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⑦전길동 전 아한실업 대표

빼돌린 개발이익 전국에 숨겼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7화는 426억1300만원을 체납한 전길동 전 아한실업 대표다.

전길동 전 아한실업 대표(이하 전길동)는 2000년 3월부터 주민세 등 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24억59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전길동은 1997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모두 29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누적된 체납액은 401억5400만원이다.

정태수 데자뷰

지금껏 모두 6차례 소개된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의 주인공 가운데 1년 내 세금을 납부한 체납자는 없었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1화)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2화) ▲이용백 피앤디밸리 대표(3화) ▲이재성 아르누보몽드 대표(4화) 등은 하나 같이 납세실적이 전무했다.

그런데 전길동은 1년 사이 밀린 세금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까지 56억2500만원을 미납한 전길동은 2014년 들어 체납액이 절반 넘게 줄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금액 산출에 일부 착오가 있었다"며 "원래 금액(56억원)이 맞고, 전길동은 세금 낼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길동은 서울시가 고액체납자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체납액 기준 상위권을 차지했다. 전체 3위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서도 전길동의 이름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2005년부터 상위 10위권에 연속 랭크됐다.


첫 명단 공개로부터 10년이 흐르는 동안 전길동의 주소지는 서울 강남구에서 성남 분당구로 바뀌었다. 지난 8일 전길동이 살았던 대치동 한보미도맨션을 방문했지만 "집을 떠난 지 오래됐다"는 말만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한보미도맨션 맞은 편엔 한보그룹이 개발한 은마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개발사업으로 빛과 그림자를 경험한 정태수 전 회장처럼 전길동도 개발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가 주저앉은 케이스다.

전길동에게 매겨진 과세 명목을 보면 '성남상가개발㈜로부터 파생된 인정상여 등 과세'라고 적혀 있다. 세법에서 인정상여는 기업으로 들어온 수입의 행방을 알 수 없을 때 해당 수입을 대표자가 거둔 수익으로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전길동은 성남상가개발㈜의 대표로 장부에 없는 개발 수익을 숨겨 과세당국의 표적이 된 셈이다.

성남상가개발㈜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성남 수정구 신흥동 지하철 8호선 신흥역∼수진역 구간에 초대형 지하상가를 개발했다. 지하도로와 상가를 포함한 연면적은 2만7187.75㎡(약 8200평)였다.

단일 지하상가로는 전국 최대규모였던 이 공사는 진행 과정에서 각종 이권 청탁과 분양 비리가 불거졌다. 전직 시장까지 구속됐다. 1999년 대법원은 전길동으로부터 사업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오성수 전 성남시장(사망)에게 징역 5년을 확정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성남상가개발㈜의 실질적인 사주가 전길동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등기상 확인되는 성남상가개발㈜의 사주는 전영동씨였다. 영동씨는 2004년 첫 명단 공개 때 나이가 48살로 기재됐다. 11년이 지난 현재 나이는 59살이다. 반면 전길동은 올해 나이 72살로 영동씨보다 13살이 많다. 이들은 형제로 추정된다.

기자는 지난 8일 밤 성남상가개발㈜의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광진구 자양시장 뒷골목을 찾았다. 임대업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2층짜리 일반 주택이었다. 사람도 드나들었다. 건물과 연결된 노상 주차장에는 승합차가 2대 주차돼 있었다. 과세당국 관계자는 "전길동이나 성남상가개발㈜의 재산이 확인되면 징세할 수 있다"고 했다. 성남상가개발㈜의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여긴 지하상가이고 전길동은 없다"고 답했다. 전화번호 앞자리는 경기도 지역번호인 '031'이었다.

성남상가개발㈜은 1999년 12월부터 주민세 등 49건의 세금을 서울시에 내지 않았다. 체납액은 56억2300만원이다. 성남상가개발㈜은 1999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33건의 세금도 국세청에 납부하지 않았다. 성남상가개발㈜이 체납한 돈은 608억5000만원이었다.


서울시 24억·국세청 401억5000만원
성남지하상가·경남백화점 개발 뒤 '먹튀'

전길동은 성남상가개발로 개인과 법인 모두 합쳐 1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사실상 탈루(상가분양에 대한 법인세 무신고 등)했다. 성남상가개발은 각 기관이 공개하는 고액체납법인 상위 10위 명단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전길동은 체납자 신분으로 경남 진주에서 또다시 개발 사업을 벌였다. 태영실업㈜이란 법인을 내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납자이면서도 골프장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용백 대표와 비슷한 경우다.

전길동은 지난 2003년 연면적 5만2800여m²(약 1만6000평) 규모의 마레제백화점(지상 8층·지하 5층)을 진주 도심 한가운데 지었다. 하지만 마레제백화점은 1년도 못 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폐업했다. 입점 상인들은 거리로 나앉았다.

당시 진주시는 전길동을 마레제백화점의 실소유주로 보고 체납 문제와 관련해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마레제백화점의 전신인 태영실업의 대주주(지분율 87%)가 전길동이었기 때문이다. 전길동은 마레제백화점의 최고경영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2004년 11월 전길동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전길동은 진주시가 지운 '2차 납세의무'도 불복했다.

진주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전길동은 마레제백화점 부지와 경남 합천군 일대 토지 등 다수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 전길동 앞으로 된 재산은 5억원에 불과했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길동이 소유했던 성남상가개발㈜은 지하상가 부설주차장 운영으로 2009년까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들은 성남시가 주차장 반환소송을 청구하자 도리어 계약기간 연장소송을 제기해 물의를 빚었다. 앞서 전길동은 지역 사업가 황모씨에게 계약금 20억원을 받고 주차장 운영권을 넘기기도 했다.

이처럼 전길동은 무리한 부동산 개발로 체납자가 됐다. 언론에 공개된 아한실업이란 상호는 그를 효과적으로 대표하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국세청 홈페이지를 보면 전길동의 나이는 65세로 잘못 표기돼 있다.

아한실업의 주소지에는 대형 스파시설이 들어서 있다. 전길동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1994년 3월 정부가 주최한 '상공의 날' 행사에서 전길동은 내로라하는 기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유통업 부문 산업포장을 수여했다. 당시 전길동은 성동케이블TV 사업권을 따내 방송 사업에도 진출하려 했다. 문제는 그의 사업 확장이 '탈세'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곳곳에 흙탕물

참여정부는 2006년 3월 전길동에 대한 국가유공 서훈을 취소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와 같은 날 국가서훈이 취소된 인물 가운데는 '체납범' 전두환 전 대통령(12·12 및 5·18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이 있었다. 최근 '땅콩회항'으로 구설에 오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전길동과 같은 이유(상훈법 제8조 제1항 제3호 형법 등 관련)로 서훈이 취소됐다.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것이 정의 아닐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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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