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㉑ 잔인한 사형방법

"톱으로 조금씩 목 잘라 죽였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당시 일본은 조선이나 중국과는 다른 봉급제도를 갖고 있었다. 조선이나 중국은 중앙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관료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었으나, 일본은 봉급을 주는 대신 영지를 나누어 주는 일종의 장원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영주로부터 봉급을 받는 대신에 하사받은 영지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을 팔아 수입을 대신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은 관료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면서, 나라의 여러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일하도록 하였다. 몇 년은 함경도에서, 몇 년은 영남에서,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호남지역에서 일하게 하였다.

베테랑 왜군

전국 곳곳에서 일함으로써 나라 사정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은 되었겠으나,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님으로써 동료 사이에 인간관계로 맺어지는 끈끈한 정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은 군사 동원 체제로 ‘제승방략(制勝方略)’이라는 제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지방의 수령이 군사를 모아 전투 지역으로 출전하면 중앙에서 임명된 장수가 그 병사를 지휘하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는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효율성 있게 막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낯선 지휘관 아래 여러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소속됨으로써 결집력이 떨어지고 지역적 특수성을 살린 전술을 쓰기 어려운 제도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은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다. ‘신립 장군’을 ‘3도 도순변사’로 임명하고, 3000의 기마병과 5000의 보병을 합친 8000의 군사로 남한강의 ‘탄금대’ 앞에 배수의 진을 치고 국가의 운명을 건 대전을 준비했다. 이 8000의 군사는 그때까지 경기도, 충청도 등에 산재해 있던 군사를 모집한 것이고, 사령관 신립은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던 장군이었다.

사령관과 그 밑의 장수 및 병사들은 한 번도 함께 한 적이 없던 부대였다. 반면에 상대 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사는 조총이라는 당시 최신 무기로 무장된 군사라는 점 외에도 전국시대를 겪으며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온 군사들이었다.

작전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왜군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조선의 군사는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도 그 뜻이 잘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장원제도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받은 가신은 다시 하급 무사나 농민들에게, 전쟁 시에는 군인으로 또는 짐꾼으로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일정한 계약을 맺고 땅을 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영지는 대물림되므로, 한번 땅을 하사받으면 그 땅은 대대로 생활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그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 먹고사니, 이곳저곳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일이 없었고, 한번 땅으로 맺어진 주군과 가신의 관계는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전쟁터 나가
영주 마음대로 언제든지 사형 집행


좋게 보면 그 때문에 주군과 가신 사이에 끈끈한 정도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려운 시기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대대로 얽매여 사는 결과가 된다. 한번 주군이면 평생 주군일 뿐 아니라, 자손 대대로 주군이 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주군의 눈에 벗어나는 일이 생겨 하사받은 땅을 몰수당하면, 전 가족은 하인으로 전략하며 그것도 대대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세상만사 언제 어디서나 먹고 사는 일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경제적 번영기이든 쇠퇴기이든, 풍요로울 때나 궁핍할 때나, 사람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물며 어려운 시기에 목구멍은 더더욱 무서운 포도청이 되는 것이다.

전쟁에 나간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는 두려움보다 당장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가신이 주군에게 충성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충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주군은 부하 사무라이에게 영지를 내림으로써 은혜를 베풀며, 사무라이는 전쟁에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의무다’라는 글과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여 볼 때, 사무라이들이 그들의 영주에게 했던 충성은 그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관우나 장비가 유비에게 보인 충성은 순수한 충정에서 나온 충성이었다.

결코 어떤 조건이나 이익을 바라고 ‘도원결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들끓는 홍건적을 무찌르고, 쓰러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었다. 사육신이 단종에게 보인 절개 역시 순수한 충정에서 우러나온 신하의 절개였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 모진 고문과 삼족(三族)을 멸하고 제자들까지 처형당하는 형벌 속에서, 그리고 자신들은 거열형을 당할 줄 알면서도 절개를 꺾지 않았던 것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그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견딘 것이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은 억울한 누명과 그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선조 임금께서 “후일을 기약하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하며 불과 12척의 소형 전선과 120명의 군사를 이끌고, 서해를 통해 한양으로 가려는 133척의 대 군단을 결단코 그대로 북상시킬 수 없다고, 명량해전에 임했던 그 마음 역시 순수한 애국심이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충성을 바친 사무라이들도 일부 있었겠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충정으로 영주를 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영주에게 보인 충성은 순수한 충정도, 순수한 애국심도 아니고, 단지 영지를 얻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식된 충성을 한 것으로 믿어진다.

전국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전국시대에 법으로 정해진 사형방법은 없었다. 절대 권력자가 사형을 집행하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주가 마음 내키는 대로 사형을 집행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대망>에는, 죄인을 처형하는 데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땅을 파서 목까지 묻고, 그 옆에 톱을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씩 목을 잘라 죽이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애국심은 없었다


사무라이에게는 평민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언제 어디서든 즉석에서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라이에게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할복으로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할복이고, 스스로 알아서 죽은 것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배를 갈라 죽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의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형극의 시간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로 할복이 아니라, 옆에서 칼로 목을 쳐 주는 참수형을 했던 것이다. 단검을 배에 갖다 대는 형식을 취하면 ‘가이샤쿠(介錯 : 할복하는 사람의 목을 치는 일)’라고 하는 또 다른 사무라이가 목을 쳐서 죽이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