외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 횟수는 단 7차례에 불과하다. 10일에 한 번 꼴로 동생 이외의 사람과 통화를 한 셈이다.
 
이같은 정황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또래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던 김군이 외로움에 방황하다 ‘IS가입’등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복수 대상은?
 
또한 그가 SNS에 남긴 글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김군은 트위터에 “이제는 남자가 차별받는 시대”라며 “페미니스트가 싫어 IS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러한 심리가 김군이 IS를 옹호하는 동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김군의 행동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 나타나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과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김군은 인터넷을 통해 폭력성과 가부장적인 사고를 키워왔고, 그런 자신의 성향에 부합하는 곳으로 IS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발표 내용을 종합해보면 김군은 여성혐오적 성향과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으로 IS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 수천Km 거리에 있는 터키까지 자발적으로 건너가 테러조직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군이 테러조직과 이슬람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실제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김군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홈스쿨링을 통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등 사회부적응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김군은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경부터 터키여행을 가고 싶다면서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맘을 잡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겠다고 하여 지인을 통해 홍씨를 소개받아 함께 여행갔다. 김군 부모는 출국 전에 “아들이 하산이라는 사람과 채팅을 하고 IS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전혀 몰랐다”고 전했다.
 

가담자 또 나올까?

자취를 감춘 김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가 사용했던 SNS 트위터 계정을 따르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IS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도 있어 제2, 제3의 김군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1일 오후 김군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잉하는 팔로어 수는 400명에 이르렀다. 김군의 트위터 계정은 전날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단순 호기심이나 취재를 위해 김군 계정을 팔로잉한 이들도 있지만, 김군이 트위터로 IS 가입 의사를 밝힌 것처럼 ‘IS에 가입하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김군을 팔로잉한 한 트위터리언(@no×××)은 “나는 IS에 가입하고 싶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는 글을 아랍어로 남겼다. 또 다른 트위터리언(@sk×××)은 아랍어로 “안녕하세요, 당신을 만나서 기쁩니다” 등의 트윗을 김군에게 보냈다.
 
IS는 현재 이메일, SNS 등을 활용해 세계 각국의 젊은 세대들을 포섭하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나 은둔형 외톨이들을 꾀어 모험심을 부치기거나 금전적 보상, 여자친구 소개등 다양한 방법으로 떡밥을 던진다. 현재 외국인 IS대원은 82개국 1만5000명에 달한다. 터키가 IS 가담 핵심 경로로 확인된 만큼 국내에서 터키로 출국할 경우 철저한 당국의 감시, 이슬람 과격세력의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 등 도 테러방지 관련법을 재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무슨 처벌 받나?
 
김군이 IS에 가담했다고 가정할 때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도 관심사이다. 일단 시리아로 입국했다면, 입국금지 국가를 입국한 데에 여권법 위반을 적용할 수 있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외에 특별히 규정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 다만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처벌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유엔은 IS 사태와 관련, ‘외국인 테러 전투원’ 결의안을 최근 채택했다. 외국인 테러 전투원은 다른 나라 국적을 지닌 자가 테러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걸 의미한다. 결의안은 유엔 회원국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니며, 각 국가는 외국인 테러 전투원 방지 대책을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테러 단체 가담 자체가 처벌 대상인지는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기존 사례가 없어 정부도 만에 하나 김군이 IS에 가입했을 가능성에 대비, 관련법을 검토 중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IS, 도대체 뭐길래?
 
이슬람국가(Islamic State)는 국가가 아닌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괴격파 테러리스트의 단체다. 주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 세력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 또는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목표는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제정일치 국가인 이슬람 국가 건설이다. 
 
‘IS’는 테러조직의 대명사인 알카에다가 운영 자금을 기부받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달리 IS터진 지역이 유전지대라 원유 밀수로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여 자급자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IS가 우리에게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한국인 김선일씨 참수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다.
 
또한 지난해 12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부설 도하센터의 한 연구원이 ‘한국인 IS 전사’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진 속 동양인이 한국인이 맞는지 즉각 확인 작업을 벌였지만 ‘사실 여부를 파악해보려고 시도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슬람권이라고 모두 IS를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시아파인 이란은 수니파인 IS와 대립하고 있으며, IS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오랜 앙숙인 미국과도 협력할 뜻이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시아파)도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IS와 맞서고 있으며, 시리아 이라크 정부 및 터키나 시리아 온건 반군도 IS와 대립하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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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