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 전당대회 흔들기 막전막후

"설사 지더라도 곱게는 못 끝낸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차기 총선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당대표를 선출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친노와 비노 간 계파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비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당대회 흔들기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축제의 장이 돼야 할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정치연합 내부의 분위기는 이래저래 뒤숭숭하기만 하다.

"전당대회가 진흙탕 싸움으로 치러지는 것은 늘상 있었던 일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당대회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전당대회 이후 딴생각을 먹은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의원이 이긴다고 해도 제대로 당을 통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겨도 찝찝
관심없는 비노

차기 총선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당 대표를 선출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간의 계파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비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당대회 흔들기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새정치연합의 창업주인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열린 전당대회 예비경선 투표에 불참해 논란을 일으켰다. 안 의원은 같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가있었다. 안 의원 측은 “예전부터 자주 CES를 방문했고 공교롭게 일정이 겹쳤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전당대회 보이콧 등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남들은 하는지도 몰라" 재 뿌리기
전당대회 전후로 대거 탈당 준비?


실제로 새정치연합의 창업주이자 공동대표까지 지냈던 안 의원이 전당대회 예비경선에 불참한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예비경선 결과에 따라 당이 나아갈 방향은 크게 엇갈릴 수 있고 예비경선 선거인단은 당고문, 국회의원, 시도지사 및 시장 등 불과 378명의 중앙위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한 표의 가치도 매우 큰 편이다. 때문에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외교나 국제 업무가 아닌 이상 중앙위원들은 전당대회 투표권을 빠짐없이 행사하는 게 관행이었다.

안 의원은 이미 측근들을 각종 당직에서 철수시키면서 한 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전당대회 예비경선에 불참한다면 이 같은 논란이 또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때에도 문 의원과 단일화한 뒤 대선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국으로 떠나 구설에 올랐었다.

딴생각 품었나?
뒤숭숭한 전대

물론 CES는 세계 가전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을 감수하고 참여할 만한 행사였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 참석한 정치인은 안 의원이 유일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이 이 같은 논란을 예상 못했을 리가 없다. 어떤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전직 당대표로서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고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귀국 후 이 같은 논란이 일자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가 열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며 이번 전당대회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안 의원의 측근들도 외곽에서 전당대회를 흔들고 있다. 강연재 변호사 등 안 의원의 측근들은 지난 13일 대선 당시 문재인 의원과의 단일화 과정을 부정적으로 회고한 <안철수는 왜?>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 내용에 따르면 안 의원은 대선이 끝난 후 “2012년 대선 때로 돌아가면 문재인 의원과 단일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거나 “문 의원은 당선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끝까지 후보를 고집했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윤석규 전 새정치추진위 전략기획팀장, 정기남 한국정치리더십센터 소장 등 일부 안 의원의 측근들은 외곽에서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야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안 의원 측은 자신의 뜻과는 관련이 없는 측근들의 돌발행동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전당대회를 앞둔 미묘한 시기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자숙기간은 끝났다”며 “현안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참여하지도 않은 안 의원이 하필 전당대회를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전당대회에 쏠리는 시선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며 “결혼식장에서는 신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하객들이 흰 옷을 입는 것을 피하는 것처럼 전당대회 기간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안 의원은 오히려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밖에서는 전당대회 흔들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전당대회 컷오프가 치러진 직후인 지난 11일 아예 탈당을 결행해 전당대회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국민모임 신당 합류를 선언했다.

당내에서는 “전당대회가 이제 막 시작됐는데 이런 시기에 탈당을 선언한 것은 의도적인 재 뿌리기”라며 “그래도 과거 몸 담았던 정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탈당설이 나도는 천정배 전 의원은 지난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의 탈당여부에 대해 “전당대회가 끝나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계획”이라면서 “당이 절망적이라면 과연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바른 자세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려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탈당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치적으로 중량감 있는 두 사람이 각각 탈당하거나 탈당 결행을 저울질하면서 이미 전당대회의 결과 자체보다는 전당대회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 의원과 당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지원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전당대회를 흠집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당대표 경선 과정의 핵심쟁점인 당권-대권 분리론과 대선패배책임론에 대해 일축하자 박 의원이 ‘문재인 편들기’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박 의원은 기자회견 직후 직접 문 위원장에게 전화해 항의한데 이어 다음 날엔 캠프를 통해 공식적으로 항의 논평까지 냈다. 박 의원 측은 “문 위원장이 중립 의무를 위배했다”면서 “문 위원장은 지난해 비대위 출범 직후 친노 진영이 주장한 모바일투표 도입을 주장하는 등 우연인지, 치밀하게 조정된 것인지 모르지만 문재인 의원과 항상 뜻이 일치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성 의문
계파갈등 부각

이처럼 비노 진영에선 문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가 결정되기 전부터 이번 전당대회의 중립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분출됐었다. 비노계로 분류되는 김영환 의원은 “문희상 비대위 체제하에서 문재인 의원이 전면 부상하는 ‘문-문 투톱체제’”라며 “하나마나한 전당대회를 뭐하러 하나? 차라리 문재인 의원을 합의 추대하는 게 낫겠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전당대회의 공정성에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전당대회를 흔들려는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상당수 비노계 의원들은 이번 전당대회를 그저 멀리서 관망하고 있는 모양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차기 총선이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왔고 차기 공천권이 달린 선거인데 너무 분위기가 차분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실천위가 계파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당내에서 치러지는 일체의 선거에서 국회의원이나 당직자들의 특정후보 지지를 금지하는 혁신안을 의결했기 때문에 전당대회 분위기가 뜨지 않는 것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지만 정동영 전 장관의 탈당과 맞물려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의 분위기는 무척 뒤숭숭하다.


공정성 의문 품고 불복 가능성도
결국엔 차기 공천 밥그릇 싸움?

그렇다면 왜 비노계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전당대회 흔들기에 나선 것일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 의원과의 정면대결에서 비노계가 승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질 때는 지더라도 곱게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문 의원을 흔들고 계파갈등을 부각시킬수록 문 의원의 입장에선 탕평 공천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차기 대권을 생각한다면 당권을 잡더라도 친노만 챙기는 일방적인 공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엔 계파간 지분 확보 싸움의 일환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현재 당내 비노 대권주자들 사이에서는 문 의원이 당대표인 새정치연합에서 과연 자신이 대권후보가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번 전당대회를 흔들어서 문 의원이 당대표가 되더라도 정통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도록 깎아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전당대회 이후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비노 진영이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재보선 코앞
버틸 수 있을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변화와 혁신을 기대했는데 전당대회가 계파별 지분 챙기기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는 모양새”라며 “이대로는 누가 승리하든 상처뿐인 영광이고 전당대회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4월 재보선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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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최근 국민의힘에선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자들만 넘쳐난다. 언론은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더 큰 몰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을 피할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있지만, 정가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15일 쌍특검(통일교 금품수수·더불어민주당 공천 헌금 비리 의혹 특검)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가 대통령실·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어지는 패배 경고 그러다 지난달 22일 초라하게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대해선 강한 의욕을 드러내 친한(친 한동훈)계와 소장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장 대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밀착하는 등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자신의 정치적 공간 조성 전술로 삼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 큰 집단’과 공명하면서 장 대표의 정치적 의사 청취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싶은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말을 안 해도 속은 숯검댕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 전 대표가 제명됐던 지난달 29일에도 “장 대표가 당을 자멸로 몰아넣었다”면서 장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24일부터 2일 동안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40.3%의 지지를 얻어 50.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성동구청장보다 10.2% 뒤처지는 결과를 얻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이하 TK) 외 지역에선 지방선거 전패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국민의힘의 TK 지지율은 19%로 확인돼 정가에 큰 충격을 줬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지도력의 공백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이후에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를 맡아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미래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난해 5월10일 새벽 3시에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기습 교체하려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갈등을 매끄럽게 수습·조율할 지도력 공백의 여파였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사했던 정치술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인자·미래 권력·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정치인은 퇴출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 디스카운트…현 시도지사 속은 숯검댕이” ‘북적북적’ 넘치는데 다른 지역은 구인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관련 갈등을 빚었던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하면서 국무회의 도중 강하게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13일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3명의 여당 수장에게 ‘격노’ 카드를 부여한 후 퇴출하는 정치술을 구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과도한 당내 권위·권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권력 승계에 있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학에선 과도한 권위·권력이 갑자기 무너진 후 진행되는 혼란상을 권력 공백이라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권력 형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했던 가산관료제와 맞닿는다.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제가 군주제 국가의 관료제보다 진보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군주제 국가 관료제에 가산관료제란 명칭을 붙였다. 군주제 국가의 각종 행정 기구는 군주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면서 군주의 개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주는 국가의 가부장이고, 관료는 군주의 가신에 가깝다. 군주의 주관적 의지와 자의적 판단이 법적 절차보다 우위에 있고, 군주와의 친소 관계가 관직 임용의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관직은 거래 수단이 되는 등 사유화된다. 두 전직 대통령도 공천권을 사적 충성심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 박근혜) 계열 정치인을 제20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2018년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대 정당 시스템을 전근대적 가산관료제로 역행시켰다.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전임자의 권위·권력을 승계받은 후계자가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혼란을 수습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5월 대선후보였던 김 전 후보를 새벽에 기습 교체하려고 했던 것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했던 극단적인 혼란이었다. 한 전 총리가 김 전 후보의 대안으로 선택됐던 이유도 당내 영향력이 미약한 인사·외부인을 옹립해 특정 정치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려던 것이었다. 12명 중 5명 출마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을 암시하는 현 상황 중 하나는 당내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선언만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 ▲추경호 전 원내대표(대구 달성군) ▲윤재옥 전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최은석 의원(대구 동·군위갑)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 등이다. 원외 정치인으로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 홍석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TK 지역신문 <영남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대구 전체 의원이 12명이니, 절반 가까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든 셈이고, 사상 유례없는 출마 러시”라며 “추상적인 슬로건을 강조할 뿐, 대구의 미래에 대한 독자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고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전한길을 품는 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며 “저는 공천 같은 건 안 받지만, 만약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는다면 이 전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고, 오는 9일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2022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재원 최고위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있다. 이 지사는 3선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 시장은 포항시장 3기를 채웠기 때문에 더는 포항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다. 최 전 부총리는 구 친박계의 핵심으로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22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경북도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김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오 시장에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원외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선 “과열 양상이 빚어지는 TK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친한계는 “서울 강남·부산의 보수 성향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한계는 십수명 안팎의 국민의힘 의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다. 사라진 2인자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지난달 28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수도권 기반 의원들의 위축을 유발해 국민의힘 전체의 폐쇄적 집단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선 “소장파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할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당내 견제 장치가 사라져 언더 찐윤의 확증 편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질 위험으로 이어진다. TK·강원을 주된 기반으로 둔 언더 찐윤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연이어 참패해 국민의힘의 수도권 기반이 축소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치 구도에서 수도권 출마자들은 외연 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외연 확장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텃밭을 지역 기반으로 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연 확장 실패는 정당의 힘을 약화한다. “언더 찐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는 국민의힘 내 TK 기반 정치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면서 지역구 토호와의 접촉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연 확장 실패는 외부와의 경쟁 포기·지역 기반 안주란 결과로 연결된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열기만 이어진단 것은 ‘영남 자민련’ 축소를 자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내 중앙 정치의 패장들이 중앙 정치에 뜻을 잃고 내부 기반의 요새로 도피하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현대 정치학에서 거론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개념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개인이 이성적 정책·이념보다 인종·지역·종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년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출간했다. 추아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특정 집단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증오·대립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출마를 촉구·지지하는 상황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 계파적 부족주의로까지 축소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연이은 수도권 참패 후유증…부족주의 강화 눈앞 아른거리는 자민련·자유선진당 뒤안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선 “연이은 선거 패배 때문에 이어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 성공했던 지역 기반 승리에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보신주의를 추구한다”는 평이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은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해 후계자 양성에 소홀했다. 이는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 권력이 돼야 할 2인자가 사라졌다는 후유증으로 연결됐다. 이들은 소속 정당이 중앙 정치에서 힘을 잃더라도 지역 기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성공을 안겨준 지역 기반에서의 승리 공식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국민의힘의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 5명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현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에 대해선 당이 “불확실한 중앙 정치를 감당할 역량마저 고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일부 지식인은 거듭되는 난세를 정치적·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선 대나무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장사상을 토대로 구성된 청담을 말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들 중 특히 유명했던 선비 7명을 묶어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죽림칠현은 모친상 도중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친구의 모친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말년엔 고위 관직을 지내거나, 위나라 황실 사위가 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들에게 대나무숲은 정치적 실패를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사회 전반적로는 5가지 광물을 섞어 제조하는 마약 오석산이 유행했다. 죽림칠현도 술에 오석산을 섞어 마시면서 청담을 논했다. 오석산 복용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기행을 저질렀다. 독성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 옷의 반듯함을 감당하지 못해 낡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위나라 곳곳엔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만 이어지는 현상은 “텃밭으로 돌아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정권 상실이란 현실을 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컬어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몰락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연립 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정치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연이어 선거에 패배한 후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만큼의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해 2012년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소멸했다. 다가오는 몰락의 길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중도 보수’ 선언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TK만 북적거리는 국민의힘은 자민련·자유선진당의 뒤안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