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⑳ 빈곤층이었던 사무라이

중급 무사도 생활고 시달렸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일본 역사에 있어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한 나라가 무려 300여 개의 작은 독립된 세력으로 나뉘어져, 130여 년 동안 서로를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시기였다.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통하는 무법천지의 세상이었다. 이때를 흔히 피의 역사라고 한다. 130여 년 동안 지속된 크고 작은 전쟁으로 날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니 피로 얼룩진 역사라고 할만도 했을 것이다.

계속된 전쟁

계속되는 전쟁으로, 시체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그런 사회 환경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이곳저곳에서 진동했고, 그로 인해 많은 질병도 발생했다. 한 차례 전쟁이 끝나면 목 잘려져 나간 시체가 너무 많아 묻지도 못하고 들판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 어두운 시기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굶어 죽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겨울이면 얼어 죽는 사람 또한 세지 못할 지경이었다. 계속되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사회 기반 자체가 혼란스러워 서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전쟁이 있을 때는 전쟁으로 피해를 보고, 전쟁이 없을 때는 전쟁 준비로 또 다른 어려운 생활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겨울이면 바람막이조차도 되지 못하는 움막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자고, 춘궁기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살아야 했다.

지배 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조차도 상위 30퍼센트만이 기본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었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절대 빈곤 속에서 살았다. 1000석의 영지를 가진 상급 무사가 되어야 적자 없는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300석의 영지를 가진 중급 무사조차 적자 생활을 면할 수 없었다. 이들의 생활이 이렇게 어려웠던 것은 군역 규정 때문이었다.

쇼군에게 영지를 하사받은 영주는 그 영지에 해당하는 만큼의 군역을 부담해야 했고, 부하 사무라이들은 또 영주의 군역을 나누어 부담해야 했다. 전쟁이 났을 때 영주를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영주로부터 영지를 하사받을 때는 단지 전쟁에 나가 영주와 영지만을 지키라는 것만은 아니었다.

하사받는 영지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 규정이 있었다. 수확물 중 얼마는 영주에게 세금으로 바치고, 전쟁이 나면 몇 명의 무사와 말 몇 필, 그리고 짐꾼 몇 명을 데리고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 아래 영지를 하사받는 것이었다.

300석의 영지를 받는 중급 무사는 자신이 탈 말과 하급 무사 4명에 짐꾼 3명을 대동하고 전투에 참여하여야만 했다. 따라서 평소에도 말 한 필과 하급 무사 4명, 그리고 종 3명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만성적인 적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암흑시대, 전국시대
굶지 않으려면 이웃 침략해야


중급 무사가 적자 생활을 면하려고 하급 무사 4명 대신 2명을, 종 3명 대신 2명을 쓰면 적자 생활은 면할 수 있었겠으나, 이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용하는 숫자를 규정으로 정해 놓고, 영지를 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정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규정보다 적은 무사나 짐꾼을 부하로 둔다는 것은 바로 영주와 약속을 어기는 것이므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가난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사회 구조상 피할 수 없는 제도 때문이었다. 만성 적자를 면해 보려고, 많은 사무라이들이 천민층인 상공인들에게 부탁하여 우산을 만들고, 나막신을 만들고, 새를 키우고, 금붕어를 키워 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적자는 면할 수 없었다.

많은 사무라이들이 춘궁기면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갑옷과 투구는 물론 심지어 칼도 내다 팔았다. 자신의 굶주림이야 참을 수 있었겠지만, 어린 자식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우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어 목숨 같은 무기를 내다 팔았던 것이다.

비록 갑옷 없이 다음 싸움터에 나갈지언정, 굶주림에 우는 어린 자식을 차마 볼 수 없어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영주도 영주 나름으로, 큰 영지를 가진 영주도 있었고, 작은 영지를 가진 영주도 있었다. 대체로 만석 이상의 영지를 가지면, 영주라고 하여 성이 달린 큰집을 짓고 살았다.

만석 영지를 가진 영주 밑에 과연 1000석 영지를 가진 가신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10명 이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석 영주 밑에 과연 백성 몇 명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위 극소수만이 적자 없는 기본 생활을 유지하고 살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배 계급인 사무라이들조차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면, 평민들의 생활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전쟁에 직접, 간접 참여하게 됨으로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도 하루의 큰일로 오늘 날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처참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상위 30퍼센트에 속하는 사무라이들도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당대에는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적어도 3~4명이나 되는 아들 세대에 가서는, 하사받은 땅만으로는 기본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불안 속에서 살았다.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이 당시 사무라이들의 직책과 영지는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영주가 가신들에게 대를 이어 가며 보다 확실한 충성을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신의 처지에서는 당대에 충분한 영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식 세대에 가서는 살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려면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워야만 했다.

공을 세워 보다 많은 영지를 하사받아 보다 큰 영지를 물려주어야만 했고, 영주는 이러한 가신들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이웃 영주를 침략하여 보다 많은 영지를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웃한 영주끼리 끊임없이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주된 까닭이었다.

탐욕의 역사


보다 큰 영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웃한 영주를 침략하고, 갖고 있는 영지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보다 많은 영지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일본을 통일한 후 평화가 찾아온 일본에서는 늘어난 사무라이들에게 나누어 줄 땅을 더 이상 확보할 수 없게 되자, 그 대안으로 조선을 침략한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상당한 허풍쟁이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가신들이 보다 열심히 싸움하게 하기 위한 독려책으로 또는 적군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상당한 영지를 약속하였다고 한다. “당신에게는 영지 5만석”을, “당신에게는 영지 10만석”을, 그리고 “당신에게는 영지 20만석”을 등등 통 큰(?) 약속을 남발했지만, 일본을 통일하고 나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자, 조선 침략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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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